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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여승무원들의 눈물, 다음 차례는 누구인가?
[비나리의 초록공명] 대한민국의 민주, 지금 저들 어깨 위에서 울고있다
 
우석훈   기사입력  2006/05/25 [13:06]
1.

환경운동연합이라는 조직이 있다. 단식과 삭발은 거의 하지 않는 조직인데, 환경운동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 자체가 건강함 그리고 아름다움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런 나름대로의 문화가 생겨났다고 이해하고 있었다. 단식하거나 삭발하지 않더라도 자신의 울분과 시대의 아픔을 표현할 수 있는 몇 가지 상징들을 만들어낼 수는 있다.

세종로의 이순신 장군 동상에 마스크를 씌워주는 퍼포먼스는 환경운동연합이 만들어낸 멋진 상징이다. 그 모양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몇 명의 활동가가 꽤 오랜 기간 실내암벽을 타기도 했다. 이제 지역의원으로 출마하는 어느 활동가가 바로 그런 상징들의 한 부분이 되었던 사람이다.

환경운동연합이 다시 삭발을 시작한 것은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고 얼마 되지 않을 때의 일이다. 동강댐을 막아설 때에도 삭발이나 단식이 동원되지는 않았다. 동강 사건은 정치가 민주화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던 일이고, 이 사회에 조금씩이지만 대화와 타협이 가능할 수 있다는 시대의 발전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노무현 정부가 등장하고 환경운동연합이 삭발과 단식을 하게 되었다. 새만금 때 벌어진 일이다.

노무현 정부 이후로 중요한 단식을 살펴보면 지율스님이 길고 긴 단식이 있었고, 강기갑 의원이 쌀시장 개방과 관련된 이면합의를 공개하라며 길게 단식을 했고, 하다못해 권영길 의원도 국회 바닥에 앉아서 단식을 했다.

그리고 이제 집단 해고된 260명의 KTX 여승무원들을 대표해서 지도부가 단식을 시작했다.

▲ KTX여승무원 지도부 2명이 농성중인 서울역 대합실에서 단식을 시작했다.     © 대자보

단식하지 않으면 눈도 깜빡하지 않는 정부라서 싫어도 단식을 하게 된다. 지율스님의 초인적 단식 이후로 그나마도 회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단식 기간이 길어지지 않으면 본 척도 하지 않는다.

말로 하면 안 될까? 잘 안 되는 것 같다. 말로 하면 뒤에서 공작을 하거나 여론을 반대편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 택도 없는 소리들을 만들어내거나 “타협하는 법”을 배우라고 점잖게 훈수를 둔다.

평화시위는 보장한다고 하지만 그것도 다 하는 얘기에 불과하다.

언제나 시대이성은 가장 춥고 어두운 곳에서 신음하고 울면서 시대와 같이 살아간다. 지금 우리의 시대이성은 청와대에 있지 않고, 신문사 데스크에서 신문기조를 결정하거나 기사를 손질하면서 앞 길을 계산하지는 않는다.

지금 우리 시대의 시대 이성은 화려한 색조로 만개한 지자체장들의 이미지 선거에 있지 않다.

지금 우리 시대의 시대이성은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며 한명숙 총리와 단 한 번이라도 면담을 했으면 좋겠다고 요구하고 있는 KTX 여승무원의 차가운 농성장에서 함께 울고 있다.

깨어나 외치라, 이성이여!

권력의 단맛에 흠뻑 빠져 시대를 조율하는 듯한 공무원 생활의 단맛에 흠뻑 빠져 있는 노무현 대통령이나 한명숙 총리나 이철 철도공사 사장에게 숫자로 정리되어 올라가는 보고서가 시대이성은 아니다. 그 대신에 260명의 여성, 260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그리고 사회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았던 260명의 우리 젊은이들과 함께 울고 있는 것이 바로 이 시대의 이성이다. 

시대이성이여, 울지 말고 일어나 진리를 외쳐다오!

