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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김대중씨 ‘뻥튀기화법’ 감상기
[미디어비평] 노대통령 말많다고 타박, 재보선은 ‘유구무언’이라고 공박
 
문한별   기사입력  2005/05/11 [11:55]
오랜만에 조선일보를 훑어보다가 문득 김대중 칼럼에 눈이 멎었습니다. 제하여 '패자의 유구무언인가'(2005.5.9)라는....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급히 읽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지난 4.30 재보선에서의 여당참패를 소재로 삼아 쓴 것이더군요.
 
요지인 즉슨 간단합니다.  4.30 재보선에서 여당이 23:0의 참패를 당했는데도 왜 노무현 대통령이 아무 말도 안하고 있느냐는 겁니다.  "형식상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대결이었지만 실은 집권세력 즉 노무현정권에 대한 심판"이랄 수 있는 4.30 재보선에서 여당이 완패했으면 이에 대해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하는데, "선거가 끝난 지 1주일이 넘도록 선거 결과에 대해 단 한마디의 언급도 없다는 것"은, 김씨의 뻥튀기화법대로라면, "재·보선의 유권자를 무시하는 것이며 전 국민에게 무례를 범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는 겁니다.  요컨대 "평소 말 잘 하는 대통령"이 이 문제에 대해 입 다물고 있고, 덩달아 한나라당 재보선 싹쓸이의 쾌거마저 점차 퇴색되고 있으니 당최 기분 나빠 견딜 수 없다는 것이지요.
 
▲조선일보 김대중 고문 칼럼     © 조선일보 5월 9일자 PDF
 
전 이걸 보면서 실소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김씨가 직전에 쓴 칼럼이 문득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4월 25일자 김대중 칼럼 제목이 뭔지 아십니까?  "말로써 말 많으니… " 입니다.  '패자의 유구무언인가'라는 5월 9일자 칼럼제목과 비교해 보세요.  참 재밌지 않습니까?   김씨는 이 글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말’이 문제고 말썽"이라고 노 대통령의 말 많음을 물고 늘어졌습니다.  "게다가 그는 같은 말이라도 굳이 ‘가시’를 달아 사람을 자극하는 경향이 있다"는 특별한 주해까지 덧붙이면서 말이지요.  얼마나 노 대통령의 말이 듣기 싫고 괴로웠으면 이런 말까지 더했을까요?   그러면서 그는 "민감한 사안일수록 입만 열었다 하면 예외없이 한바탕 난리가 난다"고, "대통령이 말 한마디 하면 온 나라가 찬·반으로 갈려 이렇게 떠들썩한 나라가 지구상에 또 있을까?"고 이죽거렸습니다.  
 
런데 놀라지 마세요.  그는 지금 "가시를 달아 사람을 자극"한다는 노 대통령의 말을, 더구나 특정한 주제에 대해 입만 놀렸다 하면 "온 나라가 예외없이 한바탕 난리가 나고 떠들썩하게 된다"는 대통령의 말을 들을 수 없다고 불평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말로써 말 많으니...." 란 멋드러진 시조를 읊조린지 불과 보름 남짓한 시간 밖에 안지났는데 말입니다. 그새 노 대통령의 목소리가 그리워진 걸까요?   아님, 혹 가시에 찔리는 걸 즐기는 피학성 변태심리의 소유자라서.....?  암튼 변덕도 이 정도면 메이저리그급이라 할 만 합니다.  그나저나 불쌍하게 된 건 노 대통령입니다.  말을 자주 하면 말 많다고 욕 먹고 말을 자제하면 말하지 않는다고 욕 먹으니, 이렇게 기구한 팔자가 세상 천지에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 칼럼의 진짜 문제는 "대통령이 말 해도 문제요 안해도 문제"라는 김씨 특유의 꽃놀이패 놀음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김씨의 옆방 동료인 류근일씨의 증언에 의하면, 김대중이란 인간 자체가 자기보다 "끗발 센 사람"만 보면 다짜고짜 "시비를 걸고 딴지를 걸며 볼멘소리를 내는" 것을 즐겨하는 타칭 '싸움닭 언론인'이라니 '까이꺼' 이 정도는 눈 딱 감고 봐줄 수도 있어요.  문제는 남 말 물고 늘어지기 좋아하는 김씨가 정작 제 입으로 내뱉은 말은 기억조차 못한다는 겁니다.  
 
이전에 김씨가 쓴 또다른 칼럼들을 소개해 드리지요.  4.30 재보선이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은 '자신의 패배'에 대해 국민에게 무언가 말을 해야 한다는 5월 9일자 칼럼의 논리를 이것과 비교해 보세요.
 
"한국정치는 이대로 4년을 더 갈 수 없다.... 우리는 다가오는 4월 총선을 계기로 이 자기파괴적인 분열과 갈등을 정리해야 한다. 그것이 민주제도의 본래의 정신은 아니지만 이기고 지는 것을 분명히 해 이길 경우와 질 경우의 시나리오를 정하고 서로 승복하기로 대내외에 천명함으로써 이 싸움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그래서 이런 파국적 대립을 정리하는 합의가 필요하다. 4월 총선의 결과를 국민투표의 성격으로 간주하자는 것이다. 노 대통령과 그 지지세력이 승리하면 당연히 그는 재신임된 것으로 봐야 한다. 그는 그 자신의 능력과 정책으로, 그의 신념과 재능으로 소신껏 나라를 이끌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책임도 그의 것이다. 반대세력은 그것이 『나라의 운명』이려니 하고 한발 물러서서 통상적 비판과 반대의 수준을 넘지 않아야 한다.
 
