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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FTA 모르면서 '진보 논쟁' 참가는 무의미
[진보 논쟁] FTA와 사회적 약자 분리안돼, 경제는 사회에 묻어 들어가
 
황진태   기사입력  2007/02/26 [13:56]
“‘한미 FTA’를 반대하느냐 찬성하느냐 따위로 진보냐 아니냐를 가르는 어리석은 짓은 이제 그만해야 한다. 이것은 국민들의 이목을 끌자는 짓에 불과하다. 이것은 짝퉁들이나 할 짓이다. ‘기회균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최우선으로 삼느냐 아니냐를 진보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최용식, 진보논쟁 유감, 명품진보와 짝퉁진보 가려라 중에서)

한미 FTA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밀접한 관계

다른 기사를 통해서 재론의 재론을 거듭했지만 한 가지만 확실히 강조하자. 한미 FTA는 정치와 경제로 무 썰듯이 나뉘는 문제가 아니며, ‘기회균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때문에 FTA 문제를 최우선으로 문제 삼고 있다는 점이다.

한 신문 지면에서 이루어진 투자자-국가소송제 논쟁에서도 언급했지만 한미 FTA, 특히 투자자-국가소송제로 인해서 우편, 수도 등의 공공서비스 영역 황폐화가 될 가능성은 매우 농후하다. 오늘자 일간지에 보도된 공공요금 인상으로 서민들의 체감경기위축이 컸다는 기사를 보더라도, 타국의 사례처럼 공공요금의 무자비한 인상으로 인하여 폭동수준으로까지 악화일로를 걷지는 않겠지만 한미 FTA가 기회균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는 점만큼은 확실하다.

경제는 사회에 묻어들어 간다

이러한 한미 FTA와 민생을 따로 보는 시선의 근간에는 경제와 사회가 분리되어 있다는, 즉 시장은 자기조정이 가능하다는 믿음에 근거한다. 한미 FTA 현안이 ‘국민들의 이목을 끌자는 짓에 불과’하기에는 FTA를 비롯한 거시적인 경제사안들은 민생과 밀접하게 섞여있다. 경제가 사회에서 떨어져서 자생적으로 시장을 통하여 발전한다는 신고전경제학의 헛된 믿음이 이미 현실은 물론이고 이론상에서도 기각되었다.(심숀 비클러, 조나단 닛잔(2002) ; 장하준(2006))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 세계적으로 신고전학파의 득세와 언론매체, 기업들의 침묵이 시장 맹신을 강화시키고 있다. 다른 게 아니라 틀려도 여전히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것이다!

사회는 경제에 묻어 들어(embedded)간다고 주장하는 시장주의자들에 대해 일찍이 칼 폴라니는 ‘경제는 사회에 묻어 들어간다’며 <대전환 The Great Transformation>(1944)에서 공박했으나 아직까지도 주류경제학에서는 폴라니가 외면당하는 실정이다. 이러한 신고전경제학의 학문적 대세는 국내에서도 다르지 않아 시장의 회복만이 국가의 경제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동어반복된다. 이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한미 FTA 찬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국내 대표적 보수싱크탱크인 삼성경제연구소에서는 FTA 논의가 물꼬를 트기 시작한 지난해 5월에 한 보고서를 냈는데 보고서의 제목이 ‘한미 FTA의 정치경제학’이었다. 간단히 일부분만 읽어보자.

“미국은 한미 FTA를 한국의 주요산업에 대한 시장접근을 확보하고 동북아지역에서의 중국의 정치, 경제적인 영향력 증대를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경제적 이득은 물론 정치적 영향력 강화까지 추구하는 “포괄적이고 깊이 있는” FTA협상을 추진하고 있다.”       

일률적으로 신고전경제학 성향의 연구를 주창하는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나온 보고서라고 보기에는 참으로 의외의 내용이었는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그간 최용식의 텍스트가 노무현 대통령뿐만 아니라 진보진영에서도 참고할 정도로 입지적이었던 반면에 한미 FTA 논의를 기점으로 진보진영과는 갈라졌다는 점이다. 즉, 한미 FTA가 경제만 따로 보는 게 아니라 정치경제적인 다층성을 관찰한 삼성경제연구소(SERI)의 보고서와 FTA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즉 사회와 경제를 따로 보자는 21세기경제학연구소(TAERI)의 전도된 주장에 기인한다.

통계학의 진정한 오류는?

