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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2017.04.26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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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0.1퍼센트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꾸는가?
[강준만의 이론으로 보는 세상] 블랙 스완 이론, 불가능이 실제 발생
 
강준만

“선한 사람은 검은 백조처럼 희귀하다(A good person is as rare as black swan).” 1~2세기에 활동했던 로마의 풍자 시인 주베날(Juvenal)의 말이다. 검은 백조 또는 블랙 스완은 고대부터 인간의 상상 속에만 존재하던 동물이었다.

 
그러나 1697년 네덜란드 탐험가 빌럼 드 블라밍(Willem de Vlamingh, 1640~1698)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에서 검은색 백조(흑고니)를 처음 발견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때의 발견으로 인해 ‘검은 백조’는 ‘진귀한 것’ 또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나 불가능하다고 인식된 상황이 실제 발생하는 것’을 가리키는 은유적 표현으로 사용되었다.
 
은유적 표현의 ‘블랙 스완’은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1873)이 논리적 오류를 지적하기 위해 최초로 사용했지만, 오늘날과 같은 용법의 원조는 레바논 출신으로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증권 분석가이자 투자 전문가, 뉴욕대학 폴리테크닉연구소 교수로 일한 경력이 있는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 1960~)다. 그는 2001년에 출간한 『행운에 속지 마라(Fooled By Randomness)』에서 ‘블랙 스완’을 처음 사용했으며, 그의 2007년 저서 『블랙 스완(The Black Swan: The Impact of the Highly Improbable)』이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경제 영역에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타임』은 『블랙 스완』을 2009년 ‘지난 60년간 가장 영향력 있는 12권의 책’ 중 하나로 꼽았으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대니얼 카너먼(Daniel Kahneman, 1934~)은 “이 책은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관한 내 생각을 바꾸었다”고 극찬했다.
 
탈레브는 ‘블랙 스완’의 개념을 “과거의 경험으로 확인할 수 없는 기대 영역 바깥쪽의 관측값으로, 극단적으로 예외적이고 알려지지 않아 발생 가능성에 대한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충격과 파장을 가져오고, 발생 후에야 적절한 설명을 시도하여 설명과 예견이 가능해지는 사건”이라고 정의한다. 예를 들면 인터넷, 퍼스널 컴퓨터, 제1차 세계대전, 소련의 붕괴, 경제공황이나 9·11 테러, 구글(Google)이나 페이스북(Facebook)의 성공 같은 사건을 블랙 스완으로 볼 수 있다. 버락 오바마(Barack Obama)의 대통령 당선을 블랙 스완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다.
 
탈레브는 블랙 스완이라는 모티브를 통해 예기치 못한 위기 상황으로 글로벌 경제가 휘청거릴 수 있다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았고, “극단적인 0.1%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꾼다”고 주장하며 최악의 파국이 월가를 덮칠 것이라 경고했다. 그런데 그 경고처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쳐오자 블랙 스완이라는 말이 폭발적인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후 그는 ‘월스트리트의 현자(the new sage in the Wall)’라는 칭호까지 얻었으며, 그의 강연료는 회당 6만 달러를 기록했다.10
 
2002년 미 국방장관 도널드 럼스펠드(Donald Rumsfeld, 1932~)가 기자회견에서 제법 멋진 말을 했음에도, 당시엔 조롱을 받았다. 무슨 말이었나? “우리에게는 우리가 알고 있는 일들이 있고(알려진 사실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들(알려진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있으며, 또 우리가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들(알려지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것이다. “우주는 얼마나 클까?”는 ‘알려진 알려지지 않은 것’이지만, 집단적인 페이스북 열광 같은 것은 ‘알려지지 않은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이게 바로 블랙 스완이다.11
 
탈레브는 자신의 메시지를 ‘배부른 칠면조의 최후’라는 우화로 간단히 표현한다. “칠면조 한 마리가 있습니다. 푸줏간 주인이 1,000일 동안 매일 맛있는 먹이를 주고 정성껏 돌봐주자 자기를 끔찍이 사랑한다고 착각하죠. 그러나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1,001일이 되는 날 주인에게 목이 날아가는 순간 ‘아차, 속았다’ 싶지만 이미 늦은 거죠.”
 
