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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호 처장, 국정홍보 말장난으로 하십니까?
[반론] 교조적 진보, '관념좌파'가 그 잘난 '유연한 진보'에게
 
각골명심   기사입력  2007/02/24 [17:34]
맹자는 그의 사단설(四端說), ‘공손추편(公孫丑篇)’에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라고 했다.

23일자 ‘오마이뉴스’의 김창호 국정홍보처장의 <정대화 교수 인터뷰 기사 반박 글>을 보면 바로 이 수오지심(辭讓之心) 없는 참여정부의 ‘후안무치(厚顔無恥)’함을 스스로 적나라하게 까발리는 '괴변의 성찬' 이상이 아니다. 그는 이제 홍보할 국정이 바닥났으니 이런 말장난으로 나머지 무료한 시간을 보내려는 걸까.

누가 더 편협하고 관념적인가

김 처장 글의 핵심은 조희연·정대화 교수가 22일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진보논쟁에 “진보가 아닌 노 대통령은 빠지라”고 요구한 것에 대해 글의 대부분을 할애하며 상당히 강도 높은 불쾌감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불쾌해야할 쪽은 바로 ‘진보진영’이다. 조희연·정대화 교수의 발언을 편협하게도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으라.”는 식으로 해석하여 마치 진보진영이 모든 ‘담론을 독점하려 한다.’는 듯 호들갑을 떠는 것은 아무리 봐도 김 처장의 경박함에서 오는 지나친 오버다.

참여정부의 정체성부터 따져 보자. 상식적으로 어느 학자도 한 정권의 국정성패를 평가할 때 그 정부의 정체성만으로 이를 결론 내리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보적 정부든 보수적 정부든 그것이 곧 성공과 실패의 절대조건이라 말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전체적인 정책의 비중을 가지고 진보적 혹은 보수적 정권이라 구분하는 것은 비교적 수월하고도 가능한 일이다. 익히 알려진 대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노무현 정권의 정책적 비중이 보수 쪽에 월등히 편향되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는 노 대통령 스스로도 대한민국 보수를 자임하고 있는 수구정당과 ‘정책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라고 자인한 바 있으며 집권여당은 이를 추인까지 해 주었던 데에 비추어 보아도 더 이상 왈가왈부할 성질의 것이 전혀 아닌 것이다. 즉 노무현 정부는 명백히 ‘보수정권’인 것이다.

귤이 강남 가서 탱자 됐단 소린 들어 봤어도 ‘유연한 귤’ 됐단 소리는 분명 괴변에 가깝다. 왜냐하면 상이한 기후·환경적 조건에 의해 다른 성질로 변해 버렸다면 그건 전혀 다른 변종, 먹지도 못하는 탱자인 것이지 어찌 여전히 귤이라 우길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이런 명백한 사안을 두고 지금 정권 말기에 와서 갑자기 대통령의 ‘유연한 진보’라는 말 한마디로써 간단히 뒤집으려 하는 것은 전혀 논리적이지도 못할뿐더러 ‘말의 유희’ 이상의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여기에 바로 진보진영의 불쾌감이 있는 것이고 진보 본래 가치 훼손에 대한 책임과 지금의 위기를 불러온 것에 대한 분노가 있는 것이며 진보미래를 위해 진지해야할 ‘진보담론’에 진보 아닌 진보가 끼어들어 진보의 미래를 결정하겠다는 것은 전혀 사리에 맞지 않다는 ‘배제론’에 본질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런 자신들이 걸어온 길에 대한 수오지심은 커녕 도리어 끼워주지 않는 다고 곡해하고 성을 내는 것이야 말로 바로 편협한 것이며 괴변으로 본질을 호도하는 것 역시 자신들의 논리에 갖힌 교조적이며 관념적 태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말이다. 참여정부는 이를 곧 논박을 해봐야 깨닳는단 말인가? 그렇다면 여태까지의 반성과 사죄는 이런 본질적 문제에 대한 사죄가 아닌 단지 ‘립 서비스’에 지나지 않았단 말인가?

참여정부가 “충분히 진보적·개혁적 성격을 갖고 있다"?

김 처장은 또 그의 반박문에서 “참여정부도 충분히 진보적·개혁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정작 참여정부의 어떤 면과 어떤 정책이 ‘진보적·개혁적’이었는지에 대한 구체적 사례는 전혀 들지 못하고 있다. 단지 ‘여성해방론 vs 북한인권론’, ‘복지론 vs 한미FTA찬성론’의 가당치도 않은 비교를 예로 들며 ‘진보의 스펙트럼이 점차 복잡화·다양화해지는 세계적 흐름’ 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일반론을 들어 참여정부의 사이비 진보론, 즉 소위 ‘유연한 진보론’을 슬쩍 끼워 넣으며 그 본질을 호도하고 있다. 묻자. 이런 스타일이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 그토록 누누이 강조하는 ‘구체성과 대안성을 갖춘 비판’의 양식이란 말인가?

따져 보자. 노대통령은 지난번 참여정부의 ‘복지비용 증가 수치’를 들어 스스로를 ‘진보’라고 우기고 있는데 세계 어느 진보가 서민·노동자의 임금·일자리를 착취해 결국 이를 복지비용으로 충당한 우수운 꼴을 만들어 놓고도 도리어 거기에 수오지심은커녕 자랑스럽게 이를 생색내고 있는가 말이다. 참여정부 들어 도대체 비정규직은 얼마나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으며 양극화는 또 얼마나 극심해 졌는지 그 좋아하는 수치로 한번 계량화 해보고 나서 이런 적반하장 주장들을 하는가.

또한 총량적 수치가 증가했으니 이는 국부와 경제성장을 이룬 것이라 자찬하던데 실제 그 돈들이 다 어디로 흘러들어 갔는지 따져보고 나서 이러한 지표를 함부로 들이대며 자찬하고 있는 것인가. 허면 상위 20%의 부자들을 대변하는 것이 바로 진보적·개혁적 성격이라는 것인가. 서민`노동자의 고혈을 빨아 부자들의 부를 증가시키는 것이 바로 그 '유연한 진보'의 본질이란 말인가 말이다.

말로서만 하는 개혁과 진보적 가치실현이라면 세상에 진보정권 아닌 정권은 단 한 곳도 없다. 이것 역시 세계적 흐름이고 추세라고 우긴다면 혹 내일은 탱자가 귤이 될 수도 있으려나....이런게 정녕 진보로 둔갑해 진보의 '본래가치'를 욕보이며 되려 '狐假虎威 '하는 세상이라면 차라리 난 '교조적.관념적 좌파' 하고 말겠다. 그걸로 한평생 우직하게 살더라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으며 그 '유연하고 매끄러운 패악'에 언제라도 침 뱉어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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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7/02/24 [17:3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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