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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ㆍ동아는 저들이 '원로'로 보이나?
자신들 입맛따라 보수인사들의 ‘성명’을 ‘원로’들의 시국선언으로 둔갑시켜
 
문한별   기사입력  2004/09/10 [10:10]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난리났습니다. 

전날 1,000여명(동아) 내지는 1,500여명(조선)에 달하는 각계 원로들이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시국선언’을 발표하는 '미증유의 대사건'이 터진 탓입니다.  조선일보가 전한 바에 따르면 "1948년 대한민국 건국 후 국가의 위기를 이유로 이처럼 많은 원로들이 시국 성명을 낸 것은 처음"이랍니다.("나라를 위기에서 구하자" 중에서)  그러니 얼마나 살이 떨리겠습니까?   조선은 당장 10일자 1.2면을 빌어 원로들의 시국선언을 선전하기 바빴고, 동아는 1면에 이어 아예 3면 전체를 전세내면서까지 원로들의 목소리를 증폭하려 애썼습니다.

▲조선일보 대문기사에 나온 '한국, 이미 친북 반미 세력이 장악'이라는 제목. 조선일보의 그 유명한 따옴표 제목이다.     © 조선일보 9월 10일자 PDF

 (조선) /
1면 -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자”
     - 원로 1500여명 건국후 최대규모 시국선언

▲조선일보의 연쇄공격, 국가보안법 폐기문제가 국론분열 정체성 흔들기인가?     ©조선일보 9월 10일자 PDF

2면 - “건국·호국·근대화·민주화 원로 모두 나서야 할때”
     - “盧대통령은 국론분열·정체성 흔들기 멈춰라”
     - 政·言·법조·官·軍 등 각계 원로 총망라
     - 前국회의장·총리 등 최대규모 時局선언 
 
▲동아일보의 호들갑, 한국이 정통성 잃고 위기에 빠졌다고 불안감을 조성하고 있다.     © 동아일보 9월 10일자 PDF

(동아)  /
1면 - 원로 1074명 “국보법폐지-수도이전-과거사청산 중단” 촉구  
3면 - [시국선언] "대한민국이 친북-좌경-반미세력 손아귀에”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됐든지 조선.동아는 따로 사설까지 마련해서 시국선언 뻥튀기에 나섰습니다. 

▲원로(?)들의 시국선언 외면하지 말라는 동아일보     © 동아일보 9월 10일자 PDF

동아는 "원로 ‘시국선언’ 외면하지 말라"는 제하의 사설에서 "나라가 친북, 좌경, 반미세력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있다"고 주장한 원로들의 시국선언을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충정 어린 고언", "정확한 시국 인식", "몸에 약이 되는 쓴소리" 등으로 추켜 세우면서 "오죽하면 이런 극단적인 말을 했을까 싶어 참담할 뿐"이라는 감상을 덧붙였습니다.  "1000명이 넘는 각계 원로들의 고언을 행여 보수 기득권층의 불만 표출쯤으로 폄훼하지 않기 바란다"는 주문도 물론 빼놓지 않았지요.

▲대한민국에 전쟁이라도 일어났나? 아니면 쿠데타라도 일어난 것인가? 때아닌 비상시국선언? 누구에 의한 누구를 위한 누구의 비상시국인가?     © 조선일보 9월 10일자 PDF
 
"대한민국 非常시국 선언."   동아가 죽었다 깨도 못따라오는 섹시만발한 조선의 사설제목이 이러합니다.  사설의 내용 또한 제목만큼이나 자극적입니다.  지금처럼 대한민국이 갈등하고 분열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랍니다.  현 정권이 하는 일마다 나라를 분열과 위기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고 있답니다.  심지어 ‘심리적 내전상태’라는 섬뜩한 말도 등장합니다.  짧은 사설 안에 '분열'이란 단어가 무려 6회('갈라지다'는 단어까지 합하면 8회), '갈등'이란 단어가 4차례 나오는 것만 봐도 이 사설이 타칭 '원로'들의 '시국선언'을 빌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대충 감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조선.동아가 입에 거품무는 것처럼 그렇게 대단한 사건일까요?   다시 말해, 국보법 개폐정국의 와중에서 현 정권에 기껏 붉은 색 페인트칠을 하기 위해 모인 1000~1500여명 정도의 나이 드신 분들이 이렇듯 스폿라이트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인사들이냐 이 말입니다.   떼거지로 모여 정부를 성토한 이들의 목소리가 신문지를 도배할 정도의 가치를 지니려면 이들이 정말 '원로'라는 말에 값하는 그런 비중있는 인물들이어야 합니다.   본디 '원로'란 말의 뜻이 그러하지 않습니까?   
 
나라에 공헌한 이로서 사회적으로 두루 존경받는 인물을 일컬어 우리는 '원로'라고 칭하고 예우합니다.  그저 나이만 많이 먹었다 해서 아무나 붙들고 '원로'라고 부르지는 않지요.  그래서 말인데요.   5공의 총검을 믿고 잔혹무비한 '언론학살극'을 주도한 허모씨 같은 이가 '원로'입니까?   토끼처럼 빨간 눈을 늘 뜨고 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빨갱이 딱지를 붙이는 이모씨 같은 이가 '원로'입니까?   광주시민을 학살한 살인마 전두환의 앞잡이 노릇을 한 신모씨 같은 이가 원로'입니까?   하긴 조선일보 주필을 지낸 류모씨나 '쿠데타설'의 원조 김모씨 같은 이도 '원로'대열에 끼여 있으니 더 할 말은 없습니다만.
 
지면 사정상 각각의 이름을 들어 일일이 공적을 치하해 줄 수 없어서 유감천만입니다.   그래도 이건 분명히 말해야 겠습니다.  "1948년 대한민국 건국 후 국가의 위기를 이유로 이처럼 많은 원로들이 시국 성명을 낸 것은 처음"이라고 조선일보가 보도했다는 건 앞서 말씀드렸습니다.  자,  대한민국 건국 후 이 땅에 얼마나 많은 살육과 비참이 있었습니까?   서슬퍼런 군사독재의 포학 앞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애꿎게 사라져 갔습니까?   하늘이 온통 검은 색이던 그때, 무고한 자들의 흘린 피로 땅빛마저 새빨갛던 그때, 자유가 목졸리고 민주주의가 겁탈당하던 바로 그때, 이들은 도대체 어디에 있었습니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말이 조금 거칠었다면 용서하십시오.  각설하고, 조선 동아가 이들의 행위를 뻥튀기하고 우려먹은 것은 저들 신문지들이 치명적인 '인식오류'에 빠져 있어서 그러는 것이라고 설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인식오류'란, 조선일보에 의하면, "어떤 대상을 진실과 다르게 착각"하는 거라는군요.  예컨대 "국민의 신망을 잃은 정치인이 마치 온 국민이 자기를 존경하고 있는 줄 착각하는 인식오류, 몇사람이 만들어낸 자의적인 수치가 마치 일반적 여론이나 민심인 것처럼 믿는 인식오류...." 등이 여기에 속한다는 겁니다([만물상] 인식오류, 2001.6.23).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집단시위를 했다 하여 이를 '원로들의 시국선언'이라 애드벌룬 띄운 조선 동아의 한심한 짓이 이에 딱 들어맞지 않습니까?  / 논설위원

* 필자는 언론인권센터 대외협력위원장으로서 이 시대의 바른 말글살이와 바른 사람살이를 위해 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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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9/10 [10:10]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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