이 우화는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Bertrand Russell, 1872~1970)이 제시한 것으로, 원래는 닭인데 탈레브가 미국 독자들을 위해 칠면조로 바꾼 것이다. 탈레브는 “금융위기 때 1만 년 만의 위기라고 호들갑을 떨었지만 100년도 채 못 사는 인간이 1만 년 만의 위기라는 것을 어찌 검증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금융회사들이 1,000일 동안 착각했던 칠면조 처럼 굴었기 때문에 금융위기가 발생했다고 진단했다.12
 
탈레브는 기존 전문가들에 대해 강한 불신을 드러낸다. 그는 “검은 백조에 지배되는 환경에서 우리는 예측 능력이 없는데다가 예측 능력이 없다는 사실도 대체로 모르고 있다. 그리하여 스스로 전문가라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실제 드러난 예측 능력을 보면 그들은 경험적 기록에 의존하기 때문에 소위 전문 분야에서도 결코 일반 대중보다 더 많이, 더 깊이 알고 있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이 일반인보다 나은 점은 그럴싸한 이야기를 지어내는 능력, 더 심각하게는 복잡한 수학 모델로 보통 사람들을 주눅 들게 만드는 능력, 한 가지 덧붙이자면 정장 차림을 좋아한다는 것뿐이다.”13 탈레브의 메시지를 한마디로 정리한다면,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하지 말고, 아는 척할 것을 요구하지도 말자는 것이다. “오늘날의 교육제도에서 가장 큰 문제는 학생으로 하여금 어떤주제에 대해서든지 설명을 짜내도록 강제하고, ‘잘 모르겠어요’ 하고 판단을 유보하는 것을 수치스럽게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14
 
2013년 9월 24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신흥국의 금융위기와 글로벌 헤지펀드 운용 전략’이란 주제로 열린 ‘제4회 한경마켓인사이트 포럼’ 강연에서 탈레브는 블랙 스완같은 급작스러운 경제위기가 왔을 때 생존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경제 규모를 더욱 분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500년 만에 한 번 발생하는 위기를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미래를 상상하는 것보다 현재 시점에서 깨지기 쉬운 위험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더 쉽다”며 미래 예측에 매달리지 말 것을 주문했다.15
 
탈레브는 심지어 이렇게까지 주장한다. “아침에 그날 하루가 어떨지 약간이라도 예측할 수 있다면 당신은 그만큼 죽어 있는 셈이다. 그 예측이 맞으면 맞을수록 당신은 더 죽어 있다.”16 무슨 말인 줄은 알겠지만, 예측에 반대하는 그의 체질적 강박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불안정한 레바논의 정치적 상황의 영향을 받은 건 아닐까? 그는 레바논 내전을 겪으면서 수년간 집의 지하실에서 공부를 한 경험이 있다고 하는데,17 이때 받은 상흔이 그로 하여금 예측의 무모함을 역설하게 만든 동력이 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탈레브가 전혀 예측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가 2012년에 출간한 『안티프래질: 불확실성과 충격을 성장으로 이끄는 힘』엔 적잖은 예측이 들어가 있다. 『뉴욕타임스』는 “탈레브는 예측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하면서 미래에 대해 예측한다”고 꼬집었는데,18 그의 이중 기준을 어찌 이해해야 할까?
 
자꾸 신조어를 만들어내려 하고 “나는 남의 말을 함부로 인용하는 관행을 혐오한다”고 말하는 ‘창의성 강박증’,19 책에 대놓고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과 눈이 마주치고 나서는 구역질이 났다”는 식의 욕설에 가까운 독설을 퍼붓는 안하무인(眼下無人) 성향,20 즉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의 강한 자기애(自己愛) 때문에 그러는 건 아닐까? 그러나 그 어떤 문제에도 ‘예측 상업주의’가 난무하는 미국 월스트리트에서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극단적인 0.1퍼센트의 가능성에 주목하라는 그의 외침은 소중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왜 인간을 한 가지 지능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는가?
다중 지능
 
미국 하버드대학 교수 하워드 가드너(Howard E. Gardner, 1943~)는 1983년 『정신의 구조: 다중 지능 이론(Frames of Mind: The Theory of Multiple Intelligences)』이라는 저서로 기존의 IQ에 반하는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면서 ‘다중 지능 이론(theory of multiple intelligences)’을 역설했다. 그는 인간의 능력은 단일한 것이 아니라 적어도 7가지 지능이 파이 조각처럼 서로 작용하며 이들 능력 하나하나는 똑같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가드너가 말한 7가지 지능은 언어(verbal-linguistic), 논리·수학(logical-mathematical), 공
간(visual-spatial), 음악(musical-rhythmic), 신체(bodily-kinesthetic), 자기 성찰(intrapersonal), 인간 친화(interpersonal) 등이었다. 그는 15년 뒤에 자연(naturalistic) 지능을 추가했으며, 좀더 근원적인 질문을 할 수 있는 능력, 즉 실존(existential) 지능의 추가 가능성도 언급했다. 왜 다중 지능 이론이 필요한가? 가드너의 답은 다음과 같다.
 
