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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오월, 광주의 진정한 복권을 위하여
[시론] 전두환 등 5공 학살 원흉에 대한 훈, 포장 회수 반드시 이뤄져야
 
이태경   기사입력  2005/11/07 [09:39]
이미 80년 오월 광주는 한국사회를 살고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정도의 울림도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도 그건 대략 두 가지 이유에서일 것이다. 하나는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을 가리지 않고 공평히 작용하는 세월의 풍화작용 때문이고, 나머지 하나는 오월 광주가 이미 제도권 안에 편입된 탓일 게다.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등장한 5공화국 수립 이후 사반세기가 흐른 지금, 오월 광주는 사회적 금기(禁忌)에서 공식적인 역사로 자리매김 했고, 항쟁의 참여자들은 폭도에서 민주화 운동 유공자로 재평가 받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오월 광주가 한국사회에서 완전히 복권되었다고 말하는 것은 왠지 석연치 않다. 흔쾌히 오월 광주가 명예회복을 하였다고 말하기 어려운 가장 큰 이유는, 학살의 원흉과 그 종범(從犯)들이 전혀 자신들의 전비(前非)를 뉘우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학살의 원흉은 단 한번도 광주에서 희생된 민간인들에 대해 유감을 표시한 적이 없고,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난 허화평의 인식에서 알 수 있듯이 학살의 종범들도 ‘화해란 피해자가 먼저 청하는 것’이라는 해괴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오월 광주의 명예회복을 가로막고 있는 또 하나의 걸림돌은, 학살의 원흉과 그 종범들의 죄상이 비교적 소상이 드러난 지금에도 그들에게 우호적인 여론이 적지 않다는데 있다. 학살의 원흉과 그 종범들에 우호적인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다만, 강정구 교수사건으로 증명되었다시피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는 색깔론과 저열하기 그지없는, 이제는 유사인종주의라 불러야 할 영남패권주의의 절묘한(?) 화학작용이 빚어내는 연금술이 적지 않은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고 있다는 해석 정도가 가능할 듯 싶다.

기실 학살의 원흉과 그 종범들이 사죄나 반성을 하지 않고 있는 배경에는 자신들의 편에 서 있는 사람들이 한국사회 내에 적지 않다는 믿음이 작동하기 때문일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학살자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를 참회할 가능성과 학살자들의 지지자들의 숫자는 반비례관계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논리적 비약은 아닐 것이다.

결국 오월 광주가 진정으로 복권되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 당시 무고하게 학살된 수 없이 많은 민간인들의 한이 풀리려면, 80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민간인 학살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여 용서할 수 없는 범죄라는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고, 이에 굴복한 학살자들이 희생자와 그 유족들에게 통절히 사죄하는 길 외에 다른 길은 없어 보인다.

만약 이런 과정이 생략된 채로 학살자들이 편안히 생을 마감한다면, 그리고 학살자들의 지지자들이 여전히 무시할 수 없는 세를 유지한다면, 한국사회를 정상적인 사회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압과 관련해 전두환, 노태우 등이 수여받은 훈, 포장 치탈이 본격 추진되고 있다는 소식은 너무 늦은 감이 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5.18 광주민중항쟁을 유혈 진압한 공로로 전두환과 그 수하들이 받은 훈, 포장에는 동족들의 무고한 피가 아직도 응고되지 않은 채 묻어있다. 모쪼록 이번 기회에 학살자들의 손에서 피 묻은 훈, 포장을 회수해 희생자들이 잠든 무덤 속에 묻도록 하자.

오월 광주의 진정한 명예회복을 위한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 글쓴이는 <대자보> 편집위원, 토지정의시민연대(www.landjustice.or.kr) 사무처장, 토지+자유 연구소 연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블로그는 http://blog.daum.net/changethecorea 입니다.
대자보 등에 기고한 칼럼을 모은 [한국사회의 속살] [투기공화국의 풍경]의 저자이고, 공저로는 [이명박 시대의 대한민국], [부동산 신화는 없다], [위기의 부동산]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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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11/07 [09:3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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