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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청산이 박정희에 대한 '마녀사냥'?
서울대 안병직교수 시론, "친일청산, '마녀사냥'돼선 안돼"에 대한 반론
 
여인철   기사입력  2004/07/21 [08:29]
서울대 안병직 교수는 지난 15일 중앙일보에 “친일청산, ‘마녀사냥’돼선 안돼”라는 제목으로 친일청산에 대한 비판적 시론을 쓴바 있다. 그런데 그 시론이라는 것이 대학교수다운 논리라든지 역사학자로서 역사를 꿰뚫는 혜안을 동원한 것이 아니라 엉성한 논리와 무지로 점철된 글이었다. 과연 그가 정말 역사학을 전공한 학자인지, 어떻게 서울대 교수가 되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의 허술한 글이다. 그의 글에 반론을 제기한다.
 
우선 제목부터 틀렸다. 안교수는 친일청산을 ‘마녀사냥’에 비유하고 있다. 너무한 것 아닌가. 역사를 공부한 학자로서 친일청산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조금은 아실만한 분이 친일청산을 마녀사냥에 비유하시다니...중세의 마녀사냥이 뭔지 모르시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무슨 ‘정치적 저의’가 있든가...
 
'친일청산이 마녀사냥'이라니, 역사학자 맞나?
 
그는 우선 “특정인물, 특정언론을 겨냥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있”어 “일제 과거청산 문제가 다시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될 것 같다”고 말하고 있다.
 
친일청산은 우리 국민의 오래된 염원이라 할 수 있다. 해방후, 식민지 시절의 친일부역행위자 처단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자들은 다시금 대대손손 떵떵거리며 살고 조국의 광복을 위해 투쟁하시던 분들은 자손까지도 사회의 하류계층으로 전락하는 기막힌 역사가 연출되었으며 이는 아직까지도 우리 국민의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있다.
 
작년 12월에 국회에서 전액삭감한 친일인명사전 편찬을 위한 기금 5억원을 네티즌을 포함한 국민이 단 2주일만에 모아준 것이 그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친일청산 문제를 누가 정치적 논란거리로 제조하고 있는가? 바로 그가 기고한 중앙일보와 친일신문으로 알려진 조선, 동아일보다. 안교수는 슬쩍 그들의 주장을 옮기며 마치 우리 사회에 친일청산에 대한 정치적 논란이 있는 양 말하고 있다.
 
그는 일제 과거청산에 대해 몇가지 우려되는 바가 있다며 “진정한 의미의 과거청산은 불행한 역사의 면면을 제대로 이해하고 성찰하는데서 출발한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다음이 이상하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친일파 규명작업을 일제 과거청산 작업의 전부인양 여기는 듯하다”
 
친일파 청산은 과거청산의 핵심
 
친일파 청산은 과거청산의 전부는 아니지만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핵심을 놔두고 다른 것을 먼저 얘기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또 설사 친일진상 규명작업이 과거청산 작업의 전부라고 해도 크게 틀린 것은 없다. 그런데 그렇게 비아냥거림으로써 주장하려는 것이 무언가. 과거청산에 있어서 친일진상규명보다 더 중요한데도 아직 진행되지 않고 있는 것이 있으면 말해보라.
 
그 다음 이어지는 그의 글을 보자. “친일세력의 행적을 규명하고 심판함으로써 식민시대 과거를 청산하겠다는 것은 간단하고 편리한 과거청산 방식일지는 몰라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사실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으려는 것과 마찬가지다.”
 
친일세력의 행적을 규명하는 것이 간단하다? 안교수는 역사학을 공부하면서 어떤 과거 사실을 규명해 본 적이 있는가? 많은 사람들의 이해가 첨예하게 걸려있지 않은 단순한 문제에 대한 규명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물며 나라와 민족을 배신한 친일 반민족행위자에 대한 진실규명이다. 더구나 그 후손들이 아직도 힘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런 작업이 간단하다? 그리고 편리한 과거청산 방식이다?
 