“교육은 개인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학생이 똑같이 마쳐야 할 교과과정이 있다 해도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장 잘 학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만 한다. 만일 신체 지능이 매우 발달한 학생이 논리 지능과 언어 지능만 중요하게 평가하는 학교에 배치된다면 그 학생의 자존감은 낮아질 것이다. 어떤 분야에서 무한한 가능성이 보이는데도 그 능력을 발전시킬 기회를 얻지 못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물론 신체 지능이란 축구를 하는 것부터 외과 수술을 하는 것까지 상당히 넓은 범위를 포함한다.”31
 
어쩌면 다중 지능 이론이 필요한 이유는 미국 제40대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Ronald W. Reagan, 1911~2004)의 전기를 쓴 루 케넌(Lou Cannon, 1933~)의 말을 통해 듣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레이건은 대통령 재임 시 무식과 무지로 악명이 높았지만, 그것이 그의 지지율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매우 높은 인기를 누렸다. 이와 관련, 케넌은 1991년에 출간한 로널드 레이건의 전기 『레이건 대통령(President Reagan: The Role of a Lifetime)』에서 “레이건의 지적 능력은 오랫동안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러다가 문득 하버드의 심리학자 하워드 가드너의 이론이 떠올랐다.……나는 레이건의 지능 행동에 관한 가드너의 분석을 보고, 거대한 미스터리가 갑자기 풀렸을 때 과학자나 형사들이 느꼈음직한 기분을 느꼈다.”32
 
그러나 다중 지능 이론에 대한 오해도 적지 않다. 1990년대 호주의 한 주에서는 다중 지능 이론이 활발하게 응용되었는데, 가드너는 관련 자료를 받아보고 경악했다고 한다. “그 자료에는 다양한 민족과 인종이 나열되어 있었고 그들이 어떤 지능을 지니고 있고 어떤 지능을 지니고 있지 못한지가 터무니없게 설명되어 있었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것은 나의 교육철학을 완전히 왜곡시킨 것이었다. 마침 그런 왜곡의 주범인 호주의 한 방송국이 내게 출연 요청을 했고 나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응했다. 나는 방송에서 그 프로그램을 ‘사이비과학’의 전파자라고 비판했고 그런 소동으로 그 프로그램은 종영되었다.”33
 
2002년 중국 베이징에서는 중국의 9개 지역과 대만을 포함한 7개국의 교육자 2,500여 명이 참가한 다중 지능 학회가 열렸다. 이 학회에선 7개의 정식 발표가 있었고 발표와 관련된 논문이 187편이나 제출되었다. 또 중국에선 다중 지능 이론과 관련된 책이 100권 이상 출판되었다. 이렇듯 다중 지능 이론이 중국에서 높은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궁금해하는 가드너에게 중국의 한 언론인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해주었다고 한다.
 
“그건 매우 간단합니다. 다중 지능 이론에 대해 들은 후 미국인들은 자기 자녀의 특별한 재능에 대해 생각했겠지만 중국인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들은 만약 8개의 분리된 지능이 있다면 자신의 자녀가 유능해져야 할 분야가 8개라고 생각합니다.”34
 
한국에서 오남용도 만만치 않다. 교육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사교육걱정)’의 조사 결과, 대표적인 교재·교구업체 8곳이 다중 지능 이론을 바탕으로 8가지 영역의 지능을 고르게 발달시켜 준다며 수십만 원이 넘는 상품을 팔아왔으며, 전국 160여 개 분원을 거느린 7개 프랜차이즈에선 이런 교재와 교구를 사용한다며 월 68~127만 원씩 교습비를 받았다.
 
