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 가장 옹색했던 4년 2004년 6월 22일. ‘피랍’은 ‘피살’로 바뀌어 있었다. 나는 복수를 다짐했다. 그 이전에 그리고 그 이후에 돌아간 열사들의 몫까지 하리라고, 나는 오늘도 다짐한다. 2002년 나는 ‘희망’이라는 말을 입에 담기 두려워하면서도 새로운 가능성에 달떠 있었다. 그리고 그 에너지를 전염시키는 데 참여했다. 이에 동참했던 사람들 대부분은 그가 너무 정의로워, 시대의 외면과 권력의 포위로 인해 좌초할 것으로 걱정했다. 그 불안은 그해 6월부터 11월까지의 험난한 여정으로 정확히 입증되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얼마간 실망을 가져다줄 줄 알었던 나도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 그에게 국민을 실망시킬 기회라도 안겨다 주고 싶었다. 민주노동당의 당원인 것으로 알려진 어떤 분조차, “노무현, 만나봤더니 내가 상상했던 그런 사람이 맞다. (민주당에서도 그를 내치려는 마당이니) 정책연합까지 고려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개혁적이기 앞서,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는 지성인이라면, 노무현 정부의 지난 행적에 가책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개혁의 패배’가 아니다. 그 정부는 개혁의 맞은 편에서 개혁을 패배시켰다. 나는 노무현이 수구특권세력에게 맞서 맹렬히 싸우는 대통령이기를 바라는 데 더해, 작게는 진보정당의 정치적 성장을 제도적으로 보장해주는 것부터 크게는 재벌과 노총 간의 균형이라도 맞춰주는, ‘진보적 보수’의 역할을 기대했다. 후자는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고, 전자는 매우 우스꽝스럽게 진행 중이다. 2002년 대선 당일, MBC가 공개한 여론조사 자료에 따르면, 표본집단의 구성원 가운데 시종일관 노무현 후보를 지지한 비율은 6퍼센트였다. 물론 인터넷 팬클럽부터 개혁국민정당까지에 이르는 그 ‘6퍼센트의 활약’은 눈부시도록 대단했다. 하지만 이미 한국사회는 ‘지각변동’이라는 어휘를 쓰기조차 아까운, ‘맨틀의 대류’에 가까운 변동을 맞이하고 있었다. 노무현은 그것을 말아먹었다. 2002년 당시 내가 참여했던 안티조선운동은 집중적 타격을 요구하는 네거티브 캠페인에서 일개 정치인을 향한 포지티브 운동으로 기괴하게 넘어가고 있었고, 마침내 12월 각주의 토요일을 밝혔던 촛불의 걸음에서 그 현상은 정점을 이루었다. 이회창 후보조차 시위현장 방문을 고려하던 당시, 노무현은 태연히 침묵으로 사태를 비켜갔다. 그리고 시위에 참여한 권영길 후보보다 훨씬 더 커다란 몫을 가져갔다. 이제 노무현 정부의 치적을 꼽아보는 일은 하는 것 없이 시간을 버리고 싶을 때 가장 유용한 행동이 되었다. 그가 연출할 대역전의 드라마를 기다리는 사람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멍청한 사람일 것이다. 그가 그러리라고 암시하는 쪽은, 조중동과 친노사이트밖에는 없다. 조중동은 박박 긁어도 한줌도 안 될 노무현의 개혁적 파괴력을 암시함으로써 ‘고도의 노빠’ 짓을, <서프라이즈> 같은 매체들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티저 버전의 용비어천가’를 통해 ‘고도의 노까’ 짓을 벌이고 있다. 그들이 그러는 사이에, 노동 열사가, 농민 열사가, 전시 피살자가 나왔다. 