도대체 안교수는 역사학자로서의 기본이 안 되어있다. 그도 사학자인 이상 분명 과거의 반민족행위를 수십년이 지난 뒤에야, 그것도 그들의 후손들이 국가통치의 핵심적 위치에서 많은 증거들을 인멸하고 난 뒤에야 규명해내는 작업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작업이라는 것을 모를리 없을 터이다. 그럼에도 그는 미리 설정된 글의 목적을 위해 역사학자로서의 기본소양에 해당하는 것조차 내팽겨치고 있다.
 
그의 그 다음말은 더욱 충격적이다. “친일진상 규명작업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란다. 친일진상 규명작업이 바람직한 것은 아니다...아하, 그는 이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쯤에서 구토가 나려한다. 한국 국적을 가진 사학자로서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싶다.
 
그리고 그것이 “역사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않으려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그 이유가 “30년 넘게 지속된 일제식민통치의 역사적 책임을 친일세력에만 한정함으로써 오히려 일제강점기의 역사에 대한 폭넓고 깊이 있는 성찰과 반성의 기회를 막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란다.
 
안교수는 지금 그럴듯한 학자의 단어를 써가며 독자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일제식민통치와 친일진상규명을 교묘히 동의어화하여 어물쩍 논리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일제 식민통치와 진일행위 진상규명은 별개의 작업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역사적 책임과 친일진상 규명은 별개의 문제다. 일제 식민통치에 대한 책임은 역사책에 나와있는 그대로다. 그러나 친일진상에 대해서는 어디에도 나와있지 않다. 그러기에 이렇게 국회까지 나서서 진상을 규명하자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일제 식민통치의 역사적 책임을 친일세력에게만 한정한다? 친일세력이란 일제 식민통치가 시작되고 나서 나라와 민족을 배신한 무리를 말한다. 누가 일제식민통치의 역사적 책임을 친일세력에게 지운다고 했는가?
 
이건 야바위다. 안교수, 자신의 지위를 너무 과신한 나머지 너무 우쭐해있는 것 아닌가? 독자들이 그런 정도도 판독못하리라 생각하시는가?
 
이런 허무맹랑한 글을 가지고 반론을 쓰려고 시간낭비하는 것이 참으로 내
자신 한심스러워 보이지만 어쩌겠는가, 내친 걸음인데. 다음의 그의 글을 계속 보자. 점입가경이다.
 
“친일행적을 은폐하거나 호도하는 일은 도덕적으로 용납하기 어렵고 비난받아야 할 행위임에는 틀림없다.” 옳으신 말씀. 거기서 그쳤더라면 참으로 좋을뻔했다.
 
그런데 그는 “그러나 대량학살, 인종차별, 고문, 인권유린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반인륜적 행위가 아니라 조국과 민족이라는 특수한 가치에 반하는 부역행위를 과거청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과연 충분히 명분 있는 일인지 한번쯤 재고할 필요가 있다”라고 쓰고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나는 안교수 말대로 “대량학살, 인종차별, 고문, 인권유린 등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반하는 반인륜적 행위”에 대한 과거청산을 반대하지 않는다. 그런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시효를 두지 않고 처벌해야 한다는 움직임도 알고 있다.
 
그러나 그런 대량학살, 인종차별, 고문, 인권유린 등의 반인륜적 행위가 이민족을 대상으로해서 저질러졌을 때만 과거청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동족에 대해 그런 반인륜적인 행위가 자행되었을 때도 과거청산은 되어야 한다.
 
그러면 동족간의 대량학살, 고문, 인권유린 행위는 과거청산의 명분이 있고, 식민지 시절 동족을 배반하여 그들을 고문하고, 인권유린하고 대량으로 사지로 몰아넣은 부역행위는 과거청산 대상으로서의 명분이 없다는 말이 되나?
 
가슴이 답답하다. 이 글이 정말 역사학을 전공한 학자가 쓴 글이란 말인가. 제 나라의 불행한 시절에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부역행위가 ‘특수한 가치’인 ‘조국과 민족’에 반하는 부역행위이므로 과거청산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타당하지 않다는 말이 역사학자의 입에서 나오는 이 현실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정말 큰 일 낼 사람이다.
 