가드너는 사교육걱정과 주고받은 이메일을 통해 자신의 이론이 왜곡되고 있는 한국의 사교육 현실을 우려했다. 그는 “다중 지능 이론은 시작했을 때부터 왜곡되고 오용돼왔다. 나는 (한국의) 사교육 회사들이 다중 지능 이론에 대해 근거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워낙 그런 사례가 많아서) 그렇게 놀랍지는 않다. 나는 어떤 특정 제품을 결코 승인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한국의 부모와 교사들은 사교육업체의 다중 지능 이론 주장을 거부해야 한다”고 말했다.35
 
그런데 미국 뉴멕시코대학 진화심리학자 제프리 밀러(Geoffrey F. Miller)는 다중 지능 이론과 관련, 매우 흥미로운 질문을 던진다. 왜 다중 지능 이론을 주장하는 이들은 주로 하버드·예일대학 교수들인가? 가드너는 하버드대학 정서 지능의 옹호자인 피터 샐러베이(Peter Salovey)와 3가지 지능(지식 습득 지능, 사회 지능, 실용 지능)의 옹호자인 로버트 스턴버그(Robert Sternberg)는 예일대학 교수인 게 과연 우연이겠느냐는 것이다. 밀러는 하버드·예일대학 학위는 기본적으로 ‘아이큐 보증서’라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대학은 값싸고 빠르고 신뢰성이 더 높은 아이큐 검사들과 직접적으로 경쟁하는 값비싸고 느리고 신뢰성이 떨어지는 지능 지표 상품을 제공하는 곳이다. 대학들은 지금 학력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하버드대학과 예일대학은 값이 약 16만 달러(4년 동안 등록금, 기숙사비, 책값)인 학위라고 불리는 멋진 종이를 판다.……명문대학들은 그들의 값비싼 아이큐 보증서가 값싸고 빠른 아이큐 검사들과 경쟁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것은 지능 과시 시장을 생필품화해 가격을 끌어내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명문대학들은 지능검사들과 위선적인 애증 관계를 맺고 있다.”
 
밀러는 명문대학들이 사실상의 아이큐 검사인 SAT를 이용해 학생들을 선발하면서도 아이큐 검사가 자신들의 학위를 대신할 수 있다는 사실을 거세게 부인한다고 말한다. 그는 명문대학 졸업생들도 일상의 대화에서 무슨 대학을 나왔다고 말하는 것까지는 괜찮아도 SAT나 아이큐 점수를 언급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 사회규범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쓴다면서, 하버드 졸업생이 데이트에서 “해마다 하버드 교정에 설탕단풍이 정말 아름답게 물들었어요”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내 SAT 점수는 하버드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높고(800점 만점에 대략 720점), 따라서 아이큐는 135 이상이며, 나는 졸업을 할 만큼 충분한 성실성, 정서 안정성, 지적 개방성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하나 더 덧붙이면, 나는 나무를 구별할 수 있어요.” 정보의 내용은 같지만, 전자는 시적으로 들리고 후자는 상스럽게 들린다는 차이밖에 없다는 게 밀러의 주장이다.36'
 
일리도 있고 생각해볼 점이 많은 주장이긴 하지만, 가드너가 한 가지 지능을 중요시해 입학
여부를 결정하는 명문대학들의 입시정책과 그곳에 들어가려는 열풍에 대해 비판적이라는 점은 감안해주기로 하자. 그는 “그렇게 시험 점수로 사람들을 1등부터 꼴찌까지 줄 세우는 것을 반대합니다. 왜냐면 똑똑하다고 칭찬할 만한 능력은 성적이 좋은 경우뿐 아니라 여러 다른 재능들에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을 하나의 시험으로 평가하는 일은 근본적으로 어느 특정한 능력에만 찬사를 보내고 미화시키는 겁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수학과 언어능력 중심으로 사람들한테 영광을 얻게 해준 거예요”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IQ(지능지수) 검사를 보다 정교하게 보완한 검사 중 하나가 미국 고등학생들이 대학 입시를 위해 치르는 SAT입니다. 한국 시험도 이와 비슷할 거 같은데요. 언어 점수와 수학 점수를 중시하는 일종의 단일 지능 위주의 테스트죠. 20세기 산업 패턴에 맞춰진 테스트입니다. 이런 시험으로는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고 자기를 바로 보는 능력, 예술적인 자질, 창의력은 평가할 수 없습니다. 실제 우리 생활에서 매우 필요한 능력인데도요.”
 
