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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직접소송제, 외통부 관료의 오만과 편견
최경림 외교통상부 FTA 제1교섭관의 무지 혹은 변명에 대한 반론
 
황진태   기사입력  2007/01/18 [20:56]
1월16일치 ‘왜냐면’에 실린 최경림 외교통상부 FTA 제1교섭관의 글을 읽고 반론한다. 투자자-국가 제소와 관련하여 한정된 지면에서 논하는 것은 무리지만 문제의 핵심을 몇 가지만이라도 짚고자 한다. 
 
첫째, 최 교섭관은 투자자 권리를 구제한다는 국제중재기구의 판정을 ‘표준조항’으로 간주하는데, 그렇다면 그 표준조항이라는 국제중재기구의 실체는 무엇인가. 일종의 국제적 로펌들의 일원으로 구성된 국제중재기구에선 한 명의 중재인과 분쟁 당사자 두 명이 모여서 비밀로 중재가 진행된다. 당사자들의 동의가 없는 한 중재가 벌어지는 장소도 시기도 그러한 중재가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비밀주의도 문제지만, 이들 분쟁 당사자들과 중재인이 때로는 당사자 변호인 혹은 중재인으로 자리를 바꾸며 돌고 도는 카르텔을 형성하여 막대한 중재료를 챙기고 있다.
 
또한 ‘힘이 곧 법’이라는 국제정치에서 최후의 방파제인 국제법의 영향마저 받지 않으며, 이들 셋이 모여 자의적으로 만든 규칙은 공공영역조차도 ‘수용(expropriation)’의 범위를 확대해석하여 국내법마저 휴지조각으로 만들어 다국적 기업의 승소를 유도하고 있다. 최 교섭관은 이 제도의 수용을 “정부는 규제정책을 최대한 투명하고 공정하게 시행하”기 위해서라고 항변하지만 정작 제소안의 협상 과정은 결코 투명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둘째, 최 교섭관은 투자자-국가 제소안 수용에 반대하는 이유를 “새삼스럽게 우려가 표명되고 있는 것은 상대가 미국이기 때문이다”라고 단정짓고 있다. 그러나 비단 상대가 미국이기 때문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가령 캐나다의 장례대행 업체가 미국 시장에 진출하여 미국의 국내 장례업자들이 줄도산을 하게 되어 이들의 진출을 막으려 하자 캐나다 업체들이 미국 사법부의 판결에 불복하여 졸지에 미국이 투자자-국가 제소안의 분쟁 당사자가 된 전례가 있다. 미국 내부에서도 이 조항을 바꿔야 한다는 여론이 있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초국경적인 자본이다. 거칠게 말해서 미국은 꼭두각시마냥 자본의 조종 혹은 로비를 받고 있을 뿐이다.
 
투자자-국가 제소안의 대표적 사건인 ‘벡텔 대 볼리비아 사건’만 보더라도 이러한 극단화된 자본축적의 논리는 수도사업을 접수한 일개 다국적 기업으로 인하여 최저임금이 70달러인 볼리비아에서 서민들은 한 달에 20달러라는 물값을 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했다. ‘물을 사야 할지, 어머니 약을 사야 할지’를 고민해야 할 지경이다. 
 
최 교섭관은 글의 말미에 “우리 투자기업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반대하는 것이 정부가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인가?”라고 반문했다. 호주, 미국 간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과정에서 호주 의회와 국민이 합심하여 투자자-국가 제소안을 철회시킨 사례를 한국 정부에 기대하진 못할망정 기업이익이 국민이 마땅히 누려야 할 기본권보다 결코 우선할 수 없다는 점만큼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한미FTA의 문제를 지구정치경학학적으로 풀어놓은 홍기빈의 투자자-국가 집접소송제     ©녹색평론, 2006
필자가 반론을 쓸 정도로 분노가 치민 것은 “제도의 내용이나 장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한 최 교섭관을 비롯한 참여정부의 엘리트적 오만함 때문이다. 자유무역협정 반대 광고조차도 저지하는 현 노무현 정부의 행태에서 어떻게 온전한 공론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 글은 홍기빈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녹색평론 펴냄)에 바탕 했다. 보충설명이 필요하다면 그 책을 일독하길 권한다. 최 교섭관에게 되묻는다. 공공영역까지 침해받을 수 있는 한-미 자유무역협정 협상에서 정부가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가?
 