“친일행적을 폭로함으로써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얻고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면...” 이제 친일 반민족행위자의 행적을 조사하고 규명하는 노력은 안교수에 의해 ‘폭로’ 수준으로 비하되고 심리적 카타르시스를 얻으려 하거나 정치적으로 무언가를 얻으려 하는 정도의 수준낮은 행위로 폄하되고 있다.
 
친일행적 규명은 역사 바로세우기이다
 
그리고 그는 “도덕적. 정치적 명분만으로 역사에 접근하고, 역사적 심판이라는 이름으로 역사적 행위를 재단하는 것만큼 위험한 일은 없다. 과거청산의 명분과 당위성에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현재의 정치적 필요성에서 접근할 경우 과거청산작업은 일방적이고 흑백 논리적인 심판으로 전락할 위험이 있다.”라든가 “역사적 현실이나 행위의 복합적 측면을 지나치게 단순화해서는 안 될 것이며 현재의 행동규범을 잣대로 역사적 행위를 평가해서도 안 될 것이다. 극히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규정을 바탕으로 역사적 행위의 의미를 확대 해석해 '죽은 자'에 대한 마녀사냥이 돼서는 더더구나 안 될 것이다.”라고 한 단락을 온통 걱정과, 사실왜곡으로 채우고 있으며 친일진상 규명 노력에 대해 계속 깎아내리고 있다.
 
특히나 “추상적이고 포괄적인 규정을 바탕으로 역사적 행위의 의미를 확대 해석해”라는 부분은 악의적 사실왜곡이다. 법안을 보면 모든 사안에 대해 구체적으로 조목조목 규정해놓고 있다. 그런데도 안교수는 무엇이 그렇게도 걱정스러운지 걱정이 지나쳐 도를 넘고 있다. 아예 작심하고 거짓말도 서슴지 않고 있다. 친일진상 규명이 ‘죽은자’에 대한 마녀사냥이라는 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었다. 이런 폭언에 어찌 대항할 수 있겠는가. 그저 한발 물러설 수 밖에.
 
도대체 우리의 불행한 식민지 시절에 나라와 민족을 배반한 무리들에 대해서 물리적 단죄도 아니고 역사적 심판을 하자는데 반대하는 이유가 도대체 무언가? 거기에 무슨 ‘정치적 저의’가 있는가?
 
이건 친일진상규명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사람들 그리고 그에 동의를 하는 많은 국민들에 대한 모독이다.
 
아니다. 그래, 거기엔 ‘정치적 저의’가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안교수가 지적했듯이 특정인물과 특정언론이 그 법안에 포함될 수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그 특정인물과 특정언론의 행위가 용서받을 수 있느냐 없느냐이다. 용서받을 수 없는 행위를 한 자나 집단이 그 법안에 의한 조사대상에 포함된다고 그 법안 자체를 ‘정치적 저의’가 있다고 매도하는 것은 그 또한 ‘정치적 저의’가 있는 것이며 그 ‘정치적 저의’는 더욱 불순한 ‘정치적 저의’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친일청산 자체를 반대한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차라리 그렇게 주장하라.
 
“외국의 과거청산 사례가 주는 교훈은 과거청산이란 성찰과 관용을 통한 미래지향적인 노력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허설수로 들으면 공자님 말씀처럼 그럴듯한 말이다.
 
그러나 이것도 틀렸다. 외국 어느 나라에서 반민족행위자에게 성찰과 관용을 베풀었는가? 성찰은 있으되 관용은 행위에 대한 조사가 철저히 진행되고 난 연후에 당사자들의 참회를 전제로 베풀어지는 것이다.
 
진정 갈등과 혼란을 부추기는 세력은 친일세력일 뿐
 
그런데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떤가? 지금 국회에 제출되어있는 법안의 제목은 ‘일제강점하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친일진상규명법)이다. 해방후 60년이나 지난 연후에 이제서야 진상을 규명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관용을 어떻게 베푼다는 말인가? 그런 소리를 하려면 친일진상규명법 통과를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나서 해야 할 것이다. 참으로 안교수의 상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도 너무나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그저 그럴듯한 단어들만 나열하면 문장이 되는 줄 아는 모양이다.
 
