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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이 남의 일? 단위노조 나서라
[김영호 칼럼] 비정규직은 빈민화 촉진책, 인간의 존엄성 조차 말살시켜
 
김영호   기사입력  2005/07/12 [10:40]

이 나라 직장에는 같은 일을 하더라도 돈은 절반도 못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후생복지 부문에서도 철저하게 차별대우를 받는다. 월차-연차-보건휴가도 없고 퇴직금도 없다.

4대 보험 혜택도 노동 3권 보장도 남의 이야기다. 신분보장이 안 되니 언제 쫓겨날지 몰라 불안에 떨며 하루살이 마냥 살아간다. 이른바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나눠지는 이원적 고용구조가 새로운 신분제도로 고착화하고 있다. 이 문제는 개별직장을 떠나서 한국사회의 거대한 갈등구조로 떠오르고 있다. 

 IMF 사태 이전에도 일용직이니 임시직이니 하는 비정규직이 있었다. 업무가 단순하거나 일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운전, 취사, 경비, 청소 등의 직종도 상시적인 업무라면 거의 정규직이었다. 직종에 따른 임금차이는 있었지만 신분은 동등하게 보장되었다. 그런데 IMF 사태가 나자 시장논리-자본논리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노동자의 권익은 삽시간에 간데 없고 해고가 자유로워졌다. 연공임금-종신고용 같은 개념은 아예 사라지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쏟아진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조차 어려운 모양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830만명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이보다 훨씬 적게 본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는 못 미친다는 것이다. 문제는 동일직종-동일업무에 종사하면서도 임금차별을 크게 받는 비정규직이 급증한다는 점이다. 비정규직의 양산은 중산층을 급속하게 해체시킨다. 소득격차의 심화는 사회구조의 양극화를 촉진하여 급진화를 부른다. 빈부격차의 확대는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나아가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뜻이다. 

비정규직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반인권적 노동정책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교육수준-근무능력이 비슷하고 동일한 직종-직급에 종사하더라도 임금격차가 배 이상 난다. 또 해고의 대상에 노출되어 있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을 황폐화한다는 점에서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이런 차별적 노동정책은 사회분열을 잉태한다. 직장 내에서 여가시간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점심시간에도 따로 따로 식사하러 간다. 기업조직의 양분화는 이미 사회불안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비정규직 정책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더욱 양산하는 촉매로 작용한다. 자본시장의 외국인투자비율이 급속하게 높아졌다. 증권시장 시가총액의 43%를 넘어섰다. 고율배당을 노린 주주의 압력이 높아지면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급증하고 있다. 경영진이 주주의 압력을 수용하려면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경영실적을 호전시키기란 결코 쉽지 않다. 결국 손쉽게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해서 인건비를 줄인다. 100만원도 안 되는 비정규직의 박봉도 깎는다. 그 대가로 억대, 수십억대 연봉자들이 탄생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정책은 빈민화를 촉진한다. 최저생활급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에 시달리다보니 하류생활을 면하기 어렵다. 그나마 고용-해고가 반복되니 내일을 기약하기 어렵다. 알콜에 매달려 위안을 얻으려고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살인 자본주의'(killer capitalism)라는 소리가 나올 만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조하는 노동정책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다. 절도, 살인 같은 범죄의 증가도 그 상당한 원인을 노동정책에 돌린다. 해고의 공포가 노동자의 정신을 황폐화시켜 마약복용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는 자본논리-시장논리를 맹신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성층권에 포진해 정책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노동의 가치를 모르고 노동에 관한 철학도 없는 그들이 사회를 갈등구조로 몰아간다. 이대로 가면 학력-지식-정보-연령에서 열위에 놓인 사회적 약자는 차별적 대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이 세습화하면서 사회구조가 지배계층과 비지배계층으로 양분화된다.

