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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에서 손흥민 :세계축구와 아시아 월드클래스들
[김병윤의 축구병법] 축구변방 아시아축구, 21C 급성장 선진국 위협 수준
 
김병윤

 

1904년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설립된 국제축구연맹(FIFA)은 산하에 아시아축구연맹(AFC), 유럽축구연맹(UEFA), 남미축구연맹(CONMEBOL), 아프리카축구연맹(CAF), 북중미카브리해축구연맹(CONCACAF), 오세아니아 축구연맹(OFC) 등 6대륙 연맹을 두고 있으며 전세계적으로는 총 211개국(2020년 현재)이 가입되어 세계 최고의 스포츠 단체로서 축구 국가대표 경기(A매치) 및 FIFA월드컵을 비롯 컨페더레이션스컵, 남녀 연령대별FIFA월드컵 등 국제축구대회를 주관하고 있다.

 

이와같은 FIFA에 AFC는 1954년 5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12개국이 참가 창립되어 당해 6월 FIFA로부터 공식적으로 인가를 받아 본격적으로 세계축구 무대에 뛰어들었다. 그 첫 주자는 한국축구였다. 한국은 1954년 스위스 제5회 FIFA월드컵에 아시아를 대표하여 출전했지만, 세계축구와의 실력차(한국 0-9 헝가리 패, 한국 0-7 터키 패)를 절감하며 이후 AFC 가맹 아시아 국가는, 남미와 유럽축구의 양대 산맥에 가로막혀 이렇다 할 업적을 드러내지 못한 채 축구변방에 머물렀다.              

 

하지만 1966년 잉글랜드 FIFA월드컵에서 아시아축구를 대표하여 출전한 북한이 일명 ‘사다리전법’이라는 생소한 전법을 구사하며, 세계적인 강호 이탈리아까지 꺾고(1-0) 일약 8강에 진출하는 위업을 달성 세계축구계를 경악케했다. 이 때 이탈리아전에서 결승골을 넣었던 박두익(77)은 20살까지 노동자였으며 20살부터 축구를 시작, 엄청난 재능으로 대표팀까지 선발되어 FIFA월드컵에 출전 '동양의 진주'라는 애칭을 얻으며 세계축구 역사속에서, 당시 펠레(80), 에우제비오(1942~2014) 천하에 아시아 축구선수로서는 처음으로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월드클래스 반열에 올라섰다.

 

사실 박두익이 세계축구 역사에 처음으로 아시아 선수로서 월드클래스 반열에 올라선 것은 아니다. 그 이전에 현재는 세계 축구계에 명함도 제대로 내밀지 못하고 있는 필리핀의 파울리노 알칸타라(1896~1964)가 있다. 스페인 아버지와 필리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파울리노 알칸타라는 1910년 14살의 나이로 스페인 FC 바로셀로나(Futbol Club Barcelona)에서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한 그는 15세 4개월 18일의 나이로 카탈라(Catala)와의 경기에 출장하여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파울리노 알칸타라는 1917년 필리핀 국가대표팀 일원으로 2경기 1골을 기록한 후, 1921년에는 아버지 국적인 스페인 대표팀에 선발되어 벨기에와의 데뷔전에서 멀티골을 기록하는 맹활약을 펼친데 이어, 강력한 슈팅 능력으로 '네트 파괴자'(romperedes: net breaker)라는 애칭을 얻으며 12년간 줄곧 FC 바르셀로나 선수로 뛰면서, 5번의 스페인컵 우승과 10번의 카탈루냐 리그 챔피언에 올랐고 개인 통산 357경기 출장에 356골을 기록했다. 이 같이 뛰어난 활약을 펼친 파울리노 알칸타라는 클럽 역사상  최연소 출장 및 최다골 기록까지 보유 세계축구 역사에 위대한 월드클래스 선수 중 한 명으로 손꼽히고 있다.

 

 

▲ 북한의 박두익이 1966년 잉글랜드 FIFA월드컵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터뜨리고 있다.    © 조선신보

 

파울리노 알칸타라의 이 같은 기록은 FC 바르셀로나(당시 FC 바르셀로나는 프리메라 리가가 아닌 카탈루냐 지역 리그 소속) 역사상 지금까지 깨지지 않고 있어 그 위대함은 더욱 빛나고 있다. 박두익, 파울리노 알칸타라의 뒤를 이어 월드클래스 선수로 등극한 주인공은 바로 한국의 차범근(67)이다. 아시아 축구가 세계축구 변방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던 1978년 차범근은 세계 클럽축구 최고를 자랑하던 독일 분데스리가 SV 다름슈타트 98에 진출(1경기 풀전) 이후 아인트라흐트 프랑크푸르트, 바이엘 04 레버쿠젠을 거치며 UEFA컵 2회 및 독일축구연맹(DFB) 포칼 우승과 시즌 베스트 11에 2회 선정되고 공격수 부분 3위를 차지하는 등 12년간 총 308경기 출전 98골(DFB, 포칼이나 UEFA컵 기록까지 포함: 372경기 121골)을 기록하며 아시아 선수 최다 출전(일본 하세베 마코토 프랑크푸르트:2020년 6월 동률 경기 기록 작성) 최다 득점 타이틀을 보유하는 등 세계축구 역사에 아시아 축구선수로서의 월드클래스 가치를 여실히 증명했다.

