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희 시인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서 기획한 책 「길에서 만난 세상」‘여는 글’에 이렇게 썼다.
“앞만 보고 가는 녀석이 있었다. 그 녀석은 앞만 보고 가야 무궁한 발전이 있고, 무너지지 않을 탑을 쌓을 수 있고, 국가의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면서, 마치 브레이크가 없는 승용차라도 탄 듯 뒤돌아보는 일을 게을리 했다. 주변과 이웃들을 조금만 살펴가며 전진했더라도 이웃들이 눈물을 흘리는 데 그쳤을 텐데, 녀석은 이웃들이 피눈물을 쏟아내도록 안하무인으로 앞만 보고 내달렸다. 녀석을 일컬어 사람들은 자본주의라고 했다.”
인권 문제하면 후진국은 자유권, 선진국은 차별 문제가 부각되는데, 현재 우리나라는 자유권은 상당 부분 신장되었지만, 실제로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권리와 연관된 차별적 관행 개선의 문제가 점점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고종석은 “신자유주의 해일 속에서 허우적대는 지금 한국에 국가의 왼손이 있기나 할까 하는 체념도 엉뚱하진 않다. 그래도 계급적 양극화의 긴장 속에서 경제국가로 치닫는 대한민국의 페이스메이커로서 국가의 왼손 비슷한 것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국가인권위원회일 것이다”라는 말을 했는데, 그만큼 인권위에 대한 기대와 우려의 시선은 높은 상황이다.
인권위는 지난 9월 22일 워크숍 이후 3대 조영황 위원장이 돌연 사퇴하는 바람에 내분설과 불화설에 시달려 오다가 10월 30일 법학자인 안경환 교수를 4대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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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에 임명, 소감을 밝히는 안경환 위원장 © 인물과사상 문종석 |
안 위원장은 취임사를 통해 “우리 자신은 한없이 겸손한 마음과 자세로 봉사하고, 자신의 존재는 점점 작아져서 끝내는 자취조차 보이지 않게 되더라도, 국민의 일상적 체취 속에 은은히 풍기는 비누 냄새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했고, 인터뷰 내내 ‘좌나 우나 개념을 떠난 보편적 가치로서의 인권’을 강조했다. 우리 사회 진보나 보수 양쪽 모두의 우려를 불식시키고 인권위를 여전히 한국 사회 인권의 등불로 생각하도록 유지, 발전시켰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밝혔다.
안경환 신임 위원장은 2002-2004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2003년 5월-|2005년 9월 법무부 정책위원회 위원장, 검찰인사위원회 위원, 교육인적자원부 대학자율화 및 구조개혁위원회 위원장, 예술의전당 이사 등을 역임했고, 2006년 11월 4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인터뷰는 11월 7일 오후 3시 인권위원회 13층 인권위원장실에서 1시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인권위의 속도론 지승호 - 4대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이 되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인권위를 어떻게 끌고 가실 계획인가요? 안경환 - 그게 마음먹는다고 뜻대로 됩니까? (웃음) 우선 기관으로서의 의사가 국민에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내부 의사 형성과정을 민주적으로 심도 있게 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제시하는 부분에 있어서 실천적 지혜를 발휘해, 저희 기관 의견이 많은 분들에게 현실적인 공감을 얻고, 꿈을 제시해 모든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쪽으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승호 - 취임하셨을 때 말씀하신 것이 마치 속도조절론 같이 들리기도 했는데요. ‘인권위가 국민들의 전반적인 인권의식에 비해 많이 앞서 나갔던 게 아닌가’ 하는 식으로 받아들인 분들도 계신 것 같은데요.안경환 - 꼭 그런 것은 아니구요. 인권위라는 게 원래 앞서 나가서 뭘 제시하는 것 아닙니까? 다만 그 부분에서 이상은 제시하되, 어떤 부분은 현실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여러 가지 요소나 절차도 고려하는 실천적 지혜도 갖춰야 된다는 얘기였습니다.