또 가드너는 “그렇다고 논리적 사고를 평가하는 IQ 테스트가 그 사람의 미래를 잘 맞추는 것도 아닙니다. 한 가지에 초점을 둬서 검사하는 것보다 훨씬 다양한 조건들을 더해서 검사를 하면 예측성이 눈에 띄게 떨어집니다. 사람의 미래를 뭐라 예측한다는 것이 참 부질없음을 알게 하죠”라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적이 좋으니까 법대 가면 잘할 거라는 기대감도 IQ 위주로 평가해서 나온 건데, 법은 논리와 언어 능력이 동등하게 요구되기 때문에 수학 잘한다고 법대 교수가 될 거라는 기대는 틀린 겁니다. 의사도 그렇습니다. 과학과 의학에다 환자까지 다룰 수 있어야 하는데 환자의 얼굴을 보며 상태를 읽어내는 능력은 IQ가 아니라 인간 친화 지능에 더 가깝죠. 바로 이 인간적 교감 때문에 우리는 기계가 아닌 사람 의사를 찾아가는 것이고요. 누가 훌륭한 판매 능력을 갖춘 마케터인지 알려면 시험 성적에 중점을 두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이 당신한테 물건을 팔 수 있는지 보는 것이 마케팅의 기본이니까요. 또 새로 발명품을 만들어야 한다면, 이때는 그 어떤 시험도 미리 줄 수 있는 정보가 없습니다.”
 
가드너는 여러 사람이 평가받는 시험은 우선 치르기 편리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과거부터 언어·수리 능력 위주로 출제해온 거라고 말한다. “그런 시험지에는 큰 질문들은 나오지 않습니다. ‘왜 우리는 죽는가’, ‘사랑이 무엇인가’, ‘사람들은 왜 싸우지’, ‘한국과 일본 사이에 천 년 넘게 흐르는 긴장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런 사유하는 질문들은 답하는 데도, 점수를 주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요. 하지만 이런 질문에 쉽게 몰두하는 능력을 갖춘 이들이 있습니다. 실존 지능(existential intelligence)이라고 논문을 발표할까 생각하고 있는데요. 이런 큰 질문들은 종교와 철학 그리고 때로는 문학으로 승화되죠. 이런 능력은 테스트로 알 수 없죠. 수리능력, 언어능력이 독창성, 창의력, 공감력보다 더 중요하다고 평가되어서는 안 됩니다. 21세기는 협력하는 작업이 훨씬 중요해요. 이것도 우리가 종이에다 연필로 적어서 테스트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죠.”37
 
가드너는 실패를 용납해야 창조성이 생긴다며 실패를 용납하지 않는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그는 “경제 현장에서는 도산이 없을 수 없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단 한 번 도산에 대표가 자살을 하는 일도 있다. 아시아에서는 실패를 엄청난 창피로 간주하는 셈이다.……한국인과 중국인은 실제 실력만큼 창조적이지 못하다. 어쩌면 당연하다. 유교적 사회는 정부가 정답을 정한 뒤에 그것을 효과적으로 가르치는 일을 수천 년 동안 반복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교사회는 종전처럼 지식을 대량 전파하는 방법을 찾을 게 아니라 어떻게 창조성을 높이고 전파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20년 전 아이를 입양해 키우려고 중국에 간 적이 있다. 그때 호텔 방문을 열려고 우리 아이가 열쇠를 집어넣다 몇 번인가 떨어뜨렸다. 우린 그걸 보고만 있었는데 중국인 부부가 오더니 아이 손을 잡고 강제로 열쇠를 구멍에 꽂아 주었다. 그러면서 우리를 나쁜 부모라도 되는 양 노려봤다. 그래서 나는 설명을 해줬다.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가르치고 있다고. 유교사회와 서양사회 차이점은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권위(교과서)를 통해 이해를 하느냐, 스스로 알아내느냐 하는 차이다.”38
 
