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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깃 스친 후배와 질긴 인연을 맺었습니다"
[김철관의 사람과 삶] 불혹을 넘긴 후배가 결혼식을 올리게 된 사연들
 
김철관   기사입력  2005/10/19 [13:43]
지난 2005년 10월 16일(일요일) 오후 3시, 후배와의 영원히 잊지 못할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날이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평소 절친한 후배가 불혹(不惑)의 나이를 넘겨 화촉을 밝혔기 때문이다.

특히 내가 소개해준 두 사람이 결혼을 골인했기에 더욱 감개무량하다. 바로 그 주인공은 서울 고척동에 사는 후배 백운영(41)씨와 그의 아내가 된 노운희(34)씨다. 그동안 가족, 친지, 직장, 동료 등 주변의 바람을 뿌리치면서 묵묵히 독신을 고집했던 후배가 예상을 뒤집고 불혹을 넘긴 나이에 화촉을 밝힌 것 자체가 예사로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 백운영 씨와 노운희 씨가 불혹을 넘긴 나이에 화촉을 밝혔다.     © 김철관

후배 결혼과 관련한 뒷얘기를 하기위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6일(일요일) 오후 3시 서울 영등포 모 예식장에서 결혼식을 올린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것은 한 달 전인 지난 9월 16일 우연케도 할아버지 제삿날이었다.

그날 저녁 7시 서울 성동구 용답동에서 할아버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사에 필요한 물건과 과일박스를 준비했다. 제사를 지낼 강서구 신정동 큰 형님 집으로 떠나려고하니 짐 때문에 마땅한 교통 수단이 없었다.
평소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 애용자고 그러다보니 승용차가 없다. 그래서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후배 백운영 씨에게 전화를 걸어 좀 태워달라고 부탁을 했다. 예상대로 그는 마다하지 않고 승용차를 몰고 신정동 형님 집까지 태워줬다. 항상 의리를 중요시한 후배였기에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가는 도중 차안에서 그동안 못다했던 서로 여러 가지 잡담을 털어놨다.

그런데 결혼식 날짜를 잡았다고 너스레이 말을 해주는 것이 아닌가. 지금까지 후배에게 들은 말 중에서 가장 솔귓한 말이었다. 불혹을 넘긴 나이에 독신으로 살고 있는 데다가 평소 애처로운 생각이 많이 들었는 데 후배가 결혼을 한다니 얼마나 기쁜 소식인가. 즉시 '축하한다'는 말과 함께 '신부가 어떤 사람이냐'고 되물었다. 하지만 후배는 뜸을 들일 일도 아닌데 계속 뜸을 든 것이 아닌가. 왠지 조금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충분히 말해 줄 수 있는 사항을 즉시 말해 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연하의 신부라는 점과 느지막이 결혼해 쑥스러운 모양이라고 짐작을 했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2년 전 내가 소개해 교제를 하다 헤어졌던 노운희 씨가 신부라는 말을 불쑥 꺼내기가 힘들었던 모양이었다.

좀더 진상을 밝히기 위해 과거 3년 전(2002년 9월 쯤) 서울 구로로 다시 거슬러 올라가 보자. 지난 2000년 1월 창간한 구로 지역신문 <구로타임즈>에 나는 글을 쓰고 있었다. 당시 구로 지역경기를 알아보기 위해 취재차 애경백화점 들렸는데, 도장 판매 코너에서 아주머니를 상대로 작명을 상담해 주는 한 아가씨를 발견했다.

그 아주머니는 새로 태어난 아이의 작명을 부탁한 듯 보였다. 상담한 아주머니가 가자 곧바로 아가씨에게 다가가 젊은 나이에 ‘도장업과 작명’을 하게 된 이유부터 묻게 됐다. 그는 쑥스러운 듯이 웃기만 했다. 나이든 아저씨가 그런 일을 한다면 이해할 수준이었지만 아가씨가 도장업을 도맡아 거기에 작명까지 하고 있으니 당연히 호기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다. 하지만 사양했다. 이것이 인연이 돼 그로부터 며칠 후 사장인 이영기 씨를 인터뷰해 <구로타임즈>에 실었다. 도장업과 작명이라는 전문직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본 후, 곧바로 절친한 후배 백운영 씨에게 소개해 줬다. 그때 후배의 나이는 30대 후반이었다. 즉 지금의 불혹의 나이는 아니었다.

엊그제 후배와 결혼한 아내가 바로 노운희 씨다. 당시 애경백화점에서 전문직으로 도장업과 작명을 한 아가씨인 것이다.

하지만 당시 그들의 만남은 순탄하지 않았다. 후배 부모님과 형님들의 반발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아가씨와의 나이 차이도 반대 이유였지만 후배 부모가 반대한 이유는 말 못할 사정도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이로 인해 2년 전 서로 헤어졌다. 영원히 헤어진 줄 알고 최근까지(지난 9월16일) 금시초문으로 일관했던 나에게 그로부터 2년 후인, 정확히 말해 2005년 9월 16일 저녁(할아버지 제삿날) 후배는 승용차 안에서 노운희 씨와의 결혼 소식을 전해 준 것이었다. 알고보니 잠시 헤여진 후, 다시 만나 교제를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10월 16일 오후 3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 날 2년 전 봤던 노운희 씨를 후배 아내로서 처음 접했다. 이날 결혼식의 압권은 사회자 한찬수씨의 멘트였다. 제치있는 사람이였다. 주례사가 끝나고 신랑 신부의 퇴장을 앞두고 사회를 본 후배의 직장 동료이기도 한 한찬수 씨는 '사랑한다 삼창, 만세 삼창, 엎드려 팔굽혀펴기 5번'을 할 것을 신랑에게 주문했다.

잠시 얼굴이 뻘게지면서 당황한 듯 보었던 신랑은 보란 듯이 당당하게 사회자의 주문을 실행해 옮겼다. 신혼 여행을 빨리 가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이렇게 후배 결혼식은 저물어 갔다. 나의 소개로 연결된 두 사람의 결혼을 보고 너무 감격스러웠다.

결혼식이 끝나고 공항으로 향할 찰라 신랑(후배 백운영 씨)의 얼굴은 유난히 싱글벙글한 모습이 역력했다. 경기 성남에 신혼을 즐길 아담한 보금자리도 마련했단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 데 중매를 해 부부로 연결했으니 그놈의 인연은 후배와 영원히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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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10/19 [13:43]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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