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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유주의 우파혁명'과 뉴라이트
뉴라이트 등장은 '권력386'따라잡기, 사회적연대 해결할 '신좌파'가 절실
 
이종태   기사입력  2005/02/11 [12:00]
 "휴가 나와 맞이한 그분의 생일. 혼자 쇠기 가슴 아픈 민족의 명절."
 
엔엘(민족해방운동) 계열의 젊은 운동권 시인이 지난 1990년대 초에 발표한 짧은 시의 한 대목이다. 이 시에 등장하는 '그분'은 물론 북의 김일성 주석. 이 시인은 1980년대 중후반, 학생운동에 투신하면서 김 주석을 '그분'으로 '영접'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남한의 학생운동에서 대세는 주체사상이었고 이 같은 사정이 시에 그대로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주체사상을 '선도적'으로 베껴와 '학생 대중'의 머리 속에 주입하면서 당시 학생운동의 주류로 화려하게 부상했던 일군의 운동가들은 현재 뉴라이트라는 '그루빠'를 새로 형성해 '사상투쟁'을 벌이고 있다.
 
뒷북치는 뉴라이트
 
그러나 뉴라이트들은 이 사상투쟁에서 더 이상 재미를 보지는 못할 것이다. 왜 그럴까. 뉴라이트들이 수구좌파라며 공격 중인 '권력 386'들은 기실 오래 전에 급진적 시장주의 혹은 신자유주의로 '개종'한 '당당한 우파'들이기 때문이다. 뉴라이트들의 주장 중 대다수는 기실 이 '개종한 옛 좌파'들에 의해 실현되어 왔거나 실현 중이다. 뉴라이트들은 '뒷북을 치면서' '자유주의 동지'들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쌍라이트가 된 기독교 사회모임과 자유시민연대. 조선일보의 엄청난 지면할애가 의미하는 것은?     ©조선일보 2004년 11월 23일자 PDF
 
필자는 다른 글에서 "386들이 현재 좌파이기는커녕 과거에도 좌파는 아니었다"며 그 이유로 "80년대가 좌파가 되기엔 너무 바쁜 시절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사실 좌파가 된다는 것은 윤리적 결단 이외에도 인문학, 경제학, 철학 등에 대한 밀도 높은 학습을 포괄하는, 상당한 노력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1980년대의 학생들은 조직 활동과 시위준비만으로도 너무 바빴다. 20여년이 흐른 2000년대 초반, 권력의 심장부에 '침투'해서 은밀히 추진할 '좌파혁명 장기 프로젝트' 따위를 마련할 여유도 능력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유감스런 일이지만 '386'은 장미십자단이 될 수 없는 집단이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 당선 이후 본격적으로 권력에 진출한 386들이 실제로(!) 이뤄낸 것은 좌파적 변혁이 아니라 '우파 혁명'(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가 이제야 비로소 주장하고 있는) 혹은 '자유주의 혁명'이었던 것이다.
 
'권력 386'의 자유주의 혁명
 
1987년 6월항쟁은 자칭 사회주의 혁명가들이 주도한 '자유주의 혁명'이었다. 그러나 이 '사회주의 혁명가'들은 6월항쟁으로 정치적 민주화의 계기를 만든 뒤 사회주의 쪽으로는 한 치도 전진하지 못했다. 그들은 오히려 6월항쟁 이후 차례로 집권한 자유주의 야당에 포섭되면서 순치되었다. 온갖 과격한 사상들을 표방했지만 그들이 1980년대 내내 실제로 실행한 것은 정확히 '반독재 투쟁'이었다. 그들은 사회주의 혁명가가 아니라 반독재 투사이면서 정치적 자유주의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필자는 그들이 사회주의 혁명을 포기한 것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회주의 사상 속에 녹아있는 '공공성과 사회적 연대'에 대한 문제제기는 포기하지 않아야 했다.
 
6월항쟁으로 개시된 정치 부문에서의 '자유주의 혁명'은 이후 경제ㆍ사회 부문에서의 '자유주의 혁명'으로 이어진다. '80년대 운동권'이 주체사상이나 맑스레닌주의 등에 기반, 한국경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던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그리고 이런 논쟁들의 전제는, 조금 난폭하게 정리한다면 한국경제는 제대로 발전할 수 없는 '기형적 자본주의'라는 것이었다.(물론 한국경제가 '고도로 발전한 자본주의'라든가 '사회주의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는 수준의 독점자본주의'라는 '소수' 의견도 있었으나, 이 같은 논자들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와 거리가 멀어도 한참 먼 분들이므로 현재의 논의에서는 제외한다.)
 
한국경제를 '기형적 자본주의'로 간주한다면 그 대안은 당연히 '정상적 자본주의 시스템'의 건설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상적 자본주의'를 건설하려면 당연히 박정희식 국가주도 모델과 재벌을 깨부수고 그 자리를 시장으로 채워야 한다는 견해가 주류로 등장했다. 심지어 사회주의혁명을 진지하게 목표로 삼은 집단들도 사회주의혁명의 이전 단계로 부르주아 혁명(정상적 자본주의 실현)을 설정했다.
 
