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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외압가한 이환경, ‘신화’는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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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의 총체적 '졸속' 실책과 이환경의 '작가관'이 역사에 가한 테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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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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ㅣ 기사입력 |
2005/03/15 [13: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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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시대』 조기 종영과 이환경이 제기한 ‘정치권 외압설’ MBC가 기획하고, 사극(史劇)계의 스타 작가 이환경이 작품을 쓴 『영웅시대』가 100회 방영 계획을 접고 2005년 3월 1일 70회를 끝으로 조기 종영되었다. 그 이유에 대해 MBC는 “시청률이 기대에 못 미칠 뿐 아니라 현재 제작 중인 드라마 『제5공화국』과 일부 내용이 중복되기 때문”이라고 밝혔으나, 이환경 작가의 ‘박정희ㆍ이명박 등 특정 인물 미화’와 ‘역사 왜곡’, ‘정치권 외압설’ 등 갖가지 논란이 증폭된 와중에 종방이 되어 그 후유증이 심각한 상태다. 특히 ‘정치권 외압설’은 아직 그 실체와 사실 여부가 밝혀지지 않아 논란이 계속될 전망이다.
문제의 외압설을 맨 처음 꺼내든 인물은 『영웅시대』의 작가 이환경이었다. 『동아일보』 2004년 12월 4일자 인터뷰에서 그는 “현 정권의 외압은 없었나”라는 질문에 “‘조심해서 쓰는 게 좋을 것’이라는 우려를 전달받았다. 물론 누구인지 밝힐 수는 없다”며 정치권 외압을 최초로 언급했다.
그 후 『중앙일보』 2005년 1월 8일자 인터뷰에서도 “방송이 시작되기 전 여권 고위 관계자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정치권 차세대 주자를 다룰 때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큰일날 것이니 주의하라’는 내용이었다. 한두 번이 아니라 상당히 여러 번 전화를 받았다”고 말했고, 이어 역시 『중앙일보』 1월 12일자 인터뷰에서는 “방송사가 뭔가에 시달리고 있는 게 뻔하지 않느냐”며 드라마 조기 종영 이유가 정치권 외압임을 추측했다. 그러나 이환경은 정작 외압의 실체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으며, 절대 밝히지 않겠다는 다짐까지 하고 있다.
그의 외압설 유포에 대해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물론 『조선일보』가 가만있을 리 만무하다. 이들은 여권의 외압설을 집중적으로 공격했고, 특히『조선일보』는 <영웅들, 외압에 쓰러지나>(2005년 1월 11일자) 제하의 기사까지 내보내는 등 정치권 외압설을 기정사실화 시키고픈 욕망을 강하게 드러내기도 했으나, 아직 본인들도 밝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위험을 자초한 MBC의 실책
외압설에 대해 MBC 측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단호히 부정한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영웅시대』를 둘러싼 온갖 잡음의 가장 큰 책임은 MBC에 있다. 드라마를 어설프게 조기 종영시킨 것은 물론, ‘졸속 기획’에 ‘작가 선정 실패’까지 주요 실책이 MBC에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번 사태의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시청률’이나 ‘외압설’이 아니다. 바로 『영웅시대』가 보여준 드라마의 성격과 윤리이다.
애초 MBC 제작진이 이 드라마를 통해 보여주고자 했던 실상은 ‘재벌 미화’도 ‘이명박 예찬’도 아닌, 지난 과거의 역사를 통해 경제난에 빠진 현시대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기획 의도만 그러했지 실존 인물들을 다루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오류, 곧 ‘역사 왜곡’이나 ‘특정 기업과 인물 미화’ 등을 차단할 만한 치밀한 준비는 없었다. 다른 작품들 역시 마찬가지겠지만, 논란이 예상되는 작품의 경우 탄탄한 준비와 내공이 결여된 기획은 그 자체로 ‘졸속’이 된다.