포드와 GM를 제칠 기세로 세계정상을 향해 질주하는 도요타의 경영철학은 인간존중이다. 그 도요타는 50년간 정리해고 없이 50년간 연속흑자를 달성하고 있다. 종신고용이 애사심을 고취시켜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까닭이다. 그 곳은 정년 60세를 보장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노동정책은 성공하지 못한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기업에는 미래가 밝지 않다.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해서는 단위노조가 나서야 한다. 살맛 나는 직장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언론광장 공동대표
<건달정치 개혁실패>, <경제민주화시대 대통령> 등의 저자  
본지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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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7/12 [10:4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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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학찬 2005/07/12 [12:45] 수정 | 삭제
  • 노무현정부의 경제정책 말살로 인한 장기적인 경기침체로 국내 빈곤층 인구가 6백만
    명까지 늘어난 것으로 언론보도 됐습니다. 이는 인구 8명 중 1명꼴로 정상적인 삶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못살겠다 갈아보자'는 피끓는 민중의 의혈이 권력의 핵
    을 깨부셔버릴지도 모를 폭풍전야의 고요함입니다.

    암울합니다. 슬픔과 고통의 시간들이 너무 길기만 합니다. 배신에 주먹진 세월에 분
    노의 불길은 주체할 수없이 강렬하기만 합니다. 말라붙은 피눈물 딥 임팩트 띄워 끓
    는 피 심장과 심장에 인터넷 라인을 깔고 오작교 건너 희망의 모니터에 '백마탄 왕자'
    슬픔 딛고 다시 만날 그 세월은 언제 입니까?

    때마침 영화동호회 게시판에는 예전의 이런 글도 아직 살아있습니다. "이은주씨 명福
    을 빕니다. 그리고 은주언니가 돌아가신 날짜와 자신이 자살한 날짜가 정확히 일치한
    다고 합니다". 웃긴 했는데 무슨 소리인지는 독자의 판단에 맞깁니다. 우리나라 광고
    기획사 제 1위로 삼성재벌 계열사인 '제일기획'에서 연예인들의 사생활마저 뒷조사하
    여 마치 가축처럼 다루는 형태로 공개된 것이 바로 프라이버시 침해 '연예인 X파일사
    건' 입니다.

    가공할 전파력으로 포탈사이트의 그 악의적 기능을 맘껏 과시한 '연예인 X파일'은 20
    년이나 지난 비밀 굴욕외교의 빗장을 여는 '한일 외교문서' 공개의 고조된 국민적 관
    심을 한방에 날려버린 사건입니다. 또 비슷한 시기 '부실도시락 사건'으로 온국민들이
    분개하며 사태추이를 지켜 보는 상황에서 뜬금없이 등장한 X파일이 오픈되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이 국민들의 뇌리속에서 잊혀지게 한 사건으로 혹자는 그 공개 시점마저
    도 X- File이라는 이도 있습니다.

    그 방면에 정평있는 소식통에 의하면 "삼성의 장사속인데 정확도야 물어 볼 것도 없다.
    그 서류는 살살 잘 적어준 거다. 아주 심한 연예인들도 적당히.... 뺀질이 연예인이라
    면 눈치볼 것도 없는 정도의 적당한 선까지만 적혀 있다"는 X파일에 이은주에 대한 묘
    사도 긍적과 부정이 혼재합니다. 특이하게도 6백만명 극빈자들 밥먹여 주는 것도 아닌,
    자신의 자서전 홍보를 위한 얄팍한 술수로까지 비화되는 "우리는 서로 사랑했네" 말았
    네로 최근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는, 전인권과의 관계는 "단순히 아는 친구 사이인 것
    같다고 함"이라고 표기되어 있습니다.

    자식의 죽음은 가슴에 묻고 연인의 죽음 또한 가슴에 묻는 것입니다. 동네방네 떠벌이
    는게 아닙니다. 살아 숨쉬는 연인에게나 어울림직한 송창식의 '우리는'을 "나는 그녀를
    사랑했었다"가 아닌 기자들 앞에서 망자의 영정 뒷통수 치는데 사용하는 전인권의 "우
    리는" 상식있는 일반인에게 용납되기 어려운 이유입니다. 삼성재벌의 막강파워인 '제일
    기획'에 무릎꿇은 연예인들이 유야무야시킨 X-파일 사건에 이은 전인권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도 곧 유야무야 될 것이나 한번쯤 상기시켜야 할 Open파일은 이런 것입니다.