* 본문은 <한겨레> '왜냐면' 1월 19일자에 기고한 글입니다. 

[참고기사] ‘투자자-국가 분쟁 제도’에 대한 오해 / 최경림(<한겨레, 2007. 1.16)

1월11일치 <한겨레>에 ‘한-미 FTA 투자자-국가 제소 미 요구안 수용’이란 기사가 실렸다. ‘미 투자자에만 유리…협상 실효성 의문’이란 부제가 달렸다. 이 기사와 같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논의하고 있는 투자자-국가 간 분쟁제도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그런 우려의 대부분은 제도의 내용이나 장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투자자-국가 간 분쟁제도는 외국인 투자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 금지 등 정부가 외국인 투자자의 권리 보호를 위한 협정상 의무를 위반했을 경우 국제중재기구 판정으로 투자자의 권리를 구제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는 에프티에이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이 맺은 전통적인 투자보장협정에 거의 모두 포함된 일종의 ‘표준조항’으로, 외국에 투자한 자국 기업에 대한 유력한 보호수단이며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우리나라도 지금까지 맺은 3개 에프티에이와 80여개국과 맺은 투자보장협정 대부분에서 이 제도를 채택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외국 기업이 이 협정에 따라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이처럼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이 제도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음에도 새삼스럽게 우려가 표명되고 있는 것은 상대가 미국이기 때문이다. 즉, 미국의 투자자들이 우리 정부를 상대로 빈번하게 소송을 제기하고, 소송에서 지게 되면 정부는 엄청난 배상금을 지급해야 하고, 정부의 정당한 정책 수행 권한도 크게 제약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기 때문이다.
 
북미 자유무역협정(나프타)의 경험은 그런 우려가 지나치게 과장된 것임을 보여준다. 나프타 발효 후 13년간 총 제소 건수는 44건이다. 나프타 판례들을 보면, 중재판정부는 일관되게 정부의 정당한 규제권한을 보장해 주고 있으며 정부가 패소한 건들은 그야말로 정부가 외국인 투자자를 명백하게 차별하였거나 부당하게 대우한 경우이다.
 
물론 이 제도가 전혀 부담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소송 가능성은 있기 마련이며, 소송에서 우리 정부가 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바로 그런 가능성 때문에 정부는 규제 정책을 최대한 투명하고 공정하게 시행하려고 할 것이고, 그 혜택은 외국인 투자자뿐만 아니라 우리 기업과 국민에게도 미치게 된다. 얼마 전 중국은 백두산 지역에서 우리 투자자가 소유한 호텔의 강제철거 계획을 발표했다. 만일 한-중 간 분쟁해결절차가 마련되어 있었더라면 중국 정부는 우리 투자자의 권리를 해치는 조처를 취함에 있어 좀 더 신중했을 것이다.
 
미국에 10억달러를 투자하여 자동차 공장을 건설한 현대자동차는 미국 정부의 부당한 대우로 피해를 볼 경우 미국 법원에 제소하는 것 말고는 현재 다른 법적 구제수단이 없다. 그러나 에프티에이로 투자자-국가 간 분쟁해결 절차가 마련된다면, 현대차는 미국 법원 대신 국제중재에서 정당한 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우리 기업들은 지금까지 미국에 무려 185억달러를 투자했다. 필자는 이 제도를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외국 투자자를 부당하게 대우해 소송에서 질 가능성을 우려해서 185억달러에 이르는 우리 투자기업의 이익을 효과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장치를 반대하는 것이 정부가 마땅히 취해야 할 태도인가?
 
최경림/외교통상부 FTA 제1교섭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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