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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전교조죽이기'에 동원된 애국주의
[미디어비평] 국기에 대한 의례 거부논란, 공중파 수준 공론화 이끌어야
 
황진태   기사입력  2006/07/17 [01:32]
얼마 전 ‘민족신문’ 조선일보가 “경기도 부천의 한 고교 교사가 학생들에게 國旗국기에 대한 경례와 병역을 거부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며 ‘전교조 출신 이런 교사’란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이번 사건정황을 모르다가 KBS <시사투나잇>의 보도를 통해서 윤곽을 알았다.
 
조선일보가 지칭한 ‘전교조 출신 이런 교사’의 해명에 따르면 수업 중에 자신이 국기에 대한 경례에 대하여 비판적 의견을 밝힌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자신의 경험을 ‘다양한 의견 중에 하나’로서 언급했을 뿐이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만약 자신의 의견을 학생들에게 강요했다면 ‘주입’이었을 거라며 이는 민주주의에 어긋난다고 강조했다. 또한 수업을 들었던 학생은 자신이 일이년만 있으면 성인이 되는데 우리가 어린애는 아니라며 설사 선생님이 그렇게 의견을 강요했다면 우리가 순순히 들었겠냐며 반문했다. 
 
이번 사건의 전말은 조선일보가 보도하기 전에 교사의 발언에 대해서 교육청에서 경고를 받고서 매듭지어가던 차에 학부모가 조선일보에 기사화를 부탁하여 사설로 싣고 일등신문의 위력에 교육청이 다시 강력한 처벌을 하게 된 것이었다. 이번 사건에서 시사투나잇 오유경 아나운서가 지적했듯이 조선일보의 부풀리기 보도가 문제였다. 뒤에서 상술하겠지만 조선일보의 국기에 대한 의례에 대한 보도를 짚어보면서 그들은 ‘전교조죽이기’를 위해서 정신분열증적인 지킬과 하이드가 되었음을 목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독자들도 기자와 함께 정신과전문의가 되어서 조선일보에 대한 진료를 시작해보자. 
 
히노마루, 기미가요에 대한 조선일보 보도행태
 
조선일보는 그간 일본의 히노마루, 기미가요 부활에 대하여 비판적인 보도로 일관했다.
 
“아키히토(明仁) 일본 왕은 덕담만을 얘기하는 사람이다. 상징적인 지위를 고려해 오해를 살 만한 정치적 발언은 하지 않는다.”며 일본특파원 최흡은 “역시 (국가 제창을) 강제하지 않는 게 바람직합니다.”는 천황의 발언을 두고서 “왕이 현실적인 사안에 대해 직접 의견을 표출했다는 점에서 이번 발언을 ‘일본왕의 권위 재건’, ‘왕의 정치적 영향력 강화’ 등으로 나쁘게 해석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일왕의 발언은 일본 사회의 일부 보수적인 움직임에 왕실이 중심을 잡았다고 보고 싶다. 사회의 극단화를 경계하는 일본의 양식과 자정력이 살아있다고 보고싶다”고 밝혔다. ([기자수첩] 日王이 말린 ‘기미가요 강요’ 2004.11.1)
 
‘현대판 일본 군국주의 부활하나’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조선일보는 “히노마루와 기미가요를 부활”에 대해서 “군국주의 일본이 되살아난 것이다.”고 비판했다.(2004.11.30)
 
그런데 조선일보는 이번 ‘전교조 출신 이런 교사’ 사설에서 “과거 일본에서 일부 교사의 ‘기미가요’(일본국가)와 ‘히노마루’(일본국기) 거부가 이슈가 됐던 시절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볼드체는 기자강조)면서 기존의 히노마루, 기미가요에 대한 조선일보의 보도행태에서 보여준 일본에 대한 비판적 어조보다는 일본에서 히노마루, 기미가요 논란이 마치 “과거” “거부가 이슈가 됐던 시절”라면서 일본에서도 논란은 끝났으니 한국에서도 필요 없음을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다. 이는 과연 기자의 과잉추론일까. 계속해서 들춰보자. 
 
2004년 3월 18일치 조선일보에 정권현 특파원은 ‘도쿄都, 기미가요 제창 반발하는 교사 징계 방침’이란 기사에서 “일본 도쿄도(東京都) 교육위원회가 초·중·고교의 졸업식과 입학식 등 각종 공식행사에서 학생들이 히노마루(일장기)를 향해 기립해 기미가요(일본 국가) 제창을 하지 않을 경우, 이에 영향을 준 교사를 징계처분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학교이름도 공개하기로 하는 등 강경대처하기로 해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이 17일 보도했다.”고 실었다.
 
앞서 인용한 조선일보의 2004년 일본군국주의 비판 기사, 사설에서 드러나듯이 정권현 기자의 보도를 그저 ‘스트레이트' 기사로 볼 수 없다. 히노마루, 기미가요를 거부한 교사에 대한 징계처분에 일본군국주의 작용한 게 충분히 기삿거리가 되니까 데스크에서도 기사화를 결정한 것이다.
 