기자가 처음 최 소장의 한미 FTA 찬성 주장을 접하면서 최 소장이 주창하는 자신의 학문적 독창성에 근거한 ‘21세기 경제학’에 근거하여 한미 FTA 찬성을 내놓았다 할지라도 ‘노무현의 재야경제학 스승’이라는 딱지 때문에 찬성을 한 것은 아닌가하는 기자의 상상력까지 발휘할 정도로 아쉬울 수밖에 없었던 게 사실이었다.  

4, 5년 전 <서프라이즈> 시절에 최용식 소장의 경제칼럼을 흠모했던 기자로서는 ‘기회균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주장하는 최 소장의 진정성은 의심치 않으나 최 소장 나름의 학문적 연구를 통해서 결실을 맺은 ‘21세기 경제학’에 대해서 기자의 짧은 경제학 지식으로 본격적인 비판은 가능하지 않지만, 최 소장이 쓰는 통계에 근거한 경제분석에 대해서 (이는 최용식 소장뿐만 아니라 통계에 기대는 모든 경제학자들에게 해당하는 사항이겠지만) 칼 폴라니의 다음과 같은 지적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다. 

“말할 것도 없이 통계는, 계량할 수 있고 역사적으로 경험 가능한 사건인 모든 현상을 조망해낼 수 있는 일반적인 수단일 뿐이다. 통계는 결코 마술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통계는 단지 사람, 부, 토지면적, 상품 소비처럼 현실의 계량할 수 있는 즉 외적인 정보만을 주는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통계는 사후적으로만 쓸모가 있으며 사전적이거나 현재 진행 중인 상황에서는 쓰일 수 없다. 현 시점의 내면적 질적 현상들은 통계로 파악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통계가 경제 생활의 총체성을 밝히는 데는 한계가 있다. 통계는 단지 경제에 대한 외적 조망의 수단이다.”(칼 폴라니,『전세계적 자본주의인가, 지역적 계획경제인가外』, 책세상, 2002) 

오늘날 경제학을 비롯한 사회과학 전반에서 통계라는 막강한 도구를 무시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통계만을 가지고서 경제현상을 나아가 경제가 묻어가는 사회를 조망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폴라니는 이러한 통계학은 전체 경제를 조망하는 데 ‘외적 조망’이라고 지칭하면서 ‘내적 조망’을 통해서 노동자의 실제 노역과 고통, 필요욕구를 이해해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이론적인 쟁점으로 들어가면 내적 조망의 산출에 대한 측정과 관련한 논쟁으로 빠질 수 있겠지만) 최소한 최 소장이 언급한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는 폴라니의 내적 조망을 통해서 가능하다는 점만큼은 동의할 것이라고 본다.   

무딘 국민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라면

한미 FTA를 두고서 찬성이냐 반대냐의 본원적 물음이 단순히 가십의 목적으로 국민의 이목을 끌자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할 공공서비스에 대한 황폐화와 양극화 강화의 우려에 대해서 국민들이 알고, 각성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국민들의 무딘 이목을 끄는 것이 비난받아야 한다면 달게 받겠다. 누차 말했지만 한미 FTA 논의 과정에서의 시민사회 배제는 ‘참여’정부의 결정적 실수였다. 자신들이 당당히 의견을 말해야 할 부분에 대해서 발언권이 배제되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국민 대다수에게 뒤늦게나마 이목을 끌려고 노력하는 것이 과연 잘못인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때문이더라도 한미 FTA에 찬성하는 가, 반대하는 가는 여전히 중요한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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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2/26 [13:5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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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진태 2007/02/27 [10:43] 수정 | 삭제

  • 최용식 소장님 안녕하십니까.

    제글이 본격적인 논쟁을 하려고 쓴 것은 아닙니다. 최 소장님의 글을 애독했던 한명의 독자로서 몇 가지 아쉬움을 짚고 싶었던거구요. 세계화, 개방에 대해서 최 소장님의 주장은 제 생각과는 많이 이격된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러한 대척점적인 부분은 다른 논자들이 반론하실거라 생각합니다. 다만 세계화의 유형에 있어서 미국식과 쿠바식으로 이분하는 것보다는 그 중간에서 속도를 조절하면서 방안을 모색하자는 정도의 최소한의 합의는 있었으면 바람입니다. 댓글로 쓰신 거라 좀 극단적인 사례로 든거라 생각하겠습니다.