2. 여기에 우리 아이들의 미래가 있다

KTX 여승무원 문제는 그렇게 어려운 문제는 아니다. 약간 복잡하기는 하지만, 260명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면 끝나는 일이다. 돈으로 계산하면 연봉 3,000만원으로 계산하면 연간 78억원이 필요하다. 별정직 계약을 통해서 용역회사에 들어가는 비용에서 추가로 더 많이 들어가지 않게 해줄 수 있는 방법이 몇 가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이건 돈의 문제는 아니다. 돈 때문에 집단해고한 것이라면 문제는 다른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철과 한명숙 그리고 노무현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지배자들은 뭐가 KTX 여승무원들에게 그렇게 못마땅한 것일까?

그건 그들이 정규직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별협상을 하지 않고 단체협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명씩 한 명씩 요구해왔더면 선별적으로 몇 명 받아주는 것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들은 이제 하나의 '집단'이기 때문이다.

  © 대자보

'세대'의 관점으로 보면 한 명씩 한 명씩 "자신의 일은 자신이 알아서 하자"라는 시대를 노무현 대통령은 그렇게 열고 싶어하는 것 같다. 영화인들에게 말한 "그렇게 자신이 없느냐"라는 말이나, 죽어라고 영어를 하면 살 길이 열린다는 말이나, 우리 민족이 유능한 민족이라는 사실을 외국에 나가보고 깨달았다는 말이나 그 함의는 전부 같다.

5·18의 저항정신으로는 이 시대를 살아갈 수 없다는 말도 본질적으로는 전부 같은 얘기이다.

정규직의 공무원 그리고 기업의 테크노크라트의 정규직들로 나머지 80%의 사람들을 지배하는 시기를 열겠다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정신인 것 같다. 경제와 사회구성의 관점에서 한나라당의 보수 우파라면 열린우리당은 경제적인 관점에서 극우파 노선을 걷고 있다. 입으로야 무슨 말을 못할까!

노무현 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는 미래는 이 20%가 2만 불의 시대를 열고 나머지 80%는 비정규직 아니면 도시빈민이 되는 시기이다. 나머지 80%는? '내부 식민지'라는 말을 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착취'와 같은 고급스러운 용어가 아니라 '수탈'이라는 야만스러운 재분배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는 식민지 노예의 삶이 펼쳐질 것이다.

지금 10대, 그들은 모두 사회의 자식들이지만 그들에게 펼쳐진 미래의 모습이 바로 KTX 여승무원들의 모습이다. 영어와 수능 혹은 논술시험은 모두 시스템 안의 지배층으로 들어올 20%를 골라내는 과정에 불과하다.

나머지 80%는 한국에서 도시빈민으로 살아가거나 이민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모자라는 노동력은 어떻게? 한국에서 노예처럼 살아갈 노동자는 전 세계에 많다는 것이 우리나라 극우파들이 제시한 해법이다. 이 시스템에서 문제는 딱 한 가지 밖에 없다. 연금과 같이 이미 전 세대에 성공적인 미래를 보장받았던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지불에서 문제가 생기게 된다.

80%의 노예가 될 것이 뻔하고, 설령 20%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해도 지옥과 같은 사교육 전쟁을 뚫어야 하는데, 누가 아이를 낳을 것인가?

지금 단식을 시작한 KTX 여승무원, 이들의 모습에 바로 우리 아이들의 미래의 모습이다. 젊은 여성을 소모품으로 사용하고 최저의 임금과 절대로 단체가 되지 않을 개인들과 거래하겠다는 한국의 천민 자본주의가 여기에 만개했노라!

그래서 시대 이성은 지금 이 260명의 농성자들과 함께 울고 있다. 이제 어른이 될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들의 불쌍한 미래에 고통스러워하며 지금 아스팔트 위에서 울고 있다.

▲ KTX여승무원이 한명숙 국무총리에게 글을 적고 있다.     © 대자보

3. 대화하라!

DJ가 비정규직이라는 제도를 만들었다. KTX의 여승무원 제도도 현 정부에서 만든 것은 아니다. DJ는 사회안전망과 신자유주의적 질서라는 두 개의 잘 조화되지 않는 시스템을 만들고 위태하며 불안한 균형잡기를 했었다.