지승호 - 지금 국가의 왼손 역할을 하는 기관이 인권위 밖에 없는 것 같은데요. 지난번 비정규직과 관련된 인권위 권고에 대해서 노동부 장관이 폭언에 가까운 논평을 한 적이 있고, 재계에서도 ‘현실을 모르는 인권위’라고 공격하고 있는데요. 이런 상황에서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상을 어떻게 지켜 나가실 건가요?안경환 - 제가 좌우, 왼손·오른손 구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인권은 좌우를 초월한 보편적인 가치이기 때문에 그걸 나눠서 하고 싶지는 않구요. 다만 현실에서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강하게 제기하는 부분을 ‘좌’라고 표현하는 것이라면, 인권위가 국가기관 내에서 그런 역할을 분명히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말씀하신 사건과 관련해 얘기하면, 재계에서는 저희가 낸 노동권에 대해 ‘인권위가 월권하고 있다’고 얘기하면서 흔히 말하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든다고 말했는데요. 노동은 경제만 가지고 생각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경제에서는 효용과 합리, 단기적인 성과를 중시하니까요. 비정규직 문제에 관해 우리는 노동권을 노동인권, 즉 사회권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쪽입니다. 기본적으로 사회권을 표명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저희들은 의미가 크다고 생각하구요.
인권위가 5년차인데, 그동안 많은 일을 했습니다. 자부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에 대해서 법령·제도·관행을 정비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데 일정 부분 기여했구요. 차별 사례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기준을 제시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위에 대한 국민의 기대치가 아주 높기 때문에 거기에 비해 성과가 충분하지 않다는 시각도 있는 것 같습니다. 또 반대로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가치관에 비해 지나치게 앞서 나간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이 양극으로 대비되는 그런 입장말고도 많은 입장이 있을 겁니다. 어쨌든 이 모두가 인권위로 하여금 국민 속의 인권 전담기구로 확고하게 자리잡는 과정에서 겪는 성장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승호 - 말씀하신 대로 큰 기대를 갖는 국민들도 있고, 우려하는 국민들도 있는 것 같은데요. 지금 우리 사회의 인권의식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경환 - 짧은 시일 내에 의식이 많이 깨었죠. 직접적인 관련은 적은 문제지만, 우리가 권리의식을 주장하는 그 이면에는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권리 중심으로 너무 많이 나가 있기 때문에 의무에 대해서는 소홀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구요. 그런 것은 많은 사람이 지적하고 있습니다.
지승호 - 얼마 전에 일선 방범 현장에서 일하는 분이 ‘툭하면 인권위에 전화를 하는 바람에 일하기 힘들다’고 하기도 하구요. 그런 식의 인권 개선이나 감시는 많이 이루어지는 데 비해 전반적으로 노동자들의 인권이나 이런 부분이 달라졌다고 보여지지는 않거든요.안경환 - 기대치의 문제인데요.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해결을 못했다고 하더라도 가야 할 방향이나 원칙은 분명히 제시를 했구요. 모든 사건을 다 해결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제기하는 방법도 일정하게 절차에 맞아야 하구요. 어느 사회에서나 억울한 분,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분 이런 부분을 전부 해결할 수는 없죠. 다만 역량이 되는 범위 내에서 성의껏 응답을 하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할 것이구요.
북한 인권에 대해지승호 - 전국 37개 인권단체의 연대체로 구성된 ‘인권단체연석회의’(이하 연석회의)는 10월 31일 “안경환 위원장의 그간 행적과 인권 인식에 대해 비판을 자제하기 어렵다”는 논평을 냈는데요. 이런 우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안경환 - 저한테 하는 채찍과 격려로 잘 받아들이겠습니다.
지승호 -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비상임위원으로 인선되었다가 서울대 총장 출마를 위해 2개월여 만에 비상임위원직을 사퇴한 사실도 문제삼은 것 같은데요. 안경환 -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제 결정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출마를 해서 만약 총장에 당선되면 그 일을 못하게 되구요. 총장에 당선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선거직에 나간 사람은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공직을 버리는 것이 관례고, 기본 태도입니다. 저는 그 부분을 당시 관련된 기관장들과 협의하에 결정을 한 겁니다. 저는 저의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지승호 - 여러 가지 얘기가 나올 걸 예상하셨을 텐데, 위원장직을 수락하신 가장 큰 이유는 뭔가요?안경환 - 첫째로 대학에는 세상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좋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이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구요. 저도 그런 차원에서 강의, 연구도 하고, 대학교수의 신분에 장해가 있지 않은 범위 내에서 사회활동도 해왔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해온 것이 이 업무와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련 있는 거라고 생각했구요. 그 전에도 제 의사와 관계없이 정부의 자리에 대한 얘기들이 오고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자리는 특히 독립된 기구이고, 임기가 보장되어 있구요. 제가 지금까지 생각하고 얘기해왔던 것, 제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정부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사람들까지도 격려를 하고, 이 일은 맡아야 할 일이라고 하고, 가족까지도 불편을 참겠다고 해 힘을 얻어서 맡게 되었습니다.
