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 직장에는 같은 일을 하더라도 돈은 절반도 못 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후생복지 부문에서도 철저하게 차별대우를 받는다. 월차-연차-보건휴가도 없고 퇴직금도 없다.
4대 보험 혜택도 노동 3권 보장도 남의 이야기다. 신분보장이 안 되니 언제 쫓겨날지 몰라 불안에 떨며 하루살이 마냥 살아간다. 이른바 비정규직 노동자이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으로 나눠지는 이원적 고용구조가 새로운 신분제도로 고착화하고 있다. 이 문제는 개별직장을 떠나서 한국사회의 거대한 갈등구조로 떠오르고 있다.
IMF 사태 이전에도 일용직이니 임시직이니 하는 비정규직이 있었다. 업무가 단순하거나 일시적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운전, 취사, 경비, 청소 등의 직종도 상시적인 업무라면 거의 정규직이었다. 직종에 따른 임금차이는 있었지만 신분은 동등하게 보장되었다. 그런데 IMF 사태가 나자 시장논리-자본논리가 득세하기 시작했다. 노동자의 권익은 삽시간에 간데 없고 해고가 자유로워졌다. 연공임금-종신고용 같은 개념은 아예 사라지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쏟아진다.
비정규직 노동자가 얼마나 되는지 파악조차 어려운 모양이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830만명으로 보고 있다. 정부는 이보다 훨씬 적게 본다. 전체 노동자의 절반에는 못 미친다는 것이다. 문제는 동일직종-동일업무에 종사하면서도 임금차별을 크게 받는 비정규직이 급증한다는 점이다. 비정규직의 양산은 중산층을 급속하게 해체시킨다. 소득격차의 심화는 사회구조의 양극화를 촉진하여 급진화를 부른다. 빈부격차의 확대는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나아가서 민주주의를 위협한다는 뜻이다.
비정규직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반인권적 노동정책이다.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교육수준-근무능력이 비슷하고 동일한 직종-직급에 종사하더라도 임금격차가 배 이상 난다. 또 해고의 대상에 노출되어 있다. 이것은 인간의 정신을 황폐화한다는 점에서 기본권을 침해하는 행위다. 이런 차별적 노동정책은 사회분열을 잉태한다. 직장 내에서 여가시간에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점심시간에도 따로 따로 식사하러 간다. 기업조직의 양분화는 이미 사회불안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비정규직 정책은 비정규직 노동자를 더욱 양산하는 촉매로 작용한다. 자본시장의 외국인투자비율이 급속하게 높아졌다. 증권시장 시가총액의 43%를 넘어섰다. 고율배당을 노린 주주의 압력이 높아지면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급증하고 있다. 경영진이 주주의 압력을 수용하려면 수익성을 높여야 한다. 하지만 경영실적을 호전시키기란 결코 쉽지 않다. 결국 손쉽게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전환해서 인건비를 줄인다. 100만원도 안 되는 비정규직의 박봉도 깎는다. 그 대가로 억대, 수십억대 연봉자들이 탄생하는 것이다.
비정규직 정책은 빈민화를 촉진한다. 최저생활급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에 시달리다보니 하류생활을 면하기 어렵다. 그나마 고용-해고가 반복되니 내일을 기약하기 어렵다. 알콜에 매달려 위안을 얻으려고 한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살인 자본주의'(killer capitalism)라는 소리가 나올 만큼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강조하는 노동정책에 대한 비판의 소리가 높다. 절도, 살인 같은 범죄의 증가도 그 상당한 원인을 노동정책에 돌린다. 해고의 공포가 노동자의 정신을 황폐화시켜 마약복용도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는 자본논리-시장논리를 맹신하는 신자유주의자들이 성층권에 포진해 정책결정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노동의 가치를 모르고 노동에 관한 철학도 없는 그들이 사회를 갈등구조로 몰아간다. 이대로 가면 학력-지식-정보-연령에서 열위에 놓인 사회적 약자는 차별적 대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이 세습화하면서 사회구조가 지배계층과 비지배계층으로 양분화된다.
포드와 GM를 제칠 기세로 세계정상을 향해 질주하는 도요타의 경영철학은 인간존중이다. 그 도요타는 50년간 정리해고 없이 50년간 연속흑자를 달성하고 있다. 종신고용이 애사심을 고취시켜 생산성을 향상시키기 까닭이다. 그 곳은 정년 60세를 보장한다.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노동정책은 성공하지 못한다.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기업에는 미래가 밝지 않다. 비정규직을 줄이기 위해서는 단위노조가 나서야 한다. 살맛 나는 직장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