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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이 지배하는 자, 대통령이 되리라!
[비나리의 초록공명] 한강에서 청계천까지, 착취와 욕망의 뒤틀린 역사
 
우석훈   기사입력  2006/06/03 [10:54]
내가 꽤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할 수 있는 도시들은 작지 않은데, 순서대로 보자면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을 가장 잘 알고, 그 다음에는 파리에서 오래 살았다. 그 다음에 몇 달 정도 살아본 순서대로 하자면 독일의 본에서 꽤 많은 시간을 보냈고, 런던에서도 작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이 도시들의 특징은 강을 하나씩 끼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한강, 센느강, 라인강, 템즈강... 이런 강들을 보면서 나는 어른이 되었고, 만약 그 중에 가장 아름다운 강을 고르라고 한다면 라인강이라고 하겠지만, 정말로 많은 시간을 보낸 강을 꼽으라고 한다면 센느강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절대시간으로는 센느강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강이 완전히 더러워지기 전에 한강에서 투망을 던지고 그렇게 잡아온 잉어나 쏘가리를 집에서 끓여먹었던 어린시절의 기억을 나는 가지고 있다. 쏘가리에 물려서 아버지의 손가락이 부어올랐던 기억이 아주 어렸을 때의 단편적 기억 중의 하나이다.

그 다음부터는 누구나 알고 있던 기억이다. 박정희가 한강 건너편으로 넘어가지 않으면 북한의 공격에서 위태롭다고 부자들을 강 너머로 보내려고 했는데, 우리 집안에서는 가장 부자였던 불광동 고모 할머니가 그렇게 불안하게 살 거라면 전쟁 없는 나라로 간다고 강남 대신 미국으로 이민가는 걸 선택했다. 그렇게 강남개발이 시작되었다.

대부분 그 시절 내 주위의 사람들은 강남으로 이사를 갔는데, 우리 부모님들은 약간 유별을 떠시는 분들이라서 강남으로 이사 가지 않았다. 내 또래의 서울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대개 유치원을 갔는데, 나의 부모님들은 되바라진다고 나를 유치원에 보내지 않았고, 글자나 숫자를 배우지 못하게 하셨다. 한글이라는 것에 대한 제대로 된 체계적 교육은 나는 그래서 그 당시 국민학교에 들어가서야 글자를 배웠고, 숫자도 그 때 처음 배웠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나의 부모님들은 내가 글자를 배워오는 것에 대해서 행복해하시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렇지 않은 것 같지만 아버지는 내가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원래는 반기시지 않으셨다. 아버지는 내가 대학에 들어가는 것도 썩 기분 좋아하시지는 않으셨는데, 실제로 내가 뭘 하는 걸 바라셨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아버지는 내가 공부를 한다는 것에 대해서 처음으로 공부를 해도 좋다고 생각을 하신 게 대학에 들어가고 교통사고로 내 한쪽 다리가 망가진 다음의 일이었던 것 같다. 1년 가까이 목발을 짚고 다닐 때 비로소 아버지는 몸으로 먹고살기 어렵겠다는 말씀을 하시고, 공부라도 하라고 딱 한 마디를 하셨다.

그 시절에 한강은 88년 올림픽을 위해서 직강하천으로 공사를 시작했고, 유속이 빨라지면서 보기에 나쁘지 않은 강, 그리고 홍수가 나면 안 되는 강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처음으로 고수부지라는 것을 가지게 되었다. 한강이 드디어 자본을 만나 수동적 입장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 때부터 한강은 더 이상 강이 아니라 수탈의 대상이고, 착취의 대상일 뿐이었다.

한강을 지키기 위한 노력? 그런 건 애초에 존재한 적도 없고, 한강은 라인강의 기적을 만든 라인강과 비슷해져야 하는 열등생일 뿐이다. 운하와도 연결되어 있지 않고, 수송능력도 없는 한강은 위정자가 뭐라고 말을 하던지 간에 착취의 대상일 뿐이고, 70년대 한 때는 산업의 역군이었던 "공순이"와 한강은 철학적으로 같은 위상을 가지고 있는 수탈의 대상일 뿐이다.

물... 그것은 썩은 물일 뿐이고, 욕망의 투사구라는 점에서 더러운 깡패들의 깍두기에 불과하다.

한강은 정말 철저하게 자본에 복속하여 그들을 만족시키는 잘 길들어진 노동자와 마찬가지이다.

