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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고전에서 한국 대표팀 패배의 사회경제학
[비나리의 초록공명] 축구 쇼비니즘 광풍의 도도한 흐름, 이제 막지못해
 
우석훈   기사입력  2006/05/20 [15:11]
1. “애국자”와 월드컵 토고전
 
예전에 생태운동하시던 선생님들은 뭔가 잘 하면 “그래 네가 바로 애국자야”라는 표현을 하셨다고 하신다. 국가도 정부도 그리고 이념도 믿지 못하겠다고 우리나라 건설공화국의 토대가 생기던 새마을 시절에 유기농업 하시던 정말 선각자에 해당하시는 분들이 “애국자”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좀 의아하기는 하지만 하여간 그 시절 할아버지들은 뭔가 좋은 사람을 보면 애국자라는 표현을 기꺼이 쓰셨다. 뜻을 풀어본다면 “근본에 충실한 사람” 정도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2.
 
토고전이 가까와진다. 토고전에 한국국가대표팀이 패배하기를 열심히 바라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된다. 내놓고 얘기하면 맞아죽을 얘기일지도 모른다. 아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토고전 승리를 기원하고 일부 신문사에서는 이 날 패배하면 뒷감당할 수 없다고 방방거리는 이 시점에서 토고전의 패배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있다니...
 
그렇지만 예전 할아버지들의 표현대로라면 이 사람들도 애국자는 애국자다. 우리나라의 축구 쇼비니즘은 위험한 수위를 한참 넘어간 지경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축구 쇼비니즘은 마케팅과 결합하기도 하지만 대중정치와도 결합하면서 사실 위험 수위를 많이 넘어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토고전의 패배를 바라고 있다.
 
3. 
 
국가대표팀이 잘 하든 못 하든 그건 축구에 관한 일일 뿐이고, 그냥 축구 경기 몇 개일 뿐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쇼비니즘이 강화될 것이 뻔한 앞으로의 흐름에서 월드컵의 좋은 성적이 그냥 좋다고 넋놓고 바라보며 박수치고만 있기에는 좀 안타까움이 생긴다.
 
4.
 
월드컵 축구에 대한 경제성 평가 같은 걸 해보면 어떻게 될까? 직접 효과들은 무조건 +로 나올 것이다.
 
월드컵 배당금이 +로 나올 것인데, 정확하게 계산하면 국가대표팀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비용과 감독에 대한 임금 같은 것들이 대변으로 들어갈 것이고, 차변에는 각종 수익금들이 잡힐 것이다.
 
여기에 향후 국가대표팀에서 뛰었던 선수들의 연봉 상승 중에서 외국에 진출하는 선수들의 몫이 +로 잡힐 것이다.
 
그리고 국내 시장에서 마케팅을 위해서 사용된 돈과 여기에 동원된 사람들의 임금이 다시 + 요인으로 잡힐 것이다.
 
간접효과들에 대한 평가는 기술적으로 조금 어렵기는 하다. 국가홍보효과라는 걸 주로 잡는데, ‘한국’이라는 브랜드가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축구가 아니었다면 직접 광고를 했을 때 노출시간에 대해서 지출해야 할 비용과 이 경기를 보았을 사람들의 숫자 같은 걸 감안해서 홍보효과라는 항목을 하나 잡을 수 있다. 많이 쓰는 수법이다.
 
그리고 수출진작 효과 같은 걸 잡기도 하는데, 월드컵 기간 후 일정 기간 동안에 우리나라 상품이 얼마나 수출이 늘었는가를 통해서 평가한다. 베이스라인 설정이 어렵기 때문에 정확한 금액을 잡기에는 무리가 좀 있기는 하지만, 전혀 수출이 되지 않던 상품이나 월드컵 특수에 관한 상품들인 경우에는 이렇게 하는 것도 아주 무리가 있는 방법은 아니다.
 
대체적으로 이렇게 직간접효과 같은 걸 잡는데, 어떻게 평가하더라도 워낙 시장 규모가 큰 월드컵이라서 경제성은 편익/비용비율이 1보다 높게 된다. 즉 경제성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말하면 입 아픈 이야기이다.
 
5. 월드컵과 쇼비니즘, 그리고 철학
 
국민들이 기분이 좋아지거나 나빠지는 것은 어떻게 평가하지? 이런 건 고려대상에 들어가지 않는다. 물론 논리적으로 그만큼 기분이 좋아지기 위해서는 술을 얼마를 공급해야 하는가 아니면 마약을 얼마만큼 공급해야 하는가 - 프로이드가 생각했던 것처럼 - 를 해볼 수는 있는데, 그런 건 경제성평가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기분이야 좋거나 말거나의 문제이다.
 
쇼비니즘의 경우에는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이건 경제성평가에서 다룰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물론 경제성평가도 하나의 사건 혹은 사업에 대한 평가기간을 100년 정도로 잡기 때문에 억지로 다루자고 하면 다룰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무리한 논리전개가 발생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철학의 문제에 더 가까울 것 같다.
 
6. 나는 토고전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지?
 
물론 이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기는 한데,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생각하는지 그 근거를 잘 모르겠다. 어쩌면 토고전 한 게임 진다고 해서 혹은 월드컵 조별리그 통과에 실패한다고 해서 별로 변할 것이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축구만 진다면 우리나라의 축구 쇼비니즘의 광풍이 사라질 것 같으면 나도 당연히 은근히 졌으면하고 기대할 것 같지만 이제는 에너지가 터져나올 돌파구를 찾아다니는 상황이기 때문에 진다고 해봐야 별 특별한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크게 보면 우리나라는 농경문명권에서 상업문명권으로 바뀌는 중이다. 그 와중에 애국주의가 하나의 매개로 작용하는 것 같은데, 축구는 작은 구심점에 불과하다. 그 도도한 변화와 흐름을 토고전 하나가 변화시킬 것 같지는 않다.
 
한 때는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리전 양상을 갖기도 했던 축구가 우리나라에서는 이제 쇼비니즘의 분출구에 불과하다.
 
7. 아주 특별한 질문
 
토고전에 대해서 뭐가 애국자이고 누가 애국자인가라는 질문은 경박한 질문이기는 한데,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기도 하다.
 
확실한 것은 토고전의 한국전 패배를 기원하는 사람들 중 내가 본 사람들은 대부분이 철학자들이고, 일부는 종교학자들이고, 또 일부는 문학가들이다.
 
엔지니어들 중에서는 아직 못 봤고, 물리학이나 생물학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아직 못봤다. 과학자들은 축구에 졌으면 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아직 못 봤고 그냥 월드컵 경기는 보지 않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좀 봤다.
 
경제학자들 중에서는 월드컵 열풍이 문제가 있다고 하는 사람을 딱 한 명 봤다.
 
토고전에 한국팀이 이기기를 바라냐 지기를 바라냐? 이거 아주 어려운 질문이고, 나도 아직 답을 준비하지는 못했다.
 
우리나라에는 이 날 한국팀이 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백 명 정도 되지 않을까하는 별 근거 없는 생각을 해본다.
 
또 하나의 질문은 그렇다면 이 100명일지 만 명일지 모르는 이 사람들이 애국자이야 아니면 나머지 사람들이 애국자인 것이냐? 별로 좋은 질문의 형태는 아니지만, 70년대 박정희 시절에 새마을운동을 반대했던 할아버지들의 입에서 나왔던 “애국자”라는 말의 함의에 대해서 한 번쯤 다시 돌아보게 되는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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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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