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때 읽었던 책 중에서 30대에 다시 읽은 책이 생각해보니까 거의 없다. 살기도 힘든데 옛날 책을 다시 읽게 되지는 않는다. 국부론은 스타디 때문에 다시 읽기는 했는데, 전권을 다 읽지는 못하고, 몇 부분만 골라서 읽었다. 나는 원래 독서 습관이 다 읽어버리는 편인데, 그렇게 잘 안된다. 다 읽을려고 몇 번을 시도했는데, 한 번도 앞뒤로 다 읽지 못한 책으로 기억나는데, 단테의 신곡을 다 읽지 못했고, 볼테르의 깡디드도 다 못 읽었다. 그러고 보면 성 아우구스투스의 참회록도 읽다가 다시 집었다가 또 놓으면서 아직 다 못 읽었다. 마흔이 되기 전에 그래서 아직 30대일 때 20대 때 재밌게 읽었던 책들 몇 권을 골라서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기 시작한다. 몇 권 아닐지 몰라도 20대 때 읽고, 30대 때 읽으면, 40대에 한 번 더 읽고, 50대에 한 번 더 읽었다고 하면 왠지 쎄보일 것 같다. 원래 폼생폼사 아닌가, 인생을 멋지게 살지 못했어도 폼만 난다면 무슨 일을 못하겠는가! 아쉬운 것은 10대 때 충분한 독서를 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10대에는 너무 소설과 시에 푹 빠져서 살았다. 소설 말고도 볼만한 책들이 많이 있기는 했을텐데, 되지도 않는 문학청년 한다고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다. 재능이 없다는 걸 진즉에 깨닫고 가지 못할 길은 생각도 하지 않을 정도의 지혜를 10대 때에는 전혀 가지고 있지 못한 것 같다.
10대에 읽은 책을 30대에 읽고 마흔을 준비한다는 멋진 말을 하고 싶기는 한데, 10대에 읽었던 책 중에는 다시 읽을 만한 책이 정말 없다. 얼마나 내가 10대 때 눈물과 방황으로 그 시간들을 빼곡히 채워놨었던지 나의 독서 이력이 여실히 보여준다. 생각나는 대로 마흔이 되기 전에 다시 한 번 읽을 책들 베스트 파이브를 한 번 꼽아보자. 존 롤스의 정의론이 맨 앞에 올 것 같다. 스물 세 살 정도에 읽은 책인데, 불어본으로 읽었다. 차분하게 읽었으면 훨씬 더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책이었던 것 같은데, 몇 가지의 선입견이 있어서 아주 심통이 나서 도대체 이런 놈이 다 있느냐고 생각하면서 내내 불만스럽게 읽고 던져버렸던 책이다. 지금도 나는 롤스의 정의론에 대해서 좋게 생각하기 보다는 사기꾼이라는 생각이 더 강하고, 특히 이 책에 나오는 개념이 좋다고 난리치는 사람은 사기꾼일 확률이 높다고 약간의 색안경을 끼고 보는 편이다. 그렇지만 솔직히 생각해보면 책은 재밌는 책이고, 특히 아이들의 영혼이 머무는 영원의 나라에 대한 비유는 오랫동안 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소위 입장 바꿔 생각해보는 역지사지라는 생각의 방식을 나에게 심어준 책은 아무래도 정의론일 것 같다. 아이들의 영혼이 세상을 보면서 잡담을 하면서 뭔가를 결정한다는 롤스의 상상은 발랄하면서도 냉정한 이야기이다. 내가 이 나라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을 때는 유아의 영혼들이 모여서 잡담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는 하다. 아니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못생긴 몸에 별로 부자도 아닌 신분에다가 정작 한국에서 태어난거야? 롤스의 정의론은 이런 불평불만에 가득한 영혼들이 떠드는 수다에 관한 책이다. 나는 왜 쌍거풀이 없고, 도대체 입술은 왜 이렇게 두꺼워... 게다가 귀는 왜 이렇게 작고 외계인 귀처럼 생긴거야... 이런 고민이 들 때 마음의 위로를 받기에 제일 좋은 책은 역시 존 롤스의 정의론이다. Theory of justice라는 제목을 달고 있기는 한데, 뒤집어보면 못생긴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마음의 위안서 비슷한 책이기도 하다. 두 번째 책은 가브리엘 따드의 책들이다. 구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예전 복사해놓은 자료들을 뒤지면 한 권쯤 나올지도 모른다. 