한강변에 아파트가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여의도의 꿈을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이어받은 다음의 일이지만, 10년 이상 버티던 한강변을 내어준 것은 강남시대가 만개하고도 10년이 지난 다음의 일인 것 같다. DJ 시절이 되면서 드디어 건설자본을 한강을 어디에 써야할지... 비로서 박정희의 한강의 기적이라는 투박한 라인강식 노선을 버리고 철저하게 유린하기 시작한다.

한강변의 아파트는 그래서 IMF 이후를 기점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아주 최근의 일이다.

물... 물을 지배하면 사람들은 행복해지는 것 같다. 지배받지 않고 더 이상 범람하지 않는 한강, 그는 이제 시대의 주구처럼 철저하게 자본하게 길들어지고 자신을 내어주는데 익숙한듯, 아무런 말이 없다.

한강의 배신이 한 절정은 청계천 복원이다. 이때부터 공간의 제국주의가 작용하고, 탐욕의 연장으로 자신을 사용하는데 아무런 거부나 변론없이 한강은 물을 내어준다. 인공하천 청계천에 흐르는 물은 한강물이다. 한강에 영혼이 있다면 이 탐욕의 부동산 재개발 사업에 자신의 물을 내어주어서는 안되지만, 모터와 수로라는 수탈의 기술에 한강이 무너진 것인지 아님 한강이 자신의 물을 연장시키기 위한 오히려 그 스스로의 탐욕인지... 그 한강물은 공간을 거슬러 시대를 거슬러 청계천으로 흐른다. 한강물이 흐르는 청계천은 거대한 탐욕의 물흐름이 누구를 노리고 있는지를 너무나 명확하게 만들어버렸다.

한강, 그는 배신자이다. 그도 생태계의 일부라면 이렇게까지 할 수는 없지만, 분노도 없고 영혼도 없는 듯 자본이 달라는 대로 자신의 일부를 내어준다.

청계천에서 한강의 탐욕은 정지할까?

이미 돈맛을 본 한강의 탐욕은 거기에서 끝이 나지 않는다.

"나를 보면서 돈을 벌면 좋쟎아..."

월급장이들도 한강을 보면서 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이 강은 얼토당토 않은 탐욕을 보이기 시작한다.

잠만 한강 옆에서 잘 것이 아니라 일도 한강 옆에서 하라고 나즉한 속삭임을 이 거대한 물줄기가 시작한다.

한강변에 업무지구를 지정해달라는 건설자본의 요구는 한강이 유혹한 것인지 아니면 인간의 욕망이 달려가는 것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한강 옆에 100층짜리 업무용 빌딩이 들어서야 이 작은 요구가 끝이 난다. 20층, 30층짜리 아파트들은 이제 좀 헐어버리고 진짜 마천루가 들어서게 될 것이다.

막을 수 있을까?

한강이 스스로를 유혹하는데 무슨 수로 막을 것인가?

이 정도에서 한강의 유혹이 끝이 날까? 21세기를 맞은 이 탐욕의 강은 나머지 국토를 모두 빨아먹어야 그 유혹이 끝날 것처럼, 이제는 도저히 생태계의 일부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의 욕망 덩어리가 되어버렸다.

강금실... 그녀도 한강의 유혹의 한 작은 대리자에 불과하였다. 운하를 요구하였고, 보다 큰 운하를 약속하지 않은 그녀를 한강은 감싸안지 않는다. 인천에서 한강으로, 한강에서 남한강을 거쳐 조령을 넘어 부산까지 이 강이 연결되게 할 '메피스토텔레스'를 한강은 찾고 있다.

그러면 욕망이 끝이 날 것인가? 북한의 물을 원하고 있고, 더 높이 그레서 동해와 서해를 연결시키고, 이 물이 결국 한강과 맞다아서 모든 물이 한강이 되어야 비로서 약간의 숨을 돌릴 정도로 한강의 욕망은 숨 가쁘고, 마치 자신이 바다와 한반도의 모든 것을 삼켜먹어야 안도할 정도로 한강의 욕망은 사람들의 작은 상상력을 넘어선다.

한강은 다른 강들을 노리고 있고, 남북통일을 열렬히 바라고 있다. 무서운 강이다. 때로는 정의이고, 때로는 아름다움이지만, 건설자본이 한강을 사용하는 것인지 아니면 한강의 욕망이 스스로를 확장시키며 인간들의 영혼을 빨아가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한강의 확장욕은 이제 제어가 불가능할 정도이다.

