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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노조간부 부인 자살, "모두가 내 탓" 오열
생전에 "억울한 사람들 편에서 도와주라 한 착한 사람"
 
박슬기   기사입력  2009/07/20 [20:09]
"모두 내 탓이다. 내가 도망 나왔으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두 달여간 계속돼온 쌍용차 사태로 금쪽같은 부인을 잃은 쌍용차 노조 간부 이 모(34) 씨가 회한의 눈물을 흘렸다.
 
이 씨는 이날 오후 12시19분쯤 장모인 조 모(53) 씨로부터 부인 박 모(29) 씨가 안성시 공도읍 진사리 자택 화장실에서 넥타이로 목을 맸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었다.
 
그 시각 쌍용차에 대한 법원 집행관들의 강제집행 절차를 막으려 쌍용차 평택공장에서 결사항전 중이던 이 씨는 모든 것을 제쳐놓고 급히 병원으로 가기 위해 쌍용차 정문으로 향했다.
 
하지만 정문을 가로막고 서 있던 경찰들에 의해 통행이 막혔고, 노조원들은 "사형수라도 가족이 죽었다고 하면 보내줘야 한다"고 반발한 끝에 이 씨는 공장을 나와 경기도 평택시 굿모닝병원으로 향했다.
 
이 씨가 12시45분쯤 굿모닝병원에 도착했을 당시 박 씨는 응급실에서 심폐소생술 중이었다. 다행히 숨이 아직 붙어있다는 병원 측의 말에 한가닥 희망을 가져봤지만 이내 희망은 절망으로 바뀌었다.
 
40여 분에 걸친 심폐소생술에도 박 씨는 맥박이 잡히지 않아 끝내 숨지고 말았다. 사망이 공식 확인되자 이 씨는 "불쌍해서 어떡하냐. 오빠가 미안해"라며 오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장례식장 3호분향실에 장모인 조 씨와 함꼐 힘없이 앉아있던 이 씨는 "모두 내 탓이다. 어제 경찰의 공권력 소식을 접하고 무서워서라도 도망 나왔으면 오늘 일 같은 일은 없었을텐데…"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이어 그는 "쌍용차 사태가 발생한 이후 통화할 때마다 힘내라고, 억울한 사람들 편에 서서 도와주라고 했던 착한 사람이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또 그는 "솔직히 나도 사람이고, 말이야 결사항쟁이지 경찰이 들어와 다 붙잡아간다는데 왜 안 무섭겠냐… 도장공장 안에 있는 사람들 모두 많이 무서워한다"고 전했다.
 
쌍용차 노조에 따르면 이 씨는 쌍용차 사 측이 발표한 976명의 해고 노동자 명단에도 없는 비해고 노동자였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11월 노조 간부로 선출된 후 한 달 뒤 쌍용차 사태로 터지자 '함께 살자'는 구호에 맞춰 자신의 역할을 다하겠다며 도장공장 안으로 진입, 61일째 해고 노동자들과 함께 농성을 벌이던 중이었다.
 

한편 쌍용차 노조 조건준 정책국장은 장례식장에서 브리핑을 열고 "박 씨가 지난 2월 친아버지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사망하고, 4월엔 시아버지가 돌아가시는 등 연달아 힘든 일을 겪은 상태에서 쌍용차 사태까지 겹쳐 4~6월에 우울증 치료를 받았다"고 밝혔다.
 
그는 "치료 후 상태가 호전되고 있는 상태에서 지난 17일쯤 박 씨가 쌍용차 사 측 직원의 가족으로부터 '계속 공장을 점거하면 이 씨가 감옥에 가고 사 측으로부터 손해배상 청구를 당해 재산을 모두 빼앗길 것'이라는 얘기를 듣고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후 스트레스가 다시 심해졌다"고 덧붙였다.
 
앞서 박 씨는 이날 오전 11시쯤 조 씨가 병원에 가기 위해 집을 비운 사이 낮 12시쯤 자택 화장실에서 목을 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조 국장은 "쌍용차 사태가 발발한 뒤 법원으로부터 집으로 소환장이 계속 들어오고, 회사로부터 수십억 원대의 손해배상 청구를 당하는 등 심리적 압박을 받아오다 오늘 경찰의 공권력 투입 임박 소식이 전해지자 극심한 스트레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경찰은 "사건 현장에서 우울증 치료제가 발견됐다"면서 "8개월 전 둘째 아들을 출산한 뒤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고 남편이 장기간 집을 비우면서 증세가 심해져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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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9/07/20 [20:0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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