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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성만 강조하는 노동농민단체의 완고함
[정문순 칼럼] 집회장의 어수선한 풍경 비판, 쓴소리에도 귀 기울여야
 
정문순   기사입력  2006/12/03 [13:49]
집회와 음주
 
같은 사물을 대하더라도 사람에 따라 다르게 보일 때 어떻게 판단하느냐 하는 것은 쉽지 않은 문제다. 지난주에 전국적으로 벌어진 한·미 FTA 반대 집회가 있던 날은 1996년 이후 10년 만에 최대의 집회 인원이 모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니, 주최 측과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성공적인 대회를 치렀다고 만족할지 모른다.
 
이런 판단에는 그 행사가 좋은 기억으로만 남아 있지 못하는 소수의 참가자 목소리는 반영되어 있지 않다.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인파에 가려 눈에 띄지 않거나 언론사 카메라가 잡히지 않는 곳에는 종종 색다른 풍경이 일어나기도 하나 보다. 이날 창원시청 앞에서 집회 시작을 위해 자리 정돈을 부탁하는 연단의 진행자 목소리에는 아랑곳없이, 내가 있던 후미 쪽에는 농민들이 모여 있는 곳이면 어김없이 소주잔이 돌고 있었다. 보따리에 안주로 싸온 과일도 등장하는 걸 보니 흡사 집회가 아닌 나들이에 나온 것 같은 풍경이 빚어졌다.
 
곳곳에 나뒹굴고 있는 빈 술병을 눈으로 더듬고 있을 무렵, 농민으로 보이는 중늙은이 하나가 내게 다가와 웃으며 뭐라고 말을 하더니 손으로 어깨와 허리께를 더듬고 지나간다. 사방에서 쉴 새 없이 피워대는 담배 연기 때문에 그러잖아도 아픈 머리가 갑자기 땅으로 꺼질 듯 아득해졌다. 내가 너무 과민할 탓일까. 그 노인네 딴에는 나이 어린 여자에 대한 호의를 그런 식으로 표현했을지 모르지만, 내 몸에 분명히 남아 있는 불쾌한 느낌은 쉬이 떨쳐낼 수가 없었다. 뜻밖의 장소에서 봉변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울고 싶을 만큼 기분이 엉망이 되었다.
 
여느 집회 장소에서 볼 수 없는 술이 나돌았으니 뒷말이 나오겠다 싶었는데, 예상은 맞아떨어져 다음날 그것을 지적한 기사가 <경남도민일보>에서 나왔다. 자신들의 집회나 시위를 비판적으로 보도한 언론에 대해 당사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주최 측의 하나인 민주노총과 전농 관계자들은 가감 없이 표현하자면 입에 거품을 물었다.
 
농민들이 들판에서 일할 때 노동의 힘겨움을 잊기 위해 술 한 잔 걸치는 것의 연장선상에서 헤아릴 수 있는 일을 기자가 턱없이 매도했다는 것이다. 평소 한·미 FTA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를 전파해왔고, 약자의 편에 섰던 이 신문은 졸지에 <조선일보>와 어깨를 겨루는 수준으로까지 비난을 받았다.
 
집회 현장이라고 하여 구태여 엄숙하고 경건할 필요까지는 없을 것이다. 노년층이 대부분인 농민들이 낯선 집회 장소에서 추위에 떠느라 술 생각이 났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자리에 음주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사람이라면 다르게 볼 여지도 있다는 것, 긴장감이 감도는 시위 현장에서 취기로 돌발적인 불상사가 나올 수도 있다는 점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판단이었다. 평소 민주노총을 위시한 사회운동단체의 태도로 보아 제 귀에 듣기 싫은 말을 배척하는 것을 뜻밖의 반응이라고 할 수는 없다. 농민들의 낮은 정치의식을 감싸기와 두둔으로 일관하는 것도 짐작했던 대로다.
 
만약 흡연구역이라도 만난 듯 집회 현장에서 비흡연자의 머리가 아프도록 담배를 피워대는 참가자들의 행위며, 생리 중인 여성 참가자의 몸 상태를 배려하지 않는 행군에 가까운 행진이 빈번히 벌어지는 시위의 문제를 지적한다면 이들은 또 어떻게 반응할까.
 
집회에서 술을 먹고 안 먹고는 별로 중요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볼 수 있는 사안을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데 인색해봐야 자신에게 득이 되지 않음을 모르는 게 문제다. 이런 일을 계기로 민주노총 등이 쓴 소리에 귀를 막은 완고한 집단이라는 생각이 더욱 굳어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듣기 싫은 소리라도 소수의 딴죽 걸기로 치부하기보다 자신들에게 보내는 사회적 관심이 그만큼 크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는 아량이 필요할 터인데 민주노총과 전농 등은 그런 여유를 갈수록 잃고 있는 듯하다. 자신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에만 치우치지 말고 입에 쓴 약도 기꺼이 수용하는 태도를 주문한다.  

[참고기사]

술취한 한미FTA 반대집회 참가자, 왜 이러나 
대규모 시위 현장서 일부 음주행위 공공연...어제 도민궐기대회 중 기자 물병 맞아 기절
 
대규모 집회에서 술은 빠질 수 없는 필수품인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술에 취한 것으로 보이는 집회참가자들이 던진 돌이나 물병에 취재중인 기자가 맞아 물의를 빚고 있다.
 
22일 '한미자유무역협정저지 경남도민총궐기대회'에서 취재 중이던 경남도민일보 사진기자가 집회 참가자가 던진 것으로 보이는 플라스틱 물병에 맞아 순간적으로 기절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날 오후 5시께 전경차 사이에서 사진을 찍고 있던 경남도민일보 사진부 박일호 기자 얼굴로 낚싯대가 날아들었다. 이에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해당 기자가 다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집회 주최측이 나눠준 '취재 표지'를 착용하도록 했다.
 