재벌개혁은 자유주의 우파 혁명
 
이런 의미에서 '재벌개혁'은 '기득권 세력에 대한 공격'이란 면에서 진보적 성격을 가졌지만 명백한 '자유주의 우파 혁명'이기도 했다. 재벌 가문이 한줌도 안 되는 주식으로 전 계열사를 지배, 창출한 '가공자본'으로 공격적인 거대 투자를 감행하던 방식의 재벌 시스템은 자유주의의 2대 교리인 사적 소유권과 시장주의를 부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상당수 '진보세력'이 1997년 환란 이후 DJ 개혁에 환호했던 것은 이런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
 
사회주의자로 자처하던 인사들은 '안티 박정희'의 연장선상에서 재벌 및 국가주도 시스템에 대한 반기를 치켜들었는데 이는 다시 '사적 소유권과 시장에 대한 우상화'(사회주의자로 자처하던 이들이!)로 이어졌다. 한편 갓 사회에 뛰어든 '386'들은 1990년대 후반기의 '벤처 붐'에 투신, '억(億), 억(億)' 소리를 내며 새로 도입된 미국식 경제시스템에 도취해 있다가 '이 또한 반재벌이기 때문에 진보적'이라는 야무진 착각에 빠져 들면서 성장했다.
 
이렇게 한국의 '자유주의 우파 혁명'은 사회주의자라는 자의식을 가진 적 있는 '386'의 정치권 진출과 대중적 지지에 따라 진행되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한국의 보수세력은 물론 진보ㆍ개혁 세력 중 상당수도 김대중-노무현 개혁에 대해 사회주의적 색채를 띠고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인식은 이들의 이데올로기 식별 기준이 박정희 전 대통령에 고착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그것은 '박정희가 극우보수이기 때문에 '안티 박정희'적 변혁은 좌파진보'라는, 지극히 단순하고 우스꽝스러운 도식이다.
 
'진정한 주체주의자'들
 
자유주의로 개종한 '386'들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김대중-노무현 개혁의 핵심인 '사회 전반의 시장화'에 동참하고 있다. 그들은 비정규직을 대폭 확대, 노동권을 시장에 종속시키는데 동참하고 있다. 그들은 자유무역협정을 무차별적으로 체결, 국내 시장을 세계 시장에 내맡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는 의료보험제도를 '개혁'해서 건강권을 시장에 종속시키는 정책을 '검토'하고 있으며, 김진표 씨를 교육부 장관으로 기용해서 교육에 대한 지배권을 시장에 내주려고 한다.
 
뉴라이트들이 '이제야 비로소' 주장하기 시작한 것을 '권력 386'은 예전부터 추진해 왔거나 지금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뉴라이트들은 대다수 관중들이 축구장에서 골인 광경을 보고 환호성을 지른 지 10분쯤 지난 뒤에야 '골인'을 외치며 춤을 추는 취객에 다름 아니다.
 
따라서 앞으로 뉴라이트와 '권력 386'의 차별성은 북한 문제 외엔 나타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 차이는 '권력 386'이 특별히 친북적이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집권자'의 입장인 '권력 386'으로서는 한반도 전쟁의 가능성을 단 1%라도 용인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지금까지 정치 낭인에 불과한 뉴라이트와는 입지가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다. 더욱이 뉴라이트 중의 상당수는 과거엔 '김일성주의자', 현재엔 '진정한 주체주의자'로 행세하면서 북에 대해 적잖은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인사들이다. 북한 문제에 관한 한 극도의 과격성을 과시하는 것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유일한 길이라는 이야기다. 이에 따라 뉴라이트들은 당분간 사회경제 부문 보다 대북, 대미 관계의 문제점들을 집중적으로 제기하면서 '권력 386'을 물고 늘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뉴라이트 보다 '뉴좌파'가 필요하다
 
'권력 386'이 1990년대에 정치로 입문한 자유주의자들이라면, 뉴라이트는 2000년대에 정치입문을 꾀하는 자유주의자일 뿐이다. 결국 아직 정치권에 진출하지 못한 자유주의자들이 이미 정치권에 들어간 자유주의자들을 '좌파'로 매도하는 희비극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북한 문제만 양해된다면 열린우리당 및 한나라당의 386과 뉴라이트들은 자연스럽게 하나의 집단으로 용해되면서 현재의 이데올로기적 혼란은 종식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이 하나의 집단으로 용해되고 이데올로기적 혼란이 종식된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각종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전망이 열리는 것은 아니다. 현재 한국이 당면한 사회적 고통들은 기실 1990년대 이후 진행된 '자유주의 우파 혁명'의 결과로 보는 것이 옳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정말 고민해야 할 것은 '권력 386'의 아류에 불과한 뉴라이트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뉴좌파의 부재(不在)'이다. 한국 자유주의 라이트(우익) 진영이 '권력 386'과 '뉴라이트'로 나뉘어 자리다툼을 벌일 정도로 융성해지고 있는 반면, '올드 레프트'들은 혁명과 조합주의, 연대와 조직노동자 이기주의 사이에서 전망을 잃고 헤매다가 급기야 최근엔 기아노조 사태 등으로 도덕적 헤게모니까지 상실할 위기에 처해 있다. 결국 한국은 '(신)자유주의 유일사상'의 사회로 갈 것인가. 그래서 지금 한국사회에 절실한 것은 뉴라이트 운동이 아니라 '공공성과 사회적 연대'의 문제를 다시 의제화할 지적, 도덕적 능력을 가진 '뉴좌파'의 출현이다.
 
* 본문은 대자보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진보적 월간지 '말'(http://www.digitalmal.com)에서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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