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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2번이 사라진 선거, 누굴위한 선거인가?
[긴급제언] 새누리 1번, 2번없으면 결과 상상 초월할 정도로 참혹할 것
 
문용식   기사입력  2014/03/19 [20:34]
지금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
 
지방선거에서 기초단체(장, 의원) 공천 포기가 가져올 후폭풍이 상상을 초월할 것 같다. 새정치민주연합 창당 발기인대회가 열리는 광화문에서는 희망의 찬가를 부르고 있을지 모르지만, 지방선거 출마자 사이에서는 곡소리가 아우성이다.

어느 여론조사에서는 수도권 기초단체장들 전멸이라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고 한다. 강동구청장 이해식을 샘플로 조사 해봤더니 다른 무소속 후보 한명만 나오더라도 무조건 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해식 청장은 재선 청장에 이번이 3선 도전이다. 서울에서 가장 경쟁력이 있는 기초단체장 후보가 이렇다면, 다른 기초 선거는 해보나마나다.

"심봉사를 구하기 위해 인당수에 뛰어드는 심청이 심정"이라는 김우영 은평구청장의 말에 구구절절이 공감이 간다. 이대로 가면 기초 선거 후보들은 모두 인당수에 빠져 죽는 꼴밖에 안된다. 심청이는 인당수에 뛰어든 댓가로 공양미 300석이라도 얻었지만, 기초후보들은 무엇을 구하기 위해 죽으러 뛰어든다는 말인가?

이 모두가 <기호 2번>이 사라진 결과다. 지방선거 투표지는 모두 7장이나 된다. 광역단체장, 광역의원 지역구, 광역의원 비례, 기초단체장, 기초의원 지역구, 기초의원 비례, 교육감... 투표하러 가면서 후보 이름을 다 기억하고서 가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마도 거의 대부분이 1번이나 2번 기호 보고서 찍을 것이다. 1번 찍은 사람은 줄줄이 1번, 2번 찍은 사람은 줄줄이 2번... 비례 찍을 때나 한번쯤 진보정당을 고려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투표 관행이 이번 선거에서는 어떻게 될까? 박원순 시장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놓고 생각해보자. 먼저 서울시장 투표지에서 2번 <새정치민주연합> 박원순 후보를 찍는다. 그 다음에 구청장 투표지에서 기호 2번을 찍으려 했더니 2번은 아예 없고 1번과 진보정당 후보, 무소속 후보만 있는 투표용지를 받아든다. 지지자로서는 황당하기 짝이 없는 노릇... 결과는 뻔하다. 무소속 후보들 사이에서 표가 분산되거나, 갈 길 잃고 기권하거나, 엉뚱한 데 찍어서 무효표만 양산될 것이다. 구청장 후보는 그나마 조금 낫다. 기초의원 선거의 경우는 무소속 후보들 가운데 누가 야권 후보이고 누가 여권 후보인지 조차도 분간하기 어려울 것이다.

무소속 후보일망정 투표용지에 번호라도 통일되면 좋으련만, 무소속 후보는 선거구마다 모두 기호가 다르다. 참고로 후보 기호 부여 방법은 국회 의석이 있는 정당 --> 의석이 없는 정당 후보 --> 마지막이 무소속 후보 순이다. 의석이 있는 정당은 의석 순으로 고정기호를 부여받는다. 새누리 1번, 새정치연합 2번, 통합진보당 3번, 정의당 4번... 의원이 없는 나머지 소수정당의 후보가 출마하면 5번부터 번호를 부여받는다. 무소속 후보는 정당후보 다음 번호부터 추첨하여 정한다. 그래서 무소속 후보는 군소정당후보가 출마하지 않은 곳에서는 5번부터 추첨을 통해 부여받고, 4개의 군소정당 후보가 전부 출마하면 9번부터 추첨하여 부여받는다. 어느 경우든 투표용지 맨 마지막에 있는 무소속 후보들 중에서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 이름을 찾아내서 투표해야 하는데, 이게 과연 가능할까? 아마 사상 최대로 무효표가 쏟아져 나오는 선거가 될 것이다.

당에서는 최대한 지혜를 짜낼 것이다. 시민단체를 앞세워 후보 단일화도 시도해보고, 당이 추천하는 후보임을 알릴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추천 단일후보>라는 타이틀을 명함, 현수막, 벽보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거나, 색상, 사진, 지원유세 등의 방법으로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그것을 의심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걸로는 결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선거 공보물을 보자. 지방선거에는 7종류의 투표를 한다고 했다. 한 가정당 평균 50장에서 100장의 선거공보물이 도착한다. 거의 한권의 책이다. 이걸 꼼꼼히 들쳐보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여러분은 읽어보나? 읽어보더라도 기억하나? 투표하러 갈 때 7개 선거별로 자기가 투표할 사람의 이름을 꼼꼼히 적어서 가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투표지에 기호 2번이 사라진 선거... 그 결과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참혹할 것이다. 애당초 기초단체 선거에서 무공천하자고 한 것은 선거법을 바꿔서 여당이나 야당이나 다 같이 공천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방자치가 중앙정치에 예속되는 것을 막고, 조금이라도 지역주의 정치의 폐해를 막아보자는 충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지금같이 새누리당은 공천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은 무공천하는 방식은 아니었다. 지금처럼 하게 되면 무공천이 가져다주는 새정치의 효과는 별로 없는 반면에 지방권력은 온통 새누리당 차지가 될 것이다. 이로써 새누리당은 중앙행정권력, 의회권력, 지방권력을 독차지하는, 새누리 천하제패의 시대가 온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애당초 기초단체 선거 무공천은 선악의 문제가 아니었다. 무공천이 가져다주는 좋은 점도 있고, 부정적인 점도 있는 문제였다. 지역주의 폐해나 중앙정치 줄세우기 등을 막을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나, 정당정치의 뿌리를 허약하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때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무공천할 수 있다. 정치현실에 따라서 해결해야 할 주요한 과제가 달라지기 때문에 당분간 기초선거 무공천을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법을 바꾸어 제도적으로 무공천할 때의 일이다. 지금처럼 법은 바꾸지 못한 채, 새누리당은 공천하고 야당은 무공천하는 방식은 결코 아니다. 새누리당 지지층은 기호1번으로 결집하고, 야당 지지층은 무소속 후보들 사이에서 헤매게 만들 뿐이다. 선거든 스포츠 경기든 게임의 룰은 똑 같아야 하는 게 너무나 당연한 상식 아닌가. 이건 전쟁에 나가는 병사들에게 무기를 놓고 싸워라는 말이나 다름 아니다.

기초단체 무공천 결정의 번복을 심각하게 고민해보자. 최소한 영호남을 제외하고 수도권에서는 공천하는 방법을 찾자. 야당 지지자들에게 기호 2번의 선택권을 되돌려주자. 공당으로서 너무나도 어려운 결정이라는 것을 잘 안다. 보수언론으로부터 몰매를 맞을 수 있고, 지도부로서는 너무나도 쪽팔리는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순간의 쪽팔림이 무서워 새누리당에게 지방권력을 송두리채 헌납할 수는 없지 않는가?

약속은 지켜야 한다.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잘못된 약속은 빨리 사과하고 바꾸는 게 지도자로서 책임지는 자세다.

이대로 가면 다 죽는다. 우리 당의 소중한 인재들한테 죽는 길을 가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너무나도 엄중한 상황이다. 지도부의 현명한 결단을 촉구한다.
 
* 글쓴이는 민주통합당 인터넷소통위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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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4/03/19 [20:3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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