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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에서 떨어져도 더 하겠다는 속셈
[김영호 칼럼] 중앙선관위 ‘석패율’ 도입은 정당 뒤치다꺼리용에 불과
 
김영호   기사입력  2011/04/05 [04:50]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름도 생소한 석패율이란 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했다가 근소한 표차이로 아깝게 낙선하면 비례대표로 구제하는 제도라고 한다. 명분은 지역주의 완화이다. 한나라당이 호남에, 민주당이 영남에 공천한 인사가 낙선하더라도 비례대표로 당선시켜주면 주역주의가 완화된다고 한다. 영남당인 한나라당이, 호남당인 민주당이 전국정당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명분은 그럴듯하게 포장했지만 그것을 뜯어보면 속셈은 따로 있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판세가 불안하게 돌아가니까 집권당의 중진을 살리겠다는 소리 이외에 달리 해석하기 어렵다.

과거의 총선을 뒤돌아보면 19대 총선 결과가 보인다. 17대 총선은 정치판에 충격적인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총선 전에 의석 46석에 불과하던 급조정당 열린우리당이 3배가 넘는 152석을 확보해 거대여당으로 탄생했다. 원외정당 민주노동당이 10석을 얻어 처음으로 의회에 진출했다. 반면에 137석이던 원내 제1당 한나라당은 16석이 줄어 121석을 얻는데 그쳤다. 61석의 제2당 민주당이 9석의 군소정당으로 전락했고 17석의 자민련은 4석으로 줄어 몰락했다. 신진세력의 탄생과 중진의 대거탈락이라는 이변의 속출이었다. 열린우리당의 탄핵심판론이 폭발력을 발휘한 결과이다. 지역주의에 편승한 한나라당의 거대여당 견제론도 탄력을 받았다.

18대 총선 결과도 충격적 돌풍이었다. 46.0%라는 역대 최저의 투표율은 심각한 정치혐오증을 드러내며 일반의 예상을 뒤집었다. 노무현의 집권당인 열린우리당과 김대중의 집권당인 민주당의 통합당인 통합민주당은 초라하게도 27.1%인 81석 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권의 국정운영에 참여했던 중진들이 대거 낙선했다. 집권 10년의 성적표가 개헌 저지선마저 무너진 참패였다. 반면에 한나라당이 전체 의석의 51.2%인 153석을 차지해 제1당이 됐다. 한나라당 계열인 친박연대와 자유선진당의 약진에 따라 200석이 넘는 거대여권의 출현했던 것이다. 정권 심판론이 주효했다.

19대 총선 결과도 눈에 선하다. MB가 경제대통령을 자임하고 나섰는데 재벌기업들은 돈이 남아돈다지만 서민들은 먹고 살기가 너무 고통스럽다. 그런데 이명박 정권은 물가앙등, 전세대란, 청년실업은 아랑곳하지 않고 국민적 이해가 상충하는 사안에만 몰두하고 있다. 4대강 사업, 미국산 쇠고기 무차별 수입, 방송장악, 세종시 수정, 대북강경책, 노동-시민단체 탄압 등등이 그것이다. 그나마도 국민의사를 무시하고 밀어붙여 국민적 저항을 불러일으키면서 말이다. 한나라당은 국회에서 날치기를 일삼으면서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권위를 스스로 추락시키고 있다. 청와대 눈치를 살피느라 정권의 시녀 노릇하면서도 부끄럼을 모른다.

민심이반을 알아챘는지 한나라당이 다급한 모습이다. 지난 2월 20일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최고위원 만찬회에서 ‘석패율을 위하여’란 건배사가 나왔다고 한다. 뒤이어 이재오 특임장관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여야가 전국정당이 되려면 석패율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안상수 한나라당 대표가 맞장구쳤다. 호남출신 정운천 최고위원은 전북대에서 관련 토론회를 열어 군불을 땠다. 그런데 이상하다. 막상 석패율제를 들고 나온 것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다. 선관위가 공정한 선거관리를 맡은 헌법기관이란 사실을 모를 리 없는데 말이다. 헌법기관의 정치적 중립성-독립성을 저버리고 집권당의 하수인을 자임한 꼴이다. 그것도 기업-단체의 정치헌금을 허용하여 금권정치의 부활을 획책하면서 말이다. 한나라당은 국민이 그 속셈을 알아챌까 뒷전에 앉은 꼴이다.

한나라당이 호남에서, 민주당이 영남에서 비례대표로 몇 석 얻는다고 해서 지역주의가 완화된다고 믿으면 환상이다. 한나라당의 숨긴 칼은 호남이 아니라 바로 수도권이다. 수도권 중진들이 불안하니까 지역구에서 떨어져도 비례대표로 더 해먹겠다는 속임수일 뿐이다. 비례대표의 근본취지는 분야별 전문성을 살리고 소외계층의 의회진출을 도와 국정운영에 다양한 이익을 대변하자는 것이다. 국민의 심판을 통해 낙선한 퇴물 중진을 구제하자는 것이 아니다. 석패율제는 국민의 정치적 선택권을 침해하고 국민의 대표성을 왜곡하는 심각한 문제점을 지녔다. 또 중진의 기득권을 보장해줌으로써 신참진입을 가로막아 정치발전을 저해한다.

민주당도 보험 드는 느낌이니까 무반응인 모양인데 적극적으로 반대해야 한다. 그 당근에는 독이 들어 있다. 자칫 잘못 먹었다가는 국민적 심판을 가로막아 역풍을 부른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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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1/04/05 [04:5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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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자 2011/04/05 [10:16] 수정 | 삭제
  • 역시 김영호 선생님의 좋은 글이네요.

    국민들이 놓치거나 오인하기 쉬운 문제를 깊이 있게 진단해주시어 사회를 계몽시켜주시네요.

    선생님의 정론에 늘 박수를 보냅니다.

    건강하시고 좋은 글 많이 당부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