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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했던 90년대, 장정일이 그리운 이유
[비나리의 초록공명] 천재시인(?) 장정일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에 붙여
 
우석훈   기사입력  2006/09/29 [17:18]
내가 최근 작가의 시로 좋아했던 시는 3개가 있다 (난 시를 요즘은 많이 읽지 않는다.)
 
제일 좋아했던 건 최승호의 "대설주의보"였고, 최영미의 "바이 더 웨이"라는 대목이 기억나는 별로 유명하지 않은 시 (시집을 잃어버려서 시 제목을 찾을 수가 없다...)
 
그리고 장정일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이었다. 이 중 최영미는 유학시절 파리에서 읽었기 때문에 내가 어렸을 때 좋아했던 시인은 최승호와 장정일이었던 셈이다.
 
최승호는... 이제 잊어버리고 싶다. 잊으려고 했더니 정말 "바퀴가 디젤 기관에서 떨어져나올 때 그것은 고깃덩어리일 뿐이다"... 그 많던 시 중에서 이 구절 딱 하나만 기억이 난다.
 
고백하건데... 장정일의 시를 꼼꼼히 읽지는 않았고, 오히려 그 시절 창비나 이런 곳에 틈틈히 실리던 단편소설을 더 좋아했고 "찡인"이라는 단어가 기억나는 소설이 나에게 대한 그 시절 장정일의 가장 큰 기억에 남던 시였다 (그렇게 많은 시들을 읽고 외웠는데 기억나는게 이렇게 밖에 없다니...)
 
장정일에게 가장 나쁜 기억은 "너희가 재즈를 아느냐"였다. "바람부는 날에는 압구정에 가자"였나? 유하, 그리고 그 시를 영화화한 김영하의 원작 뭐 그런 것들은 내게는 최악의 기억이었고, 장정일 역시 90년대, 그저그런 사기꾼들, 시대의 감성을 건드려 돈 벌겠다는 사람들 이상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 유하는 그런 존재다.
 
나의 90년대는 끔찍했다. 그 기억의 잔존을 건드리는 것들, 게다가 장사 속 이상은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들에 대해서 나도 나를 지키기 위해서, "근접하지 않을 것들"이라는 딱지를 붙여놓고 살았다.
 
주위에서 끊임없이 기형도를 일깨우며, 기형도가 얼마나 아름다운 글을 썼던가, 그 화려한 천재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너는 아는가... 이런 내 주위의 이상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면 삼국지를 번역하는 장정일, 그리고 TV에 나와서 꽃돌이 이상은 아닌 이해할 수 없는 바보같은 표정으로 스크립트를 읽던 그 장정일이 제대로 "대가리"를 달고 사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러나 장정일은, 그 찡인 장정일은, 나는 국졸이야라고 외쳐대던 장정일은, 가장 아름다운 문장을 남겼다고 하는 기형도가 "시인만 사는 이상한 동네인 대구"에서 만났던 "천재 시인"이었다...
 
요즘 장정일의 시를 다시 읽는다. 시인, 90년대에 얼마나 불편했을까...
 
염치지심... 염치와 점쟎음으로 마치 구한말의 지식인들을 보는 느낌이 든다. "이게 뭐야..."
 
나의 질문은 하나로 모아진다. 왜 장정일은 시를 쓰지 않는거야? 이내 답을 찾는다. 이 질문은 "시를 쓰지 않는거야가 아니라 왜 시집을 내지 못하는 거야"로 수정되어야 할 것 같다.
 
시대에 제일 먼저 불편해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시인인갑다. 햄버거가 퍼지던 시절이 불편했던 시인의 '꼰대정신'...
 
학자들은 무식해서 이렇게 못하고, 기자들은 돈이 되지 않아서 이렇게 말하지 못하고, 생활인은 마음은 있어도 감히 토설하지 못한다.
 
"존만한 씹새"라고 말하고 싶어도 시대의 지랄은 시인의 몫이다.
 
장정일이 요즘은 입 꼭 다물고 암 소리도 없다... KBS TV에서 꽃돌이하던 장정일이 아닌,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쓰던 장정일이 정말 그립다.
 