안교수는 이제 “즉 과거청산은 불행한 과거 경험의 당사자뿐 아니라 한 사회전체가 자기정체성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부딪치고 성찰해야 할 문제로서 사회구성원 모두가 관심을 가지고 공감하는 가운데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적 저의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받고, 시시비비와 논란의 대상이 된다면 갈등과 혼란, 분열과 반목만 초래할 뿐 진정한 반성과 성찰에는 이르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로 그의 글을 마친다.
 
그는 끝까지 말장난을 하고 있다. “갈등과 혼란, 분열과 반목” 어디서 많이 듣던 상투어다. 소위 거대신문이 요즘 용트림을 하며 내뱉는 말들이다. 그는 깊은 ‘성찰’없이 그저 거대신문의 나팔수가 되어 분열의 언어를 되뇌고 있다.
 
과연 이 사회에서 분열과 갈등을 조장하는 것이 누구인지에 대한 안목도 없다면 교수직을 던지든지 그것도 싫다면 그저 조용히 사는 것이 그나마 남아있는 명예에 먹칠하지 않고 사는 길이다. 부끄럽지도 않은가.
 
비뚤어진 역사관을 갖은 지식인은 더 위험해
 
나는 안교수의 글을 읽으며 그의 이런 글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각을 혼란케 할 것인지, 비뚤어진 역사관이나 사회관을 가진 지식인 하나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오도할 것인지, .지식인의 사회적 폐해를 실감하고 있다.
시론을 쓰려면 문장 하나 하나 진실에 기초한 단단한 문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안교수의 시론은 문장 하나 하나가 엉성하기 그지없다. 앞뒤 논리도 안 맞고, 역사학자로서의 예리한 판단도 엿보이지 않는다.
 
그저 서울대 교수라는 지위와 현학적 언어를 동원하여 어떤 목적을 향해 안간힘을 쓰며 제조한 글일 뿐이다. 측은함이 느껴진다. 어떻게 그런 허술한 학자가 서울대 교수가 되었는지 궁금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안교수에게 충고한다. 글을, 그것도 중앙일간지의 시론같은 큰 글을 쓰려면 쓰기 전에 우선 사실부터 파악하기 바란다. 비뚤어진 역사관으로 감정과 목적을 앞세우지 말고. 이글은 순전히 목적에 맞춰서 철저히 ‘정치적 저의’를 갖고 쓴 글이다. 학자로서 그래서야 되겠는가?
 
그리고 나는 안교수에게 지금 바로 민족문제연구소의 홈페이지(www.minjok.or.kr)로 들어가 친일진상규명법이 얼마나 오랜 세월 어렵사리 진행되오고 있는지 한번 살펴보길 권한다. 관심을 서양사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굴절된 현대사에도 좀 기울이길 바란다. / 논설위원
 
* 필자는 민족문제연구소 대전시지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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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7/21 [08:2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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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민의소리 2004/08/02 [21:08] 수정 | 삭제
  • 지금 때가때인 만큼 친일가지고 논쟁할때인가. 왜정이후에 우리조상들 우리의 친척들 어느누가 일인들과 어울려 살지않았든 집안 자손들이 이나라에 불과 몇사람이나 되겠느냐? 그래 박정희가 당시에 무고한 양민에게 칼을 휘두른게 아닐진데/ 어찌 그에게 돌을 던질자가 어디에 있겠느냐 나와봐라. 그는 젊은시절 시골학교 교사였었고 미래를 향해 군관학교에서 우수한성적으로 졸업하고 훗날 이나라를 위해 자기몸을 바친 시대적 꼭필요했든사람아닌가? 이제와서 역사는 그를 어떻게 평가하든 그는 우리의 민족사인물....
  • 근데... 2004/07/27 [01:30] 수정 | 삭제
  • 박정희 얼굴이 웬 독일군 모자를 쓰고 있나요?

