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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좋아지고 있으니 너무 걱정 마세요"
이희호 여사 국민들께 '안심' 당부..본인은 DJ 간호·귀빈 접견 강행군
 
김영국   기사입력  2009/08/13 [21:39]
임종인 전의원 "우리 국민이 의지할 분 필요, 더 살아 계셔야"
  
"걱정하지 마세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휘호 여사가 12일 세브란스 병원 20층 접견실에서 문병차 찾아온 임종인 전 의원에게 DJ의 병세가 호전되고 있다며 국민들께 감사의 말을 전하고 있다.    ⓒ 김영국

한 달째 병마와 사투 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 그의 곁을 지키고 있는 평생 반려자 이희호 여사는 의외로 담담했다. 오히려 "나는 걱정하지 말라."며 국민들을 안심시키는 데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었다.

이희호 여사는 12일 문병차 신촌 연세대 세브란스 병원을 찾아온 임종인, 국창근 전 국회의원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DJ의 병세가 호전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었다.

이 여사는 "저는 걱정하지 마시고, 대통령님도 여러분들의 염려 덕분에 많이 좋아지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라며 문병객과 국민들을 안심시켰다.

임종인 전 의원은 "대통령님께서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해 빨리 쾌유하시고, 더 오래 사셔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더 많은 기여를 해주셨으면 한다."며 "많은 국민들이 지금 의지할 분이 없다. 대통령님이 살아 계시는 게 너무나 중요하다."고 화답하며 쾌유를 기원했다.

그러면서 "여사님도 건강을 살피셔야 되겠습니다. 여사님이 건강하셔야 대통령님을 돌보시고 할 수 있을 것 아닙니까."라며 수척해진 이 여사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한편 접견실에 모여 있던 권노갑, 한광옥, 김옥두, 윤철상, 최재승 전 의원 등 동교동계 인사들은 이날 DJ의 병세가 호전되고 있다는 소식에 고무된듯, DJ와 정치 역정을 함께 했던 시절 재미났던 일화들을 소재로 담소를 나누며 잠시나마 DJ 병환에 대한 시름을 달래기도 했다.

세브란스 병원 측은 13일 김 전 대통령이 지난 일요일 한차례 고비를 맞은 뒤 약물치료에 의존하고 있지만, 최근 며칠간 건강 수치 등이 안정적인 범위에 있다고 밝혔다.

오늘 'DJ 생환' 36주년, 도쿄 피랍 구명운동 '한통련' 떠올라

13일인 오늘은 1973년 '도교 납치 사건'에서 김 전 대통령이 기적적으로 구출돼 생환한 지 꼭 36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 때문에 36년 전 그날처럼 다시 한번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원하는 이들도 많았다. 어제와 오늘 김 전 대통령 가족과 동교동계 인사들은 'DJ 생환 36주년 기념 미사'를 올리고 쾌유를 기원했다.

어제 세브란스 병원을 찾은 임종인 전 의원도 DJ 생환과 관련해 남다른 인연이 있다.

임 전 의원은 지난 2003년 <해외민주인사 명예회복과 귀국보장 범국민 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을 맡으며, 공안당국이 반국가단체나 이적행위라는 굴레를 씌워 고국 방문을 불허하고 있던 '한통련' 인사들의 고국 방문을 성사시켜 DJ와 역사적인 만남을 갖게 한 주역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동교동계 인사들과 김대중 정부 시절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냈던 장성민 전 의원은 문병 온 임종인 전 의원 일행을 따뜻하게 맞이하며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  
  
'옛 동지들과 역사적인 해후'  2003년 9월 20일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동교동 자택에서 고국을 방문한 한통련 대표들과 역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한통련은 73년 김대중 씨의 도쿄 납치 사건 때 DJ 구명운동에 앞장섰던 재일 민주인사들의 단체다. 맨 오른쪽에는 이날 만남을 주도적으로 성사시킨 임종인 전 의원(당시 해외민주인사 귀국추진위 집행위원장)  
ⓒ 김치관 기자/통일뉴스

1989년에 결성된 '한통련(재일 한국민주통일연합)'은 그 전신인 한민통(한국민주회복통일촉진국민회의,73년 결성) 때부터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인연이 매우 깊다.

특히 73년 8월 8일 당시 김대중 전 대통령이 도쿄의 그랜드팰리스 호텔에서 한국중앙정보부(KCIA)에 의해 납치되었을 때 한민통 결성에 합류한 재일 민주세력은 곧바로 그랜드팰리스 호텔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KCIA의 범행임을 밝히는 성명을 발표했다.

김대중씨가 극적으로 풀려난 이후에도 한통련은 박정희 정권이 김대중씨를 말살하려거나 정치적 자유를 박탈하려 할 때마다 단식농성이나 서명운동 등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면서 일본과 국제 여론을 환기하고 구원운동을 펼쳤다.

한민통이 김대중씨 구명운동을 비롯해 한국의 유신독재를 국제적으로 알려내자 결국 박정희 정권은 78년 재일교포유학생사건을 조작해 한민통을 반국가단체로 낙인 찍었고, 이후 한통련 간부들은 고국 땅에 발을 디딜 수조차 없었다.

한통련의 초대 의장이기도 한 김 전 대통령은 이로 인해 '반국가단체 수괴'의 혐의로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지만, 87년 사면 복권된 바 있다.  

이후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이 대통령이 되었음에도 보수세력의 색깔론 공세를 우려해 그의 임기 동안 한통련 문제를 풀지 못했다. 그 때문에 한통련에 대해 늘 마음의 짐을 안고 있었다.  

