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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고인 물이 되기로 작정했나!
[정문순 칼럼] 변화에 게으른 조직이 치러야할 댓가는 만만치 않을 것
 
정문순   기사입력  2006/03/13 [11:48]
선거에서 정책 경쟁이 실종된 대신 후보자들은 상호비방으로 시종했다. 유권자들은 후보로 나온 사람들의 면면을 살필 기회를 얻기는커녕 누가 나왔는지조차 제대로 몰랐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분위기는 얼어 있었고, 승자는 패자의 축하를 받지 못했다. 이상은 정치권의 여느 보궐선거 풍경이 아니다.

도본부장을 포함한 임원 선거 결과를 둘러싸고 민주노총 경남도 본부의 집안싸움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제는 법원이 나서서 당선자가 누구인지 가려줘야 하는 남세스런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선거를 둘러싼 민주노총의 진통은 가벼운 감기 정도로 볼 일이 아닌 듯하다. 지역이든 전국이든 문제가 계속 누적되어 드디어 만두 속 터지듯 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대의원대회장의 주먹질이나 중앙 간부의 비리 등으로 이미 여러 차례 망신살이 뻗치기도 했다.

민주노총의 내홍에서 읽혀지는 건 변화와 물갈이에 게으른 조직이 치러야 할 대가가 결코 만만치 않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사회적 발언과 의제 장악력이 과거에 비할 수 없이 초라해졌다는 것마저 부인하는 이들은 그들 내부에도 없을 것이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주장은 아무리 떠들어봐야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다.

가령 통일 담론은 탈 분단, 평화 군축으로 이동한지 오래이나, 민주노총을 틀어쥐고 있는 세력들은 여전히 낡은 통일 노래를 부르고 대책 없는 미군 철수 타령이다.

남북의 활발해진 교류로 자본가들도 통일을 좋아하는 세상이 된 마당에 통일 운동이 아직도 진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포진해 있는 것이 민주노총이다.

그런 사고로는 100달러도 안 되는 저임금을 착취당하고 있는 개성공단의 북한 노동자들에 대해 민주노총이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건 당연할 수도 있겠다. 남한 기업에서 일하는 북한 노동자들이 남북화해를 위해 입을 봉해야 하는지 민주노총은 고민해본 적이 없다.  

내 땅에서 미군을 몰아내는 것이 평화운동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단순한 발상이기는 마찬가지다. 이 땅에서 미군기지가 철수된다고 쳐도 다른 나라에 기지가 세워지면 그것도 평화일까. 통일이라는 몰계급적, 일국적 용어로 세상사를 한꺼번에 재단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사회는 변했으나 민주노총의 사고는 여전히 80년대, 정확히 말하면 자신들과 별 상관도 없는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의 의식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 딱하다. 주사파 '학출'의 영향력을 입은 당시 노동계의 병폐가 아직 청산되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고 민주노총이 노동자들의 목숨 줄이 걸린 비정규직 문제에 목소리를 내도 반향이 크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노총이 비정규직에 눈길을 돌린 지 얼마나 되나. 지금은 민주노총이 비정규직 문제에 목숨을 내걸고 있는 듯하지만 정규직 남성들이 자신들의 일자리 보호를 위해 여성 노동자들을 밀어낼 때도 무력했던 것이 민주노총이다.

비정규직의 소외에 무심하다가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서야 우왕좌왕하니 민주노총이 아무리 비정규직 보호를 외쳐도 힘이 실리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흐르는 물보다 고인 물이 되는 데 자족하는 모습으로 비치는 게 민주노총 지도부의 모습이다. 그들의 여성 의식은 자신들이 경멸하는 부르주아 여성보다 뒤떨어진다. 운동을 남성다움과 동일시하는 경향도 오래 묵은 관습이다. 공장을 가부장적으로 지배하는 자본가와 방향은 반대일지라도 서로 사나이라는 의식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은 괜한 것이 아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은 절대선이라는 믿음이 클수록 조합원들과 대중에게서 멀어지는 지름길이다. 민주노총 간부들 중 일부는 사람 대하는 태도마저 딱 권위적인 공무원 스타일인 것을 놀라워할 필요는 없다. 자신들은 힘들고 숭고한 일을 한다는 맹신은 말과 행동에 고스란히 묻어나기 마련이다.

아무리 훌륭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표방하더라도 자기 쇄신에 게으른 조직이 탈 없이 굴러갈 수 없다는 건 서글프지만 냉정한 현실의 법칙이다. 흐리기를 주저하는 물은 과감히 갈아주는 것이 마땅하다.
 
* 민주노동당 경남도당이 만드는 인터넷신문 '진보짱'(www.jinbozzang.com)에 3월 11일자로 실린 글입니다.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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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3/13 [11:4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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