    일본군이었던 적은 있어도 독일군이었던 적은 없는데...^^
  • 효수 2004/07/23 [20:48] 수정 | 삭제
  • 정치적 견해가 다를 수는 있습니다. 실력이 없어도 어느정도 용서될 수 있습니다.(그들도 먹고 살아야 하니까요.) 그러나 학자로서의 기본적인 양식조차 갖추지 못했다면 교수를 해서는 안됩니다. 역사학자로서의 기본적인 자질도 없는 글을 중앙일간지에 버젓이 게재할 정도면 사정을 봐주기 쉽지 않겠군요. 스스로 교수직을 버리지 못한다면(아마 그렇겠지요) 주변에서 그만두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 아무개 2004/07/22 [02:58] 수정 | 삭제
  • 잘 정리 요약하신 걸로 읽히네요. 역사를 잘 아는 분들이 여럿 달려들어서 그런 내용들을 좀 시시콜콜히 알아보고 배워서 미래로 나가자 이거 아닙니까? 을사오적에 비하면 새발의 피인 박정희 하나 때문에 통째로 안 되냐고요.
  • 유현 2004/07/21 [19:17] 수정 | 삭제
  • 박정희가 친일파다 아니다를 가리기 위한 것이 친일청산법의 목적이 아닙니다. 친일청산을 해야한다는 말이 나오면 항상 대상이 되는 자들이 들고 일어나는 부분이 박정희도 친일파였다. 박정희도 처벌해야하냐?...드등..
    박정희(설령 친일 행적이 있어도 상대적으로 약할 수 있는)를 내세워서 피해가려고 합니다. 이제는 이런 논리에서 벗어나야죠.
    그리고 위에 분이 쓰신 부분 중 독립군에 대한 내용에 대해서 말하자면 네이버에 있다는 내용은 민족주의 독립운동을 중심으로 서술한 것입니다. 사회주의계열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부분까지 합치면, 박정희가 근무하던 곳에서도 독립군의 활동이 있었습니다.
  • 진누 펌 2004/07/21 [17:47] 수정 | 삭제




  • 대한국인 (2004-07-21 14:55:11, Hit : 201, 추천 : 22)


    제목
    박정희는 진짜 친일파인가?


    정말, 답답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맹목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일파라고 우기고...
    제발 이 글 좀 읽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일파인지 아닌지 말하세요.
    =========================================================================
    먼저 현재 인터넷이 떠도는 박통의 친일행적 10가지란 글은 네이버 오픈사전에 등록된 글로서 아무런 증거도 없이, “아님 말고” “~~카더라”란 유언비어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글임을 먼저 밝힙니다..

    최근 많은 단체에서 박통에 대하여 친일파에 해당되는지 여부에 대한 상반된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친일파의 정의 즉 어디까지를 친일파로 분류할 것인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있지 않아서 입니다......

    따라서 위 논쟁에 대해 크게 분류해보면
    1. 적극적 친일행위자만 해당된다 : 을사오적등 대표적 친일파들로서 이부분에 대하여 이견이 없습니다.
    2. 일제시대 공직에 있었던자도 포함된다. : 이부분에 대하여 논쟁의 여지가 많습니다..
    3. 창씨개명한자도 포함된다 : 이것은 당시 독립운동가외에는 거의 모든 분들이 해당되는바, 창씨개명 자체로 친일파로 분류할 수 없습니다..(친일파청산에 반대하는 분들의 대표적 주장)
    위의 세가지 분류를 본다면 박통은 2번에 해당됨에 따라 논란이 계속되었으나 현재 개정중인 친일청산법에 의한 친일파는 친일행적위주로 분류함에 따라 위의 1번항에 해당되며 이 기준은 과거 반민특위에서의 친일파 선정기준과 비슷한 것으로서 보여집니다.

    먼저 인터넷상에 떠도는 박통의 친일행적10가지란 글을 검토 해 보겠습니다.

