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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선제공격론 주장하는 일 방위청 장관의 발언
21세기판 가쓰라-태프트 밀약은 비밀리에 진행중인가?
 
여인철   기사입력  2003/03/04 [01:34]
나는 지난 2월 15일 영국 런던에서 반전 시위가 열릴 즈음 그곳에 있었다.  평소 같으면 그곳에서 신문을 사볼 일이 없었겠지만 그때는 시위계획을 둘러싼 주최측과 블레어 수상의 신경전, 그리고 이라크 공격에 대한 유럽의 분열 등 흥미로운 사건이 많아서 신문을 사볼 만했다.  

시위 다음날인 16일도 신문을 사기 위해 가판대에 있다가 깜짝 놀랐다.  "일본의 한국(북한)공격위협"이라는 제목 때문이었다.  신문을 보니 호주의 시드니 모닝 헤럴드 (Sydney Morning Herald)지였다.

[관련기사]
[영국 BBC방송 관련 기사]
[시드니 모닝 헤럴드 관련 기사]

당시에는 너무 놀랄만한 일이었지만 반전시위 취재(?)가 급했기 때문에 일단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보도가 되었으리라 생각을 했고 크게 논란이 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귀국하여 조사를 해본 결과 두 신문에서만 보도가 되었고, 파문이 일자 방위청 장관이 부인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끝이었다.

그런 엄청난 사안을 부인하면 그걸로 끝인가.  우리 언론은 그걸로 끝내면 끝인가.

그 기사에 의하면 "일본은 북한이 일본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믿으면" 선제공격을 감행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었다 (Japan is prepared to launch a pre-emptive strike on North Korea if it 'believes' the communist state is preparing a missile attack against it).  

그리고 일본의 방위청 장관 이시바 시게루가 "북한이 공격을 위해 미사일에 연료장진을 하는 것이 '감지되면' 공격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시바 장관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사일이 일본을 향해 날아올 때는 너무 늦다.  우리나라는 만일 북한이 일본에 대항해 무기에 의존하려 한다면 자위수단으로 무력을 사용할 것이다(It is too late if [a missile] flies towards Japan.  Our nation will use military force as a self-defence measure if [North Korea] starts to resort to arms against Japan)"라고 말했다 한다.

이 사안을 처음 보도한 것으로 알려진 BBC 방송의 기사를 보니 약간의 어휘 차이가 있었다.  시드니 모닝 헤럴드가 "일본은 북한이 일본에 대한 미사일 공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믿으면" 선제공격을 감행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보도한데 반해, BBC는 "확실한 증거가 있으면"이라고 보도한 것이 차이라면 차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도대체 일본이 지금 북핵위기의 와중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일본의 헌법은 자위대의 무력을 타국을 공격하는데 쓰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장관이 나서서 이런 위헌적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고, 그럼에도 아무런 제재가 없이 지나가다니...

영국의 방송과 신문들도 이 발언에 대해 "일본이 처음으로 북한 선제공격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북핵문제로 심각해진 동북아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이며 일본의 평화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자위권과 동떨어진 발언"이라며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언론은 무슨 연유로 침묵하고 있는가.  또 우리 정부가 아무말없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미국이 부쩍 선제공격을 흘리고 있다.  뉴욕타임즈 칼럼니스트 니컬러스 크리스토프에 의하면 미 국방부가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군사공격을 비밀리에 계획하고 있으며, 이 공격계획에는 "국지적인 크루즈 미사일 공격에서 대규모 폭격같은 군사적 방안이 망라돼있고, 심지어 서울을 겨냥하고 있는 북한의 견고한 포대진지를 무력화시키기 위한 전술핵무기 사용 얘기까지 있다 (They cover a range of military options from surgical cruise missile strikes to sledgehammer bombing, and there is even talk of using tactical nuclear weapons to neutralize hardened artillery positions aimed at Seoul)."고 한다.

이렇게 보도가 되어 파문이 일자 당사자랄 수 있는 마이어스 합참의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해명을 한다.  그러나 "북한에 대한 선제공격이 계획되고 있느냐"는 질문엔 "미군은 세계의 여러 곳에 대한 신중한 계획을 갖고 있으며, 이 계획을 계속 최신화(update)한다.  북한도 마찬가지다."라는 말로 그것이 사실일 가능성을 내비친다.

이렇듯 미국과 일본의 공통적인 행태는 치고 빠진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내성을 유도해서 정작 그 계획을 실행할 때 감당해야 할 우리의 분노를 줄이고, 시간을 두고 차근차근 기정사실화하려는 심리전이 아닐까?

더구나 내가 더욱 이상하게 느끼는 것은 시드니 모닝 헤럴드지 기사의 "최근 몇주간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이 증대됨에 따라 도쿄(일본정부)는 북한의 위협을 받는다면 미국이 최초공격을 해 줄 것을 요청해야 한다는 암시가 있었다."라는 부분이다.  (원문, "In recent weeks, as the threat from North Korea has intensified, there have been suggestions that Tokyo might call on the US to make a first strike should it be threatened.")

이렇게 구체적으로 기사화된 내용을 어떻게 부인할 수 있는가.

이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중대한 내용이다.  지금 대북 선제공격을 놓고 미국과 일본 사이에 우리 모르게 무언가 진행되고 있다.  나의 지나친 의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의심은 아무리 해도 지나침이 있을 수 없다.  

밝혀져야 한다.  일본이 전례없이 전후 평화헌법의 범위를 명백히 넘는 발언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하는 배후에 무엇이 있는지.  무얼 믿고 과거 같으면 상상도 못 할 북폭발언을 일본이 저렇게 함부로 내뱉는지. 미국과의 비밀스런 합의가 지금 이루어져 가고 있는 (아니면, 이루어 진) 것은 아닌지.

무엇인가.  한반도 남북의 재앙을 가져올 행동을 두 나라가 비밀리에 진행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 우리의 운명이 흡사 구한말 조선과 필리핀을 나눠먹기로 결정한 가쓰라 -태프트 밀약이 이루어지던 그 상황과 너무나 닮은 것 아닌가.

아, 또 다시 우리의 운명이 우리의 의지와 무관하게 결정지어지려 하는가. / 본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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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3/03/04 [01:3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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