한강의 생태복원? 멋진 말이지만, 본질은 한강의 착취를 넘어 이제는 한강의 사람을 착취하는 단계로 넘어간다. 어머니인 강이었던 이 한 도시의 강이 이제 스스로 영혼을 가지고 가장 힘있는 사람들의 영혼을 빼앗아가는 악랄한 마녀처럼 기능하기 시작한다.

청계천? 본질은 한강의 요술일 뿐이다. 한강물이 도시를 휘감아 가난한 자를 착취하고 다시 자기에게 돌아오는 눈속임의 마술일 뿐이다. 이 거대한 마법 앞에 위정자들은 한강을 사용해 집권한다고 착각할 뿐이지만, 이제 본질은 한강이 사악한 인간들의 영혼을 빼앗아 자신을 확장하고 지배하는 것에 불과할 뿐이다.

한강을 지배하는 자, 왕이 되리라!

불쌍한 왕이 하는 일은 한강의 지배욕의 가엾은 대리인에 불과하고, 자비를 잃은 거대한 물결은 가난한 자들과 아무 것도 없는 자들의 것을 빼앗아 강물에 영혼을 판 자들의 힘을 부풀려 결국은 평양까지 그리고 동해와 서해까지 자신의 물결이 닿아야 잠깐 만족할 탐욕의 흐름일 뿐이다.

라인강과 센느강의 고즈넉함을 잃어버린 한강의 식탐... 일찌기 인류 역사에 이런 강은 없었다.

난 이제 이 한강이 무서워지기 시작하고, 조금이라도 한강에서 멀리, 이 탐욕의 강의 물결로부터 멀어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물결을 따라 욕망이 흐르고, 우리의 소돔은 강변을 따라 흐른다.

70년대 이후 한강 주변에 자리를 잡은 호모 사피엔스가 한강을 착취하는 것이라고 오랫동안 생각했는데, 어쩌면 한강이 이 가엾은 동포들을 착취하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다.

Sous le pont de Mirabeau, coule la Seine     
미라보 다리 아래 센느강은 흐르고

Et nos amours                                          

그리고 우리의 사랑도...

누가 대통령이 되거나 누가 서울 시장이 되거나 누가 국회의원이 되더라도, 한강의 욕망은 이제 막아서기 어렵다...

저 장강의 뒷물을 누가 막을 것인가... 물의 욕망, 우리 시대의 저주일 뿐이다. 도망가지 않는다면 한반도에서 누구도 이 저주를 피하기가 쉽지 않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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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6/03 [10:54]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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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홍기빈 2006/06/04 [11:22] 수정 | 삭제
  • 생각 못해봤던 시각이네요...정말 어쩌면 한강이 인간을 이용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그리고 이렇게 욕망으로 꿈틀대는 강은 역사상 드물 것은 분명합니다. 한국 고대사에서 당항성이 있던 자리가 한강이죠. 그때도 고구려 백제 신라를 전쟁으로 끌어넣은 게 한강이었네요...
  • ... 2006/06/03 [13:11] 수정 | 삭제

  • 우석훈씨

    가끔 당신의 글을 읽습니다. 내용도 참신하고 관점도 좋습니다. 또 공부를 많이 하셔서 그런지 해박한 지식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딱 한가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당신의 글이 오랜 생명력을 지니기를 바라면서 충고하노니 곡해마시고 들어주시기 바랍니다.

    글쓰기 스타일을 좀 바꾸었으면 합니다. 1인칭에서 3인칭으로 바꾸면 좋겠습니다. 글에 등장하는 팩트는 물론이고 문체를 객관화 했으면 합니다. 당신의 글은 일관되게 1인칭입니다. '나...'로 시작한다는 말입니다. 일기에서나 볼 수 있는 독백형이지요. 그러다 보니 내용의 참신성과 달리 자칫 까탈스럽게 들릴 수 있습니다. 마치 푸념처럼 들립니다. 읽는 사람으로 햐여금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너는...'식의 반응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시시콜콜한 감정, 자질구레한 얘기들이 쏟아져 나오다 보니 어떨 때는 너절하게 들립니다.

    물론 1인칭 글쓰기의 장점도 있습니다. 솔직하고 책임있는 글쓰기가 됩니다. 자신의 진정성이 듬뿍 드러나기도 합니다. 독자로 하여금 신뢰감을 주죠.

    문제는 우석훈씨가 이제 공인에 가까운 신문이 되었는데 좀더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글쓰기 방식을 개발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조금 더 깔끔하고 절제했으면 합니다. 네티즌들이 남의 일기장을 들여다 볼만큼 한가하지는 않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