지승호 - 며칠 되지는 않으셨지만, 밖에서 보던 인권위와 위원장을 맡아서 본 인권위는 어떻게 다르던가요?안경환 - 인권위는 내부 갈등이 아주 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지금까지 느낀 바로는 그렇지 않다는 겁니다. 지난번 조영황 위원장님 사임을 계기로 해서 인권위에 문제를 제기하는 언론이 많았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구요. 다양한 신분과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여기 위원으로 구성되어 있고, 또 그것이 인권위원회의 원래 취지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어떤 사안을 놓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의견들이 나올 수 있고, 그 의견들을 진지하게 토론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위원회가 그런 것 때문에 고성이 있었거나, 문을 닫았거나, 회의를 못했거나 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민주적인 토론과 협의과정에서 일어났던 일인데요. 그런 점이 바깥쪽에서 인식하는 것과 다르다는 얘기를 드리고 싶네요.
지승호 - ‘2기 인권위에 부여된 사회적 약자의 보호, 인권침해 예방, 인권단체 협력강화라는 과제도 미진한 채로 남아 있다’는 지적도 있었는데요.안경환 - 그건 제가 생각을 해봐야겠습니다. 인권위의 역할은 이중적인 것입니다. 하나는 인권 현장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답을 만드는 것이구요. 또 하나는 다른 국가기관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중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 때문에 사회단체가 인권위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고맙게 생각하구요. 저희와 사회단체·시민단체는 약간의 긴장적인 협력관계, 보완적·비판적인 공조관계가 설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인권의 범주가 점차 확장되고 있기 때문에 인권위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분야가 점차 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 역점을 둘 부분은 빈곤 문제, 양극화, 시설생활자 등 소외계층의 인권 문제인데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 이른바 사회권에 있어서 인권위가 더 많은 역할을 해야 되겠죠. 이와 관련해서는 실태조사를 해왔고, 그 결과가 정책 개선으로 이어지도록 노력할 계획입니다.
지승호 - 요즘 북핵 문제와 관련해서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는 어떤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보십니까?안경환 - 이미 그 문제에 대해서 특별위원회가 구성되어 많은 부분 심도 있는 논의를 했습니다. 사안의 복잡성 때문에 3년 이상의 검토·연구 기간이 필요했고, 상당수의 자료를 제시했구요. 며칠 전에도 북한의 법제에 관한 보고서를 냈거든요. 어쨌든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서는 ‘북한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시각에 따라서 극과 극으로 나뉘어질 수가 있죠.
한쪽은 헌법 조항을 내세워서 북한도 당연하게 남한의 영토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유엔에 가입한 독립된 국가이기 때문에 완전히 외국으로 생각하는 법리도 가능합니다. 우리 국민의 보편적인 생각은 양극도 아닌 중간의 어떤 지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 문제는 여러 가지 측면을 고려해서 국제사회에서 북한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 정부가 노력하는 것을 종합해서 인권위원회가 법령상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을 연구하고, 심도 있는 토론을 통해서 금년 말까지는 인권위의 기본 입장을 제시해야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법과 인권 사이지승호 - 2004년 한국여성단체연합회에서 선정한 여성권익 향상 ‘디딤돌’상을 받으셨는데요. 현재 우리 사회의 여성 인권이나 권익은 어느 정도 수준이라고 보십니까?안경환 - 그때 아마 저한테 준 이유가 서울 법대에서 여자 교수를 최초로 뽑았다는 것하고 부수적으로 장애인 학생을 입학시켰다는 것 때문일 겁니다. 여성 문제에 대해서는 여성의 개인적인 능력보다는 여성이라는 성별 때문에 많이 차별받고 있다고 오래전부터 생각을 해왔습니다. 그것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있었는데요. 지난 몇 년 동안 법제적으로는 많은 부분 개선되었습니다. 여성을 차별하는 법률들이 차례차례 위헌 선언이 되었고, 마지막으로는 호주제까지 위헌 선언이 되어서 법적인 차별은 거의 다 없어졌다고 생각하는데요. 법적인 차별이 없어졌다고 해서 사회적인 차별까지 다 없어진 것은 아니거든요. 자녀가 있는 기혼 여성은 사회활동을 하기가 힘들죠. 실질적으로 대등하게 일할 수 있는 사회활동의 기회를 적극 보장하기 위해서는 개선되어야 할 것이 상당히 많다고 봅니다.
