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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의 자살, 대한민국의 조종은 울리나
[정문순칼럼] 故 김춘봉씨의 고뇌와 죽음, 세상의 거름으로 새겨야
 
정문순   기사입력  2004/12/31 [10:14]
한국 사회운동의 역사를 말할 때 90년대 초 한진중공업 노동조합의 존재는 빼놓을 수 없다. 고 박창수 노조위원장의 의문사, 뒤따라 자행된 시신 탈취와 강제 부검이라는 가공할 국가폭력은 존엄한 영혼을 짓밟은 폭압적 시대를 증언하는 핏자국으로 남아 있다.
 
세상은 각성한 노동자에게 목숨을 걸 것을 요구했지만 그들이 흘린 피가 오늘날 시민사회가 이만큼이라도 누리고 있는 자유와 권리의 밑거름이 되었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만큼 세상은 변했다, 라고 말할 수 있을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노동자들에게는 자신의 가슴에 불길을 댕겨 산화하도록 요구한 '불의 시대'가 퇴각했다고 말하기에는 이르다. 고 박창수 씨 이후 13년이 흘렀지만,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 그들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주어졌던 형극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난 해 100일이 넘는 고공 농성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메아리를 듣지 못한 고 김주익 노조위원장은 죽음으로써 자신의 외침을 세상에 던졌는데, 올해 세밑에도 참담한 사건은 이어지고 있다. 한진중공업 마산공장에 근무해온 입사 24년 경력의 고 김춘봉 씨는 비정규직으로 전환된 이후 재계약을 맺지 못하게 되자 끝내 고달픈 세상과의 끈을 놓았다. 일터를 빼앗긴 노동자가 딛고 설 땅은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 죽음 무관심
 
고인의 죽음은, 사회에서 중견으로 대우받고 은퇴 후의 삶을 설계해야 할 베테랑 노동자가 한낱 파리목숨으로 취급당할 뿐인 뒤틀린 현실을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다. 당연히 이 모든 책임은 집권 이후 몰두한 노동정책이라고는 노동자의 비정규직화 밖에 없는 노무현 정부에게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그 못지 않게 시민 사회도, 그리고 개혁을 말하는 집단들도, 노동자의 삶을 파탄에 이르는 문제에는 별 관심이 없다. 정리해고나 비정규직 양산을 불가피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한국 사회의 근간을 뜯어고치는 것과 연결된 노동운동은 별반 고려 사항이 아니다. 오히려 집권자의 입버릇을 닮아 비정규직 문제를 정규직이나 대기업 노동자들더러 해결하라고 요구하는, 고약한 태도까지 서슴지 않기도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죽어도 정규직 노동자만 도마 위에 올려질 뿐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노무현 정부가 노동계에 대한 대응만큼은 유례 없이 자신감이 충천한 이유는 조직된 노동자들을 이기주의 집단으로 모는 여론폭력에서 거듭 재미를 보았기 때문이다. 파업하는 노동자들을 노동귀족으로 매도하는 정부의 전략이 먹혀드는 까닭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미성숙한 시민 사회의 나라에서 노동쟁의가 욕을 먹는 것은 호박에 침 놓는 것만큼이나 쉬울 수 있다.
 
세상의 거름으로 받아들여야
 
노동자들의 파업 때문에 길이 막힌다고 적대감을 보이는 사람들을 보라. 남의 생존권보다는 자기 일상의 작은 불편에 더 목숨을 걸만큼 한국의 시민들은 시민으로서 필수적인 연대 의식이나 타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 이들의 눈에는 불황일 때 노동자들의 쟁의는 배부른 투정일 뿐이다.
 
비록 대기업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고 있을지라도 그것은 지난 십 수년 동안 한국의 노동운동이 피땀 흘려 싸워 획득한 최소한의 정당한 몫일 따름이라는 생각은, 저급하고 이기적인 지금의 시민 사회로서는 접근이 불가한 사고이다. 그렇다면 파업조차 마음대로 못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죽음에는 왜 이리 무관심한가.
 
집권당이 개혁을 노래할 수 있고, 4대 개혁 입법이 눈앞에 잡힐 듯이 보이기도 하는 세상에 숨쉬고 살 수 있게 된 것이, 깨어있는 노동자로 살기 위한 대가로 목숨을 바쳐야 했던 이들 덕분임을 사람들은 너무 쉽게 잊고 있다. 망각증에 걸린 세상에는 아랑곳없이 고인은 제 한 몸 죽어 세상이 좋아질 수 있을까 고민했다. 고인의 고뇌를 생존의 발판이 치워진 사람의 절망이 아니라 세상의 거름이 되겠다는 희망으로 받아들여야 하나, 그의 유언을 재 속의 불씨로 받아들이기에는 인간다운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취할 수 있는 선택이 죽음일 뿐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에 눈을 감아버린 세상이 원망스럽기 이를 데 없다.
 
