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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피라미드’ 사회, 한국에 희망은 없다
[비나리의 초록공명] 전형적인 한국병에 대한 새로운 진단과 처방 절실
 
우석훈   기사입력  2007/03/08 [11:43]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경제활동 단위를 포함한 여러가지 시스템들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형상을 만들게 된다. 가장 유명했던 것으로는 한 단위 상급으로 올라갈 때마다 정보처리가 이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의사결정이 이루어진 일본식 기업 즉 J-Firm가 모든 유닛이 중앙과 직결되어 있는 환원형 구조인 미국식 기업 즉 A-Fim에 관한 얘기들이 90년대 초반을 풍미하던 시절이 있었다. 모리시마라는 일본의 거시경제학자가 유행시켰던 말로 그 시절에 왜 미국 기업들이 일본 기업들을 이길 수가 없었는가를 설명할 때, 거짓말 약간 보태서 성경교리만큼 자주 인용되던 말이다.
 
피라미드형 시스템은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다 있는데, 상황에 따라서 어느 쪽이 좋다고 일방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포디즘 시절에 미국식 환원형 구조와 정보의 결절점에 해당하는 CEO 모델이 잘 돌아갔는데, 탈 포드주의 시절에는 일본식 기업구조가 더 잘 맞았다... 그래서 이런 시스템에 기반해서 일본이 탈 포드주의 모델 중 가장 먼저 토요타주의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보통 이런 식으로 해석을 한다.
 
우리나라는 90년대 후반부터 대부분의 조직이 호리병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위와 아래는 아주 좁고 배가 잔뜩 나온, 비만형 조직이 대부분의 경제조직의 모습들이다.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허리가 튼튼하다고 하기도 하는데, 사실 별로 좋은 조직은 아니다. 이걸 요즘 유행하는 용어대로 하면,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조직의 고령화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당시에 내가 데이타를 가지고 검토한 바에 의하면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현대중공업, 하여간 이런 대부분의 중후장대형인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조직들이 이런 호리병 모양을 하고 있었다. 젊은 노동자들이 잘 들어오지 않고 - 혹은 받아들이지 않았거나 - 40대가 엄청나게 늘어나 있는 상황이 대충 우리나라 조직들의 모습이다.
 
이걸 어떻게 무게중심을 밑으로 끌어내릴 것인가에 대해서 상당히 고민을 한 적이 있었는데, IMF 경제위기를 맞으면서 장기적으로 ‘날씬한’ 모습을 갖는 것과 같은 고급스러운 몸매에 대한 고민을 할 수가 없어졌고, 그냥 그 상태로라도 망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나라 경제조직들이 그야말로 죽을 똥을 싸면서 10년 동안 이렇게 저렇게 버텨온 셈이다. 그렇다고 몸매 관리를 위해서 조직이 다이어트 한다고 하면, 그야말로 수 만명 노동자들의 가족마다 곡소리 나게 된다.
 
이런 문제들이 첩첩이 쌓이다보면, 전체적으로 지금의 20대들에게 별 기회가 없는, 이 황당한 구조가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도 있다. 경제학적으로 아주 무감각하게 표현한다면, 포디즘에 최적화된 경제 조직시스템에서 탈 포디즘으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제대로 적응하지 못한 문제가 그대로 지금의 20대 어깨에 떨어진 셈이라고 말할 수 있다. 말은 편하게 하지만, 듣는 20대 황당할 노릇일 거다.
 
조직도와 상관없이 어떤 일이 진행되면 순식간에 역 피라미드 구조가 생겨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게 제일 더러운 경우이다.
 
우리나라 남자들은 기본적으로 이 역피라미드 구조를 즐기는 혈통들을 타고 태어난 사람들이다. 엄마가 밥 해주고, 나머지는 전부 앉아서 밥 먹는 상황, 이런 것이 대표적인 역 피라미드 구조이다. 명절날 때마다 죽겠다고 여성들의 곡소리가 집집 마다 들리는 것은 기본 구조와 상관없이 순식간에 역 피라미드 구조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기자가 한 명 있다고 하자. 진짜로 취재하고 기사를 만드는 것은 그야말로 20대 신참 노트북 한 명인데, 뒤에서 빨간펜들고 있는 데스크탑은 켜켜이 있을 때 순간적으로 역 피라미드형 구조가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지금 정부 형국이 딱 그렇다. 대통령인 노무현은 시스템상 완전 왕따인 셈이고, 진짜로 문제를 풀기 위해서 고민하는 사람은 상당히 드물고 나머지는 그 위에서 빨간펜 들고 ‘조종’하겠다고 설치면서 보고하는 것만 하는 상황이 현 상황인 것 같다.
 
시민단체에도 지금은 완전 역피라미드 구조로 되어있다. 실무활동가는 거의 한 명이고, 그 위로 운영위원회나 집행위원회 그리고 대표단까지 켜켜이 단단히 데스크탑 노릇한다.
 
이래서는 역 피라미드형 맨 하단부에 있는 실무자 입이 삐죽 나올 수 밖에 없는데, 그 상황에서 “너네는 비정규직이야” 혹은 “너네는 암만 올라와도 데스크탑까지 못 올라와.” 딱 이 형국이다. 나 같아도 이 상황이면 “더럽고 치사해서 안한다”하고 입 대빨 내밀고 사직서 팍 던지겠다.
 
문제는 사직서를 던져도 갈 데가 없으니... 이게 데스크탑 나라에 노예로 팔려온 노트북들도 아니고, 도대체 뭐냐.
 
내가 요 최근에 접해본 몇 개의 경제조직들이 대부분 다 이렇게 구성되어 있다. 실무자들한테 기분이 어떻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죽을 노릇이다”는 말을 한다.
 
이런 구조에서는 원칙적으로 방법이 없고, 한 번 죽 밀어내는 수밖에 없는데, 그게 현재 구조로서는 불가능하다. 복지나 그런 안전망 같은 장치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한 번 밀어내면 사방에서 곡소리 나는 수밖에 없는데, 그런 충격을 받아내기가 어렵다.
 
우리나라 조직 중에서 이 문제를 제일 잘 푼 조직은... 조폭들이다. 덩치가 커지면 검사들이 알아서 치워주니까, 대형 조폭들은 여전히 날씬하고 정상적인 피라밋 구조를 유지하고, 허리가 너무 커지거나 머리가 너무 커지는 일들이 벌어지지 않는다.
 
이 상황에서 조폭들의 효율성을 따라갈 수 있는 조직은, 우리나라에는 없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바다이야기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아니 IT 업체들 뺨치게 신규 프로그램을 만들어내고, 2~3주 만에 대응할 수 있는 다른 사업 방식을 찾아내는 조직을 정부 조직이나 기업조직이 어떻게 당해낸단 말인가...
 
이런 시스템에서는 조폭들과 조폭문화 찬란하게 움직이는, 예를 들면 모피아 같은 사람들이 게임에서 무조건 승리하게 되어있는 셈이다. 게다가 요즘은 외교부 직원들까지 통상라인이니 뭐니 하면서... 이들도 승리한다.
 
예전에 영국병이라고 하더니, 이런 구조를 보면 전형적인 한국병에 대한 새로운 진단과 처방 같은 것이 별도의 학문으로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든다.
 
한 번 세어보시라. 자기 위에 빨간펜 들거나 사인 해주겠다고 버티고 있는 사람이 몇 사람이 있는지...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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