지승호 - 어떤 부분들이 더 개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안경환 - 예를 들면 국립대학의 여자 교수를 뽑기 위한 임시적인 특별쿼터를 정부에서 만들지 않습니까? 그게 준 효과가 굉장히 컸는데요. 그러나 실제로 일할 수 있는 자리에서 육아 등과 관련된 사회시설, 삶의 인프라 같은 것이 확충되고 보완될 필요가 많이 있습니다.
지승호 - 인권위에서 실질적인 정책들에 대해서 접근하기 쉽지는 않을 텐데요. 그동안 성희롱 사례나 직장 내 남녀차별 등에 관한 권고를 많이 했지 않습니까? 거기에 대해서 일부 남성들은 피해의식을 느끼고 있는 것 같은데요.
안경환 - 어떤 문제를 제기하면 현재 그 제도에 익숙해 있던 사람은 불편하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 흐름이 옳다고 생각하면 이것을 사회전체 흐름으로 수용을 해야 되겠죠.
지승호 - 보수 성향의 언론들은 인권위의 활동에 대해서 삐딱한 시선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 나가실 생각인가요? 인권위를 ‘좌파들의 놀이터’라고 노골적으로 조롱하는 신문들도 있지 않습니까?
안경환 - 누누이 강조하지만 보수, 진보를 구분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좋은 의미로 현상 문제에 있어서 고착돼 가는 질서에 대해 심각하게 문제를 제기하는 쪽을 좌파라고 한다면 그건 수용하겠습니다. 그 부분은 결국은 인권위의 역할이 뭐냐고 했을 때 국가기관 내에서 인권의 이름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쪽에 있거든요. 그것은 인권위의 고유한 역할입니다. 거기에 대해 이해를 못한다고 하면 그쪽에서 잘못된 것이고, 그것을 이해시키도록 해야겠죠. 다만 제기하는 방식이나 이런 부분은 좌, 우 이념과 관계없는 겁니다. 인권이라는 가치를 가지고 공동체에 대해 나가야 할 길을 제시하는 거니까 그 부분을 바탕으로 옳은 일을 하면 언젠가는 인정받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인권위원들은 대통령, 국회, 대법원의 추천을 통해 임명되기 때문에 인권위가 임의대로 선출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좌파들의 놀이터’라는 비판은 실제와 전혀 맞지 않는 거죠. 보수, 진보 양측으로부터의 비판과 충고에 귀 기울이되, 보수니 진보니 하는 이념적 잣대가 아니라 ‘인권’이라는 가치에 기준을 두고, 독립기관으로서의 정체성에 충실하게 토론과 사회적 의견 수렴이라는 과정을 통해 당당하게 의견을 밝히는 것, 이 이상으로 인권위의 위상을 높이는 방법은 없다고 봅니다.
지승호 - ‘바야흐로 민주와 인권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는 취임 일성에 대해서도 ‘안이하고, 현실 영합적’이라는 의견도 있는데요.안경환 - 모든 글은 한 구절만 보지 말고 전체를 보고 읽어야 됩니다. 일종의 수사적인 표현을 들면 옛날의 암울한 시절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은 상당히 많이 진보했다는 뜻이구요. 그렇지만 닥쳐올 겨울이 있을지 모르니까 거기에 대비하자는 뜻이었죠. 모든 문서는 전체적으로 보고 평가를 하는 것이 옳다고 봅니다. 어떤 인권 선진국이든 인권 현실은 마침표가 없는 영원한 과제입니다.
