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나리의 초록세상 만들기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견마형 전투로봇과 과학의 윤리철학
[비나리의 초록공명] 과학기술의 패권주의 악용 성찰해봐야
 
우석훈   기사입력  2006/04/19 [09:20]
나도 아이작 아시모프를 읽으면서 자랐던 세대라서 로봇 3원칙과 로봇 심리학 그리고 인공지능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 아주 재밌어하는 편이다. 내가 하던 공부의 방향을 상당히 전환했던 데에는 허버트 사이몬(H. Simon)의 인공지능 이론이 아주 충격적이었는데, 스물 두살에 컴퓨터가 어떻게 결국 체스 챔피언을 이기게 되는가가 사실 좀 충격적이었다. 그 이후로 국부지식(tacit knowledge)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고, 스물 두 살 이후로 나의 경제학은 다른 사람의 경제학과 많이 다르게 되었다.

1. 로봇에 대해서 매료된 사람이 너무 많다
 
우리나라에도 견마형 로봇의 개발이 거의 완료 단계에 있어서 곧 휴전선 일대에 투입될 예정이다. 몇 가지 좀 생각해보고 논의해야 할 것들이 있을 것 같은데, 사람들이 워낙 로봇을 좋아하는데다 일종의 황우석 신드롬과 비슷하게 그냥 좋은 거라고 그냥 막 개발단계에서 실용화 단계로 넘어가는 중이다.
 
이런 건 외국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이 이란과 전쟁을 할지 안할지에 대해서 예의 주시하고 있는데, 미리 판단하기는  미국이라는 대 제국도 이란과 전쟁을 하면 그걸로 끝일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문제는 미국도 그 상황을 알고 있지만 이란도 알고 있다는 점이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어간다. 미국 우파들이 60년대 만들어낸 최고의 베스트 셀러 핵억제력 독트린과 그에 연장선 위에 있는 '항구 전쟁(permanent war)'에 관한 이론들 그리고 클린턴 2기에 소위 네오콘들이 처음 세를 형성하면서 제시한 '비대칭성 전쟁'이라는 몇 가지 이론 위에 현재의 부시 체계가 서 있다. 가끔은 미국의 신자유주의 때문에 문제라고 하지만 정말로 미국 정부에서 신자유주의를 강조한 것은 클린턴 때의 일이고 부시 때에는 전쟁과 관련된 이론들이 새로 생겨난 것들이 많다.
 
그런데 루즈벨트 대통령의 2차 대전 참전은 미국을 대공황으로부터 탈출하게 해주었지만 부시의 전쟁은 가까스로 재정적자 누적의 파국에서 나오려던 미국을 다시 재정적자 상태로 몰아넣게 된다. 사실 미국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세계 경제의 기축통화인 달러의 발권력이 아니라면 현재 미국 경제는 지급불능 상태에 가깝다. 그래도 마음대로 발권을 못하는 것은 그 순간에 전 세계에서 달러 투매가 벌어질 것이기 때문에 이게 마지막 제국의 몰락 시나리오 중에 하나를 격발시키게 된다. 미안하지만 미국이라는 제국이 망한다면 좋아할 사람은 세상에 많다. 쌍둥이 적자니 이상한 용어들을 사용하지만, 현상적으로만 본다면 미국은 저축률이 너무 낮고, 소비율이 너무 높다. 집안으로 보자면 빚내서 소비하는 상황을 30년 계속 해왔기 때문에 클린턴처럼 이해하기 어렵게 운이 좋은 정치인이 다시 등장해서 미국 경제에 활력을 넣어주기 전에는 미국 경제가 살아나기는 어렵다고 보통 본다.
 
이 상황을 잘 아는 이란은 70년대 냉전시대에 미국이 몰아치던 핵무장 전략을 다시 맨 앞으로 끄집어내었다. 이란과 이라크는 내가 아는 한에서는 좀 다르다. 약간은 국가의 의사결정이고 시스템이 내린 결정이라서 간단하게 폭격한다고 끝나는 사정은 아니고, 가까스로 유지되던 세계적 균형을 깨뜨릴 때 이게 미국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갈까... 아니라는 점은 미국도 잘 안다. 그래서 중국이나 소련도 지난 10년 동안 이를 악물고 참았던 굴욕의 시간 속에서 일종의 역습이 시작된 셈이다.
 
