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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대외경제연구원장의 산수실력?
[분석] 대미무역 흑자 감소폭이 71억달러에서 47억달러는 근거없는 소설
 
우석훈   기사입력  2006/04/15 [02:55]
한미 FTA, KIEP 원장의 근거없는 반박

월간 <말>지의 보도에 의하면 대외경제연구원(KIEP)이 어디에서인가 외압을 받아서 숫자를 고쳐서 발표했다고 하는데, 다음 날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이 그런 일 절대 없다고 강력 반박을 했다고 한다.
 
누구 말이 맞나? 본 보고서를 보고 찾아보면 간단한 일을 가지고 몇 쪽짜리 요약문에 작업가설도 다 빠진 표 두 장을 들고서 세밀히 살펴봐야 하는 일이라서 좀 추접스러운 일이기는 한데, 초등학교 5학년의 산수 실력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간단한 거라서 좀 살펴보도록 하자.
 
자, 우리의 원장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KIEP 원장, 한미 FTA 수치조작 강력 반박 [파이낸셜뉴스 2006-04-14 01:12]
 
이경태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은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수치를 조작했다는 주장을 강력히 반박했다.
이 원장은 13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대미 무역수지 흑자 감소폭이 당초 71억달러에서 47억달러로 줄어든 것과 관련 “한·미 FTA 체결시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71억달러 감소할 전망이지만 쌀을 개방 대상에서 제외하면 흑자 감소폭은 47억달러로 줄어든다”고 말했다.
이 원장은 “여러가지 모형 방법이나 가정에 따라 다르겠지만 한·미 FTA가 체결되고 관세가 철폐되면 대미 무역수지 흑자 감소폭은 71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는 쌀을 개방했을 경우”라고 설명했다. 그는 “쌀 개방을 제외하면 대미 무역수지 흑자는 47억달러 감소하지만 기업 생산성 향상 등으로 전세계 무역수지 흑자는 6억달러 가량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3월3일 FTA 관련 세미나에서 발표된 KIEP 보고서에는 대미 무역수지 흑자 감소폭이 71억달러로 추산됐다가 이후 47억달러로 줄어든 보고서가 발표돼 일부 언론과 국회에서 수치 조작 논란이 제기된바 있다.
이와 관련 이 원장은 “FTA 세미나에서 농촌경제연구원과 산업연구원 등도 쌀을 개방 대상에서 제외하고 보고서를 작성했다”면서 “이는 정부에서 일단 쌀은 개방대상에서 제외하려고 하고 국민들의 요구도 그런 것으로 판단해 쌀을 제외하는 것이 현실성이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 원장은 “대미 무역수지 흑자 감소 규모가 71억달러에서 47억달러로 줄어들면 FTA에 따른 우리나라의 GDP 성장효과도 당초 7.99%에서 7.29%로 약 0.7%포인트 줄어든다”면서 “변화가 작아 통계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판단해서 수정하지 않았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원장은 “KIEP 연구작업은 한두 사람이 하는게 아니라 모형을 돌려서 결과가 나오면 10명이 넘는 FTA 전문가들이 토론하면서 검증하는 투명한 과정을 거친다”면서 “일부에서 제기하듯 외부 압력에 의한 숫자 조작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요약하면 원래의 보고서에는 무역적자가 71억 달러로 되어 있는데, 나중에 개봉한 보고서에는 무역적자가 49억 달러로 줄어들어 있는데, 이건 조작이 아니라 순전히“농업을 개방하지 않은 효과로 모델을 다시 계산한 거니까 우기시지 마시라" 같은 얘기로 볼 수 있다. 자, 그럼 징그러운 표 한 장을 지금부터 살펴보자.

▲KIEP가 3월 3일 보고서 발표 직전 삭제한 부분(위)과 이홍식 KIEP FTA 팀장이 지난 4월 4일 『말』에 제시한 보고서의 일부(아래). 대미 무역수지     ©KIEP

표 안에 답이 있다. 보기 편하게 두 표를 간단한 숫자로 바꾸고, 숫자마다 기호를 붙여보자. 괄호안은 지칭을 위한 표기이다.
 
                   원보고서     수정한 보고서
대외수출        27.3%↑ (a)     22.7%↑ (b)
수입            58.96%↑ (c)   44.4%↑ (d)
무역수지        72.7억달러 (e)  47억달러 (f)
 
대세계 수출     8.23%↑ (g)    6.6%↑ (h)
대세계 수입     9.69%↑ (i)     7.5%↑ (j)
무역수지        27억달러↑(k)   6억달러↑ (l)
 
별 특별한 건 아니고 위 표의 빨간 부분을 다시 옮겨놓고 숫자를 매긴 것이다.
 
자, 여기에 원장님이 말씀하신 농업개방이 없다는 걸로 다시 모델링을 한거냐, 혹은 정태인 전 청와대 경제비서관이 짐작하는 뭔가의 자료 마사지를 한 조작을 한거냐, 아니면 또 다른 방법에 의한 숫자만 고친 거냐? 위의 숫자를 가지고 찾아보는 수 밖에 없다.
 
