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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에 의자는 누가 갖다 놓았을까?
[비나리의 초록공명] 월드컵 투혼 아닌 서울 지배한 상혼, 지옥 따로없어
 
우석훈   기사입력  2006/06/27 [08:38]
나도 나이를 먹어가면서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 후배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주요한 결정들은 어지간하면 후배들 시키는대로 하려는 편이다.

뭔가 어려운 결정을 해야할 때에는 김씨에게 물어보려고 한다. 나는 여전히 김씨의 지휘를 받으며 글을 쓰던 당대비평 시절이 가장 즐거웠던 시절로 기억한다. 종간되기 전까지 당대비평의 유일한 상근 에디터가 바로 김씨였다.

나도 몰랐었는데, 김씨가 '오늘의 책' 출신이라고 하고, '나라를 구했던' 강 기자도 오늘의 책 선후배 사이라는 얘기를 들으면서...

추억 속으로 문득 시간 여행을 떠난 듯이 20년 전으로 돌아간다. 연세대학교 앞에 오늘의 책과 알서점이 있던 시절, 사람들은 오늘의 책파와 알서점파로 나뉘어져 있었고, 나는 오늘의 책파에 가까왔다.

핸드폰과 삐삐도 없던 시절, 친구들과 약속을 위해서 어디엔가 메모를 남길 때 어디에 메모를 남기느냐에 따라서 이렇게 파가 구분되었다. 물론 독수리다방에다가 남기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약간의 자존심으로 다방에 메모를 남길 수는 없다... 바로 그 오늘의 책이다. 

오늘의 책이든 알서점이든 종로서적이 망하는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지 못하고, 사회과학 서점의 시대가 이제는 숨을 헐떡헐떡거린다.

서울대 앞의 녹두서점은 류정희 선배가 운영을 하는데, 작년까지는 틈틈히 여기 가서 CD도 사오고 책도 사오기도 했는데, 그나마도 몸이 아파서 꼼짝 못하는 요즘은 가본지가 오래된다. 류정희 선배는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 SBS에 나오는 걸 좋아하시더니... 아무리 생각해도 길게 보면 TV에 나가서 잘 된 사람을 별로 못본 것 같다.

오늘의 책에서 서점을 살리겠다고 걷어부쳤던 사람들이 있다는 얘기를 10년 전 연세대학교에서 강사생활할 때 얼핏 들은 적이 있었는데, 새삼 인연이라는 것과 '뜻을 세운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중이다.

자신의 몸을 상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좋은 상품으로 취급받고 싶은 마음이야 이해할 수가 있겠지만, 일단 상품의 길에 걸어들어간 사람들에게는 결국 상품의 길 밖에는 남아있지 않을 것 같다는 슬픈 생각이 든다.

서점 오늘의 책에서 쭈그리고 앉아서 책을 지키거나 팔면서 대학시절을 보냈을 에디터 김씨와 프레시안의 강 기자의 옛 시절에 대해서 잠깐 생각하면서 상품시절에 상품이 아니기 위해서 가져야 할 작은 마음가짐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홍대 앞에 지금처럼 황당한 가계들이 들어서기 전에 '북카페'라는 형태의 술집이 몇 개 있었다. 지금은 '걷고싶은 거리'가 지정되어 완전히 '굽고싶은 거리'로 바뀌어버린 홍대에서 신촌까지 서점들이 몇 개 늘어서서 장사하던 시기가 있었는데, 이제 그런 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예전에는 교보문고에 대해서도 욕을 많이 했었는데... 광화문 교보문고에 의자를 몇 개 갖다놓아서, 예전처럼 바닥에 엎어져서 책을 보지 않아도 좋게 약간의 배려를 했다.

서울에 아직 희망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상징은 교보문고에 들어서 있는 몇 개의 의지이다. 절대로 앉지 못하도록 빨리 빨리 쇼핑에 전념하게 되어있는 공간에 들어가서 마음의 평온을 느끼는 서울이라는 지옥에 서있는 교보문고에 어떻게 의자가 놓여지게 되었을까?

각 도시를 방문하면 대학에도 가보고 도서관에도 가보고 서점 몇 군데에 가본다. 서울에 있는 대학의 공간배치와 형태는 학생들이 절대로 공부를 하지는 않을 것이고 책을 읽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공간 같다.

공부하고 싶은 생각을 가장 간절하게 느끼도록 공간을 배려한 곳은 쮜리히 주립대학이었고... 68학생운동이 처음으로 터져나온 파리 10대학은 담배피고 싶은 생각이 들도록 되어있다. 연세대학교 상대건물은 도망가고 싶은 생각이 드는 공간이다.

서울의 어느 곳을 가보아도 상혼의 '포스'가 느껴지도록 배치가 되어있는데, 교보문고에는 이 공간의 삭막함과 악랄함을 뚫고서 의자 몇 개가 자리를 잡게 되었다.

가끔 궁금하다. 돈 밖에 모를 교보문고에 의자를 몇 개 놓자고 건의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혹은 그들은 누구일까?

도시에서 행복하게 사는 법에 대해서 가끔 질문을 받는데, 내가 생각하는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바로 어니스트 해밍웨이이다. 그는 왜 도시에서 사람이 행복할 수 없는지를 온몸으로 보여준 사람이고, 정말 행복하고 싶다면 해밍웨이가 그 시대에 어떻게 살았고, 어떤 선택들을 내렸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다음 사진이 '해밍웨이의 삶과 가장 정반대에 서 있는 것'이라는 것에 대답하고 싶은 한 장의 사진이다. 
 
▲ 한국축구가 독일월드컵에서 16강에 진출하지 못하자 서울시청에 걸려있던 걸개그림을 내리고 있다.     © 한겨레신문 제공

도대체 이 도시가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한 장면이고, 곰곰히 들여다보면 볼 때마다 슬퍼서 눈물이 흐르게 되는 사진이다.

이 사진의 창문, 그것은 그려진 것이고, 밖에서는 창문으로 보이는 것이 실제로 건물 안에서는 창을 가로막고 있는 천조가리일 뿐이다.

창문을 그려 넣은 폭력적인 대형걸개 그림, 그것이 바로 서울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아무도 여기에 대해서 항의할 수 없는데, 심지어는 이 그림 앞에서 밤을 세우면서 감동을 느꼈던 사람도 있다고 하니 지옥이 따로 펼쳐진 것이 아니라, 이곳이 바로 지옥이다.

지옥에서도 행복할 수 있나? 불가능할 것 같은데... 아무리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잘 생각해보려고 해도 지옥은 지옥일 뿐일 것 같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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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6/27 [08:3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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