따드는 원래 범인 취조하던 순사였는데, 당시에 범죄는 얼굴 생긴 것만 보면 안다고 하던 골상학이 유행하던 시절에 그런 거 아니라는 새롭게 생각하는 방법을 제시한 사람인데, 에밀 뒤르케임의 사보타쥬에 걸려서 제대로 피어보지도 못하고 묻혀버린 사람이다. 사람의 행동을 결정하는데 '믿음'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전면에 들고 온 사람인데, 워낙 다양한 범죄 사례가 많이 등장해서 유쾌하고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어떤 면에서는 나는 따디앙이기도 한데, 우리말로도 왕따 당하는 걸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 편이기도 하다. 솔직히는 주위에 아무도 없고, 아무도 찾지 않고, 아무도 찾아볼 일이 없는 상황이 너무 즐겁다. 가브리엘 따드도 약간 그렇게 혼자 고민하면서 살다가 죽었다. 우리나라에서 따드가 인용된 책을 딱 한 번 본 것은 국방부의 국방교본에서 이 이름이 나오는 걸 봤다. 역시 범죄학 출신이라서 군인들 취향에 딱 맞는 것인지도 모른다. 세 번째 책은 니체의 '즐거움의 철학' 정도 될 것 같다. 재밌게 보기는 신나게 생 폴 - 우리나라에서는 바울이라고 부르나? - 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못되었고, 그로 인하여 온 인류가 고생하게 되었는지 신나게 갈겨놓은 오로라가 더 재밌기는 한데, 깊이는 사실 즐거움의 철학이 훨씬 깊다. 내용이 즐겁지는 않은데,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이중적이고 유혹이라는 것에 대해서 얼마나 야비하게 대처하는지에 관한 책이라고 나는 이해하고 있다. 데리다는 이 책에 대해서 전혀 다른 해석을 가지고 있기는 한데, 그건 데리다고 내가 읽은 즐거움의 철학은 좀 달랐다. 지금 읽으면 어떤 생각이 들지 다시 한 번 보고 싶은 책이다. 네 번째 책은 노자의 도덕경일 것 같다. 너무 어렸을 때 한문 공부한다고 봤는데, 그 때는 20대 후반이기는 했지만 내가 너무 어렸고, 너무 고생스러울 때 읽어서 머리에 남는 게 하나도 없다. 다시 한 번 보면 다른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지만, 한 번은 다시 한 번 보면 재밌을 것 같다. 게다가 내 주위에 도덕경 아니면 대화가 불가능한 인간들이 너무 많아서 원만한 대외관계를 위해서라도 다시 한 번 보면 좋을 것 같다. 다섯 번째 책은 아무래도 자본론일 것 같다. 자본론은 서로 다른 해석본과 언어본으로 몇 개를 읽기는 했고, 수업도 두 번이나 듣고 시험도 여러 번 봤던 책이기는 한데, 그 때는 너무 수식과 도식을 중심으로 봤다. 별로 그렇게 할 이유도 없는 전형논쟁을 중심으로 봤고, 차분하게 문학적으로 생각해볼 기회는 사실 별로 없었다. 지금 다시 읽으면 어쩌면 느낌이 전혀 다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얼마 전부터 하기 시작했다. 여러 번 시험 봤던 책을 다시 보면 밤새워서 시험 준비하던 시절의 아픈 기억이 다시 살아날지도 모르지만, 하여간 대학원 때 나의 평균을 엄청나게 높여주어서 분과 1등을 해서 약간은 편안하게 박사과정에 진학할 수 있는데 기여했던 몇 과목 중의 한 과목이기도 했다. 딱 한 권의 책만 더 집으라고 한다면 노직의 책을 볼 것 같다. 29살 때 본 책인데, 그 때도 뭐가 그렇게 심통이 나 있었던지 신자유주의의 중심 이론을 만든 책이라고 불만스럽게 봤는데, 노직의 얘기가 그렇게 재미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지금 보면 오히려 편하게 다시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하여간 나의 20대에는 뭐가 그렇게 심통이 나 있었는지 편안하게 책을 읽지 못하고 약간이라도 잘못된 것이 있으면 트집 잡을려고 능력도 안 되는데 발악을 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야말로 오해가 있으면 풀고 맺힌 게 있으면 이해를 하고 넘어가는 화해가 필요할 것 같기도 하다. 나보다 수 십배 잘나신 분들이 하신 말씀인데, 20대 때에는 너무 심통난 마음으로 독서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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