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일 자유주의연대가 웹진 ‘뉴라이트닷컴’(new-right.com)을 창간했다. 필자는 피식거리는 웃음과 함께 자유주의연대의 대표이자 자유주의자의 눈으로 세상을 조망하면서 반(反)자유주의적 풍조와는 단호히 맞설 것이라는 신지호 교수가 동아일보 등지에 기고했던 칼럼들을 떠올렸다.
심금을 울리는 글이었다:
"(전략) 전두환 정권의 군홧발 덕분(?)에 ‘혁명투사’로 바뀌었다. (중략) 물론 이러한 삶은 중간에 바뀌었다. 10여년 전 ‘당신은 아직도 혁명을 꿈꾸는가’라는 글을 통해 사회주의 포기 선언을 했을 때 ‘변절자’ ‘배신자’라는 융단폭격을 받았던 일이 기억에 생생하다." 대학에 입학해 뜻대로 공부도 못하고 '빨갱이'가 되었다가 나중에 돌아서고 욕을 먹었다는 신지호 교수에게 짙은 연민의 정을 느낀다. 그러나 신지호씨 패거리들의 작태를 보며 다시 한번 훈수의 유혹에 사정없이 젖어버린다.
신지호 교수는 80년대 변혁운동권을 양분하던 NL과 PD 중에 후자에 속했었다고 한다. 그것이 신씨가 주사파를 그만둔 현재의 동료들과 가장 도드라지게 구별되는 특징이다. PD는 조악한 문건이나 읽어내리던 NL과 달리 마르크스, 그람시, 레닌, 모택동, 알튀세르를 읽는 '명석한' 학생들이었다. 엔엘로부터는 싸가지 없고 시위에서 먼저 도망가며 고시입문의 비율이 높았다는 이유로 따가운 눈총을 받기도 했다.
마음의 앙금을 짐작할 만하다. 신씨는 폭로한다:
"
전대협과 한총련의 지도부를 주사파가 장악하고 있었다는 것은 내부자에게는 특별한 기밀이 아니었다. 이들은 북한의 대남적화 기구인 한국민족민주전선의 방송을 운동지침으로 삼았다. 그 주사파 출신들이 와신상담 끝에 현실정치에 참여해 현 정권 내 386의 다수를 점하고 있다." 이동안 PD는 뭘하고 있었을까. 몇달 전 <서울신문>이 보도한 내용에 따르면 PD의 전신 CA의 지도자였던 김성식씨를 비롯해 그쪽 계열 출신들이 손학규캠프로 몰려가고 있단다. 민중민주주의를 주창한 빨간 청년들이 오늘 기껏 수구정당의 청위병으로 전락한 것이다. 열린우리당에 몸담은 민병두, 최민 씨도 CA-PD의 선봉자치고는 궁색한 모습이다.
"그들 중 누군가가 과거의 행적을 반성하고 자유주의자로 변신하겠다는 커밍아웃을 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아직도 그들은 자신의 과거를 자랑스러워하고 있으며 ‘정의의 사도’를 자임하고 있다." 신씨는 도대체 누구 얘길 하는 건가.
하기야 386세대의 대다수가 변했다. 그들은 자유주의자이거나 민족주의자이고, 아니면 사회민주주의자다. 잘못된 일이 아니다. 신씨의 변신도 자기 자유다. 하지만 그가 벌이는 작업은 현정부의 엔엘 출신 386을 공격하여 족벌신문의 환심을 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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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의 쌍라이트가 된 기독교 사회모임과 자유시민연대. 조선일보의 엄청난 지면할애가 의미하는 것은? ©조선일보 11월 23일자 PDF |
그는 자유주의가 대안이라며 새로운 운동을 전개하는 중이다.
이미 왕년의 386들이 자유주의자로 돌아선 마당에 늦깎이로 뛰어들었으면 제대로, 열심히 해야 한다. 다음과 같은 이 따위 쓰레기만도 못한 오답을 제출해서는 안 된다.
"참여민주주의는 ‘비자유주의적 민주주의(illiberal democracy)’에 가깝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통해 신장되는 소수의 자유보다 신문법과 과거사진상규명법 제정으로 희생되는 다수의 자유가 훨씬 크다." 민주주의는 종종 다수의 이름을 내세워 소수의 자유를 억압한다. 그런데 신씨는 자신이 그런 우를, 다시 말해 소수의 자유와 다수의 자유를 대비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자유의 질은 자유의 제한을 겪는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린 것이 아니다. 또한 미안하지만, 신문법과 과거사진상규명법 제정의 "희생"자들은 신씨한테테 원고료 지급하는 신문사와 그 주변인물들을 제외하면 별로 없다. 민중민주주의의 재판이 참여민주주의고 그것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론과 유사하다면, 소수특권층의 자유에 봉사하는 당신의 자유주의는 귀족정의 질료인가.
신씨와 그 패거리들은 자유주의자가 아니다. 거기 어울려 다니는 김영환은 강철이라는 이름으로 주체사상을 맹신하는 저질문건을 퍼트려 학생운동권을 망쳤다가, 간첩죄로 체포당한 뒤에는 조선일보의 충실한 경비견이 되었다. 애초부터 주사파가 아니었으며 10년전에 벌써 전향했다는 신씨도 그다지 상태가 좋아보이진 않는다.
"박정희를 조국 근대화의 아버지, ‘한강의 기적’을 이끈 지도자로 기억하고 싶다." 자유주의자가 주목할 것은 시민의 상식이지 조국 근대화가 아니다. 한강의 기적이 아니라 남산의 비명 소리다. 신씨가 자유주의자라면 조국근대화와 한강의 기적을 독재자가 이끌었다는 가설에 맞서야 한다.
신씨는 뉴라이트(새로운 우파)가 아니다.
진짜 보수는 고칠 것은 고쳐도 혁명으로 고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는 보수혁명론을 설파한다. 보수와 혁명의 스파크 일으키는 충돌. 20세기 파시즘 역사를 아는 이에게는 매우 낯익은 풍경이다.
비현실적 노선으로 온 시민이 성원한 민주화운동을 말아먹은 386은 이제 정신 차리고 더 늦기 전에 자유주의적 개혁이라도 완수해야 한다. 그런데, 자유주의적 개혁파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면서 자유주의를 내건 인간들은 무엇인가. 업그레이드 486? 에라이, 옛 버릇 버리지 못하고 자유니 보수니 도도한 척을 떤다. 그러지 마라. 눈치볼 필요 없이 조중동과 한나라가 주는 밥그릇 앞에서 꼬릴 흔들어라. 그치지 않는 자유주의의 악몽. 자유주의야, 한국와서 고생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