  햄버거에 대한 명상
- 가정요리서로 쓸 수 있게 만들어진 시

                                                                     장정일 

옛날에 나는 금이나 꿈에 대하여 명상했다
아주 단단하거나 투명한 무엇들에 대하여
그러나 나는 이제 물렁물렁한 것들에 대하여도 명상하련다
 
오늘 내가 해 보일 명상은 햄버거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나 손쉽게, 많은 재료를 들이지 않고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명상
그러면서도 맛이 좋고 영양이 듬뿍 든 명상
어쩌자고 우리가 <햄버거를 만들어 먹는 족속> 가운데서
빠질 수 있겠는가?
자, 나와 함께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행하자
먼저 필요한 재료를 가르쳐 주겠다. 준비물은
 
햄버거 빵 2
버터 1½큰 술
쇠고기 150g
돼지고기 100g
양파 1½
달걀 2
빵가루 2 컵
소금 2 작은 술
후춧가루 ¼작은 술
상추 4 잎
오이 1
마요네즈소스 약간
브라운소스 ¼컵
 
위의 재료들은 힘들이지 않고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의
믿을 만한 슈퍼에서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슈퍼에 가면
모든 것이 위생비닐 속에 안전히 담겨 있다. 슈퍼를 이용하라―
 
먼저 쇠고기와 돼지고기는 곱게 다진다.
이 때 잡념을 떨쳐라,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 명상의 첫단계는
이 명상을 행하는 이로 하여금 좀더 훌륭한 명상이 되도록
매우 주의깊게 순서가 만들어졌는데
이 첫단계에서 잡념을 떨치지 못하면 손가락이 날카로운 칼에
잘려, 명상을 포기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장치되어 있다
 
쇠고기와 돼지고기를 곱게 다졌으면,
이번에는 양파 1개를 곱게 다져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넣고
노릇노릇할 때까지 볶아 식혀 놓는다.
소리내며 튀는 기름과 기분 좋은 양파 향기는
가벼운 흥분으로 당신의 맥박을 빠르게 할 것이다
그것은 당신이 이 명상에 흥미를 느낀다는 뜻이기도 한데
흥미가 없으면 명상이 행해질 리 만무하고
흥미가 없으면 세계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끝난 다음,
다진 쇠고기와 돼지고기, 빵가루, 달걀, 볶은 양파,
소금, 후춧가루를 넣어 골고루 반죽이 되도록 손으로 치댄다.
얼마나 신나는 명상인가. 잠자리에서 상대방의 그곳을 만지는 일만큼
우리의 촉각을 행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순간은,
곧 이 순간,
음식물을 손가락으로 버무리는 때가 아니던가
 
반죽이, 충분히 끈기가 날 정도로 되면
4개로 나누어 둥글납작하게 빚어 속까지 익힌다.
이때 명상도 따라 익는데, 뜨겁게 달구어진 프라이팬에
반죽된 고기를 올려놓고 1분이 지나면 뒤집어서 다시 1분 간을 지져
겉면만 살짝 익힌 다음 불을 약하게 하여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절대 가스레인지가 필요하다― 뚜껑을 덮고 은근한 불에서
중심까지 완전히 익힌다. 이때
당신 머리 속에는 햄버거를 만들기 위한 명상이 가득 차 있어야 한다.
머리의 외피가 아니라 머리 중심에, 가득히!
 
그런 다음,
반쪽 남은 양파는 고리 모양으로
오이는 엇비슷하게 썰고
상추는 깨끗이 씻어놓는데
이런 잔손질마저도
이 명상이 머리 속에서만 이루고 마는 것이 아니라
명상도 하나의 훌륭한 노동임을 보여준다.
 
그 일이 잘 끝나면,
빵을 반으로 칼집을 넣어 벌려 버터를 바르고
상추를 깔아 마요네즈 소스를 바른다. 이때 이 바른다는 행위는
혹시라도 다시 생길지 모르는 잡념이 내부로 틈입하는 것을 막아준다.
그러므로 버터와 마요네즈를 한꺼번에 처바르는 것이 아니라
약간씩, 스며들도록 바른다.
 
그것이 끝나면,
고기를 넣고 브라운 소스를 알맞게 끼얹어 양파, 오이를 끼운다.
이렇게 해서 명상이 끝난다.
 
이 얼마나 유익한 명상인가?
까다롭고 주의사항이 많은 명상 끝에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이 만들어졌다
 
 
  시집 - 햄버거에 대한 명상 (민음사)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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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9/29 [17:1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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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ntiscript 2006/09/30 [09:27] 수정 | 삭제
  • 한글 공부를 더 하셔야 읽을 수 있겠습디다, 조 짧은 글마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