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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과 상생에 '탄핵'당한 개혁과 진보
[총선 그후 기획] 개혁세력과 진보정당의 도약에서 보수 신성동맹체제로
 
김영국   기사입력  2005/04/15 [18:40]
* 지난 17대 총선은 헌정사상 유례없는 탄핵국면 속에서 개혁세력의 과반수 획득과 진보정당의 원내진출이라는 정치적 격변과 함께 초선의원 187명에 달하는 만큼 새로운 정치환경을 만들었습니다. 대자보는 총선 이후 각 정치세력의 분석을 통해 개혁세력의 좌표와 지향점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대자보 기획에 독자 여러분들의 참여를 환영합니다-편집자 주.
4.15 총선 그후 1년. 탄핵반대, 민주수호의 외침으로 만들어진 17대 국회가 어느덧 첫돌을 맞이했다.

▲17대 총선 당선자 현황, 개혁세력의 과반의석 확보, 만년 ‘길거리 정당’ 진보정당의 원내진입 성공 이후 이들은 모두 어디로 갔나?     © 인터넷 이미지
깨어있는 대중의 촛불과 참여로 이 땅의 개혁, 진보세력이 그토록 소망했던 의회가 탄생했다. 개혁세력의 과반의석 확보, 만년 ‘길거리 정당’ 진보정당의 원내진입 성공이 그것이다.

그 바람에 한나라당류 보수세력은 두번의 정권에 이어 40여년 만에 의회권력마저 내주며 늘상 보수의 몫으로 챙겨가던 덤도 사라졌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4.15 총선 당시의 정당들은 사라져 버렸다.
당명은 의구한데 기개와 절조는 간데 없고 변절과 분열, 혐오 가득한 혼돈(chaos)의 조각들만 나부낀다. 광장의 열기와 소망은 꿈이었던가.

총선 당시 촛불을 들었거나 그들과 이심전심이었던 사람들은 지금쯤 어디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불과 몇 달전 2002년 대선때 노무현을 지지했던 사람들 절반이상이 노 정권에 대한 지지를 접었다는 여론조사를 기억한다. 4.15 총선때 개혁과 진보에 대한 기대에 부풀었던 사람들은 지금쯤 또 얼마나 후회하고 있을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곧 죽어도 개혁정당과 진보정당에 몸담고 있다는 착각, 미련, 혹은 기대 등등으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을 드나들고 기웃거리는 사람들의 입과 인터넷 댓글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탄식과 분노 가득한 목소리들이 산증인이다.

물론 한나라당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연일 쏟아내는 탄식과 분노 혐오. 그 이유는 많은 것 같지만 기실은 하나다. 그럴줄 몰랐다는 것이다. 좀 정확히 말하면 ‘그 정도밖에 안될 줄 예전엔 미쳐 몰랐다’는 것일 게다.

타락하고 지리멸렬하고 자폐증 걸리고…

과반수가 안돼서 개혁을 못하고 탄핵만 당했다며 울부짖던 열린우리당은 정작 과반수가 되자 1년도 안돼 안면을 ‘실용’으로 싹 바꾸더니 ‘상생’이라는 도깨비 방망이를 들고나와 개혁을 탄핵시켜 버렸다.

탄핵반대의 정신은 사리지고 오히려 잔민당, 난닝구, 구태세력이라며 혐오하던 탄핵주도 세력과 재결합에 안달이 났다. 가관인 것은 떡줄 사람은 한사코 거부하는데도 합방 생각에 몸이 달아 있다.

잡탕정당이란 오명도 모자라 이제는 자민련 출신들이 당선가능성만 고려한 실용적 구호아래 줄줄이 열린우리당 간판을 달고 선거판을 누비고 있다.

자고로 횡재로 얻은 재물은 오래가지 못하고 탕진하기 십상이라는 속설은 작금의 열린우리당을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지금 열린우리당 구성원들의 ‘개혁 신분증’을 모조리 까봐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설득력 있게 들려온다.

그러나 신분증을 까볼 필요도 없다. 대통령을 피라미드 꼭지점으로 중간선 아래 까지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삼성 등 재벌에는 한없이 작아지고 노동자와 서민에겐 군림하는 ‘타락한 실용주의’의 가면을 쓴 채 대중을 기만하고 있다.

노 정권의 강력한 지지세력 노빠부대도 개혁과 진보 그리고 원칙과 상식을 선망하던 2002년의 초롱초롱한 소년 소녀들은 오래전에 썰물처럼 떠났거나 종적을 감췄다. 그 자리를 개혁장사꾼과 정체를 알 수 없는 황건적 무리들이 채워가면서 자기들끼리 적과 아군을 색출하느라 영일이 없다.

길거리에서만 으르렁대지 말고 국가정책을 제조하는 전당에 들어가 그럴듯한 ‘워치독’(watch dog)이 돼보라는 국민의 기대를 민주노동당은 만족스럽게 채워주지 못했다.