문제는 빨리 이라크에서 어떻게든 발을 빼거나 뭔가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는 카드가 필요한데, 미국에게는 이게 없다. 이미 UN의 동의 없이 이라크 전을 치르면서 소위 동맹국 국가들의 정권까지 위태롭게 만들고 있는 상태라서 또 하나의 전쟁을 치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전투형 로봇이 실전에 투입될 사회적 배경이 이렇게 해서 성숙되게 되었다. 지금까지 미국은 주로 무인항공기 쪽으로 기술개발 방향을 잡고 있었는데, 작전 반경도 높을 뿐더러 물리적인 의미에서 경제성도 높을 수 있다. 사람을 태우지 않으니까 더 초소형 개발이 가능하고, 물리적인 극단의 회전반경도 응용할 수 있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야전투입용 로봇은 앞으로 수 십 년 뒤의 일일 것이라고 보통은 예견했다. 윤리적인 문제가 만만치 않을 뿐더러 실제로 야전투입에 사람을 대체한다고 해서 엄청난 경제적 이익이 발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라크전이 길어지면서 실제로 기관단총을 단 야전로봇이 실전에 투입하는 것을 미국이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이 로봇에게 총을 맞고 또 그렇게 달려오는 로봇에게 총을 쏘거나 무력화하기 위해서 작전을 하는 일을 보게 되는 것이 몇 년 남지 않았다.
 
만약 이라크에 파견된 군인의 절반이라도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다면? 미국 입장에서 전투 로봇은 역설적으로 평화의 메시지이다. 물론 당하는 이라크 입장에서는 황당할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견마형 로봇이 훨씬 더 실전에 배치되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으로 기술적으로 진보한 것이라고 한다면 열망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데에다가 이게 뭐든지 수출만 된다면 '절대선'이라는 윤리 구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한국이나... 아이작 아시모프의 로봇 3원칙을 생각해보는 건 그야말로 소설책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아니 지금 당장 전투에 투입시킬 수 있는데,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된다는 이상한 코드를 삽입하라고? 현실에서의 로봇은 패권주의의 연장일 뿐이다.
 
남미의 게릴라 진압전에 로봇이 투입되는 것을 보는 것도 그렇게 오래 남지 않았다. 핵억제력을 대체할 로봇억제력 같은 독트린이 등장하게 될 것이고, 윤리적인 문제와 국제적 힘의 균형을 어떻게 만들어낼지에 대해서 앞으로 전면적인 논의에 들어갈 것이다.
 
2. 스위스 정부의 농업 장기계획
 
스위스에서 작년 말에 새로운 농업계획에 대한 장비비전을 제출했는데, 현실적으로는 WTO 개방이 목전에 놓이면서 기존의 보조금을 대체할 생태보조금을 강화시키는 것과 시장 내에서 자국 농업을 지키기 위한 시장 메카니즘 확대라는 두 가지가 골조로 되어있다. 붉은 십자가를 로고로 하는 스위스 농업의 표준 로고를 사용할 것인지 말 것인지 같은 현실적 문제들과 고도각 즉 땅의 기울기에 따른 보조금을 얼마나 높일 것인가... 우리나라로서는 꿈 같은 얘기들이 현실적으로 당장 의사결정 해야하는 문제 중의 하나인가보다.
 
이 보고서 중간에 장기적 검토 사항으로 'robotization' 문제가 들어가 있다. 유기농으로 전환을 하다보면 결국 사람의 손이 들어가야 하는데, 길게 보면 외국인 노동 문제 같은 것들이 다시 등장하게 된다. 유기농에 투입되는 사람들에게 사회적으로 훨씬 많은 보조금을 지급하게 되는데, 이러다보니까 체코나 헝거리 같은 인근 지역의 난민들이 이러한 보조금을 받고 싶어서 정치적 망명을 추진하는데, 인구 천 만 명이 안되는 스위스로서는 좀 급하게 해결하기에 좀 어려운 문제인 셈이다.
 
그러다보니까 결국 생태적으로 지역을 지킬 수 있는 농업을 고민하던 사람들 사이에서 로봇의 도입 문제에 대해서 논의가 시작된 모양이다. 잡초 뽑는 로봇인 셈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우렁이와 오리가 하는 일들을 로봇을 투입하면 될 것 아니냐는 얘기가 시작된 셈이다.
 
기술적인 논의만으로만 보자면 헬기로 농약을 뿌리는 게 좋으냐 아니면 그 대신에 로봇을 투입하는 것이냐라는 간단한 논의이기도 하고, 시스템 분석을 한다고 하면 coverage와 농지의 종단에서의 질소나 암모니아 잔류량 그리고 제초제성분의 잔류량에 사람의 보건비용 단가 같은 걸 곱해서 해볼 수 있고 또 온실가스를 중심으로 에너지 사용량에 관한 매스 발랜스 계산 같은 것도 해볼 수 있기는 하다. 대체적으로 사람의 보건비용을 높이면 로봇을 투입하는 것이 좋게 나올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무조건 헬기가 좋게 나올 것이다.
 
기술적 논의와 경제적 논의와는 별도로 아무래도 유기농업에 로봇을 투입하는 문제는 조금 더 본질적인 철학논의와 연관되어 있을 것이다. 이걸 정책에서는 간단하게 '도덕적 문제'라고 표현하기는 한다. 
 