    MBC 'PD수첩'이 12일(화) 오후 11시 5분 '대한민국 영화를 살려라(가제)' 편에서 한국
    영화계의 문제점을 짚어 본다고 합니다. 몇몇 스타파워의 출연료 급상승으로 영화제작
    사와 매니지먼트사의 양보없는 마찰사이에 죽어나는 스텝들의 힘겹고 빛바랜 노동의 의
    미는 가치있는 것입니다. 그 틈바구니에서 빗겨가기 어려운 모처럼의 국산영화 수준작
    한석규와 이은주 주연 '주홍글씨'의 함축된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
    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창세기 3:6)


    창조주를 배신한 인간타락 시초의 근원을 밝히는 자막으로 시작하는 이 영화는 그들만
    의 리그로 의미가 점점 퇴색되어 가는 제 42회 대종상 시상식에서(7월 8일)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이은주의 수상 여부에 대해 또한번 대중들의 시선이 집중되기도 했었습니
    다. 비록 김혜수에게 그 영광이 주어지긴 했지만 영화 스토리 전개의 치밀도에서는 다
    소 미흡하긴 하나 이은주의 연기력과 내포된 의미는 얕잡아 볼 수준이 결코 아닙니다.

    이은주의 자살 동기도 '주홍글씨'의 가희(역)에서 벗어나오질 못하고 우울증에 걸린 탓
    으로 유추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단순히 과다 노출에 의한 수치심때문만이 아니라 인간
    의 원초적 죄악을 다룬 영화를 정신적으로 스스로 극복하지 못한 결과가 결국 자살로
    꽃잎을 떨구고 만 것이라 안타까와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유서중에 "수치심"이란 단어
    도 나오지만 "1년전(영화 찍기전)으로 돌아가고 싶다. 왜 나에게 저런 책(시나리오)을
    건네주었는가. 왜 강요했는가. 왜 믿으라고 했는가"라는 심경의 토로는 그 시사하는 바
    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이 영화가 나다나엘 호손의 장편소설과 다른 점은 여자주인공들이 제 3자에 의해 주홍
    글씨가 새겨지는게 아니라 사랑하고 굳게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제일 먼저 새겨짐을 당
    하고 또한 그로부터 제일 먼저 부정되고 배신당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책보다 영화
    가 더 잔인한 건 아닐까요.....

    사랑하던 한석규로 부터의 이은주 살인과 교차접목되는 또다른 살인자 성현아의 극중
    마지막 "사랑했으면, 사랑했으면 괜챦은 건가요?" 라는 대사는 원죄의 굴레에서 순수
    한 사랑을 짓밟는 배신자에게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라는 긴여운과 동시에
    숙제를 남깁니다. 어려우신가? 기나긴 여정인 장도의 노무현투표 사과 '삼배(三拜)순
    례'에 이어 강준만교수를 전혀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하는 '삼고초려'의 개나리 봇짐을
    이제 내려 놓으며 숙제에 관한 너무도 간단한 해답을 찾아 봅니다.


    [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2절) ]


    그렇습니다. 바로 자유입니다. 강준만교수는 대통령 선거일 2002. 12. 19보다 그 훨씬
    이전인 2002.5.15 초판 16쇄로 발행한 '노무현과 국민사기극' 309쪽에서 "지식인의 현
    실 참여가 사적인 이권투쟁으로 전락한 나라에 희망이 있을 수 없다. 다음에 어떤 정권
    이 들어서건 그 정권 역시 정치의 모든 영역을 '이권 투쟁'으로 전락시킬 것이 분명하
    다." 고 어느 누가 되건 지금의 제 16대 대통령 집권세력은 부정부패의 터널에서 헤매
    일 것임을 예언하였고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강교수의 세상을 보는 눈, 그 탁월한
    선견지명은 여전히 녹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예지력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 소리있어 가로되, 마찬가지로 대통령 선거일인 2002.12. 19일 그
    훨씬 이전인 2002. 5. 15 초판 16쇄 316쪽 이 페이지는 결론부인 책의 맨 마지막장으
    로, "(김대중으로의) 정권교체는 기대에 못미치는 실망을 낳게 한 것도 사실이지만 큰
    진보였던 정권교체라는 자심감과 성취감을 거름삼아 정치공학적 요소가 전혀 없는 진
    정한 선거 혁명을 이뤄야 한다."고 모든 대선 후보자와 유권자에게 진심어린 당부를 올
    리고 있습니다.