지금의 인권 상황에 대한 평가는 현재를 만족할 만한 것으로 긍정하는 절대적 평가라기보다는 우리나라 인권 상황을 통사적으로 살펴볼 때 상당한 진전을 이뤘다는 의미입니다. 분명 과거와 비교할 때 큰 성취를 이뤄냈으며 특히 자유권 부문에서 괄목할 만한 개선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번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에서 한국 정부에 지적한 내용들(양심적 병역거부 인정, 국가보안법 개정 촉구, 정신병원 인권 상황에 대한 지적, 모든 형태의 구금 시 즉각적인 변호인 접견권 허용요구)을 보더라도 더욱 개선할 점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지승호 - ‘인권위가 무리한 권고나 의견표명으로 정부 부처 위에 군림하려 한다’고 불평하는 관료들도 많았던 것 같구요. 인권위의 권고를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경우도 많았지 않습니까? 그런 것은 어떻게 풀어 나가실 생각이십니까?안경환 - 되풀이되는 얘긴데요. 결국은 우리가 다른 국가기관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하면 같이 풀어야 하는데, ‘최종적으로 그것이 옳으냐, 그르냐’ 하고 판단하는 것은 국민이거든요. 그러니까 우리가 권력이 없는 대신에 국민들에게 매력이 있어야 된다는 얘기가 바로 그 얘깁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때그때 이것이 협조가 되어서 서로 조율이 되면 훨씬 좋지만, 좀 지나고 난 뒤에 어느 쪽이 옳았느냐 하는 것은 국민과 역사가 평가할 겁니다. 현실적으로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 최대한 다른 기관의 경험도 존중하면서 합리적으로 적절한 방법으로 하되, 우리가 나가야 할 방향, 미래에 대한 희망을 버려서는 안 됩니다. 인권이 바로 등불이라는 것이고, 그게 인권위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권위가 무리한 권고를 한다는 비판 가운데 많은 부분이 헌재나 대법원의 판결도 무시한다는 것인데요. 그곳들은 사법기관이고, 인권위는 인권기구이기 때문에 각 기관 간의 기능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인권기구는 사법기관만으로는 인권 신장이 충분히 되지 않아 만든 인권 전문기구이기 때문에 헌법상의 기본권을 확대하고자 하는 것은 성격상 당연한 일이죠. 이 과정에서 양 기관 간에 결론의 차이가 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사법기관은 주로 국내법의 틀 내에서 인권 문제를 보고 있지만, 인권기구는 국내 법적 근거 외에 국제인권법이라는 주요한 틀을 가지고 있는 거죠.
즐거운 사라 사건, 그리고 표현의 자유지승호 - 위원장님이 좀 보수적인 게 아니냐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신 것 같거든요. 「법과 문학」이라는 저서에서 표현의 자유를 외치셨는데요. 마광수 교수는 위원장님에 대해 “‘즐거운 사라’ 사건 때 판사가 지명한 감정인 역을 맡아가지고 마광수 소설이 음란물이므로 유죄로 처벌해야 마땅하다고 주장한 사람이다. 표현의 자유도 인정 안 하는 사람이 어떻게 국가 인권위원장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라고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주장했는데요. 그 점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안경환 - 저는 스스로 ‘보수다, 진보다’ 하고 규정짓는 사람이 아닙니다. 제가 하는 일은 제 원칙에서 똑같은데, 그 평가는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겠죠. 그 사건은 사실 관계가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참고인을 할 때는 처음에 변호사들의 신청으로 먼저 참여를 했구요. 거기에 검사가 동의를 해서 법원이 저한테 감정인을 맡긴 거죠. 변호사들이 요청을 했다고 해서 그쪽에 유리하게 할 수 있는 건 아니구요. 당시 우리나라의 법률로서는 예술작품하고 음란물하고 완전히 둘 중 하나를 택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 나름대로 생각할 때 둘 중에서 택해야 된다고 하면 문학작품에서의 긴장관계 이런 것을 생각하면서 그쪽을 택했던 것이죠. 제가 표현의 자유를 제한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구요. 감정서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아무도 안 하려고 하니까 양쪽에서 동의를 하면 하겠노라고 했고, 그래서 제한된 의견을 냈구요. 그 결과에 대해서 사람들이 비판을 할 수도 있고, 또 좋아할 수도 있죠.