    ① 일제에 대한 충성심이 태동 : 박정희가 손가락을 잘라서 쓴 충성혈서 "盡忠報國 滅私奉公(진충보국 멸사봉공)"

    - 이러한 주장에 대한 증거는 현재 전혀 없으며, 만약 있었다면 박정희대통령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인터넷에 올렸을 것이나 현재까지 “~~카더라.” 라는 글만 있을 뿐입니다...
    혈서론의 출처가 만주일보라고 하는 데. 만주일보는 1927년에서 1934년까지라고 입니다.
    즉 1934년에 폐간되었으나 박통이 입학한 때는 1942년입니다.
    만주일보가 보관되어 있는 서울대의 소장목록입니다.. 찾아보시길...
    (http://147.46.181.112/lib_service/separate/paper_list.html#마)

    ② 몸과 마음을 철저하게 개조
    ③ 완전한 일본인
    - 위의 글들은 주관성이 개입된 글들로 객관적인 자료가 될 수 없습니다. 이와 반대되는 글들도 엄청 많습니다... (예들 들면 지난cbs 방송에서 박통의 제자들이 증언한 박통이 선생으로 있을 당시 민족교육등...)
    또한 님을 싫어하는 분들은 님을 극히 나쁘게 평가할 것이며, 님의 친구는 님을 극단적으로 좋은 평가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주관적인 사항을 인용하는 것은 맹인모상 즉 장님 코끼리 만지기에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따라서 한사람의 평가는 오직 객관적인 자료에 의해 평가해야 할 것입니다.

    ④ 항일세력의(독립군) 토벌 - 110여회 참가했다.
    - 이 주장 역시 허위 날조된 글입니다.
    위의 글에서 박정희는 독립군 토벌을 신나게 토벌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당시 만주에 독립군은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박통은 1944년 3월부터 1년 5개월간 만주군제8단(단장은 중국인 唐際榮)소속으로 근무지는 중국 열하(요즈음의 이름은 承德)지방 이였습니다. 이지역은 독립군이 활동하던 지역까지의 지금도 기차로 24시간이나 걸리는 곳입니다..
    또한 박통이 만주군에 복무한 1944년 당시의 만주독립군투쟁 항일 기록을 보면 독립군은 1931년 중일전쟁으로 인해 중국 내륙지방의 도시인 중경(중국표현으로 "충칭")으로 본부를 옮긴 뒤 거기서 전투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즉 1944년 당시에는 만주에는 독립군이 없었습니다..
    * 아래 네이버 백과사전를 검색해 보시길 바랍니다..
    http://opendic.naver.com/100/entry.php?entry_id=47512

    - 반 박정희의 대표적인 지식인 한홍구의 기회주의자 박정희란 글을 보면...
    ........ 생략 ............. 해방전 박정희의 친일경력이란 만주군군학교와 일본육사를 나와 1944년 7월, 만주군 소위로 임관되어 만주군 제5군관구 예하의 만군 보병 8단에 근무했다는 것이다. 사실 이 정도의 경력은 해방 직후 반민특위를 결성할 때나 각 정치단체에서 내건 악질 친일파의 처단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 ‘경미’한 것이다. 박정희가 관동군 정보장교로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다는 주장도, 당시 만주에서 활동한 조선인 독립군부대나 공산유격대가 없었다는 점에서 신빙성이 없다. ......
    * 박통이 친일파라 주장하시는 분이 위의 글을 올려놓은 네이버 블로그가 있으니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두번째 단원 앞부분에 있는 글이니 찾는데 어려움이 없을 듯...)
    http://blog.naver.com/cxicxi.do?Redirect=Log&logNo=20004036923

    결국 박정희가 독립군 토벌에 110여회나 참여하였다는 것은 허위 날조 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⑤ 일본군의 특수부대(철석부대) 활약 - 간도특설대
    - 이것 역시 허위 날조된 글로서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조선인 장교의 명단(出典 : 중국측 조사자료-"特設部隊", 1960, 66 - 84쪽.)은 아래와 같습니다.
    박정희의 이름이 어디에 없습니다.
    간도특설대(총79명) - 姜在浩 李元衡 朴鳳祚 金燦奎(金白一) 金錫範 金洪俊 宋錫夏 石希峯 崔南根 崔在恒 신현준 최경만 윤춘근 문이정 趙某(豊田) 김용기 태용범 백선엽 윤수현 이재기 김묵 豊田義雄 吳文剛 李淸甲 申奉均 海原明哲 白川** 金松壯明 伊原久 鶴原** 朴東春 李鶴汶 崔忠義 朴鳳朝 許樹屛 金大植 方得官 洪淸波 金龍虎 金致斑 具東旭 朴春植 方太旭 孫炳日 劉仁煥 尹秀鉉 李德振 李龍昊 李東俊 李龍星 李準龍 李逢春 太溶範 崔在範 崔炳革 李龍 金忠南 車虎聲 金忠九 柳益祚 朴春範 朴春權 曺昌大 洪性台 李東郁 廉鳳生 吳南洙 金萬玉 金鍾洙 李東和 朴蒼岩 朴泰元 李白日 金龍周 申然植 李龍星 任忠植,, 馬東嶽, 桂炳輅, 全南奎