 

뿐만 아니라 차범근은 세계 최연소(24년 139일)는 물론 한국인 선수 최초의 센추리 클럽에 가입하며, 박스컵,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 1978년 태국 제8회 아시아경기대회(북한과 공동 우승), 1986년 멕시코 제13회 FIFA월드컵 등에, 국가대표로 136경기에 출전 53골을 기록 그 진가와 위상이 아시아를 넘어 월드클래스 임을 입증했다. 특히 1976년 9월 개최된 박스컵에서 차범근은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전반전 0-3의 패색이 스코어에 이어 1-4로 끌려가던 경기에서 후반 38분 이후 6분 동안 무려 3골을 터뜨리는 해트트릭으로, 한국 축구사에 44년이 지난 현재까지 나오지 않고 있는 극적인 역사를 쓰며 경기를 4-4로 마무리 ‘불세출의 스타’다운 기적 같은 스토리를 완성했다.  

 

 

차범근의 뒤를 이은 월드클래스 선수로는 이란의 알리 다에이(51)다. 1990년대 후반 부터 2000년대 초까지 유럽에 진출 독일 분데스리가 아르미니아 빌레펠트(1997~1998), 바이에른 뮌헨(1998~1999), 헤르타 베를린(1999~2002) 등에서 활약한 알리 다에이는 비록 유럽 무대에서는 아시아에서 얻은 명성에 미치지 못하는 총 142경기 출전 25골의 실망스러운 결과로 마침표를 찍었지만 아시아에서 만큼은 첫 손가락에 꼽혔던 스트라이커로 제1998년 프랑스 16회 FIFA월드컵과 2006년 독일 제18회 FIFA월드컵 무대에 서서 세계축구에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켰다.

 

1998년 방콕, 2002년 부산 2회 연속  아시아경기대회 이란의 우승을 이끈 알리 다에이는 한국축구 역사에 치욕을 안긴 인물로도 유명하다. 1996년 아랍에미리트 AFC 아시안컵 8강전 한국과의 대전에서 한 경기 4골을 몰아치며 한국을 2-6 대패의 수렁으로 몰아넣는 탁월한 득점력을 앞세워 1994년 AFC 아시안컵 예선 득점왕에 이어 1996년 AFC 아시안컵 본선 득점왕까지 차지하며 급기야 1996년 AFC 올해의 선수상까지 독식하는 영광을 안았다. 뿐만 아니라 1994년 미국 제15회 FIFA월드컵 아시아 예선 득점왕까지 거머쥔 그야말로 득점 자판기였다.

 

 

▲ 독일 레버쿠젠으로 갈색폭격기로 명성을 떨친 차범근     © 구글 이미지



이에 알리 다에이는 세계축구 역사상A매치최다 출장에 109골이라는 전무후무한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며, 아시아축구에서는 물론 세계축구 역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월드클래스 선수로 인식되고 있다. 세계축구에 아시아 선수로서 이들 못지 않게 월드클래스에 걸맞는 활약을 펼친 선수는 다름아닌 일본 축구의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나카다 히데토시(43)다. 2000년 시드니 제27회 올림픽 일본 국가대표를 역임한 직후 이탈리아 세리에 A, AS 로마(2000~2001)로 진출하며 아시아 선수의 '유럽파' 대를 이어간 나카다 히데토시는 이어 파르마 FC(2001~2004), 볼로냐(2004), 파르마 FC(2004), 피오렌티나(2004~2006), 그리고 잉글랜드 프리미어(EPL) 리그 볼턴 원더러스(2005~2006)에서 활약했다.

 

이런 나카다 히데토시의 선수 및 수상 경력은 화려하다. 1993년 슬로바키아 U-17 FIFA월드컵과 이어 1995년 카타르 U-20FIFA월드컵에 출전하며 일본 축구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나카다 히데토시는 올림픽국가대표를 거쳐 1998년 프랑스 제16회 FIFA월드컵, 2006년 독일 제18회 FIFA월드컵에 출전하며 역사상 최고의 아시아 선수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나카다 히데토시는 1997년, 1998년 AFC 올해의 아시아 선수상을 2회 수상했으며 1996년 아랍에미리트 제11회 AFC 아시안컵, 2000년 레바논 제12회 AFC 아시안컵과 2000~2001시즌 AS 로마와 파르마 FC 소속으로 리그  및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거머쥐며 아시아 선수로는 최초로 세리에 A 무대에서 스쿠데토를 다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한편으로 나카다 히데토시는 1997년, 1998년 AFC 올해의 아시아 선수상을 2회 수상했으며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브론즈볼과 FIFA 올해의선수 후보 TOP 100에 총 4번(1998, 2000, 2001, 2002)은 물론 2004년에는 FIFA 20세기 선정 TOP 100인에 포함되며 월드클래스 선수로서 아시아축구의 위상을 높이는데 톡톡히 한 몫을 했다.