우리 현실에서 하루아침에 아이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가르치는 교육 방식의 도입은 어려울 것이다. 교육은 단순히 기술적 방법론의 문제를 넘어서 한 사회의 가치관과 더불어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사회적 습속(習俗)의 통제를 벗어나긴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을 한 가지 지능만으로 평가해서는 안 되며, 각자의 개성과 비교 우위를 가진 능력을 개발하는 쪽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건 큰 무리 없이 얼마든지 시도할 수 있는 일이다. 어려서부터 승자(勝者)와 패자(敗者)를 갈라 아이들의 계발되지 않은 잠재력을 훼손하는 건 개인의 비극인 동시에 사회적 비극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10) 「블랙 스완」, 『네이버 지식백과』; 「The Black Swan(2007 book)」, 『Wikipedia』;
「Black swan theory」, 『Wikipedia』;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 이
건 옮김, 『행운에 속지 마라』(중앙북스, 2004/2010); 차익종, 「검은 백조의 출현, 나심 니
콜라스 텔레브를 월가의 이단자에서 ‘현자’로 만들다」,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 차익종 옮김, 『블랙 스완: 0.1%의 가능성이 모든 것을 바꾼다』(동녘사이
언스, 2007/2008), 7~13쪽; 장경덕, 『정글경제특강』(에쎄, 2012), 31쪽; EBS 지식프라임 제작팀, 『지식 EBS 프라임』(밀리언하우스, 2009), 20~22쪽.
11) 롤프 도벨리(Rolf Dobelli), 두행숙 옮김, 『스마트한 선택들: 후회없는 결정을 하기 위해
꼭 알아야 할 52가지 심리 법칙』(걷는나무, 2012/2013), 264쪽; 제이슨 츠바이크(Jason
Zweig), 오성환·이상근 옮김, 『머니 앤드 브레인: 신경경제학은 어떻게 당신을 부자로 만
드는가』(까치, 2007), 247쪽.
12) 이한나, 「자료로 미래 예측? 제발 착각하지 말라!」,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 김현구 옮김, 『블랙 스완에 대비하라: 최악의 상황에서도 살아남기 위한
10가지 원칙』(동녘사이언스, 2010/2011), 8~9쪽; 마이클 모부신(Michael Mauboussin), 김정주 옮김, 『왜 똑똑한 사람이 리석은 결정을 내릴까?』(청림출판, 2009/2010), 191쪽.
13)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 차익종 옮김, 앞의 책, 26쪽.
14)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 차익종 옮김, 앞의 책, 215쪽.
15) 하수정·정영효, 「‘블랙 스완’의 경제위기 해법…“무위험·고위험에 8대 2 투자”」, 『한국경제』, 2013년 9월 24일.
16)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 배현 옮김, 『블랙 스완과 함께 가라:나심 니콜라스 탈레브의 위대한 잠언집』(동녘사이언스, 2010/2011), 20쪽.
17) 「Nassim Nicholas Taleb」, 『Wikipedia』.
18) 백승찬, 「[책과 삶] 안주하지 말라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 『경향신문』, 2013년 10월
5일.
19)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 이건 옮김, 앞의 책, 6~7쪽.
20)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 안세민 옮김, 『안티프래질: 불확실성과
충격을 성장으로 이끄는 힘』(와이즈베리, 2012/2013), 593쪽.
31) 앤디 헌터(Andy Hunter), 안수정 옮김, 「다중 지능: 하워드 가드너」, 『브레인월드 미
디어』, 2014년 1월 24일.
32) 데이비드 거겐(David Gergen), 서율택 옮김, 『CEO 대통령의 7가지 리더십: 리처드 닉
슨에서 빌 클린턴까지』(스테디북, 2000/2002), 281~283쪽.
33) 하워드 가드너(Howard E. Gardner), 문용린·유경재 옮김, 『다중 지능』(웅진지식하우
스, 2006/2007), 81쪽.
34) 하워드 가드너(Howard E. Gardner), 문용린·유경재 옮김, 앞의 책, 295~296쪽.
35) 전정윤, 「‘다중 지능 이론’ 창시자 하워드 가드너 “유아교육업체 다중 지능 상품
근거 없어”」, 『한겨레』, 2014년 8월 5일.
36) 제프리 밀러(Geoffrey F. Miller), 김명주 옮김, 『스펜트: 섹스, 진화 그리고 소비주의의
비밀』(동녘사이언스, 2009/2010), 281~282쪽.
37) 안희경, 「[문명, 그 길을 묻다-세계 지성과의 대화] (3) 하워드 가드너 미국 하버드대
교수」, 『경향신문』, 2014년 1월 28일.
38) 전호림·김민우, 「“실패 용납해야 창조성 생긴다”: ‘다중 지능 이론’ 개발 하워드 가드너 하버드대 교수에게 듣는다」, 『매일경제』, 2005년 8월 8일, A30면.

 

* 본문은 본지와 기사제휴협약을 맺은 월간 <인물과 사상> 2015년 2월 호에 실렸습니다.


글쓴이 강준만은 언론과 대중문화를 포함하여 문화사 전반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 조지아대에서 신문방송학 석사, 위스컨신대에서 신문방송학 박사학위를 받고 1989년부터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현대사 산책(전 23권)](2002~2011), [한국대중매체사](2007), [미국사 산책(전17권)](2010), [세계문화의 겉과 속](2012) 등이 있다.
 
기사입력: 2015/03/06 [22:12]  최종편집: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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