    - 2004. 06. MBC에서 방송한 “이제는 말할 수 있다.”의 만주군의 친일파 내용중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조선인의 명단에도 박정희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MBC 방송을 인터넷을 통해 확인해 보시길 바랍니다.)

    ⑥ 변신의 달인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이 글은 사실이며 기회주의자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역시 보는 관점에 따라 달라집니다. 또한 공산주의를 배신한 것이 왜 기회주의가 되어야 하는지?
    그러면 공산주의자로서 그냥 남아 있어야 했다는 뜻인지?
    솔직히 공산주의 배신한 것 잘한 것 아닌가요?

    ⑦ 박정희의 창씨개명 -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 "오카모토 미노루(岡本實)"이다.
    - 김대중대통령 시절 박통을 친일파로 몰고가기 위하여 박통의 창씨개명인 다카키마사오를 들고 나왔으나, 김대중대통령의 창씨개명명이 도요다다이쥬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없었던 일로 흐지부지되었는데 ....아직도 써먹고 계신 분들이 있습니다.....
    또한 오카모토미노루의 창씨개명은 사실 여부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창씨개명자체로는 친일파의 기준에 포함되지 않는 사항입니다.

    ⑧ 일본군인 생활에 대한 다카키 마사오(박정희)의 향수
    이글 역시 ② ③번과 같습니다...

    ⑨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1
    대통령이 국가이익을 위해서 일본을 방문 및 협조를 받은 것이 친일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러면 지금 일본과 외교관계를 끊어야 합니까? 또한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 외교적 수사법으로 한 발언이 친일파의 기준이 될 수 있는지요? 외교석상에 욕을 하면 그것이 대통령으로 해야 할 일일까요? 역대 대통령 치고 이러한 외교적 수사법을 사용하지 않는 대통령이 없습니다.

    ⑩ 다카키 마사오(박정희) 대통령으로써의 친일 2
    일본군국주의 세력의 정신적 유대는 대일 굴욕회담을 (한일협정) 성사시킨다. 여기서 식민지 지배 피해에 대한 거의 모든 권리와 주장을 포기한다.

    - 당시 우리나라는 일본과 대일청구권문제의 타결을 위해 7차례나 회담, 우리가 요구하는 8억 달러와 일본이 제시하는 최고액 7000만달러중 무상으로 3억 달러, 차관 2억달러, 민간 상업차관으로 1억 달러 이상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타결합니다..
    즉 80억달러 주겠다는데 박통이 3억달러 받았습니까? 많이 받으면 좋겠지만 돈 주는 쪽이 일본인데.....
    또한 위 금액은 보는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집니다..
    그리고 대일청구권을 받은 나라가 있는지요?
    수십억달라를 요구만 하고 받지 못하면 괜찮고
    그것보다 적은 돈이라도 받아 냈으면 친일파?

