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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소기업 상생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인가?
[대·중소기업 상생 시리즈①]
 
박종환   기사입력  2010/08/05 [01:48]
이명박 대통령의 '대기업 때리기' 발언으로 촉발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상생 문제가 올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다. 반발하던 대기업들도 결국은 태도를 바꿔 중소기업과 상생을 모색하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불만의 목소리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CBS는 대·중소기업 상생의 걸림돌은 과연 무엇인지 짚어 보고, 그 해법은 무엇인지 다섯 차례에 걸쳐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 주]

[대·중소기업 상생 시리즈]
①대·중소기업 상생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인가?
②'친기업' MB정부에서 대기업은 과실만 따먹어
③불공정 하도급에 망해가는 중소건설업체
④중소기업, '글로벌' 시장에서 길을 찾다
⑤대·중소기업 상생, 해법은 무엇인가?

집권 후반기를 맞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대기업 압박 수위가 가히 전방위적이다. 청와대와 총리실,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공정거래위원회, 국세청은 물론 사정기관인 검찰까지 가세하는 모양새다. 대기업들이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리고 있지만 그들만의 잔치로 끝나고, 중소기업에는 그 과실(果實)이 돌아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 현 정부의 판단이다.

올 상반기 삼성전자가 9조4,200원, 현대차가 1조5,660억원에 이르는 엄청난 영업이익을 냈지만 중소기업들에게는 남의 나라 이야기로 들린다. 현대차의 영업이익률은 지난 2006년 5.6%, 2007년 5.5%, 2008년 4.5%, 2009년 7.0%였지만 비계열 51개 협력업체의 영업이익률은 각각 3.91%, 3.69%, 2.39%, 3.13%에 그쳤다. 물론 이런 가운데서도 현대모비스 등 계열 11개 협력업체의 영업이익률은 7.08%, 6.69%, 8.23%, 9.72%를 기록하는 등 계열사는 확실히 챙겼다.

이처럼 '부(富)의 대기업 쏠림 현상'이 발생하는 이면에는 이른바 갑을(甲乙) 관계 속에서 수십년간 이어져온 그릇된 관행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중소기업 상생의 걸림돌로는 ▲대기업들의 일방적인 납품단가 후려치기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기술 무단 도용 및 인력 빼가기 ▲어음 결제 관행 및 대금결제 지연, ▲구두발주와 납품거절 및 취소 등이 지목되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이 중에서도 가장 심각한 부분은 대기업들이 납품단가를 일방적으로 깎아 내리는 횡포라고 입을 모은다. 최근 펄프 가격 급등으로 울상인 골판지 업계는 오히려 납품단가 인하라는 더욱 거센 압력에 시달리고 있다.

 
A사는 그 동안 B사에 직접 골판지를 납품해왔으나 지난해 4월부터는 소모성 자재 납품업체인 MRO를 통해 B사에 납품을 하고 있다. A사는 MRO의 등장으로 이전보다 10% 정도 하락한 가격에 울며겨자먹기로 골판지를 납품하고 있다. 그나마 이 거래라도 유지하지 않으면, 대기업 납품 길은 막혀 버리기 때문이다.

물품을 납품받는 대기업들이 원가 인상분을 단가에 제대로 반영해주기보다 오히려 중간에 MRO를 두어, 골판지 업체들을 사실상의 '재하청 업체'로 전락시켰기 때문이다. MRO는 대기업 계열의 서브원과 아이마켓코리아, 현대HNS, KT커머스 등이 있다.

한국골판지포장공업협동조합이 최근 공정거래위원회에 불공정 거래행위 위반 조사를 의뢰한 것은 이 때문으로, 협동조합 김진무 전무이사는 "중소제조 업체 입장에서 직접 판매할 대상이 없어지고, 결국 MRO를 상대로 영업해야 하기 때문에 향후 2,3년 후에는 50% 정도의 시장이 잠식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지난달 277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거래 대기업이 원자재 가격 상승분만큼 부품의 납품단가를 올려준다'고 답한 중소기업은 3.9%에 그친 반면 '원자재 가격 상승분의 일부만 반영된다'는 답은 47.1%, '전혀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답이 44.2%에 달했다.

적절한 납품단가 유지는 협력업체 존립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이자 기술개발과 품질향상을 통한 경쟁력 제고의 원동력이다. 따라서 대기업의 납품단가 인하 횡포는 직접적으로는 중소납품업체들의 생사를 뿌리째 뒤흔드는 사안이다. 중소납품업체의 경영난은 궁극적으로 대기업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만드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

대기업이 계약서가 아닌 구두로 물품을 발주했다가 일방적으로 납품을 거절하거나 취소 또는 축소하는 문제도 중소업체들을 괴롭혀 온 요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대기업의 중소기업 기술 빼가기도 개선돼야 할 과제 중 하나다. 중소기업청 산하 중소기업기술정보진흥원 '기술보호 상담센터' 김문선 차장은 "지난해 8월 센터 개소 이후 30여건의 기술유출 상담이 들어왔고 이 중 30%인 10건 정도는 대기업과 관련된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전경련 홍성일 산업정책팀장은 "기술 빼가기는 글로벌 대기업에는 없고, 일부 중견기업에는 있다고 보지만,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며 "글로벌 기업들은 오히려 기술지원을 통한 상생협력 사례가 늘고 있다"고 반박했다.

정부는 대기업들의 어음결제 관행에 대해서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경기가 좋아지면서 대기업들이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 몇십조씩 된다"며 "이런 현금성 자산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에 대해 현금이 아닌 어음으로 결제하고, 일주일이면 될 것을 한 달짜리로 준다"고 비판했다.

대기업들은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과거의 이야기일 뿐이라며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전경련 중소기업협력센터가 지난해 8월 말에 삼성, 현대차, SK 등 10대 그룹의 대표 기업을 대상으로 현금성 결제비율을 조사한 결과 97.7%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30대 그룹으로 범위를 넓혀도 86.1% 수준이었다. 전경련 관계자는 "일부 업종에서 어음 결제가 이뤄지고 있지만, 이를 일반화시키는 것은 무리"라며 "대기업들도 나름대로 개선 노력을 하고 있으며, 어음결제를 문제삼는 것은 너무 옛날 얘기"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1,2차 협력업체간, 2,3차 협력업체간에는 대금결제시 어음결제 방식이 여전한 것이 사실이다. 산업연구원 이항구 기계산업팀장은 "1차 협력업체인 대기업들과 2차 협력업체들 사이에는 아직도 2개월, 4개월 짜리 어음을 끊어주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건설업계에서는 비교적 규모가 큰 업체의 경우도 수개월짜리 어음을 발행해주고 있는 게 현실이다. 실제 아파트 건설공사를 하청받은 한 중소건설업체는 올 초에 문을 닫았다. 중견 건설업체가 아파트 건설 공사대금을 장기어음으로 끊어주는 바람에 유동성 부족으로 임금을 체불할 수 밖에 없었고, 결국 공사가 중단됐기 때문이다.

최근 대기업들은 각종 대·중소기업 상생 방안을 잇따라 쏟아내고 있지만, 자발적이라기 보다는 정부의 압박에 못이겨 내놓은 임시방편적 성격이 강하다. 정부가 기업활동에 대해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도 문제다.

그러나 작금의 문제는 대기업들이 그동안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외면해온 책임이 가장 무겁다. 중소기업 없는 대기업은 없다.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어려운 상황을 더 이상 외면한다면 글로벌 기업으로서의 위상 하락은 물론 쇠락의 길을 걷게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 절실한 때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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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0/08/05 [01:4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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