 

▲ 나카다 히데토시     © 구글 이미지

 

이만큼 세계축구 역사속에서 변방으로 취급받던 아시아축구가 세계축구에 월드클래스 선수를 탄생시킬 수 있었던 데에는 한국과 일본의 동남아 축구와 이란의 중동 축구가 주도적 역할을 했지만, 한편으로 아시아축구에서도 변방에 속하는 중국 축구에서도 이들과 비교되는 월드클래스 선수를 탄생시켰다. 바로 쑨지하이(43)가 그 주인공이다. 쑨지하이는 아시아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던 선수로, 중국 슈퍼리그의 다롄 스더에서 4년간 71경기를 소화하며 풀백으로 시즌 10개 이상의 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맹활약을 앞세워, 2008년 잉글랜드 EPL 크리스탈 팰리스(1998~1999)와 1년 임대 계약을 체결하며 유럽 무대에 본격적으로 뛰어 들었다.

 

이런 쑨지하이는 1998~1999 시즌 리그컵에서의 데뷔전을 시작으로, 크리스탈 펠리스에서 전반기 23경기를 모두 선발 출전하며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쳐 진출 시 나돌던 '설왕설래' 논란을 잠재우며 다시 슈퍼리그로 임대 복귀 리그 2연패에 공헌했으며 2001년 중국 FA컵에서도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쑨지하이는 2002년 EPL 맨체스터 시티(2002~2008년)로 깜짝 이적 중국 축구 역사상 가장 성공한 선수로 거듭났다. 이적 후 코벤트리 시티를 상대로 데뷔전을 가진 쑨지하이는 탁월한 수비력과 공격적인 태클을 선보이며 2002년 9월 이달의 최고의 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EPL 무대에서 쑨지하이는 팀 주전으로 자리매김하며 2003~2004 시즌 리그 33경기, FA컵 3경기, 리그컵 1경기, 그리고 유럽 대회에 5경기를 출전하여 총 42경기에서 2골을 기록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다. 그러나 쑨지하이는 2004~2005 시즌 첼시전에서 입은 치명적인 십자인대 부상으로 하향세에 접어들며 2008년 셰필드 유나이티드(2008~2010)로 이적했지만 부상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하고 리그 12경기 출전을 끝으로 유럽 무대에 마침표를 찍었다. 하지만 쑨지하이는 중국 축구로서는 꿈이었던 FIFA월드컵 진출(2002년 한.일 제17회 FIFA월드컵)을 성취해 내는데 최대 공헌자였으며, 아울러 2004년 중국 제13회 AFC 아시안컵 준우승 성적을 거두는 데에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 중국 국가대표팀, 한때 박지성의 라이벌로 불렸던 쑨지하이     © 구글 이미지

 

물론 쑨지하이는 북한의 박두익, 한국의 차범근, 이란의 알리 다에이, 일본의 나카다 히데토시와 같은 레벨에 미치지 못하는 선수 커리어를 지닌 선수지만 분명 아시아 해외파 선수 중 공격과 미드필드 포지션이 아닌 수비 전문 선수로서 EPL에서 130여경기에 출장했다는 사실은 중국 축구를 넘어 아시아축구 선수로서 유럽 무대를 통하여 선보인 월드클래스 다운 활약상의 가치는 인정된다. 20세기를 넘어서며 아시아 축구는 결코 축구변방 대륙이 아닌 유럽과 남미대륙 축구로 대변되는 세계축구아성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이는 아시아 선수들에게도 세계축구 역사에 월드클래스로 발돋음 할 수 있다는 동기부여와 함께 희망을 제공해 준다.      

 

2020년 4월 FIFA가 설립한 국제스포츠연구소(CIES)가 발표한 AFC 가맹국의 각국 '해외파' 배출 현황에서 일본은 161명으로 가장 많은 해외파를 배출했고, 이어 호주가 124명이었으며 한국은 121명으로 세 번째로 많았다. 이를 리그 별로 구분할 때 일본은 79.5%, 호주는 76.6% 한국은 68.6%가 1부 리그에서 뛰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은 숫자 및 백분율에서 일본과 호주 보다 뒤지지만 상대적으로 축구선수라면 누구나 뛰기를 바라는 꿈의 경연장인 FIFA월드컵과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는 물론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FIFA 클럽 월드컵, 아시아경기대회, AFC 아시안컵까지 화려한 커리어를 갖고 있는 이영표(43)와 박지성(39)을 배출 월드클래스 선수 분포도에서는 일본과 호주를 앞선다.

 

여기에 현재 손흥민(28.토트넘 홋스퍼)을 비롯  2019년 폴란드 제22회 U-20 FIFA월드컵에서 최우수선수상(MVP)을 수상한 이강인(19.발렌시아) 등 젊은 해외파의 활약상이 두드러져 세계축구 역사에 아시아축구연맹 가맹국의 일원인 한국 선수들의 월드클래스 등극 가능성 또한 일본과 호주 보다 높아 아시아축구의 발전을 이끄는 선두 주자로서 다른 대륙 연맹과 축구 강국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전 군산제일고등학교축구부 감독
 
기사입력: 2020/06/06 [15:44]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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