    지난해 에 정기기고한 글이나 최 소장님과 정태인씨와의 대담을 읽었지만 사실 지난해 최소장님이 FTA논의에 활발히 참여했다고 보기도 어렵구요. 이미 거의 성사가 코 앞인 지금에 와서야 뒤늦게 글쓰기를 한다는게 아쉽습니다. 통계를 중요시하는 최 소장님의 경제분석기법이 대외경제연구원에서 데이터 조작을 했을때는 왜 활용되지 못했을까하는 아쉽움도 남습니다. 또한 찬성이었을지언정 최 소장님의 논리대로 주장해왔다면 좀 더 건강한 FTA논의로 발전했을거란 생각도 듭니다. 정부도 조금이나마 새겨듣고 말이죠.

  • 최용식 2007/02/27 [03:34] 수정 | 삭제
  • 황진태님, 반갑습니다.

    우선, 통계에 관한 제 견해를 말씀드리죠. 통계가 모든 걸 설명해주거나 해명해줄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또한 그 기준과 그 해석에 따라서는 더 다양한 의미를 갖기도 합니다. 이게 통계의 가장 근본적인 한계일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통계는 가장 객관적인 판단이나 평가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관적인 판단이나 주장은 개관적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통계의 한계를 인식하고 강조하는 것은 중요하나, 그 한계를 인식하는 범위 안에서는 통계를 활용하는 일이 필수적인 일입니다. 모든 일은 평가와 판단을 거쳐야 하는데, 통계만큼 객관적인 기준은 없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렇게 판단하였으니, 너희들은 그걸 믿어라" 따위로 오만을 떠는 짓은 과학적인 자세가 결코 아니랍니다.

    다음으로, FTA는 시장개방을 추진하는 한 형태일 따름입니다. 따라서 FTA가 바람직한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은 시장개방이 바람직한가 아닌가라는 본질적인 문제에 입각하여 판단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모든 문제의 해결은 그 본질을 따지는 일에서 출발하는 것이 바람직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시장개방을 하지 않고 경제번영을 누리는 나라가 있는가, 혹은 시장개방을 하지 않고도 인민들의 생활이 전반적으로 향상되는 나라가 있는가 등의 문제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그런 나라가 있다면 단 하나라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살펴본 바로는 국내 시장을 닫아걸고 경제적 번영을 누리는 나라는 단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시장개방에 적극적인 나라일수록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는데, 그런 대표적인 나라로는 아일랜드를 들 수 있지요. 이 나라는 1980년대 후반까지도 국민소득이 8천여 달러에 불과한 유럽변방의 낙후국에 불과했지만, 1990년대 이후 독일보다 더 빠르게 성장했다는 영국을 뛰어넘는 경제성적을 기록했지요. 그래서 지금은 국민소득이 4만5천 달러에 이르렀답니다.

    혹시라도 시장개방이 아닌 다른 대안이 있다면 모르겠으나, 그렇지 않다면 시장개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실제로 그런 대안을 찾은 나라는 아직까지 단 하나도 없답니다.

    끝으로, 하필이면 왜 미국과의 FTA인가의 문제도 살펴보도록 합시다. FTA의 최고 단계는 최소한 지금까지는 EU 즉 유럽통합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시장 개방은 물론이고 통화 통합의 단계에까지 이르렀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EU를 통해 가장 큰 경제적 혜택을 입은 나라들은 어디일까요?

    인구도 많고 땅도 넓은 프랑스일까요? 아니면, 세계 최고의 산업경쟁력을 자랑한다는 독일일까요? 통계상으로 나타난 바에 따르면, 가장 큰 혜택을 입은 나라는 유럽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뒤떨어졌던 스페인입니다. 스페인은 EU에 가입한 뒤부터 경제적 도약을 시작할 수 있었고, 현재와 같은 경제적 번영을 누릴 수 있게 되었답니다. 이게 미국과의 FTA를 먼저 추진해야 할 이유입니다. 우리보다 앞선 나라와 FTA를 해야 더 큰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경제문제란 감성적으로 접근하면 항상 큰 실패를 맛보곤 한답니다. 무엇이 현실적으로 옳은가 혹은 좋은가 등을 이성적으로 따졌을 때에 비로소 실패를 면할 수가 있습니다. 시장개방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실적으로 폐쇄 경제를 지향했던, 소위 자립자족의 경제를 지향했던 나라들이 어떤 경제적 상황에 놓여 있는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쿠바, 북한, 미얀마 등의 국가들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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