나는 소주를 들이키듯 쓰린 속에 복수심을 털어놓고 있다. 그러지 않을 도리가 없다. 김정란과 뚱게바라 “마음속에서 분노 같기도 하고 짜증 같기도 한 것이 치밀고 올라왔다”. (‘한국출판인회의’와 ‘데일리서프라이즈’가 공동 게재한) 김정란 교수의 <괴물> 평론이다. “<괴물>의 봉준호는 비겁하다. 그는 지우개를 들고 정신없이 지워댄다. 그러다가 또, 혹시 자신의 진면목을 관객이 못알아챌까 봐 전전긍긍, 정치적으로 명확한 알레고리를 등장시킨다. 그리고 또 정신없이 지운다. 안돼, 이 사회의 자본을 장악하고 있는 보수세력에게 운동권 편든다고 찍히면 안돼.” <괴물>이 직선적인 프로퍼갠더라고 느낀 나는 김정란의 글을 읽고 ‘사람마다 참 느낌이 다를 수 있구나’라는 싱거운 판단 대신에, 저 글의 ‘봉준호’를 ‘김정란’으로 바꾸는 것이 훨씬 예술적이리라는 결론을 내렸다. 김정란은 비겁하다. 그는 태연자약하게 잘 지워지지도 않는 지우개를 들고 양심 있는 ‘노빠’들이 괴로움에 빠진 세월을 잘도 버텨왔다. 하지만 전전긍긍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라크파병부터 한미FTA까지, 미국에게, 조선일보에게, 삼성에게 형형색색의 종합선물세트를 바쳐왔던 노무현을 편들기는, 개혁이라는 작위까지 반납하는 행위에 불과하니까. 하기야 나도 <괴물>이 천만관객을 돌파하며 사회적으로 소화되는 방식이 조금 불편하다. 나는 김정란과는 다르게 <괴물>이 직설적인 선동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관객들이 도무지 무엇을 가져가는지 모르겠다. <조선일보>의 이동진 기자는 정치를 최대한 탈색시킨 채 작품성 예찬으로 지면을 때웠고, 그런 은폐가 아니더라도 이미 <괴물>은 가족애를 그린 영화로 전락한 성격이 컸다. 그렇지만 나는 이 원인을 봉준호의 비겁에서 찾지는 않는다. 김정란의 말대로 그것은 “한국 사회가 폭력의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석하고 정리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인 것 같다”. 관객은, 그러니까 국민들은 어지간해서는 정치적 싸움의 장으로 자신의 생활을 가져가려고 하지 않는다. 일상과 정치를 분리해내는, 공중부양보다 더 어려운 일을 손쉽게 시도한다. 탄핵반대 시위의 인파가 김선일 추모시위를 압도하는 정치지상주의적 현상은, 실은 정치의 결핍, 만연한 반(反)정치의 그림자이다. 그 덕분에 김정란 같은 지식인도 아직 ‘개혁’이라는 감투를 버젓이 쓰고 있는 것이다. 그 개혁이 좋은 의미건 나쁜 의미건, 사람들이 좋아하건 싫어하건. 김정란은 영화에 등장한 바이러스 문제가 “한국의 민주화 상황과 연계된 미국의 문제를 흐릿하게 지워버리기 위한 영화적 기만이라는 생각마저 든다”고 한다. 데자뷔! 노빠들은 미국에 굽신거리는 노무현을 두고 “약소국의 슬픔”이라는 식으로 넘어가곤 했다. 김정란이야말로 미국의 패권주의와 연계된 사이비 개혁정권의 문제를 흐릿하게 지워버리기 위한 문학적 기만을 걷어치워야 한다. 김정란은 또 “이동통신사 사원인 민주화동료가 젊은 영웅을 돈을 받고 팔아넘기는 장면에서 그 절정을 보여준다”고 불평한다(<남극일기>의 임필성 감독이 분한, 박남일(박해일 분)을 경찰에 팔아 넘기는 ‘뚱게바라’를 가리키는 것이다). 괜한 걱정이다. 봉준호 감독이 이 캐릭터를 등장시킨 것은 ‘운동권영화’라는 공세를 피하기 위함이 아니다. 진보와 개혁을 통째로 팔아버린 자들이 교수라며, 여당 대변인이라며, 보건복지부 장관이라며 설치는 마당에, 옛 동료 한명 경찰에 넘기는 변절한 운동권이 뭐가 그리 대수인가? 