이 나라가, 약자가 세상을 향해 던질 불길을 그 자신에게 향하도록 강요하는 곳이라면 2004년의 조종을 울리는 이 세밑에 나는 기꺼이 이런 나라의 조종을 울리고 싶다.  / 편집위원
 
* 필자는 문학평론가입니다.
* 본문은 '언론개혁을 바라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 만든 신문' 경남도민일보 http://www.dominilbo.co.kr/ 12월 31일자에도 실렸습니다.  


[참고] 비정규직 노동자, 고 김춘봉씨가 남긴 유서
 
  24년간 이 회사를 위하여 몸과 청춘을 받쳤지만 아무런 성과도 없이 이렇게 밖으로 쫓겨 나게 되었다. 누구를 원망하지도 미워할수도 없지만 나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 정말로 죽이고 싶다. 돈없고 힘없는 사람은 모두 이렇게 해도 좋단 말인가?

그 당시 마산 및 부산, 울산공장에서는 많은 동료들이 명퇴를 하였다. 타의든, 자의든 생활건이 멀리 떨어져 불안한 마음으로 명퇴를 하고 또 나이가 많다고 명퇴시키고 근무지가 편안하다고 명퇴를 시켰다.

   나역시 그 중 한사람이다. 2002년과 2003년 두차례 시달리며 명퇴 권고를 받았다. 그 당시 관리부장 김영수, 노무차장 이창형 두사람 나에게 수없이 권고 하였다. 또한 그당시 산재환자도 보상을 해주면서 일괄 정리하고 하였다.

나는 이곳 현장에서 작업중 다리를 다쳐 병원생활을 10개월 하였다. 그후 노동부로부터 9급이라는 산재등급을 받았다.

   회사 노무팀에서 나에게 이러한 제한이 들어왔다. 산재보상보다는 명퇴를 하고 돈이 좀 작더라도 마산공장 운영할때까지 촉탁근무를 해 주겠다고 하면서 나에게 권하였다.

나역시 많은 생각 끝에 촉탁근무를 하기로 하고 명퇴를 하였다. 그후 2003년 5월 1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마산공장 운영시까지 촉탁을 연장시켜준다는 문고가 없어서 아니된다고 하니 관리부장 노무차장이 회사 규정상 그러한 문구를 삽입할 수 없으니 이해하여 달라면서 저희 두사람이 책임지겠다고 하면서 서명을 권하기에 믿고 도장을 찍었다.

   그 후 두사람은 회사 공금을 착복하여 회사에서 해고당하였다. 그런데 지금와서 나가라고 하니 정말로 미치겠다.

   현재 근무하고 있는 관리자들도 마찬가지다. 나에게 말한마디 없이 올 6월부터 공장장 이상준, 시설차장 이남수 관리 김종현 과장 등 관리팀에서는 외주(성광기업)를 주기로 구두 계약을 하며 성광에서 고압가스 교육을 가도록 하였다.

   나는 그런것도 모르고 11월 23일 면담을 해보니 모두가 끝난 상태였다. 회사는 자기 편한대로 또한 자기들 하고 친하다고 이렇게 할 수 있냐 한사람 가정이 파탄하는 줄 모르고....

그후 공장장 이남수 김종현 등 많은 면담을 해보았지만 안되었다.

절대 못나간다, 차라리 여기서 죽겠다고 수차 이야기를 하여도 도와주지도 보지도 않았고 힘없고 돈없는 사람은 모두 이렇게 되어도 되는지 정말 회사는 너무하다.

   현재 마산에서는 촉탁근무자가 나외에 6명이 더 있다. 이들 역시 나처럼 나가라고 하겠지. 그사람들도 나와 똑같은 이유로 명퇴 촉탁을 하였다. 부탁도 하고 애원도 해보았지만 모두 허사다. 계약만료일만 되면은 쫓아 내겠지.
  
   다시는 이러한 비정규직이 없어야 한다. 나 한사람 죽음으로써 다른 사람이 잘 되면....

비정규직이란 직업이 정말로 무섭다.

  벌써 혼자서 집에 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잠을 자며 생활한지도 21일째다.
아무도 신경을 써주지 않는구나. 나도 지쳐진다. 저번에 다친 허리가 왜 이렇게 아픈지....

꼭 이렇게 하여야만 회사는 정신을 차리는지...

   지금 밖에서는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고 있다. 꼭 그 사항이 이루어지길 간곡히 원하고 싶다. 그러게 하여야만 나같은 사람도 인간대접 받을 수 있지....

한진중공업에서도 비정규직이 죽었다는 것을 알면은 현재 근무하고 있는 비정규직은 좋은 대우를 해 주겠지.

  차지회장님, 그리고  ○○○, □□□, △△△ 나의 이러한 고통을 잘알고 있으리라 믿으며 꼭 이문제를 풀어주길 바랍니다.
 
2004년 12월 26일
김춘봉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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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12/31 [10:1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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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 2005/01/01 [14:50] 수정 | 삭제
  • 무엇을 할 것인가

    비정규직, 임시직, 계약직으로 넘치고 있다.

    다 같이 그렇게 되거나

    아니면 더불어 사는 세상이 되거나

    결정은 우리 스스로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