그렇다면 일본에서 징계처분을 받은 교사의 신념과 부천고 교사의 신념에는 어떤 차이 혹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까. 조선일보의 ‘전교조 출신 이런 교사’ 사설에서는 “일본의 기미가요와 히노마루 거부는 천황 神格化신격화와 그 국가와 국기 아래 아시아 나라를 짓밟았던 侵略史침략사에 대한 반성의 뜻을 담고 있다”며 군국주의와 연결하고 있다.
 
한국의 국가주의와 연결된 일본 군국주의
 
그런데 왜 여기서 조선일보는 좀 더 넓게 일본의 군국주의회로가 한국의 국가주의에 연결되어있음을 못 보는 가. 아무래도 모르는 게 아니라 모르는 척하는 것이리라.  
 
2004년 9월 17일자 조선일보에 유태종 기자의 ‘식민지 교육 자료전시-서원대 한국교육자료박물관 550여점 선봬-’라는 기사의 일부를 읽어보자.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이 가속화되던 만주사변 직후 서울의 한 초등학교에서 전교생을 상대로 일본 국기인 히노마루에 대해 느낀 점을 설문 조사한 자료도 공개된다. 특히 만주사변 이후 만들어진 ‘국어독본’ 5학년 1학기 편찬취지서는 일본의 교묘한 식민지 교육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밖에 조선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사진판, 지원병 축하 일장기, 태평양전쟁을 묘사한 퍼즐 놀이판 등도 공개된다.”
 
또한 2000년 7월 5일자 조선일보에 박정훈 동경특파원은 ‘"천황교 대중화“포교 안간힘’이란 기사에서 “『교육칙어엔 좋은 점도 있다』는 발언 역시 과거형 천황제에 대한 향수가 배어있다. 현인신 천황이 적자(갓난아기)인 신민들에 내린 가부장적 도덕률이 교육칙어다. 일제 때 학교에 다닌 연령층이라면 매일 낭송했을 교육칙어는 군인칙유와 함께 황민화 정책을 지탱한 사상적 지주였다.”고 보도했다.
 
위 두 기사를 통해서 일제침략기 동안에 학습했던 교육칙어가 식민지지배정책의 일환이었음은 조선일보가 인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전교조죽이기’를 위해서 부천고 교사의 문제의식 또한 조선일보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군국주의와 한국의 국기에 대한 경례에 대한 문제의식을 제 입맛에 맞게 분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조선일보의 한겨레 21기사 인용에서 보다 확연히 드러난다.
 
포용성, 객관성을 노린 조선일보의 이례적인 한겨레 21 인용
 
그러면 조선일보가 알고 있는 군국주의의 상징인 교육칙어가 어떻게 한국의 국기에 대한 경례와 연관이 있는지를 밝혀야 할 것이다. 조선일보는 2006년 1월 11일자에서 이례적으로 한겨레 21의 기사를 보도했다. 조선일보의 자충수가 그대로 담겨있어서 조선일보 김재은 기자의 "한겨레21, '국기에 대한 맹세'를 없애자고?"라는 기사를 길게 인용하겠다. 
 
“10일 발행된 한겨레21 최근호(592호)는 “국기에 대한 맹세문은 1968년 충남 각급학교에서 시행되던 중 1972년 박정희 유신의 초입 때 정치적 목적으로 왜곡된 것으로 밝혀졌다”며 “국기에 대한 맹세를 폐지하자”고 주장했다. 기사는 “행정자치부와 교육부 등 현 정부 기관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문을 작성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기사에 따르면 충남 각급 학교에서 최초로 시행된 국기에 대한 맹세문의 내용은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의 통일과 번영을 위하여 정의와 진실로서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합니다.”였다는 것.
 
기사는 “원문의 ‘정의와 진실로서의’ 충성이 유신 초기 문교부가 재작성한 맹세문에서 ‘몸과 마음을 바치는’ 무조건적인 충성으로 바뀌었고, ‘조국의 통일과 번영’은 국가의 영원함을 기원하는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으로 둔갑했다”며 “문교부는 충남도의 맹세문을 몇 자 바꿨지만, 의미의 변화는 상당하다”고 지적했다.”
 
국기에 대한 경례에 대한 비판의 근거를 장황하게 인용한 김재은 기자는 이에 대한 반박성 의견을 미디어다음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기에 대한 국기에 대한 경례를 반대하는 비율이 더 높았던 점과 조선일보 독자층이 좋아하는 인물인 유시민 복지부장관이 2003년 5월 개혁당 시절에 발언했던 “국기에 대한 맹세는 군사 파시즘과 일제의 잔재”라는 발언까지 끌어와 붙여서 기사를 마무리한다.
 
조선일보가 개혁매체에 대해서 포용하는 척, 객관적인 분석을 하는 척, 그 척을 짓느니 차라리 보수논객에게 원고청탁해서 한겨레21의 보도에 대해서 비판하고 유시민의 망언에 대해서 규탄한 게 나았으리라.
 