지승호 - 마광수 교수는 그 의견 표명이 유죄 판결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 것 같은데요.안경환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죠. 어쨌든 간에 자기 의견을 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의견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되는데,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있는 의견이 없죠. 결정을 내린 사람에게는 평생 따라다니는 업인 것 같습니다.
지승호 - 음란물이냐 예술작품이냐 선택할 수밖에 없게끔 공권력이 개입한다는 자체가...안경환 - 공권력의 개입이 아니에요. 법제가 그런 거죠. 만약 그 부분에 대해서 위헌 소송이 들어갔더라면 표현의 자유라는 부분에 무게를 둬서 다른 판단을 할 수도 있었겠죠. ‘이러이러한 상황에서 이 작품이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뭐냐’고 하니까 제한된 범위 내에서 의견을 낸 거죠. 다들 이슈를 혼동하고 계신 겁니다. 저는 그 작품이 예술작품으로서 함량 부족이었다고 생각하구요. 지금도 그 판단이 옳다고 믿습니다.
지승호 - 올 초에 인권위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공무원·교사의 정치참여 확대를 골자로 한 이른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을 내놨는데요. 전공노(전국 공무원 노동조합)이나 전교조에 대한 일반 국민들의 부정적인 시선도 있고,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해 반대하는 여론도 아직 상당한데요. 이 부분들을 어떻게 처리해 나가실 생각인가요? 안경환 - 국가보안법의 문제는 이미 인권위가 입장을 밝혔고, 유엔에서도 개정이나 폐지 권고를 한 거거든요. 헌법과 법률이 보장한 기본권뿐만 아니라 국제인권법과 우리가 가입한 인권조약과 국제관습으로 인정한 여러 가지 자유와 권리를 지켜줄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국가보안법의 개정 또는 폐지는 저희들이 가지고 있는 기본 원칙이구요. 공무원 문제에 대해서는 저희들이 권고안을 낸 이유는, 공무원의 정치적 활동이 절대 금지되다시피 하기 때문에 정도의 문제였죠. 공무원이기 때문에 분명히 제한되어야 할 부분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본격적인 제한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승호 - 요즘 교실에서 교사가 학생을 폭행할 때 아이들이 핸드폰으로 그걸 찍어서 고발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래서 논란이 있지 않습니까? 체벌은 절대 안 된다는 쪽도 있고, 너무 심하게 교사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견도 있는데요. 이렇게 스스로 일정하게 보호를 받을 수 있으면 다행인데요. 이런 것과 달리 인권의 사각지대도 여전히 있는 것 같습니다. 얼마 전 TV를 보니까 부모가 자식을 방치해서 스물여섯 살인가 되는 사람이 여섯 살 정도의 발육 상태에 있는데, 사람들이 가서 그 아이(?)를 제대로 진료를 받게 하려고 했더니 현행법상 부모의 동의가 없으면 안 된다는 겁니다. 어떻게 보면 명백한 범죄 행위에 가까운데, 그걸 통제할 수 없다는 게 황당하더라구요. 법 이전에 상식의 문제 같은데요.안경환 - 부모가 자식의 장래와 신변에 대해서 보호한다는 전제에 서 있기 때문에 그 전제를 가지고 거기에 어긋난 경우에만 개입을 합니다. 구체적인 상황에서 그런 사각지대가 있다면 그런 부분들을 저희들이 문제를 연구해서 제기를 할 수가 있죠. 언제나 제도는 조금 늦게 갑니다. 현실이 먼저 나오거든요. 현실의 문제가 제기되어야 제도가 개선될 수 있습니다.
지승호 - 극단적인 사례이기도 하지만, 노예 할아버지 사건에서도 보듯이 당사자는 물론 주위 사람들이 인권의식이 없는 게 문제 같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제도도 안 만들어지는 것 같구요. 그렇게 갇혀 있는데도 주위 사람들이 범죄라고 보지 않았거든요. 안경환 - 자기 문제가 아니면 남의 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것이 사회가 선진화되면서 일어나는 약점 중의 하나죠. 자기 문제, 자기 중심이고, 공동체의 윤리 의식이 무너지는 것은 상당히 큰 문제입니다.