노무현 정부는 사회안전망의 정신을 버리고 신자유주의만을 집어 들었다. 역순으로 짚어보면 "2만불 경제"로 통치의 기조를 잡는 순간이 바로 이 선택의 순간이다. 정부와 국민 사이에 대화가 사라지고, 토론이 사라지고, 더 이상 할 얘기가 없어진 것이 바로 이 순간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사람들 마음이 떠난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80% 해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3년동안 정치는 사라지고 공작만이 난무했다. 설득은 사라지고 선무만이 작동했고, 그래서 끝으로 내몰린 사람들이 단식과 삭발을 할 수밖에 없던 것이 이 시대인 셈이다.

KTX 여승무원을 노동자로 보고 공작대상자로 치부한 것은 현 정부이다. DJ가 열어제낀 DJ의 판도라상자인 비정규직이 '경쟁력'이라고 인식하고 은근히 즐기며, 국민을 공작의 대상으로 간주한 것이 바로 이 정부이다.

우리나라의 모든 비정규직 중에서 그래도 여건이 나은 편인 KTX 여승무원들이 이렇게 '단체'로 움직이는 것이 불편한가? 그들이 흐트러지지 않고 80동안 버텨온 것은 시대정신이 이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 평균적이고 정상적인 10대의 미래가 바로 이들의 모습이다. 시스템 개혁한다고 노무현과 386들이 열어제낀 우리의 미래는 바로 비정규직에 대한 수탈의 공화국이다.

지금 이들과 대화하라.

우리나라에서 100억 원 약간 안 되는 돈이 더 지출된다고 나라 망하는 것도 아니고, 철도공사가 붕괴하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에게 거짓 꿈을 심어줄지언정 이들과 대화하고 타협안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이들과 대화하라. 이건 260명 비정규직 노동자와의 대화가 아니라 수탈의 시대를 살아가야 할 모든 10대와 20대들과 대화하는 것이다.

모든 조정과 협의가 실패했을 때 정치가 작동하는 것이다.

왜 이 여성노동자들이 여성 총리를 찾고 있는지 야속한가? 총리가 원래 이런 일 하라고 있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악의 시대에 꽃과 같은 얼굴 노릇하라고 총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지금 시대이성이 이 260명과 함께 하며 울고 있다. 이들의 손을 잡고 대화를 시작할 때 비로소 앞으로 펼쳐질 수탈의 시대, 전 세대가 뒷 세대를 수탈하는 악의 고리를 끊고 타협할 수 있는 어려운 해법이 첫 발이 펼쳐진다.

한미 FTA에 우리나라의 시대이성이 있을까? 이라크에 파병된 장병들의 하루하루에 시대정신이 함께 하고 있을까? 지금 이 순간 시대이성은 바로 KTX 여승무원들과 함께 하고 있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대화하라. 그들이 흘리는 눈물은 이 수탈의 시대에 모든 10대와 20대가 흘리는 눈물이고, 앞으로 도시빈민이 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서 신음하는 어린이들이 흘리는 눈물이다.

이들이 눈물을 그치고 어쩔 수 없이 뿔뿔이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시대이성도 눈물을 그치고 그 대신 분노로 응징할 것이다. 역사의 심판은 시대정신의 분노를 의미한다.

악수하고 인사 받고 결정하는 잔재미에 푹 빠져있는 총리와 대통령 그리고 정부기관의 사장들, 당신들은 지금 시대이성이 길바닥에 앉아서 울고 있는 것을 보고 있다.

이 눈물이 끝나고 나면 지난 10년 동안 멕시코와 중남미 민중들의 신음이 이 땅에서도 펼쳐지게 된다. 지금 그 전환점에 서 있다.

그야말로 하나님이 보우하사 KTX 여승무원들이 시대의 짐을 지고 광야에 홀로서서 마지막 시대이성을 접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민주는 지금 저들의 어깨 위에서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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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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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5/25 [13:0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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