1) 숫자 a와 b를 비교하면 대미 수출이 4.4% 주는데, 금액으로 17억 달러 정도가 줄어든다. 여기에서 일단 원장님 말씀은 거짓일 확률이 90%쯤 되어보인다. 쌀개방을 안 했는데, 우리나라가 미국에 하는 수출이 2조원 가량 줄어? 물론 CGE 모델이라는 것이 전부 연동되게 되어있기 때문에 쌀개방을 안하더라도 연관된 다른 효과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억지로 계산을 하더라도 미국 대미수출에 4%의 영향을 줄 숫자가 나올 수는 없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2004년 대미 농산물 수출 총량은 2억 달러 조금 넘는데, 2000억원 수준이다(기어코 내가 정말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농업연감 PDF 파일을 뒤지도록 만들었다.)
 
수출도 안하는 쌀까지 포함해서 하여간 농산물은 2,000억원인데, 수출이 약 2조원 가량 준다는 것은 농업에서 발생하기 어렵고, 관련된 전후방 연관효과를 따져보더라도 여기에서 결정적으로 영향을 줄 유효한 숫자가 나오기는 어렵다.
 
일단 이 시점에서 우리 원장님이 농업개방 효과를 넣어서 다시 모델을 돌렸다는 말은 해본말에 가깝다는 걸 알 수 있다.
 
2) 그래도 기왕 손 댄 건데, 과연 KIEP에서 조작을 했다면 어떤 종류의 조작을 했을지 약간 감을 잡도록 조금 더 살펴보자.
 
a와 b의 변동비율은 22.7%이고, c와 d의 변동비율은 44.4%이다. 수출이 주는 것보다는 수입이 2배가 줄어든다. 숫자로 따져보면 43억불 그러니까 약 4.5조원 정도의 수입이 줄어들게 되는 셈이다. 우리나라 쌀시장 규모가 10조원인데, 이 정도가 쌀시장 개방 효과라면 간단하게 현재 추세로 미국 쌀이 시세의 절반이라고 보면, 10%만 우리 쌀을 먹고 90%의 쌀은 순전히 미국에서만 수입하고 있다는 경우가 상정되어 있다. 물론 우리나라 쌀농사는 전혀 안하고, 90%는 미국에서, 그리고 10%는 중국 등 기타 국가에서 수입하는 경우가 있기는 한데, 아무리 CGE에서 드라마틱한 농업 가정을 했더라도 쌀농사를 전폐하는 가정을 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틈만 나면 정부에서 주장하는 쌀시장 국제시세가 우리나라의 1/4이라는 그 가격을 가지고 해보면 4.5조원은 현재의 우리나라 쌀시장의 1.8배에 해당하는, 그러니까 지금보다 국민 한 명 한 명이 쌀을 두 배만큼 먹고 있다는 황당한 가정을 해야 이 말이 성립된다. 여기서도 쌀시장을 전제로 한 농업개방 효과를 고려해서 새로 모델을 돌렸다는 원장님의 말씀은 그냥 해본 말이나 다름없다.
 
3) 이 정도면 나머지 숫자들도 진실과는 이미 상관이 없는 것들이겠지만 그래도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하기 위해서 조금만 더 보자.
 
g와 h의 관계는 아무리 CGE 모델임을 감안하더라도 황당하기 짝이 없다. 상식적으로 쌀개방이 안 되었는데, 전세계 수출이 8.23%에서 6.6%로 줄어들어? 쌀개방 안하는 것하고 다른 나라 수출하는 것하고의 연관관계가 있나?
 
물론 있다면 CGE 모델 특성상 조금은 있을 수 있다. 쌀개방이 안되면 쌀을 수입하는 것과 관련된 유통업의 신규 고용이 덜될 것이고, 또 수입쌀 창고를 덜 지어야 하니까 GDP도 조금은 내려갈 것이고, 이것이 다시 국내 경제에 영향을 미쳐서 전 세계에 대한 수출이 조금 줄기는 줄 것이다. 그래도 이렇게 30억불, 즉 3조에 가까운 수출이 감소하는 효과가 생기나? 과장이 아니고는 설명이 안된다.
 
4) 이 시리즈의 결정판은 k와 i의 변화이다. 쌀시장 개방이 안되었다는 효과로 전세계에 대한 무역수지가 21억불, 즉 2조원 이상이 줄어들게 된다... 아니 도대체 우리나라에 쌀시장 개방을 안하면 수입량이 줄어들어서 국제 무역수지가 나아지면 나아지지, 쌀시장 개방을 안했더니 미국 외의 다른 나라를 포함한 무역수지가 2조원 가량 줄어들어? 그야말로 누가 나에게 이 황당한 상황을 설명해주면 좋겠다.
 