반대로 노 정권이 과반수 득표, 또는 제1당이 되는 데 실패하면 그는「지금의 노무현」에서 달라져야 한다.... 물론 국회의원 선거를 대통령의 신임과 연결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정치권이 사전에 시나리오에 합의하고 국민의 의견을 묻는 작업이 필요하다. 여기에는 유권자의 의지가 중요하다. 우리가 이처럼 갈려서 더 이상 한치도 나갈 수 없다면 여기서 매듭을 짓는 자세로, 이번 총선에서 의원후보 개개인에 연연하지 말고 정당 위주로 심판해 이번 총선에서 무언가 좌우간에 결말을 내줘야 한다...."(김대중 칼럼, '4월총선'으로 결판내야, 2003.12.27) 
 
"일부에서는 총선을 ‘인질’로 삼아 대통령이 ‘신임’ 문제로 국민을 협박한다고 주장하는데 그것이 사실이라고 해도 우리는 여기서 다소의 희생을 치르고라도 혼란의 십자로를 신속하게 건너가는 모험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신임을 묻는 국민투표가 위헌이라면 국회의원 선거가 우회적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미 모든 국민들 마음속에 대통령에 관한 어떤 결정이 자리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더 이상 이를 부인하는 것도 위선이다.  이것은 대통령의 ‘진퇴’ 문제가 아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것은 ‘노무현의 확인’이냐, ‘달라지는 노무현’이냐의 문제다.... 국민은 노무현식(式) 정치에 대해 결정을 내려주고 대통령 한 사람으로 인한 소모적 논쟁과 해악적 공박에 쐐기를 박는 계기를 제공하면 되는 것이다...."(김대중 칼럼, '속 '4월총선'론', 2004.1.11) 
 
김씨의 말이 무슨 뜻인가 설명할 필요 없겠지요?  김씨의 논리대로라면, 노무현 정권은 총선에서 과반수 득표 또는 제1당이 됐으니 당연히 승리한 거고 따라서 재신임된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럴진대 노무현 대통령을 못마땅해 하는 쪽에서도 더 이상 "달라지는 노무현"을 강요해선 안되고, '지금의 노무현'이 "자신의 능력과 정책으로, 그의 신념과 재능으로 소신껏 나라를 이끌 수" 있도록 '노무현을 확인'하고 인정해 줘야 하구요.   "4월 총선의 결과를 국민투표의 성격으로 간주하자"고, 그래서 "이기고 지는 것을 분명히 해 이길 경우와 질 경우의 시나리오를 정하고 서로 승복하기로 대내외에 천명함으로써 이 싸움에 종지부를 찍"자고 김씨 자신의 입으로 분명히 천명한 거 아닙니까?   
 
그런데도 조선일보와 김씨는 노무현 대통령이 총선 승리를 거둔 다음에도 '지금의 노무현'을 인정하기는 커녕 여전히 "노무현은 달라져야 한다"고 윽박지르고 있습니다.  자신이 마치 그런 말을 내뱉은 적이 없다는 듯이 시치미를 떼고 말이지요.  그러면서 하는 말을 들어 보세요.  4.30 재보선에서 패배한 것은 '문희상의 패배'가 아니라 '노무현의 패배'니, 노 대통령은 '당.청분리'만 내세워 발뺌하지 말고 자신이 직접 나서 국민에게 겸허히 말하랍니다.  "노 대통령이 이 선거를 자신과 자신의 정권에 대한 평가의 한 단면으로 보았다면 당연히 국민의 의견에 대해 겸허한 자세로 임해야 할 의무가 있다"나요?   나아가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는 것은 재·보선의 유권자를 무시하는 것이며 전 국민에게 무례를 범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나?
 
그러나 그건 김대중 자신의 말입니다.  그것도 이전에 한 말을 헌신짝 뒤집듯 뒤집고 다시 지껄인 치졸한 궤변....!   노 대통령은 재보선에 이런 의미를 부여한 적이 없습니다.  열린우리당은 이번 재보선에서 피를 봤지만 그러나 아이러니칼하게도 노 대통령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만 가고 있습니다.  그럴진대 무엇이 '노무현의 패배'란 겁니까?   사실을 바로 말씀드리자면, 조선일보와 김대중씨는 '재보선에서의 노무현의 패배' 운운하기 전에 '총선에서의 자신들의 패배'부터 먼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지난 4월에 "국민이 노무현식(式) 정치에 대해 결정을 내려주"었는데, 그렇거나 말거나 여전히 "대통령 한 사람으로 인한 소모적 논쟁과 해악적 공박"에 몰두하는 것이야말로 비겁하고 더티한 짓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말인데, '패자의 유구무언'이란 말은 김대중 본인에게 돌아가야 맞습니다.  염치를 아는 이라면 응당 입을 봉하고 손가락에서 펜을 놓아야 하구요.  사정이 이러한데도 제 낯짝 부끄러운 줄 모르고 함부로 설치고 다니니 곁에서 보기 민망해 이렇게 한 소리 하는 겁니다. 
 
"김대중씨, 부끄러운 줄 아세요."
 
*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글입니다.
* 필자는 언론인권센터 대외협력위원장으로서 이 시대의 바른 말글살이와 바른 사람살이를 위해 뛰고 있습니다.  필자의 블로그 안내 : http://blog.empas.com/kolbe1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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