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들의 인간 선언, 철밥그릇에서 노동자로 깨어나다 결혼정보회사나 설문조사기관이 내놓는 자료에 따르면 미혼자들이 찾는 배우자감 1순위는 공무원으로 나온다. 이유야 단순하다. 공무원은 놀고 먹는 직업이라는 인식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남들이 놀고 먹는다면 사람들은 결코 용납하지 않는다. 맞선 볼 때말고는 공무원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싸늘한 이유가 거기에 있다. 공무원에 대한 냉대는, 노조를 만들고 파업을 하려는 그들의 움직임을 배부른 자들의 이기심으로 몰아붙이는 태도로 이어진다.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고용이 보장된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노동조합을 만들면 죄가 되는 것이다.
안 그래도 욕을 들어먹는 직업인데 노동운동에 대한 여론의 곱지 않은 눈길까지 더해져 전국공무원노조가 헤쳐나가야 할 앞길은 첩첩산중처럼 보인다. 반대로 노무현 정부와 기득권 세력은 자신들이 여론의 지지를 업고 힘 안 드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부가 전공노와의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팔, 다리를 자른 공무원노조법안을 특별법으로 밀어붙여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헌법에도 보장된 노동3권을 정부가 헌신짝 취급해도 별 탈은 없다. 여론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어진 정부는 사기가 충천한 듯 공무원 노조를 일망타진하기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험을 감행하고 있다. 전공노 사무실 압수수색, 지도부 전담 검거반 구성, 파업 찬반 투표함 탈취 등 이 정부가 보이고 있는 상식을 거스르는 행동은 참여정부라는 이름이 허용할 수 있는 경계를 훌쩍 넘어서버렸다.
이들과 보조를 맞추어, 제 마음에 안들면 '빨갱이사냥'을 서슴지 않는 조선일보의 고질병은 공무원 노조를 향해서도 어김없이 재발하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 여부를 두고 한때는 수구 세력과 맞장을 뜨는 듯했던 노무현 정권이, 공무원 노조에 국가보안법 잣대를 들이대는 수구세력과 합심하고 있다는 사실은 쓴웃음 지울 수밖에 없는 희극이다. 알맹이 없는 기만적인 참여정부의 개혁의 본질은 공무원 노조를 탄압하는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
▲손구호를 흔들고 있는 공무원노조 조합원들 ©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
정권은 공권력을 빙자한 살벌한 폭력으로, 수구 신문은 색깔 칠하기로 역할을 나눈 것은 15년 전 출범 당시 전교조와 맞닥뜨린 지배블록의 대응 양상과 유사하다. 당시 전교조에게 가해진 물리적 폭력과 이념 공세의 기반인, '교사는 노동자가 아니다' 라는 담론은 그대로 공무원 노조에게도 계승되었다. '공무원이 노동자가 아니다' 라는 인식은 이들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으로 버티고 있다. 노동조합이, 궁한 처지의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알던 시절 '성직자'에서 노동자의 신분으로 내려왔던 교사 노동자에 비해, 노동조합이 '노동귀족'들의 살롱으로 매도되고 있는 지금은 공무원 노조가 무너뜨려야 할 장벽이 더 두터울지 모른다.
사람들의 입에서 공무원이 "노조나 만들고" 운운하는 말이 쉽게 나올 수 있고, "공무원은 노동자이기 이전에 공적 봉사를 하는 자리"라는 법무부 장관의 구태의연한 인식이 그럴 듯하게 통하는 것은, 노동조합의 역사적 위상과 당위성에 대한 이 사회의 인식이 얼마나 어둡고 얕은지 말해준다.
인권이 천부적인 것이듯 노동자라는 이름 역시 누군가가 임금노동자가 되는 순간부터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자가 공장의 부속품임을 거부하고 존엄한 인간으로 탈바꿈하는 과정과 일치했다. 노동자라는 자의식은 노동력만 팔다 존재가 소모되고 마는 임금 노예로 더 이상 살지 않겠다는 인간 선언과도 같다. 정권에게 길들여지는 대가로 주어진 당근에 더 이상 자족하지 않겠다는 것이야말로 알에서 깨어난 공무원의 인간 선언이다. 전공노가 파업을 선언한 11월 15일은 공무원 노동자들이 인간으로서 첫 울음을 울기 시작한 때로 기록될 것이다.
하위직 공무원이 시장을 '개'에 빗대어 풍자할 수 있는 과감함은 '윗전'에 맹종하는 충견의 대명사로 그들을 알고 있는 사람들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행동이다. 군사 정권 이후 만인의 원성을 듣는 동네북으로 전락한 공무원의 위상은 그들 조직이 노동자라는 정치적 자의식과 동떨어진 곳이라는 점과 떼놓을 수 없다. 그럼에도 공무원들의 나태와 안일을 손가락질 할 줄은 알면서도, 정작 공직사회를 물갈이하여 국민의 벗으로 다시 태어나겠다는 공무원 노동자들의 맹세를 제 밥그릇 불리겠다는 말로 알아듣는 사람들의 태도는 이해하기 힘들다.
밥그릇 크기에 정녕 관심이 있는 이라면 직장에서 쫓겨나고 잡혀갈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노동조합을 만들 생각은 하지 않는다. 임금 노동자라는 계급적 각성은 기득권 지키기와는 관련이 없다는 점은 교원 노조를 박살 낸 박정희 정권에 의해 키워진 교총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살펴보아도 잘 드러난다. 노동자라는 정치적 의식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교장들의 이권 단체로 전락한 교총은 태생이 다른 전교조와 결코 위상이 같을 수 없다.
박정희 정권이 군홧발로 짓밟아 버리고 역사적으로 없던 존재인 것처럼 만들어 버린 건 교원 노조만이 아니었다. 정부 수립 이후 줄곧 존재해온 공무원 노조를 복지부동의 '철밥통'으로 만든 공이야말로 박정희 정권에게 가장 먼저 돌아갈 것이다. 그렇다면 공무원이 왜 노동자냐고 비웃는 것은 군사 정부 이후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공무원의 위상이 변하지 말라고 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할 수 있다. 공무원을 꾸짖어 국가의 권력을 견제할 동지로 만드는 힘은 우리 시민들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노동자의 각성도 없던 과거의 행적에 대해 뼈를 깎아 참회할 기회를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땅으로 곤두박질 치고 있는 자신의 지지도는 아는지 모르는지 탄압 명분으로 공무원 노동 3권 보장에 대한 낮은 지지 여론을 들이대는 정부의 자가당착은 제 무덤 파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그럴싸한 명분을 들이대더라도 노동자에게 노동조합의 존재는 지극히 합당한 당위이자 평범한 상식일 뿐이다. 교사가 스스로 노동자라고 주장하면 큰일나던 시대도 이미 지나간 역사가 되었다. 역사의 순리를 거스르겠다는 자들은 수레바퀴에 뛰어드는 사마귀와도 같을 뿐 그들의 종착역은 공무원 노동조합 역사에 거름으로 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도 한국 사회에서 시민권을 박탈한 소수자로 남기를 더 이상 거부하는 존재의 외침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 편집위원
* 필자는 문학평론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