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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축구중계에 흘러나온 조수미의 ‘귀곡성’
[비나리의 초록공명] 의도적 조수미 띄우기, 해설도 끔찍, MBC 왜이러나
 
우석훈   기사입력  2006/05/27 [10:12]
1. 

월드컵 한 달 남았다고 MBC 뉴스데스크에서 조수미 클립 틀어줄 때부터 알아봤는데, 결국 골 넣고 나서 조수미를 틀려고 그 난리를 쳤나보다. 신기한 경험이다. 귀신 부르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그야말로 귀곡성이다. 잠깐 위안이 된 건 이 귀곡성이 흘러나오는 순간만큼은 이상한 축구 중계를 듣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2.

축구 후반 몇 분을 광고하면서 떼어먹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다. 국내 경기의 생방송 중에 음이 몇 분마다 한 번씩 끊어지는 것도 신기한 경험이다. 귀곡성도 트는 마당에 무슨 신기한 일이 생긴다고 놀라겠나.

3.

서형욱의 축구해설은 끔찍했다. 아나운서도 아마추어고, 해설가도 아마추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편해지는데, 이들의 불행은 끔찍한 축구해설의 절정판인 신문선이 더 이상 축구 해설을 하지 않게되었다는 데에 있을지도 모른다. SBS 축구방송을 보지 않은 건 신문선의 축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각본 없는 드라마 타령과 경기내용과 전혀 상관없는 자기 소설을 듣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문선은 개인적으로 존경해야하는 선배라고 하기는 하지만 축구해설만큼은 정말 끔찍했다.)

바로 며칠 전에 황선홍의 잔인할 정도로 정확한 해설이 없었다면 서형욱의 축구해설은 "그래도 신문선 보다는 낫쟎아"라는 평을 들을 정도이기는 한데, 이미 황선홍의 가감없는 잔인한 상황설명을 듣고 난 뒤라서 서형욱의 해설은 차라리 오락 축구 해설을 듣는 것 같았다.

황선홍이 멋진 말을 하나 남겼다.

"정말 한 골이 필요한 순간이... 꼭 한 골이 필요한 순간이... 내게는 너무나 많았다."

아, 그래! 내 인생에도 그런 순간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도 위안이 된 것은 꿔다놓은 보리자루가 된 안스러운 김태영과 황선홍의 상황이해를 비교하면서 수비수를 오래 하다보면 원래 공격진 맨 앞에서 벌어지는 작은 상황전개는 잘 모른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 정도일 것 같다.

(유럽의 전문 스포츠 채널의 축구방송에서 해설은 이렇게 호들갑스럽지 않고, 많은 여운과 시적인 독백을 가지고 있다.)

어지간해서 SBS는 안 보는데, 당분간 축구는 SBS를 보기로 마음을 먹는다.

별 것도 아닌 국내 평가전 하면서 또 뉴스의 30분을 축구로 떼우는 MBC 축구데스크를 보면서 앞으로 뉴스도 다른 걸 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SBS는 괜히 기분 나쁘기는 한데, 문화방송인지 축구문화방송인지 하는 방송만큼 기분 나쁘게 할 것 같지는 않다. 황선홍이 입고 있는 유치찬란한 SBS 유니폼을 보면서 "저걸 입고 싶어서 입고 있겠어?"라는 딱함이 들지만, 90분 내내 그 옷을 입고 있는 황선홍을 봐야하는 괴로운 순간은 1분도 되지 않는다.

(MBC에서 흘러나오는 귀곡성을 또 들을 생각하면 악몽이다! 난 늘 축구방송은 한 군데에서만 해야하고 채널권을 보장하라고 생각했지만, MBC의 귀곡성은 이 평소의 소신마저도 바꿔 버렸다. 귀곡성 나오는 MBC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고맙게 볼 것 같다.)

4.

축구방송에서 귀곡성이 울려퍼지는 동안 경기장 모습도 끔찍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붉은 악마에 대해서 오랫동안 도덕적 지지를 보내고 있던 것은 지난 올림픽 때에도 무조건 민족주의 코드로 가야한다는 정몽준류의 강공을 막아내고 민족주의가 붉은 악마라는 이름으로 관철되는 것을 막아냈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의 지역구단 정신도 지지한다.

상징적으로 지난 월드컵의 최대의 사건은 카드섹션에 결국 "Pride of Asia"라는 문구를 관철시켰기 때문이다. 멋진 친구들이었다. 그 때의 그 친구들은 아직도 남아있는지 그야말로 실각하고 제거되었는지 모르겠다.