    탐심이 빚은 인간 원죄의 터널에서 벗어나지 못해 안타깝게도 노무현과 유권자인 네티
    즌들은 강준만교수의 소망에 부응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개인의 재물욕
    과 권력욕과는 담쌓은 선지자의 외침을 이단시하는 과오를 저지럼으로 말미암아 노무현
    이나 그 추종세력들은 모두 강교수에게 아직도 다 갚지못한 엄청난 빚을 지고 있는 셈
    입니다.

    특히나 중요한 사실은 책 전체의 요점정리랄 수 있는 '머리말' 19쪽에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 이르러선 이 책은 '노무현을 위한 게 아니라' 한국 정치를 위한 것이라는 데
    에 동의하여 주실 것이라고 믿고 싶다."며 특정 정치인의 당선보다는 대'국민사기극'을
    펼치는 흉악무도하고 파렴치한 언론을 개혁하기 위한 소도구로 노무현을 언급했을 따
    름임을 행간에 담아 우리들에게 주지시키고 있습니다.

    책의 부제목인 '(조선일보에) 인질로 잡힌 한국인은 개혁을 원치 않는다'가 어느듯 '(수
    구세력에) 인질로 잡힌 노무현은 개혁을 원치 않는다'로 변질되어버린 참람함에 강준만
    교수는 스스로를 올가맨 불필요한 고독과의 전쟁에서 여전히 번민하고 있을지 모를 일
    입니다. 황당하고 망연자실함에 스스로 채워둔 족쇄와 사슬을 이제는 끊어야 할 때입니
    다. 강준만은 자유할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강준만교수는 그의 신간 '나의 정치학 사전/766쪽/인물과 사상사/25,000원' 261페이지
    에서 "부유한 사람은 더욱 부유해지기 쉽고 가난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기 쉽다"며 부
    정과 부패고리의 다람쥐 챗바퀴 도는 '경로의존(path dependency)'의 사회학적 이론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한번 만들어진 경로는 그 관성 때문에 궤도를 수정하기 어렵거나 불
    가능해지는 현상이다. 역사상 개혁이라고 이름 붙은 어떠한 작업도 성공했던 전례가 많
    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 같은 경로의존성 때문임을 역설합니다.

    이제 이러한 부도덕한 언론과 패륜의 정치문화인 '경로의존성'을 타파하기 위해서라도
    강준만교수는 분연히 떨쳐 일어나 그 시절 싱그러웠던 '전투적 글쓰기' 모드로 전환하
    여 회춘의 건강미를 되살려야 할 자유의 시점입니다. 그 무엇하나 탐심없는 진정성으로
    "기껏해야 이 지긋지긋한 지역주의 청산하고 학연학벌주의 끝장내고 부정부패 박살내고
    언론개혁 한번 해보자"는 절대 다수가 동의할 수준의 민주개혁을 주창하는 소박하기 그
    지없는 개혁지기의 이전 모습을 찾아야만 그게 진정한 '강준만의 자유'라 사료됩니다.

    또한 우리 네티즌들은 개혁을 소리 높여 외치면서도 왜곡된 정보와 아전인수의 인식에
    몰입하여 고상한 척하려는 자기도취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건 또 우리 네티즌의 자유
    입니다. 수구 기득권 세력보다 더 지혜롭고 더 다정다감한 자세를 취하면서 국리민복에
    접근하는 성실성을 맘껏 분출해야 하는 것이 바로 우리 네티즌들의 자유입니다. 원초적
    타락의 죄악을 일삼는 정치적 배신자에게는 자유만이 승리하는 길입니다.


    자 유(自 由)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
    땀흘려 함께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 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 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
    피와 땀과 눈물을 함께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 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자유여, 형제여, 동포여! 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김남주, 제2시집『나의 칼 나의 피』, 인동, 1987)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니, 강준만 자유하시라. 함께 가자 우리 이 자유의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