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위(편의상 호칭 생략)는 “진중권의 박정희콤플렉스와 지적 사기”라는 말도 되지 않는 글에서 “박정희가 만악의 근원이며 노골적으로 그런 배후라고 말한다.”고 주장하면서 “박정희에 대한 콤플렉스”라고 말하며 “논리적 사기술을 밝혀” 보자고 한다. 뭐 진중권이 무위의 주장처럼 “안티조선 운동으로 세간에 이름을 알린 논객이” 아니고 정확하게는 어려운 미학을 일반인이 접근하기 쉽게 정리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안티조선이 사회담론으로 성장하는데 가장 큰 이바지를 한 사람 중에 하나이며 이로 인해 인지도를 더욱 넓힌 것 역시 사실이므로 그러려니 하겠다. 진중권의 구술문화와 활자문화? 이 부분에서 무위는 내용 없이 진중권을 비판하여 정확하게는 인신공격에 치우친 비난에 불과하다고 평을 해도 할 말이 없다. 무위는 진중권의 구술문화와 활자문화는 “철저하게 엘리트 먹물의 위선이 깃들여 있”고 진중권은 “민중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내는 구술문화는 미천하고 열등하다”고 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무위의 주장이 내용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저 논증의 오류는 명백한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이다. 진중권은 “'신화'를 의미하는 'mythos'는 원래 '제멋대로 꾸며낸 이야기'라는 부정적 의미를 갖”는다고 하면서 “신화는 구술문화에 속하고, 철학은 활자문화에 속한다.”고 말을 하고 있다. 진중권은 이를 단순화하여 “구술문화에 속하는 이들은 세계를 영웅들의 행위를 통해 이해하고, 활자문화에 속한 사람들은 세계를 법칙들의 연관으로 설명하려 한다.”라고 말을 하고 있다. 무위는 구술문화를 “‘민심은 천심이다’ ‘민중이 외면하는 정권은 하늘도 외면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라는 구술문화양식의 표현은 천박한 무지랭이들의 아우성에 불과하다.”라고 말하고 있는데 진중권이 말하고 있는 구술문화는 영웅이데올로기를 압축하여 말하고 있다. 영웅이데올로기를 억압받는 민중의 생각과 치환을 하여 진중권의 논리를 비판하고 있다. 전형적인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이다. 의적 임꺽정 / 식민지 근대화론 / 개발 독재론? 의적 임꺽정은 내용에서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므로 넘어간다. 더 큰 문제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개발독재론이 갖고 있는 공통점이다. 20세기 야만의 시대에 제국주의가 식민지국가를 억압했던 논리가 사회진화론이다. 일제 때 민족개량운동을 하던 사람들이 일제의 정책인 농촌진흥운동에 적극적으로 협조했던 것이나 기미독립선언서를 만들었던 33인의 민족지도자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일경에게 ‘자수’를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바로 사회진화론과 궤를 같이하는 아직 근대화되지 못한 조선사회를 개조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개발독재론 역시 마찬가지이다. 먼저 경제를 개발하는 것이 사회를 진화시키는 길이라는 굳센 믿음으로 온갖 수단을 다해 경제를 개발하자는 사회진화론의 변종일 뿐이다. 무위는 다시 사기를 친다. "도덕질과 식민지배, 그리고 독재는 천하에 나쁜 것이다!"라고 압축하면서 “너무나 뻔한 일에 수학자들이 애를 쓰면서 학술논문을 발표하지 않는 이치”처럼 “식민지 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여러 학자들이 나쁘고 식민지배가 나쁘고 독재가 나쁘다”고 “공공연히 주장하지 않”을 뿐이라고 사기를 치고 있다. 식민지 근대화론 자체가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인데 이 이데올로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식민지배를 나쁘다고 주장할 턱이 없다. 이미 시대가 지나 식민지배가 나쁘다는 것은 정설이 된 지금도 식민지 근대화론은 식민지배가 이바지한 것도 있다는, 식민지배를 정당화하는 논리의 중요한 근거가 되고 있으니 누구나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고 진중권은 이러한 이상한 사상을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무위의 사회진화론 옹호 무위는 우연치 않게 “식민지와 근대화가 같이 있었”던 시기가 식민지 근대화론이라고 말을 하며 “독재와 개발이 동시에 나란히 존재했던 시기”를 개발독재론이라고 말을 하고 있다. 