경제성 때문에 당장 로봇을 농업에 투입하게 되지는 않지만 유럽의 현재 시스템이 유지되지 않고 별도로 새로운 도덕 같은 것이 사회적 설득력을 얻게되는 변화없이 '안전한 농산물'이라는 개념만 앞으로 나서게 되면 언젠가는 농업에도 로봇이 투입되게 된다.
 
이걸 WTO의 용어를 사용하자면 PPMs(Process and Productions Methods)에 따른 '동일상품원칙(likelihood product)'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WTO 논의에서 기술적으로 가장 어려운 문제 중의 하나이다. 원래는 같은 제품을 외국에서 만들었다고 차별하면 안된다는, 원산지 표시와 관련된 논의에서 시작되었는데, 가장 최근의 판례로는 멕시코에서 크릴 새우를 잡아들일 때 보호종인 고래가 같이 딸려 와서 이 크릴 새우에 대해서 미국에서 경제조치를 취했는데, 이걸 NAFTA에서 처리하지 못하고 결국 WTO까지 왔다. 답하기가 너무 어려운 문제라서 다시 NAFTA내에서 논의하라고 돌려보냈다.
 
PPMs가 공식적으로 들어가 있는 유일한 국제협약이 몬트리올 의정서의 경우인데, 이 때만 해도 선진국이 순진해서 들어간 것이고, 기후변화협약 때에는 빠졌다.
 
결국 제품을 생산할 때 어떤 방법을 사용할 것인가에 의해서 제품을 차별할 것인가 말 것인가의 문제인데, 이건 아직도 명확한 답이 WTO 내에 없다. 있다고 하면 부작용이 너무 심하고, 없다고 하면 반발이 너무 심해서 그렇다.
 
로봇으로 생산하는 것과 사람이 손으로 만든 유기농산물은 같은 제품이야 아니야? 요약하면 이 질문이다. 현 WTO 내에서는 답이 없다.
 
자본주의 사회가 후기산업사회를 넘어가면서 농업을 통한 정착형 삶의 방식이라는 대안이 제기되고 있는 최근의 외국의 흐름을 생각해보면 농업에 대한 로봇의 투입이라는 것은 좀 극단적으로 복잡한 철학적 문제와 함께 인류사적 연구대상이기는 하다.
 
3. 위험한 일과 귀찮은 일
 
이미 우리나라를 포함해서 인도에 이르기까지 산업현장에 로봇이 투입된 역사는 50년 가까이 되는데,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들이 이제는 과거에 사용되지 않았던 위험한 일과 귀찮은 일이라는 부문에 전면화되는 일들이 정말이지 바로 눈앞으로 다가왔다.
 
로봇을 형태에 의해서 인간형이냐 견마형이냐 혹은 차량형이냐라고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는 없다. 로봇을 움직이는 '인공지능'의 형태에 의해서 학습형이냐 아니냐를 따져볼 필요가 있고, 국부상황에서 어떻게 대응하는 '진화' 메카니즘을 가질 것이냐로 로봇을 구분해야 할 것이다.
 
아이작 아시모프는 로봇이 사람을 고의로 죽이는 일은 없으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을 가졌지만 현실에서는 거리가 멀다. 아니, 아군의 피해없이 사람을 죽이거나 체포하기 위해서 로봇을 투입하는 건데 죽이면 안된다니...
 
미국에서는 이라크 전선에 언제 전투형 로봇을 투입할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 중이고, 스위스 정부는 정부 연구개발로 농업에 투입할 로봇을 개발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고민 중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급한 문제는 휴전선에 투입될 견마형 전투로봇인데,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흐뭇하게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는데, 과연 북한에서 넘어오는 간첩 혹은 비슷한 그 무엇은 로봇한테 감시되고 방어될 존재인가라는 간단한 문제에서부터 로봇의 산업화가 과연 장기적으로 국익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그리고 설령 투입한다고 하더라도 이 사회에서 어떠한 윤리와 철학을 가지고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복잡한 고민들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은데, 하여간 황우석 사태와 거의 비슷하게 견마형 로봇이 3년 째 열심히 추진되고 있다.
 
그나마 정권에서 전투형 로봇개발을 정권의 공으로 아직은 전면화시키고 있지 않은 게 약간의 다행이기는 한데, 실제 현장에 투입될 시점이면 또 난리부르스 한 번을 겪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5대 로봇강국에 대충 들어가는 편이다. 로봇만 전공으로 배우는 고등학교도 있다.
 
나도 로봇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은 로봇을 너무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서 필요한 질문을 잘 안하는 것 같다.
 
지금은 위험한 곳과 귀찮은 곳에 투입되지만 조금 지나면 파업이 많은 산업부문부터 더 많은 인공지능형 로봇이 투입될 것이다. 그 때에는 기술 논의가 아니라 완전히 경제논의로 바뀌게 될 것이다. 아직도 자본론의 펼쳐지지 않은 마지막 순간에 대한 논의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닌 것 같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6/04/19 [09:20]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