지승호 - 제도도 문제지만, 인권의식 고취 같은 것도 중요한 것 같은데요. 인권위 차원에서 그것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은 어떤 걸 가지고 계십니까? 안경환 -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이 많이 있습니다. 학교, 국가기관, 사기업, 사이버 교육도 하고 있습니다. 저희 예산을 보면 교육에 대해서 굉장히 많은 예산이 배정되어 있습니다. 교육은 당장 효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투자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전체 인권 상황의 개선을 위해서는 인식이 중요한데, 그래서 저희들은 교육에 상당히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인권은 보편적 가치이다지승호 - 위원장을 하시는 동안 어떤 일에 중점을 두실 생각이십니까?안경환 - 지금까지 여러 가지 얘기를 했지만, 특히 제시 안 된 것을 얘기하자면 국내적으로는 뭐니 뭐니 해도 인권위의 권고, 의견을 국민과 국가기관이 경청할 수 있도록 만들고 싶구요. 다음으로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우리 사회가 세계에 유례없이 경제성장과 인권의 신장, 민주주의를 빠른 시일 내에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식민지를 탈피한 나라로서 경제 부분에 대해서는 지표가 나오고, 상당히 국제사회에서 공인이 되고 있는데요. 그만큼 인권의 신장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구요. 그렇지만 일정하게 이룬 성과도 있는데, 그것을 어떻게 하면 국제사회에 알려서, 특히 아시아 여러 국가들에게 확산을 시켜서 우리나라의 국제적인 지위를 향상시키는 데 기여할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국제적인 활동에도 주력할 생각입니다.
지승호 - 퇴임하실 때 어떤 평가를 받고 싶으신가요?안경환 - 일한 만큼 평가받기를 원합니다. (웃음)
지승호 - 김대중 정부 때보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 정부 차원의 인권의식이나 이런 게 나아졌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데요.안경환 - 항상 이상주의자들은 현실에 대해서 비판의식을 가지게 마련이구요. 이룬 것에 대해서는 당연하다고 잊어버리죠. 못 이룬 것에 대해서는 기대가 있기 마련이죠. 역사는 이상주의자의 좌절을 통해 성장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눈에 보이게 개선된 것은 스스로 잘 못 느끼고, 조금 불편한 것은 강하게 들어오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 개별적인 이슈에 따라서는 평가가 왔다 갔다 할지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볼 때 우리 사회가 민주화, 인권 신장 쪽으로 나가고 있다는 사실은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은 완성이 없는 것이기 때문에 끝없이 긴장하고 문제를 생각하면서 열정을 가지고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언제나 저에게 주어진 사명이구요. 인권 현장에서 활동하시는 분들이 귀한 존재인 것은 바로 그런 부분들 때문입니다.
지승호 - 사형 제도에 대해서도 여러 논란이 있는데요. 안경환 - 저희들은 사형 제도 폐지를 권고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오래전부터 사형폐지에 앞장섰던 사람이구요. 법무부 정책위원장을 하면서도 그 문제를 논의했는데, 그건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지승호 - 이용훈 대법원장이 ‘검찰 조서는 버려라’고 하면서 공판 중심주의를 강조했는데요. 그 점에 대해서는 법학자로서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안경환 - 검찰과 법원과의 관계에 대해서 제가 얘기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습니다. 서로 기관의 입장이 있으니까 ‘어떻게 하면 국민의 권리를 잘 보장하느냐’와 ‘국가기관으로서의 역할을 효율적으로 수행하느냐’, 이 두 가지 문제에 있어서 어느 쪽에 관점을 두느냐에 따라서 각각의 입장 차이가 있겠죠. 어느 기관이나 다 국민생활과 권리를 존중하자는 데 대해서는 이의가 있겠습니까?
지승호 - 사법부가 예전에 비해 인권의식에 있어서 개선되었다고 보십니까?
안경환 - 사회가 발전한 만큼 사법부가 그 속도를 따라가는지는 모르겠지만, 방향은 그렇게 가고 있죠. 사법부는 원래 천천히 옵니다. 사회 전체가 민주화의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그 부분도 반영이 되죠. 다만 속도나 정도가 이상주의자들의 기대에 못 미칠지 몰라도 분명히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지승호 - 위원장님께서 쓰신 「조영래 평전」은 고 조영래 변호사에 대한 최초의 평전이었는데요. ‘조영래 평전에는 조영래가 없다’는 일부 비판적인 평가가 있지 않았습니까? 안경환 - 당연히 있을 수 있죠.