생각이 사라지고 나면 갈 길은 뻔하다. 국내평가전의 카드섹션은 볼 것 없이 "대한민국"이라고 새겨놓았다. 완벽하게 쇼비니즘 코드로 갈겨댄다. 4년 전 붉은악마의 그 멋진 친구들은 어디로 갔는지 이제 볼 것 없이 쇼비니즘형 훌리건 모드로 질주한다. 보편주의와 예술 그리고 축구에 대한 사랑 같은게 사라진 우리나라의 월드컵은 이제 훌리건일 뿐이다. 유럽의 훌리건은 쇼비니즘 훌리건과 극빈자 훌리건 그리고 노동자를 주축으로 하는 계급 훌리건으로 대충 나눌 수 있는데, 우리나라는 극빈자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니니까 남은 건 쇼비니즘 훌리건 밖에 없다.

정몽준... 이제 물러난다고 하는데, 쇼비니즘 한 번 화끈하게 하고 물러난다. 축구계에서 야당 노릇하던 몇 년 전의 붉은악마는 이제 여당이 되어버렸는지 아니면 또 다른 게 생긴 건지 알 수가 없다 .

5. 축구를 끊던지 해야지...

경기? 경기는 재밌었다. 설기현, 이천수, 안정환이 그렇게 안 되어 보인 적이 없었고, 이천수가 안정환에게 요즘처럼 열심히 패스하고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살아남으려고 하는 걸 본 적이 없다. 왜 이들에게 축구가 90분 경기가 아니라 45분 경기인지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야구선수"와 "연구소"에 대한 루머가 사실인 것 같다. 더불어 "야구선수 3인방"에 대한 루머 역시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처음 보는 재미있는 현상이 있던 경기였다.

워낙 축구를 좋아해서 경기를 보기는 하는데, 앞으로는 국가대표 경기는 안 보고 K리그 경기만 보겠다는 요즘 줄줄이 선언하는 축구 아마추어들의 말이 이해가 가기는 한다. 나는 축구 아마추어급에는 들어가기에 수준이 아직 많이 떨어진다.

운동장의 카드섹션으로 적힌 "대한민국"이라는 글자를 보면서 "축구민국"이라는 말이 연상되었다.

공교로운 일이기는 하지만 지금의 "대한민국" 응원의 원형은 "수원삼성"이었다. 언제 수원 삼성이 대한민국으로 탈바꿈을 했는지, 난 아직도 예전에 듣던 삼성응원 구호의 환청이 자꾸 들린다.

축구로 흥한 자, 축구로 망하리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도 생각이 난다. 안타까운 MBC에 관한 이야기이다.

덩달아 EBS도 축구 얘기만 하고 있다.

축구 끊던지 해야지... 패가망신하지 않으려면...

6. 축구가 문제가 아니다.

월드컵에서 3패를 하든 아니면 더 위로 올라가든 하여간 월드컵은 조만간 끝난다. 전에는 거의 매 주 야구경기장에 갔었는데, 야구단에서 하는 작태에 진짜 신물나고 신물나서 내 돈은 10원도 야구에 줄 수 없다고 야구를 끊다시피 했다. 그래도 야구에는 축구협회가 없다. 실패했지만 선수협도 만들듯 한 적이 있다. (다시 한 번, 회장님 만세! 두고 보자, 양준혁!)

내년에는 정몽준 이후에 새로운 체계가 생길텐데, 지금 같아서는 앞으로도 축구는 가관일 것이다. 유소년 리그니 지역 리그니 하면서 사회 체육이니 하는 얘기들은 정말 흘러간 10년 전의 추억담이 되어버릴 것 같다.

그렇지만 축구가 문제가 아니다.

분출된 쇼비니즘 에너지가 어디로 갈 것인가? 앞으로가 정말 문제다. 모든 사람들이 축구를 알거나 좋아서 보는 것 같지는 않고, 태극기와 대한민국 때문에 보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꼭 만나보고 싶은 선수가 2년 전부터 역도선수 장미란이었는데, 이 여성이 얼마나 멋지고 얼마나 지혜로운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관심도 없는 것 같다. 태극기를 달고 덤벨을 들기는 장미란도 마찬가지였는데... 개인적으로 나중에 평전을 쓰자면 장미란의 평전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꽤 전부터 하고 있었다.

인류가 기억하고 있는 한도 내에서 가장 무거운 무게를 들어올린 여성이 장미란인데, 그녀에게는 멋진 일화들이 많이 있지만 쇼비니즘의 창구가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태극기를 흔들고 목 놓아 외치기에는 역기를 드는 시간이 너무 짧아서 그런 것이 아닐까? (장미란은 몇 년 전부터 입만 열면 권상우 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더니 극적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나서야 결국은 만났나보다.)

한참 물오른 우리나라의 쇼비니즘 에너지가 과연 축구에만 아니면 스포츠에만 머물러 있을까? 이 힘이 분출해서 어디로 터져나갈까 나는 사실 두렵다.

마케팅과 결합한 쇼비니즘이 마케팅으로만 끝날까?

그야말로 귀곡성이 흘러나오는 것 같다. 어디선가 진짜 곡소리가 나야 이 쇼비니즘은 끝이 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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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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