집회 행렬이 다시 자리를 잡은 3∼4분 뒤 '취재 표지'을 차고 있던 해당 기자에게 다시 물병이 날아왔다. 얼굴 정면으로 날아든 물병에 관자놀이를 맞은 박 기자는 안경이 깨짐과 동시에 그 자리에서 기절하며 쓰러졌다.

이를 본 기자들은 "주최측이 나눠준 '취재 표지'까지 차고 있는 기자에게 물병을 던지면 취재를 아예 하지 말라는 말이냐"며 주최측에 강력히 항의한 뒤 사진·카메라 기자를 제외한 기자들이 이후부터 사실상 취재 보이콧에 나섰다.
 
물병에 맞아 순간 기절한 박 기자는 119 구조대를 통해 병원에 옮겨졌으나 컴퓨터단층 촬영결과 별 이상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상황에 대해 주최측 단체 중 하나인 민주노총 경남본부 관계자들은 "술에 취한 농민들이 격분한 마음에 경찰의 사진채증으로 오인해 불상사가 일어난 것 같다. 대규모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쉽게 통제되지 않아 일어난 만큼 이해해달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장에 있던 기자들은 이 관계자의 발언과는 달리 민주노총 대오에서 물병이 날아들었다고 전하고 있다.
 
집회참가자들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긴 마찬가지였다. 물병을 맞는 장면을 봤다는 한 집회 참가자는 "그동안 언론이 한미FTA에 대해 그다지 많이 보도하지 않아 분노한 점은 솔직히 이해할 순 있다"면서 "하지만 주최측이 나눠준 '취재표지'를 착용한 기자에게조차 돌이나 물병을 던진 일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다른 참가자는 "이런 돌발행동은 집회 전 술을 마신 참가자들이 많이 저지르는데, 우리 주장을 더 많은 국민이나 도민들에게 전달하고 설득하기 위해서도 음주 행위는 이젠 사라져야 한다"고 말했다.
 
도내 대규모 집회 때 이처럼 취재기자들에게 돌이나 물병이 날아든 경우는 이번만이 아니다. 지난해 6월 20일 경남도청 앞 농민집회에서도 술에 취한 한 농민이 집회공간에서 다소 떨어진 곳에서 취재하던 경남신문 기자에게 돌을 던져 이를 맞은 기자가 급히 병원으로 옮겨지기도 했다. /  2006년 11월 23일 (목)  이시우 기자
 
"본질 흐리는 감정적 보도 사과하라" 
한미FTA저지 경남운동본부-민주노총, 경남도민일보 보도 비판
 
한미FTA저지 경남도민운동본부(상임공동본부장 이병하)가 경남도민일보 23일자 4면에 게재된 '술에 취한 집회 참가자 FTA 반대 공허한 외침'라는 제목의 기사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사과를 요구했다.
 
경남도민운동본부는 27일 공문을 통해 "지난 22일 귀사 기자가 취재도중 불미스런 사고를 당한 점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우발적인 안전사고였는데도 23일자 기사가 악의적이고 선정적인 문구로 한미FTA 저지 행사의 본질을 호도하였기에 선의의 참가자 전체를 대표하여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본부는 △본질을 왜곡한 제목의 악의적 선정성 △대중집회에서 흔히 발생하는 안전사고임에도 이를 이유로 집회의 본직을 폄훼한 내용 △농민들의 음주가 직접적인 원인이 아니었음에도 음주행사로 치부하고 자극적으로 몰아간 점 △우발적인 사고 발생 이후 공개사과와 함께 신속히 대처하였음에도 감정적으로 보도한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신문사의 사과를 요구했다.
 
이에 따라 경남도민운동본부는 "피해를 입은 기자에게는 충분한 사과와 함께 치료비 일체를 지급하겠지만, 정부와 보수언론의 분위기에 편승, 약자의 신문, 도민주주 신문임을 포기하는 듯한 취재와 보도행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 24일 민주노총 경남본부(본부장 이흥석)도 '경남도민일보는 농민·노동자의 절박한 절규가 술 주정으로 들리는가'라는 제목의 논평을 발표했다. 경남본부는 논평에서 "추운 날씨에 몸을 녹이기 위했던 한 모금의 술로 그들의 처절한 분노가 도매금으로 넘어가야 하는가? 뼈골이 쑤셔 들판에서 일을 하다가도 아픔을 잊기 위해 한 잔 술을 했다고 그 늙은 농민들의 고통과 절망, 분노가 보이지 않는가"라고 지적했다.
 
이어 "약자를 위한 신문, 도민주주 신문이라는 기대가 컸기 때문에 배신감도 크다"며 "총보다 강하다는 펜이 후빈 가슴은 쓰리기만 하다"고 밝혔다. 또한 "혹 경남도민일보 취재기자가 물병을 맞아 기절한 데 대한 보복성 기사라면 언론사로서 최소한의 양심조차 없는 보도이다. 그 사고는 분명 우발적 사고였다"면서 "이것을 핑계로 감정적인 기사를 쏟아낸다면 지면의 사유화다"고 지적했다.
 
또 "이런 비판은 아직도 경남도민일보에 대한 애정 어린 기대가 있기 때문"이라며 "경남도민일보는 '지방조선일보'라는 오명이 붙기 전에 뼈아픈 반성과 상처 입은 노동자·농민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 2006년 11월 27일 (월)  이시우 기자
* <대자보> 편집위원, 문학평론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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