무위가 “진중권의 논리적 사기술은 자기 자신의 무식하고 천박한 인식능력”이라고 말을 하고 있는데 근대화를 위해 식민지배가 필요하다고 하는 식민지 근대화론과 개발을 위해 독재가 필요하다고 하는 개발독재론을 이상하게 치환하고 있는 ‘무위의 논리적 사기술과 자신의 무식하고 천박한 인식능력’은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무위의 진중권에 대한 인신공격은 다음 부분에서 극에 달한다. 진중권이 진정으로 진보적인 지식인이라면 그가 해야 할 일은 지만원-한승조 같이 망언을 일삼는 사람을 이지메하는 대열의 선봉에 서서 더 강한 타격을 가하는 일이 아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논리에 자신이 있다면 망언이 아니라 치밀한 논리로 식민지 근대화 이론을 주장하고 있는 이영훈 서울대 교수나 안병직 서울대 경제학자 교수의 논리를 깨야 하는 것이 지식인으로서 할 일 이다. 이영훈 교수의 정신대 발언에는 뿅망치 정도의 타격이면 족하다고 하면서 스스로 물러서는 이유는 무엇인가? 감정을 격분시키는 일에는 자신이 있지만 자신의 논리에는 그렇게 자신이 없는가? 안타까운 일이다. 진중권은 그런 일이 없다. 지만원, 한승조 뿐 아니라 이영훈에게도 진중권은 처음부터 비웃어 주면 된다고 말해왔다. 진중권은 이미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라는 책을 낼 때부터 벌써 이러한 극우 파시스트들을 패러디라는 형식으로 비웃고 상대하지 않으면 된다고 해왔다. 이번 지만원과의 토론 역시 마찬가지이다. 한승조가 망언을 했고 지만원이 진중권에게 토론을 하자고 떠들었고 그러면 응해주기는 하겠다는 반응이었을 뿐이다. 이영훈에게는 침묵하는 진중권을 비판하지 말고 또 헛소리하는군 하고 아무도 귀담아 들어주지 않는 사실을 보기 바란다. 무위는 “'착취'란 용어에는 맑시즘적인 좌파 계급사관이 반영되어 있지만 '수탈'이란 용어에는 우파적인 민족 사관의 시각이 숨어 있다.”라고 말하면서 “조선인 지주에 의한 조선인 동족인 기층민중을 착취한 것은 수탈이 아니”라고 하고 있다. 안타깝지만 수탈이라는 단어를 조선인 지주가 조선인 소작인을 ‘수탈’했다라는 표현 역시 역사책에 종종 나온다. 인용은 주장이다? “1960-70년도의 한국인들의 교육수준은 낮았으며 가난하고 무능했다.”라는 표현은 용납할 수 있다고 하면서 "한국인들의 교육수준은 낮고 가난하고 무능하다."고 쓴 진중권이라고 하면서 무위는 또 다시 사기를 친다.
“한국인들은 가난하고 무능하다.” 이 표현을 쓴 사람은 일제였고 여기에 동조했던 민족개조론자들이었으며 후일 친일파로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게 된 사람들이고 식민지 근대화론을 신봉하는 사람들이며 개발독재를 정당화했던 사람들이 쓴 말이다. 무위의 이러한 사기는 계속된다. ‘조선 민족은 스스로는 발전을 할 능력이 없다. 자기들끼리 당파 싸움이나 했다.' 미안하다. 이 말은 진중권이 한 말이 아니고 진중권은 이 말을 단지 ‘인용’했을 뿐이다. 혼자만의 사연의 세계에 빠진 무위는 이 말을 식민지 근대화론을 따르는 사람들이 주장했고 개발독재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말을 했던 것은 보이지 않는다. 유명인사 끌어들이기 그러더니 드디어 히딩크가 등장한다. 한 마디로 줄여주겠다. 있지도 않은 사실을 가정하여 실제 있는 사실과 등치하며 더욱이 영웅이데올로기를 되풀이하면서 박정희 신드롬이 엄밀히 말하면 사회전체를 세뇌했던 기조를 부정해버려는 시도에 굳이 히딩크를 들여올 이유가 무엇이 있는가. 무위는 이순신을 예로 들며 "나를 넬슨 제독보다 뛰어나다고 말하는 것은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조선의 이순신 제독에 비하면 나도 조족지혈이다"라고 말하면서 이 평가와 박정희의 평가를 다시 등치한다. 무위는 “한국에서 일고 있는 박정희 신드롬이 마음에 안든다.”면서도 박정희와 박정희 추종자가 주장했던 개발독재론을 옹호한다. 개발독재론을 갖고 한국 사회를 왜곡시킨 가장 머리에 박정희가 있다. 개발독재론을 근거로 ‘독재를 통해’ 경제를 개발하겠다는 발상을 현실에 적용했던 사람이 박정희다. 어설픈 충고 진중권이 지식인이라는 의식을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중권이 무엇을 말해야하는지 무위가 지정해주지 않더라도 진중권이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알아서 한다. 무위는 진중권에게 이 말을 하라 말라고 참견하기보다는 진중권의 구술문학(영웅이데올로기)의 허위나 제대로 비판하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만일 진중권의 패러디를 통한 방식의 한계를 지적하고 있다면 반론하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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