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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러게나 2006/12/22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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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게나 말입니다
    무슨 뚱단지같은 고건 총리는 실패한 인사라고 말씀하는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벌써 그 양반이 총리를 역임한지 몇 년이 지났는데 말이지요. 저는 뉴스로 연설하는 것을 봤는데 정말 걱정되더군요. 저도 자주라는 말 참 좋아하는데 어제는 외교적으로도 문제가 될 수 있는 소지의 말씀을 지나치게 한 것 같더군요. 우리나라 우익들이야 다시 한 번 노무현에 대한 환멸을 느끼기 딱 좋은 그런 연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자주, 자주 좋아하시는 양반이 한미 에프티에이같은 경우에는 왜 또 그렇게 국제화, 국제화를 떠드시는지 당최 이해가 안갑니다.
  • eddie5 2006/12/22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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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맞습니다 맞고요....
    제대로 지적하고 제대로 보셨습니다 헌대 몇한되는 그추종자들은 현실을외면하는건지 모르고 꽥꽥짖어대는건지 알쏭달쏭하군요 불과10년도 안되는사이 집단이기주의와 배째식의 막가파 무법자들 공권력을 개패듯패는 안하무인들 이거누가이렇게 개판 만들었습니까? 두분 대통령들께서 지나온자립니다 제발 집에서 벽에다 x칠하던지 아리랑을 부르던지 상관않을테니 밖에나와 강연이니뭐니해서 헛소리팽팽하고 다니지 말았으면하고요 한분은 이제 남은일년여 악다구리 쓰지말고 조용히있다 고향가서 텃밭이나 일궜으면합니다....정치,언론에 훈수를두니 어쩌니 하지말고요..
  • 아찌 2006/12/22 [1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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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당 정신이라니 정신나간 사람들이네요.
    개발지상주의자, 시장지상주의자 노무현은 나라를 위해 누구보다도 열심히 일했고 지금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욕만 먹고 있다고 여기는가 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어떤 비판도 비판으로 들리지 않고 자신을 무조건 깍아내리려 하거나 오해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으로 치부해 버리고 자신의 소신대로 고집대로 밀고 나가겠지요.

    정말 난감한 인간입니다. 한미FTA도 나라를 구하는 일로 받아들이 겠지요.
    대통령의 잘못된 철학이 사회를 얼마나 비탄과 절망, 냉소에 빠지게 만드는지를 새삼 실감합니다.

    조용히 있다 고향에서 가서 텃밭 일구는 일이나 하라고 하셨는데 이건 농업과 농민에 대한 모독입니다. 이분은 절대 농촌에 내려가 살면 안됩니다.

    산소 호흡기를 설치해야 할 상황에 처한 농업을 아무런 대책없이 생명줄인 산소 호흡기마져 한미FTA로 제거하려는 사람이기에 그렇습니다.

    제발 농촌 근처에는 가지도 말고 이분에게는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재산을 불린 부유층이 사는 동네에서 살게 해야 합니다. 타워펠리스가 제격입니다.
  • 조아세 2006/12/22 [1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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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력 내용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달력 내용이 궁금하지 않으세요?


    1월은 제호(신문 첫 면에 **일보,**신문 등으로 신문이름을 크게 쓴 것) 위에 일장기를 올린 일제 때 친일반민족 조선일보 여러 장을 사진 찍어 두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기념일마다 일장기를 제호 위에 올렸다. 당시 일장기를 제호 위에 종종 올렸던 신문은 총독부 기관기인 매일신보와 친일반민족 조선일보뿐이었던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친일반민족 조선일보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친일과 부일에 앞장섰는지 확인할 수 있다.

    통계자료를 보면 1937년에서 1939년 동안 일제에 의해 신문기사 압수 처분 받은 것이 조선일보가 13번 동아일보가 14번 총독부기관지인 매일신보가 16번 이었습니다.
    그 당시 조선, 동아의 친일반민족 행위가 어느 정도였는지 이 사실로 미루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2월은 임정 국무위원 김승학이 백범 김구의 지시로 작성한 친일파 263명 반민특위 살생부 초안 을 공개한 월간중앙 2001년 8월호 중 명단 일부와 육필 원고를 사진 찍어 두었습니다. 그 살생부 명단에는 조선일보 사장과 동아일보 사장이 들어 있습니다.

    3월은 친일반민족 조선일보 사주의 대저택을 사진으로 찍어 두었습니다.
    서울시 동작구 흑석2동에 있으며 3,700여 평으로 축구장 면적의 2배입니다.

    독립유공자 후손의 60%가 하층민으로 살고 있는 이 나라에 친일반민족 조선일보의 사주가 이런 대저택에 살고 있다는 것은 현대사의 비극이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4월은 친일반민족 조선일보의 폐간사를 사진 찍어 두었습니다. 폐간사 중에 이런 부분이 있습니다.” 더욱히 동아 신질서 건설의 위업을 성취하는데 만의 일이라도 협력하고자 숙야분려한 것은 사회일반이 주지하는 사실이다”

    (숙야분려는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힘을 내어 열심히 일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의 뜻은 결국 조선일보가 문을 닫는 것은 일본과 무슨 문제가 있어 강제폐간 당하는 것이 아님을 독자들에게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당시 친일반민족 조선일보는 전투기 1대에 10만원 할 때 100만원 받고 총독부 기관지와 합의 통합을 했습니다. 그때 일본제국주의는 전쟁물자가 부족해서 일본에서도 각 지방마다 신문을 한 가지로 통폐합을 했습니다. 조선일보가 이렇게 문을 닫은 후 조선일보의 많은 간부들이 총독부기관지인 매일신보의 임직원으로 자리를 옯겼습니다.

    5월은 독재자 전두환을 찬양하는 조선일보를 사진 찍어 두었습니다.

    그리고 조선일보는 “신중을 거듭했던 군의 노고를 우리는 잊지 않는다.”라고 1980년 5월28일자 사설을 통해 찬양을 했습니다.

    이것과 관련된 더 자세한 자료는 조아세 자료실의 “1980년도의 기사를 통해서 본 조선일보의 정체성”을 참고하세요.

    6월은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에 대해 횡령,탈세 유죄 확정된 대법원의 2006년 6월 판결입니다.
    방사장은 증여세 23억5천 포탈, 법인세 1억7천 포탈, 회삿돈 25억7천만원을 계열사 증자대금으로 사용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조선일보사 지분 소유현황 표를 그려 두었습니다. 사주 일가가 조선일보 주식의 88.55%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소유지분 구조를 가지고 여론을 공정하게 반영할 수 있는 신문사가 될 수 있을까요? 이 소유구조는 조선일보가 방씨 집안신문이라는걸 보여 주고 있습니다.

    7월부터는 준비해서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