5) 이걸 설명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a와 b 그리고 c와 d 사이의 관계에 있다.
 
a에서 b는 4.6% 줄어있고, c에서 d는 14.56% 줄어있다. 즉 전체적으로 숫자를 약간 줄이는 “무슨 효과” - 이건 본보고서를 공개 안하니까 현재로서는 본인 외에는 모른다 - 를 넣었는데, 이 효과가 미국에 대한 수출에는 4.6% 만큼의 효과를 주고, 수입에는 14.56%라는 효과를 발생시키니까, 수입을 줄이는데 거의 3배의 효과를 내는 무슨 메카니즘이 나중에 발표한 보고서에는 삽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6) 그런데 이 “효과”에는 약간의 논리적 제약이 있는데, ‘생산성 증가효과를 미고려한 모델’ 즉 단기는 두 개의 보고서가 숫자가 같으니까 단기에는 아무런 효과를 발생시키지 않는데 장기에만 효과가 발생하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효과는 수출과 수입을 같이 줄이지만 특히 수입에 대해서는 3배의 효과가 있어야 한다.
 
어렵다. 수출을 늘이고 수입을 줄이거나, 혹은 거꾸로 된 효과를 발생시키는 생산성 증대효과는 좀 쉽다. 지식이 늘거나 기술이 줄어들거나 혹은 극단적으로 정부의 부패가 줄어들었다? 이런 건 수출을 늘이고 수입을 줄인다.
 
국민들이 사치성이 높아져서 점점 비싼 물건을 사게되는 기펜 효과 - 과시제 선호효과 - 가 있다고 하면 수입은 느는데, 수출에는 별 영향은 미치지 않는다. 그렇지만 수입과 수출을 동시에 부정적 효과를 주는 장기적 생산성 증대효과가 뭐가 있을까?
 
정태인 전 비서관이 지적한 장기효과에 +1% 정도의 효과를 주었다고 하더라도 이 숫자는 잘 설명이 안된다. 그렇다면 수입은 줄지만 동시에 수출은 늘어야 한다.
 
7) 경제학과 대학원 시험 문제에 이런 문제가 나온다면 무역적자폭을 줄이기 위해서 ‘마사지’를 했는데, 일반인들에게 티내지 않으려고 수출도 약간 줄이는 일을 했다고 쓸 것 같다. 다 조금씩 줄였는데, 수출보다 수입을 훨씬 많이 줄이면 위의 표와 같은 현상이 벌어진다.
 
8) 사실 용어상 이런 건 ‘마사지’라고 하지 않는다. 마사지는 변수들끼리 단위가 맞지 않거나 - 예를 들면, 하나는 톤과 같은 무게단위, 하나는 루베와 같은 부피 단위가 있거나 - 아니면 인플레이션 같은 것이 있어서 물가지수가 서로 다른 시계열 통계들이 있을 때 신빙성을 높여주기 위해서 표준화시켜주는 것들을 마사지라고 한다. 물론 마사지를 좀 쎄게 하면 모델의 결과가 살짝 변하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나가기도 한다. 나도 가끔은 데이타 마사지 한다.
 
그렇지만 위와 같은 것은 마사지라고 보기에는 좀 심하고, 실제로 새로 모델을 돌렸을 것 같지도 않고, 그냥 최종 결과만 숫자를 맞춘 것 같다. CGE 모델을 새로 돌리면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는 변수조정을 좀 해줘야 하는데, 합리적인 변수조정이라면 수출도 줄고 수입도 줄고, 게다가 수입 감소폭이 수출 감소폭의 3배가 되도록 하는 변수를 찾기 어렵다. 설령 여러가지 복합가정을 넣어서 그렇게 조정을 했다고 하더라도, 위의 숫자같은 우연히 ‘기똥찬’ 숫자를 찾아내려면 민감도 분석이라고 하는 sensitivy test를 10번 이상은해야 할 것 같은데, 과연 그렇게 했을까?
 
그냥 순 가필을 한 거라고 보는 게 내 솔직한 소감이다.
 
ps. 국가의 운명을 여기에 걸었다면서 이 숫자들은 조작의 느낌이 너무 강하다. 나도 이거 살펴보면서 눈 돌기는 했는데, 사실 황우석 논문의 DNA 지문을 밤새도록 들여다보았을 어느 훌륭하신 분을 생각해보면, 이건 그거에 비하면 새 발의 피일 뿐이다.
 
ps2.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이 표의 나머지 숫자가 바꾸지 않아서 MBC에서 조작이라고 하셨는데, 이건 자살골이 될 확률이 높다. 정확히는 단기모델이 숫자가 바뀌지 않은 것이고, 장기모델은 숫자가 바뀌었는데, 장기효과에만 변화가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만으로 조작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 글쓴이는 경제학 박사,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강사, 성공회대 외래교수, 2.1연구소 소장입니다.

* 저서엔 <88만원 세대>, <한미FTA 폭주를 멈춰라>, <아픈 아이들의 세대-미세먼지 PM10에 덮인 한국의 미래>, <조직의 재발견>, <괴물의 탄생>, <촌놈들의 제국주의>, <생태 요괴전>, <생태 페다고지>, <명랑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등이 있습니다.

*블로그 : http://retired.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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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6/04/15 [02:55]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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