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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국회의원, 개혁파 장관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이라크 침공에 대해 시민사회출신 장관들은 입장을 밝혀야
 
이영철   기사입력  2003/03/25 [17:00]
혹여 저의 글이 또 다른 언어 폭력으로 전도될지 모른다는 생각과 거론된 분들의 삶의 족적 마저 훼손할 수 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으나 시민사회운동의 발전을 위한 충정으로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동안 시민사회활동가들은 정부의 정책을 비롯한 우리사회의 건강하지 못한 부분을 개선하기 위하여 날선 칼과 같은 기준을 들이대며, 비판과 견제를 해왔습니다. 그러나 언제인가부터 시민사회 내부의 적절하지 못한 행태에 대해서는 비판을 금기시 해왔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저는 이러한 문화가 이른 시기 내에 개선되지 않는다면 결국은 시민사회운동이 국민들로부터 배척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갖고 있습니다.



그동안 사회운동을 하였던 적지 않은 인사들이 국회나 정부에 참여하여왔습니다. 지난 총선시기에는 386세대를 중심으로 한 이른바 정치권 수혈이 있었으며, 우리 국민들은 썩은 정치청산을 염원하며 깨끗한 피를 가졌다는 그들을 국회로 보냈습니다.

그러나 김민석, 임종석 등이 국회에 들어가 낡은 정치 청산을 위하여 무엇을 일관되게 하였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물론 그들만을 탓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엄혹한 시기 노동운동 현장에서, 민통련에서, 민중당 등에서 활동하였던 이재오, 김문수 등 선배 정치인들이 보수기득권 집단의 앞잡이로 전락한 현실에서 그들마저 무력감을 느꼈을 법도 합니다.

[관련기사]임종석, 한국은 불의의 전쟁을 거부할 권리가 있다, 대자보 98호

89년도에 한창 유행하였던 애국적 사회진출론이 기억납니다.
그해 9월 어느 날 후배가 찾아와 본인도 애국적 사회진출을 하겠다는 말을 하기에 지망하는 분야가 무엇인지 물었더니, 기자가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왜 기자가 되려고 하느냐 물으니, 기자가 되면 정직한 기사를 통하여 사회를 맑게 하는데 일조할 수 있겠다는 취지의 말을 하여, 진정으로 사회의 변화를 바라는 것인지, 아니면 애국적 사회진출론을 통로 삼아 네가 고귀하게 여겨왔던 가치를 왜곡시키는 것이 아닌지 잘 생각해보라고 답을 한 기억이 납니다.

저는 그 후 몇 년 동안 그 후배에게 상처를 준 것 같아 내내 마음의 짐을 털어 버리지 못하였습니다.
국민의 정부에 이어 이른바 참여정부에도 많은 시민사회단체 지도자들과 한때 학생운동을 하였던 이들이 장·차관급을 비롯하여 여러 분야에서 소임을 맡고 있습니다. 어떠한 분야에서든 운동의 신념과 결단력을 잃지 않는다면 또 다른 형태로 국가 발전에 기여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마음으로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요 며칠 미국의 이라크 국민 학살과 정부의 지원군 파병결정 소식을 접하면서 애국적 사회진출론을 운운하였던 후배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운동의 중심에 서서 활동하였던 후배가 아니었는데 불구하고 소시민적 삶을 살아가겠다는 후배에게 비판을 가하였는데, 시민사회운동의 지도자들이 장·차관으로 참여하고 있는 현정부에서 인류사에 씻을 수 없는 침략정책을 지지하는 결정이 내려졌다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참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러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그 장·차관을 배출한 단체를 비롯하여 시민사회단체 등에서 그들을 향하여 유감표명 한마디 없이 침묵으로 일관하며 인내력을 잃지 않은 태도에 속 좁은 저의 운동관으로는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지도자는 도덕성과 더불어 정책을 통하여 자신의 신념을 외화시킨다고 이해하고 있습니다. 정작 다른 고위직 공무원의 이중국적문제, 무소신 문제, 비리문제에 대해서는 매섭게 비판하면서도 적지 않은 시민사회지도자들과 활동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정부에서 자행된 반인륜적 반민족 정책결정에 대하여 비판을 하지 않는 모순을 범한다면 세간에 조소거리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한국여성단체연합 대표를 역임한 지은희 여성부장관, 한명숙 여성부장관과, 광주 YMCA 사무총장을 역임한 정찬용 청와대 인사보좌관 등은 국무회의 구성원이거나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 참여자인데, 저는 그분들이 이번 정잭결정을 반대하기 위하여 소신있는 행동을 하였다는 소식을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먼 나라인, 영국의 고위직 인사가 사표를 제출할 것이라는 이야기만 접했습니다. 더욱 기막힌 것은 소파개정을 위한 촛불시위자들을 개 패듯이 연행해 갔다는 소식에는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습니다.

저와 같은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는 애국적 준엄주의와 함구문화가 장·차관이나 청와대에 있는지 모르겠으나, 제가 이해하고 있는 운동가는 자신의 신분에 따라 입장을 달리하지 않는 것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당장 사표를 던지는 것이 옳다는 강변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책임 있는 자리에 있기 때문에 모든 문제에 원칙적인 대응을 할 수 없다는 괴변을 듣고자 하는 것 또한 아닙니다.

만약, 파병문제 하나로 준엄한 요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저는 여러분들의 역사의식에 대하여 묻고자 합니다. 과연 이 문제가 여성 지위향상, 환경, 투명한 인사 등의 문제와 견줄 수 있는 것인지.

파병동의안 처리가 확실시 되는 오늘 아침 9시 뉴스(본문은 25일 오전에 작성된 것임. 파병동의안은 25일 오후 연기되었음-편집자)에는 국회앞에서 시위를 하는 시민사회지도자들과 청와대에서 회의를 하고 있는 시민사회지도자 출신의 화면이 이어 방영되었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남북문제, 경제문제 등 산적한 현안문제로 바쁘실 대통령이 검찰개혁문제로 평검사들과 대화하는 참여정부가, 민족의 운명과 직결되는 파병문제에 관해서는 무엇이 그리 다급하여 결단력을 발휘하였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은 무엇을 하였는지요.

현정부에 참여하기 전, 정치권의 더러운 피의 수혈과정을 비판하였던 기억들을 쉬이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청와대 시민사회관련 분야를 위시하여 소시적 운동인연을 무늬삼아 현정부에 참여한 분들 중, 정부의 궁색한 논리를 관철하기 위하여 과거의 인연을 회자하며 파병정책을 이해시키려는 유혹을 떨쳐 버려야 할 것입니다.

중앙부처의 수장으로서 청와대의 보좌진으로서 고유업무를 여법(如法)하게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침략전쟁에 또다시 국군을 파병하여 후세의 수치가 되는 일보다 중요하고 우선되는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여러분들께서 긴 세월동안 운동을 하며 간직하였던 신념과 열정을, 현정부가 정도로 갈 수 있는 버팀목이 될수 있기를 진정으로 기원합니다.


* 필자는 참여불교재가연대(http://www.buddha21.org/ ) 사무처장입니다.
* 본문에 대한 독자여러분들의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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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3/25 [17:0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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