    - 위 사항은 정책결정사항이며 이러한 정책결정사항으로 친일파 여부를 판단한다면 현대적 개념의 국토 땅 하늘, 바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독도는 과거 신한일어업협정에 의거 한일공동 어로수역의 중간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즉 우리의 국토인 바다가 국제법상 일본에게 영유권이 인정되었습니다..
    이 협정은 1998년 11월 28일. 김대중 정권(당시 해양수산부장관은 노무현대통령입니다.)당시에 이뤄어 졌습니다.
    그럼 김대중대통령이 친일파입니까?
    그리고 일본대중문화를 개방한 현재의 노무현 대통령도 친일파입니까?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에게 보상 못 받는 이유가 위의 대일청구권 때문이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 그 당시 대일청구권을 받았기 때문에 현재 못 받는 것일까요?
    1993년 김영삼대통령이 정신대문제와 관련하여 대일보상을 요구하지 않을 것임을 발표하였으며, 11월 국제법률가협회에서 일본의 배상의무가 있으며, 1965년 한일협정의 청구권에 불법인권침해와 위안부 개인의 권리침해에 관한 청구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위안부문제에 관하여 한국, 타이완, 일본, 필리핀, 타이, 홍콩등 아시아 6개국 여성단체에서 공동보조를 취할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즉 일본으로부터 위안부문제로 보상받은 나라는 현재까지 없습니다.

    참고로 각 단체들이 선정한 박통의 친일파 여부는 아래와 같습니다.

    - 반민특위 : 해방이후 최초의 친일청산을 위하여 7000명을 조사 이 중 690명을 친일파로 선정하였습니다만 박통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았습니다...
    * 장면총리 : 친일파로 분류

    - 독립 운동가들의 총본산인 광복회(친일반민족행위자 692명)에서도 박정희를 친일파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http://www.kla815.or.kr/)
    * 장면총리 : 친일파로 분류.

    - 역사광복운동본부(친일파99명)에서 박통은 신친일파로 분류 돼있습니다.
    (http://bluecabin.com.ne.kr/index.html)
    내용) 만주에서의 박정희의 행적과 관련, 그가 독립 운동에 참여한 주장에 대한 비판과 만일 일본이 계속 득세하고 있다면 독립 운동가를 학살했으리라는 가정 그리고 해방이후 공산주의 활동 및 정권잡은 이후 경제개발등에 대해 비판함으로써 친일파가 아닌 신친일파로 분류.(이곳에서도 독립군 토벌에 대해서는 언급은 없음 )
    * 장면총리 : 친일파로 분류.

    - 한일역사문제연구소 : 박정희, 장면 해당없음.(http://www.e-hanil.net/)

    - 민족문제연구소 : 박통을 친일파로 주장 최근 박통친일행적에 대한 만화를 편찬할 계획을 발표함으로써 박통의 친일논쟁을 유발 시킨 곳으로 어떤 의미의 친일을 주장하는지는 관련 자료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http://www.banmin.or.kr/)

    결론 : 현재까지 밝혀진 박통의 친일행각은 만주군군학교와 일본육사를 나와 1944년 7월, 만주군 소위로 임관되어 만주군 제5군관구 예하의 만군 보병 8단에 근무했다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 이외 사항은 전부 허위, 날조, 과장된 것들입니다..

    물론 현재의 친일청산법에 의거 친일 행적 조사 대상에 포함되어 있으니 박통의 친일행적이 있다면 밝히고 묻어둬선 안되며, 허위사실을 조작해서도 안된다고 봅니다..
    다만 현재까지의 자료로는 친일청산법에 의한 친일파라 하기엔 어려울 듯합니다.
    그러나 제가 판단할 때 친일행적에 대한 자료가 가장 풍부했던 과거 반민특위에서도 포함되지 않았다면 현재 시점에 새로운 사실이 밝혀질지 의문이며, 새로운 사실이 있을 것 같지도 않습니다.



  • qq 2004/07/21 [17:17] 수정 | 삭제
  • 마녀사냥?
    그럼 박정희가 마녀인가?
    중세기의 마녀는
    봉건 체제유지를 위한 희생양이었다면
    봉건 지도력을 행사한 박정희를
    마녀로 비유한
    안교수의 수준은?
  • 혈우 2004/07/21 [15:13] 수정 | 삭제
  • 역사의 장구한 흐름을.. 안병직교수와 같은 자들의 세치 혀로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보다 철저한 친일진상규명을 통해..역사가 바로 서는 그 날을..두 눈 부릅뜨고 기다리겠습니다..
  • khh 2004/07/21 [14:52] 수정 | 삭제
  • 박정희 등 쳐 먹고 산 놈들이 제 발 저리잖겄습니까?
    아직까지도 그 등쳐먹던 버릇 못버렸으니 세상사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