"반독재 민주화 투쟁이 왜 반성할 일이냐"

그러나 노무현 정권이 들어서자 최병모 민변 회장, 임종인 전 의원 등은 "해외 민주인사들이 군사정권에 맞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을 한 것이 왜 반성할 일이냐."며 해외 민주인사의 고국방문을 적극 추진했다.

국내 보수세력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면서도 이들은 노무현 정부를 설득하고 일본을 오가는 각고의 노력 끝에 지난 2003년 9월 19일 한통련 양동민 부의장, 곽수호 부의장 등 해외 민주인사 33명의 '한가위 고국방문' 성사시켰다.

이로써 DJ는 다음날인 9월 20일 동교동 자택에서 자신의 구명운동에 앞장섰던 한통련 동지들을 초대해 30년 만에 역사적인 해후를 했다. DJ의 생환이 기적이었듯이 반국가단체로 낙인 찍힌 한통련 인사들의 고국방문도 기적 같은 일이었다.

당시 DJ도 자택을 찾은 옛 동지들에게 "올 수가 없었는데 이렇게라도 온 걸 환영한다."며 깊은 감회에 젖었다. 그러면서 "개인적으로 납치사건과 투옥, 사형언도 때 여러분이 정말 성심성의껏 노력한 것을 잘 알고 진심으로 감사한다."고 말해 민주화 쟁취 과정에서 해외 민주인사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임 전 의원 등의 지속적인 노력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은 1년 뒤인 2004년 10월 14일 한통련 곽동의(74) 전 의장도 만날 수 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동교동 김대중 도서관을 방문한 곽 전 의장을 반갑게 맞은 뒤 "군부독재는 나를 한민통 의장으로 반국가단체의 괴수라며 사형을 선고했지만, 이번에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나서 한통련의 누명도 벗겨졌다."고 소회를 피력했다.

그러나 다시 2009년 여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사를 넘나드는 사투를 벌이고 있지만, 옛 동지들은 타국에서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DJ 생환 36주년에 가려진 '불편한 현실'이 아닐 수 없다.

DJ의 마지막 투혼, 노무현 서거와 또 다른 '화해 메시지'

지난 10일 DJ의 병세가 위중하다는 소식에 영원한 맞수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문병과 함께 뜻밖의 화해 선언을 했다. 그리고 이어진 이명박 대통령의 병문안이 기폭제가 되면서 12일에도 국내외 거물들의 문병이 물밀듯이 계속됐다. DJ의 쾌유를 기원하는 문병 행렬엔 여·야, 보수와 진보가 따로 없었다.

이날 여권에선 오세훈 서울시장, 현 정권의 실제인 이재오 전 의원 등이 다녀갔고, 야권에서도 정동영, 추미애 의원, 한명숙 전 총리, 유시민 전 의원 등이 문병차 찾아와 DJ의 쾌유를 기원했다. 오후에는 방한 중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병문안을 했다.

전날엔 진보신당의 노회찬 대표와 심상정 전 의원이 다녀갔다. 두 사람은 "늘 역경을 이겨낸 강인한 분이시기에 곧 쾌차하실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면서 "이 나라 민주주의와 남북관계를 위해 여전히 하실 일이 많은 분"이라며 빠른 쾌유를 기원했다.

밀려드는 거물 정치인들의 문병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방송사와 신문사 기자들은 병원 입구에 장사진을 치며 쉴새없이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이번엔 누가 오나"  DJ 병문안을 위해 거물 정치인들이 속속 세브란스 병원으로 몰려오자 방송사와 신문사 기자들이 입구에서 장사진을 치고 있다.    ⓒ 김영국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급작스럽고 안타까운 죽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민주화 투쟁의 상징적 인물인 DJ의 생사를 넘나드는 투병 소식은 야권에겐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노무현 서거가 이명박 정권에 대한 원망과 분노가 지배적 정서였다면, DJ 병실에서 피어나는 '문병 정치'는 구원(舊怨)의 족쇄를 푸는 화해의 메시지가 강하게 풍기고 있다. 김 전 대통령 가족과 측근 그룹인 동교동계도 정치적 친소나 적대 관계를 떠나 찾아 오는 문병객들을 정성으로 맞이하고 있다.

물론 화해의 손길을 내민 정적들의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도 남아 있고, 실제 정치권의 담벼락을 넘머 국민적 화해 모드로 진화할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그러나 DJ는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시킨 주역답게 그가 마지막에 남기고 갈 정치적 유산이 '대국민 화합'에 방점이 찍힐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한 시대의 성격을 규정할 정도로 커다란 족적을 남긴 '정치 거목'들의 인간적인 악연으로 얽힌 지역감정의 편린들을 DJ가 마지막 불꽃을 태우며 뿜어내는 화해의 기운으로 말끔히 치유되길 바라는 국민도 적지 않을 것이다.

대신 그 자리를 서민들의 삶의 질을 어떻게 개선시킬 것인가 하는 비전과 대안을 놓고 치열하게 경쟁하는 새로운 기풍이 들어서면서 우리 정치가 한 차원 높아지길 기대하는 건 성급한 바람일까.

그 어느 해와 비교할 수 없는 안타까움과 우울함이 지배하고 있는 2009년. 우리 정치도 이제는 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대자보> 편집위원. 항상 이 나라 개혁과 진보적 사회발전에 기여하는 쪽에 서 있고자 하는 평범한 생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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