심지어 당의 근간인 민주노총은 도움은 커녕 문제아가 되어 사고치기 일쑤였고, 민주노동당을 둘러싼 진보세력들은 자기안에 갇혀 자폐증세를 보이고 있다. 여전히 80년대식 운동권 머리띠와 구호를 패션으로 고집하고 은근히 위계질서를 선호하는 진보세력의 작풍은 이제는 원로로 대접해야 할 판이다.

한나라당은 마지막 버팀목까지 부서져 나가는 충격으로 수구 일변도의 견고함에 균열이 생기고, 한편에선 인물중심의 세력재편이 진행되면서 혁신과 수구가 뒤죽박죽된 채 지리멸렬한 모습을 노정하고 있다.

지금 이 상태로 개혁과 진보가 희망이 있겠습니까

노무현 정권의 집권 3년차 변신이 여당내 실용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주도되면서 자기분열적 내부 모순과 지지세력의 교체가 뚜렷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러면서 한국사회가 급속하게 범 보수진영의 외연이 극대화 되고 있다.

이제 진보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등 기성의 진보.노동단체 몫으로 넘겨지면서 거대한 ‘보수 신성동맹체제’에 의해 왕따로 내몰리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문제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등 기존 진보.노동의 중심축을 담당하던 곳이 80년대식 운동권 패션과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현 시기 시대적 과제에 대한 적절한 의제설정과 대응능력을 보여주지 못하면서 조로현상과 자폐증세마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추구하는 가치와 지향점을 빼고 행태와 방식만 놓고 본다면 가장 수구적인 모습을 띄고 있는 곳이 다름아닌 전통적인 노동.진보세력들이다. ‘수구좌파’라는 말이 보수세력의 이미지 덧씌우기 전략에서 나온 말이긴 하지만 이 대목에선 설득력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 갈수록 개혁을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열린우리당의 변절은 그들을 우군으로 믿었던 진보세력에게 홀로서기를 강요하고 있다.

그럼에도 개혁.진보진영은 희망과 비전을 이야기 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말하기 싫고 정치 뉴스를 클릭하지 않는 사람만 늘고 있다.

이제 대선의 추억속에 살아온 2년여 동안 경제적 양극화의 지진해일에 갇혀 생활고라는 부채만 잔뜩 떠안은 수많은 개혁.진보세력은 ‘행복하지 않은 참여와 진보’의 실체를 현실속에서 빠르게 체득해가고 있다.

대안을 묻지 말라

서민대중의 삶과 직결되는 경제사회적 의제에서 개혁과 진보의 살 길을 찾아야 한다. 서민대중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면서 사회적 차별의 그늘에서 보호받지 못하고 황폐화돼가는 ‘비실신분’(비정규직, 실직자, 신용불량자, 신빈곤층을 통칭)을 위한 진보적 대안 마련과 실천에 집중해야 한다.

단순히 정당으로 쳐들어가자고 윽박지른다고 참여는 활성화 되지 않는다. 오히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정치자영업자들의 노리개가 될 뿐이다.

참여와 상향식 정당개혁을 이야기하기 전에 정치자영업자와 생활 개미들간 ‘참여의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한 노력에 보다 심혈을 기울여야 하고 작은 단위에서부터 실천가능한 성공 사례들을 축적해가야 한다.

권력의 처마끝에 매달리는 데 성공한 사람들, 알맹이 없이 입으로만 개혁과 진보를 팔면서 ‘개혁장사’에만 수완을 발휘해온 사람들이야 말로 이제는 오피니언 리더에서 명예퇴직해야 한다.

이렇듯 그동안의 실망과 분노속에서도 차곡차곡 현실 타파의 답은 내려지고 있다.

그럼 대안은 있는가. 대안은 없다. 아니 대안은 널려있을 수 있다.
다만 찾지 않았을 뿐이며 쓰기 싫고 말하기조차 귀찮았을 뿐이다.
대안은 말이 많아야 하고, 기브앤테이크(give and take)가 활성화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지 하늘에서 그냥 떨어지는 게 아니다.

지금은 대안과 비전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시끄러운 곳에 희망이 있다. 조용하거나 질서를 강조하는 것은 사멸하는 길이다.

특히 개혁과 진보를 표방하고 있는 매체들의 이에 대한 무관심과 의제설정 능력의 한계를 하루속히 시정하고 보다 적극적이고 심층적인 접근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점에서 하찮은 군상들의 입에서 튕겨 나오는 잡설이나 주워다 튀밥 튀기는 재미로 호객하는데 정신 팔린 언론의 작태는 진저리가 날 정도다.

최근 각계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사회복지사가 미래의 유망직종 1위란 보도가 있었다. 사회복지 관련 직업이 유망직종에서 새로운 ‘사’자 돌림의 직업이 아닌 존경받고 선망되는 직업이 될 때 우리사회는 커다란 사회경제적 패러다임의 전환기를 맞게 되지 않을까.

개혁과 진보는 마땅히 이에 대비해야 하고 또 선도해야 한다. 그럴 준비가 돼 있는가.

매번 기적 같은 승리를 일궈내고도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 갈길은 멀고 험난하다”고 말하는 거스 히딩크의 ‘겸손한 도전정신’은 우리 사회 개혁.진보세력이 체득해야할 제일 덕목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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