반드시 응징한다, 노무현 정권. 김정란은 <괴물>을 비난하던 중간에 <친절한 금자씨>를 즈려밟고 지나간다(우스개지만 “민주노동당에 가입한 감독한테 감정 있나?”라는 뚱딴지 같은 생각마저 터져 나왔다. 노빠들 중에는 능히 그런 발상을 뽐낼 인간들이 숱하다). 나도 -김정란과는 좀 다른 이유에서겠지만- <친절한 금자씨>가 걸작이라고 평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금자라는 캐릭터만큼은 김정란 같은 비겁한 지식인들과는 비할 수 없는, ‘훌륭한 복수의 화신’이다. 금자씨는 박찬욱의 전작에 등장하던 캐릭터들과는 다르다. <복수는 나의 것>에서 딸의 유괴범을 잔혹하게 살해한 송강호는 배두나의 경고 그대로 미처 파악하지 못한 무리들에 의해 피살된다. <올드 보이>의 최민식은 질기고 치밀하게 복수를 결행하지만, 그 모든 과정은 더 커다란 복수의 음모에 역으로 포섭되어 있었다. 금자씨는 다르다. 그래서 나는 금자씨처럼 복수하려고 한다. 금자씨는 비눗칠로 여죄수 감옥의 독재자 ‘마녀’를 목욕탕 바닥에서 미끄러트리고, 밥에 락스를 넣어 아주 서서히 죽여 버린다. 그런 계획은 그가 최종적으로 이루려는 복수와 마찬가지로 한명의 인간을 끝장내는 일이지만, 그는 결코 쓸데없이 힘을 빼지 않는다. 복수를 꿈꾸는 자들은 누구나 1단계의 장애물을 만난다. 장소는 좁고 상대는 거대해 보인다. 하지만 속으면 안 된다. 나도 그래서 민주노동당 내부의 적들을 비눗칠로 제압하려 한다. 그곳은 알아서 제 김에 넘어질 자들 투성이다. 금자씨는 1단계에서 이룬 목적을 기반으로 동료 죄수들을 규합한다. ‘마녀’라는 악명을 물려받는 동시에 ‘친절한 금자씨’가 된 것이다. 금자씨는 비전향 장기수를 돌보며 손에 넣은 <법구경>이, 그 종이 한장한장에 권총 설계의 부분이 그려져 있음을 알아챈다. 그는 석방된 후 감옥에서 만난 동료를 찾아가 권총을 만든다. “무조건 예뻐야 된다”니까 기왕에 예쁜 장식을 달아서. 예쁜 장식은 없더라도 나 역시 권총을 만들 동료들은 있다. 금자씨의 총처럼 작고 사정거리가 짧더라도 상관없다. 나도 금자씨처럼 적당한 거리까지 접근해서 쏠 작정이므로. 결국 금자씨는 킬러들을 물리치고 백선생(최민식 분)을 감금하여 서서히 잔인하게 끝장낸다. 사실 나는 노무현 정권과 그 호위무사들을 그렇게까지 처리할 엄두는 내지 못한다. 그러나 금자씨에게 이거 하나는 배울 수 있다. 금자씨는 홀로 복수하지 않는다. 얼마간 자신의 책임도 섞여 있는 사건에서 자신보다 더 끔찍하게 당한 다른 피해자들을 불러 모아 그들의 손에 무기를 쥐어준다. 나는 4년 전 아주 정당한 명분을, 노무현 지지를 위해 팔아먹는 죄를 저질렀다. 내가 김정란과 차이가 있다면 그가 유명하고 나는 무명이라는 것밖에 없다. 노 정권이 정녕 이럴 줄은 몰랐지만, 책임을 벗을 수는 없다. 최장집, 정태인, 고종석처럼 누구보다 예리하게 이 정권의 실정을 겨냥하는 지식인들도 예외일 수 없다. 이 정권이 무참하게 끝나는 날,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을 지지했던 지식인들은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한다. 무엇으로도 모자라겠지만, 절필이 가장 적당하다. 금자씨는 자신이 공범으로 가담해 유괴한 아이의 부모 앞에서 손가락을 자르기까지 했다. 무엇이 두려운가. 나는 반드시 응징할 것이다. 그리고 노무현 정권에 베인 분들께 사죄한 다음 정치 칼럼에서 손을 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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