지승호 - 주변 사람들에 대한 취재가 전혀 없었다는 것을 지적한 사람도 있었구요. 권인숙 교수는 ‘나와서는 안 될 책’이었다는 혹평까지 했는데요.
안경환 - 그 책 읽어보셨습니까?
지승호 - 아직 못 읽어봤습니다. 안경환 - 제가 쓸 때 그 사람의 대표적인 전기로 일생을 기록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는 것은 전제했습니다. 그리고 복고적으로 되돌아보는 게 아니구요. 그 시대를 겪지 않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약간 거리를 두고 보자는 입장에서 썼기 때문에, 옆에서 치열하게 생활하신 분들은 당연히 불만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죠. 그래서 주로 이미 나와 있는 자료는 덜 참조했는데요. 제가 인터뷰를 안한 건 아니구요. 늘 만나던 사람, 늘 알던 사람, 그 분의 행적에 대해서 기록이 나와 있는 사람들은 만나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가족사가 아니기 때문에 그런 부분도 소홀히 한 건 사실이구요. 그런 쪽의 일을 조명하곤 하는 그런 글이 빨리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죠. 저는 그 글에 대해서는 자신 있게 제가 쓴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분들이 그 부분에 대해서 불만을 가질 수 있죠.
지승호 - 서울대 법대 부분이 너무 강조된 거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는데요. 안경환 - 당연하죠. 제가 아는 게 그쪽이니까요. 다른 부분의 자료들은 밖에 나와 있거든요. 제가 제일 잘 아는 부분이 그 부분이고, 다른 측면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에 그랬죠. 제가 서울대 법대에 조영래의 기념홀을 만들었고, 그 다음에 자랑스런 동창생으로 기억하고 있구요. 서울대 법대가 우리 사회에 지고 있는 빚이 많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 서울대 법대가 사회 전체에 대한 자기반성 그런 부분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썼습니다. 그건 서문만 읽어봐도 아실 겁니다.
지승호 - 평전이 하나밖에 안 나와 있어서 그런 의견들이 나오는 것 같네요.
안경환 - 그러니까 다른 책들도 많이 나왔으면 좋겠습니다. 쓰는 건 그런 쪽을 부각해서 쓰면 되는 거고, 쓴 걸 가지고 비판만 하지 말고, ‘다른 걸 써주십사’ 하는 거죠. 이미 그건 전제했습니다. 부족한 게 많고, 한계가 있다구요. 다른 걸 부각해서 쓰시면 좋죠.
지승호 - 특별한 계획은 있으신가요?안경환 - 있다가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 일 때문에. 항상 하고 싶은 일이 많았죠. 학교에서 할 일이 많았습니다. 오랜만에 학교를 중심으로 계획도 세우고, 개인적인 계획도 세우고 있었는데요. 인생이 자기 계획대로 되는 게 아니더군요.
지승호 - 마지막으로 해주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안경환 - 사회 전체를 볼 때는 가령 여러 측면에서의 역할들이 있죠. 기자께서는 자꾸 진보, 보수 또는 좌우 이렇게 표현하시는데, 다 어떤 측면에서든, 지향하는 어떤 부분에서의 가치 중에서 상당히 동의하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반대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저는 그게 인권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 인권을 이르는 과정이나 절차, 시기, 이런 문제의 차이일 따름이죠.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경우에 저란 사람이나 인권위가 하는 일에 대해서 여러 가지 시각에서 볼 때 때때로는 불만스러울 수도 있을 거구요. 때때로는 너무 기쁘게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우리 역할을 생각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인권위원회는 절대로 필요한 존재라는 것이구요. 우리는 끝없이 노력하면서 진보를 이루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데요. 이것을 우리만 가지고 있지 말고 우리보다 사회적으로 늦게 성장하고, 발전한 나라에게 베풀고 나눠줄 그럴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 점에 대해서 많이 격려해주시기 바랍니다.
* 본문은 월간 <인물과 사상> 2006년 11월호에 게재된 기사이며, 출판사의 허락하에 전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