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스카이라인이 하루가 다르게 바뀐다. 날로 고층화-대형화하는 아파트가 새로운 부촌의 탄생을 알린다. 소형차는 간 데 없고 대형차가 그것도 수입차가 떼지어서 질주한다. 이름난 백화점들은 세계적 유명상표만 취급하는 이른바 명품관으로 탈바꿈한다. 공항은 그들끼리의 해외여행으로 영일이 없다. 고급 음식점과 호텔 레스토랑은 연일 만원사례다. 시장이 양분되어 고가품이 아니면 저가품만 팔린다. 전국 어딜 가나 식당간판으로 뒤덮여 있다. 서로 간판크기를 자랑하나 안은 텅텅 비었다. 그 잡기 어렵던 택시는 종일 줄지어 손님을 기다린다. 아파트 단지마다 복덕방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눈에 띠는 게 빵집이요, 미용실이다. 한결같이 죽지 못해 한단다. 도시의 그늘 아래 노숙자의 행렬은 길어만 진다. 개방농정에 눌린 농촌은 신음소리마저 끊길 판이다. IMF 사태 이후 고용구조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노동시장 유연성을 이유로 해고가 자유로워졌다. 고용불안이 심화되는 가운데 40대 초반이면 직장에서 밀려난다. 중년실업만이 심각한 게 아니다. 대학졸업장을 쥐는 순간 실업대열에 선다. 봉급을 절반도 못 받는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다. 정규직보다 더 많단다. 그런가하면 수억, 수십억의 연봉자가 무수하게 태어난다. 직급별-직능별 임금차이가 수십배로 벌어진다.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이 군사력을 배경으로 세계시장을 하나로 묶는 작업에 나섰다. 미국의 상품-용역-자본-노동의 이동을 막는 모든 장벽을 철폐한다는 것이다. 무국경-무세화의 세계경제를 만들어 미국의 국익을 극대화한다는 국가발전전략이다. 결국 WTO(세계무역기구)를 출범시키는 데 성공했다. 다른 한편 쌍무간 협상을 통해 개별국가의 거시경제정책도 통상압력의 대상으로 삼는다. 금리- 환율-통화정책은 물론이고 조세-토지정책까지 일일이 간섭한다. 이것이 미국의 세계화 전략이다. 이에 맞춰 이 나라에서도 세계화만이 살길이라는 신자유주의자들이 득세하기 시작했다. 금융-자본-외환시장을 활짝 열어제쳤다. 미국의 투기자본이 드나들더니 1997년 외환위기가 내습했다. 방비책도 마련하지 않고 서둘러 개방한 탓이다. 집단도산의 위기에 처한 재벌기업들이 대량감원에 나섰다. 외국자본이 자본시장을 지배하면서 배당압력이 가중되고 있다. 비용절감→수익제고→고율배당→주가상승을 노린 해고가 상시화하고 있다. 직장에서 쫓겨나면 할 일이 없다. 구멍가게도 못한다. 1996년 개방된 유통시장은 외국자본-거대자본이 완전히 장악했다. 1995년 19개에 불과하던 할인점이 최근에는 300개로 늘어났다. 금년에만 29개가 더 생길 판이다. 신세계 이마트, 삼성계열의 홈플러스, 롯데마트, 프랑스 자본의 까르푸, 미국 자본의 월마트가 시장을 균점하고 고객을 저인망식으로 훑어간다. 여기에다 재벌계열의 GS 25, 패밀리마트가 구멍가게를 모두 고사시켰다. 골목경제가 자본의 융단폭격을 맞아 쑥대밭이 되어 버렸다. 밥집, 술집도 나을 게 없다. 외식산업이라고 해서 거대자본-외국자본의 사냥터가 되어 버렸다. 이런 판에 퇴직자들이 먹고살려고 뛰어들다 밑천만 날린다. '솥단지' 시위가 일어날 만하다. 남편만 믿고 살 수 없다며 '아줌마'들이 공인중개사로 나선다. 복덕방도 포화상태다. 이름난 상표로 치장하지 않으면 빵집도 하기 어렵다. 미용실, 세탁소도 넘쳐난다. 거대자본-외국자본이 서민의 삶의 터전을 무자비하게 침탈해 버렸다. 자동화-정보화가 일자리를 무수하게 파괴한다. 신용불량자가 360만명이나 양산될 수밖에 없는 사회적 구조이다. 고령화에 따라 의료비 지출은 크나 소득이 없는 계층이 두꺼워진다. 부동산 투기를 잡는다고 무소득 유주택자에게도 부동산세금을 중과한다. 중산층 해체를 가속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까닭에 경기침체가 장기화한다. 수출경기가 호조라지만 내수경기가 뒷받침하지 못하고 고소득자의 해외지출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자유시장을 맹신하는 자들이 지도층에 포진하여 자본의 침탈행위를 부추긴다. 경제적 약자와 시장질서를 보호하기 위한 규제를 마구 없애는 것이 그것이다. 반면에 영세자영업자들을 살린다며 진입제한과 퇴출유도를 통해 죽이려 한다. 문제를 거꾸로 아는 모양이다. 중산층의 해체는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한다. 유럽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한 거부반응이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본지고문 * 필자는 시사평론가로 <건달정치 개혁실패>의 저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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