시사평론가 시절 유시민이 말한 국기에 대한 맹세
 
이왕에 조선일보가 유시민까지 언급한 마당에 “국기에 대한 맹세는 군사 파시즘과 일제의 잔재”라고 발언했던 ‘시사평론가 유시민’ 시절의 그의 생각을 좀 더 상세히 들어보자.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소위 ‘국기에 대한 맹세’다. 내 기억에는 유신정권이 처음 만들어 아침저녁으로 온 국민이 외치게 만들었다. 지금도 무슨 행사에서 국민의례를 할 때는 이걸 듣고 있어야 한다. 따라하지 않는다고 타박하는 사람은 없지만, 쓸데없는 것이니 없애자는 말은 무척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고는 할 수 없다. 애국이라는 가치를 부정하는 사람으로 몰리기 쉬운 탓이다.
 
애국심은 국민 개개인이 자기의 내면에 형성하는 소중한 가치 가운데 하나다. 다른 모든 좋은 가치가 그런 것처럼, 애국심이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죄가 되는 건 아니다. 국민은 국방이나 납세처럼 헌법이 규정한 의무만 제대로 지키면 된다. 태극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아도 괜찮고,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에는 별 관심이 없어도 되며, 몸과 마음을 다 바쳐 충성하지 않는다고 해서 비난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여기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는 민주공화국이기 때문이다. (중략)
 
나는 애국심이 매우 소중한 가치 가운데 하나라고 믿으며, 나의 내면에서 애국심을 키우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태극기 앞에서 큰 소리로 고백하고 남들이 듣는 데서 맹세하라는 국가의 요구는 단호하게 거부한다. 국가 상징물 앞에서 공공연하게 표현하는 ‘충성서약’은 애국심과 무관한 것이고, 특정한 가치를 내면화하도록 국민을 강제하거나 내면적 가치를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서약하게 만드는 ‘국민의례’는 전체주의 체제에나 어울리는 야만적 문화양식이기 때문이다.”(‘태극기, 던졌으면 또 어때!’ 프레시안 2002년 2월 25일자)
 
공중파 수준의 공론화가 되어야
 
이미 종이매체, 인터넷매체에서는 국기에 대한 맹세에 대한 찬반양론이 몇 년 동안 있었다. 결코 조선일보가 말하는 “과거”의 일은 아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그러나 대중에게 공론화가 되었다고 하기에는 여전히 부족하다. 공중파 수준으로 끌어내야 한다.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에 대한 친일논란도 진보진영 내의 논쟁으로 ‘찻잔 속의 태풍’으로 소리 없이 끝나버렸는데 이러한 논의는 여전히 대중들에게는 생경한 화두들이다. 일단은 문제성을 널리 알려야 할 것이다. 
 
또한 어이없게 ‘일등신문’ 조선일보의 매체파워가 교육청까지 뻗어서 (그 밥에 그 나물인) 신문과 독자들끼리 서로 영향력있다고 ‘민족신문’, ‘일등신문’이라며 치켜세우는 그 사이에 끼어서 멀쩡한 교사하나가 밥그릇을 내놓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되풀이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공중파에서의 논의가 빠른 시일 내에 이루어져야 한다.    
 
시간낭비, 감정낭비, 전력낭비하는 안티조선기사는 쓰지 말자 
 
▲일제시절 친일지로 활약한 조선일보가 민족과 애국을 말할 자격이 있는가?     © 조선일보없는 아름다운 세상  제공
한마디만 더 첨언하자면 기자는 과거에 좋아했던 안티조선 논객이 조선일보로 망명하기 훨씬 이전부터 안티조선칼럼은 안 쓰기로 마음먹었다. FTA, 대추리 사태에 대한 조중동의 보도행태에 대한 비판도 하기 싫다. 대안 있는 담론을 형성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작업이다. 그러한 담론을 생성할 능력이 안 되면 소개하는 작업에라도 몰두해야 할 것이다. 매체파워 일등이라는 것은 조중동, 이들 셋이서 ‘그들만의 리그’다. 다만 이번에 어떡하든 전교조를 엮어서 ‘전교조죽이기’를 벼르고 있는 조선일보의 행태만큼은 불난 집마냥 구경할 수가 없었다.
 
제발이지 앞으로는 안티조선 기사를 안 쓰길 간절히 기원한다. 차라리 독자들에게 한권이라도 더 양질의 인문사회과학서적을 소개하는 편이 낫다. 이 기사를 쓰려고 조선닷컴에 몇 달 아니 몇 년 만에 접속한 시간은 정말 고통스러웠다. 시간낭비, 감정낭비, 전력낭비.   
 
조선일보는 정말 민족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이 기사 이후에 조선일보의 민족 운운 발언에 대한 비판에 있어서 혹시 안티조선 논객들은 반박 글을 쓸 거라면 펜을 거두고 기자의 다음 제안이 어떠한가. 히노마루와 천황을 제 1면에 실어놓은 조선일보의 자료사진 한 장만 보여주면 끝, 백문이불여일견(百聞而不如一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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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7/17 [01:32]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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