여기에 이환경 작가를 기용함으로써 MBC는 결정적인 위험을 자초했다. 『영웅시대』가 방영되기 전 이미 김도형 기자는 『한겨레』 2003년 11월 14일자에서 “빛과 그림자가 뚜렷한 고 정(주영) 명예회장을 있는 그대로 그리지 못할 경우 ‘정주영 미화 드라마’라는 비판의 소지 있”을 것임을 예고했으며, 특히 “에스비에스 『야인시대』에서 주인공 김두한 중심의 역사관을 선보여 ‘반공 신파극’ 논란을 일으킨 극작가 이환경 씨가 극본을 맡고 있어 우려의 소리가 높다”고 지적한 바 있다.
아니나 다를까 드라마는 김도형 기자의 예상대로 흘러가 버렸다. 드라마가 막바지에 달하고 있던 2005년 2월 22일 김대성 기자가 『한국일보』에 쓴 기사의 일부 내용을 보자.
“MBC가 『영웅시대』 기획 단계부터 조기종영 결정에 이르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노출한 점은 명백하다. 지난해 초 이환경 작가가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를 제안했고, MBC는 이를 수용했다.
이 과정에서 실존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가 가져올 파장이나 문제점에 대한 세밀한 검증이 없었다. 이미 SBS 『야인시대』를 통해 편향된 정치적 시각을 드러낸 바 있는 작가 한 사람에게 한국 경제 발전사에 대한 해석과 평가를 일임한 것도 위험을 자초했다. MBC의 이런 ‘졸속 기획’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명박 서울시장에 대한 미화와 사실왜곡 논란 등 부작용을 낳았고, 이를 통제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환경 부작용’ 톡톡히 치른 MBC
MBC가 이환경 작가를 기용한 가장 큰 이유는 『용의 눈물』과 『야인시대』 등을 통해 입증된 ‘시청률 보증수표’로서의 스타성과 흥행성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웅시대』는 그의 명성에 비해 시청률이 기대 이하였고, 작품 내용에 있어서도 부정적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다음은 김진철 기자가 『한겨레』 2005년 1월 13일자에 쓴 <외압설ㆍ조기종영 MBC ‘영웅시대’/“역사 왜곡과 특정인 띄우기가 더 문제”>의 일부이다.
“(『영웅시대』에서) 대표적 친일 기업가인 박흥식은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철학있는 기업인’으로, 반민특위는 가해자인 것처럼 그려 비판을 받았다. 재벌 미화 우려도 기우가 아니었다. 애초 제작진은 ‘재벌의 공과를 다룰 것이고, 개발 도상에서 희생해온 민초들도 있었다’며 ‘영웅은 한국 경제를 일으킨 국민 전체를 말한다’고 했지만, 정경유착에 희생된 노동자들의 모습은 시종 찾아볼 수 없었고 재벌그룹의 ‘과’도 거의 드러난 것이 없었다.
외려 지난 11일 방송에선 ‘사카린 밀수 사건’을 다루며 ‘대한그룹’을 피해자로, 박정희 전 대통령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묘사하는 등 정경유착의 두 주체에 모두 면죄부를 주는 효과를 낳았다. 이명박 서울시장 띄우기도 심해지고 있다. 이 작가는 이 시장의 모델인 박대철을 ‘단지 해설자와 같은 인물’이라고 설명했으나, 요즘은 천태산(정주영 회장 모델)과 국대호(이병철 회장 모델)보다 박대철이 ‘영웅’인 듯 그려지고 있다. 실제로 11일치를 보면, 박대철이 등장할 때마다 웅장한 배경음악이 나오면서 한편의 ‘위인전’이나 ‘영웅신화’를 보는 듯 그려질 뿐, 해설자 구실은 전혀 하지 않는다.”
이명박에 대한 미화
위의 기사에도 언급이 되지만 『영웅시대』에서 가장 비판을 많이 받은 부분이 이명박에 대한 미화이다. 이에 대해선 성기노 기자가 『일요신문』 2005년 3월 6일자에 일목요연하게 지적한 바 있어 그 핵심을 요약, 정리해 본다.
“드라마 1∼2회에서 이명박 모델의 ‘박대철’은 냉정하고 현명한 관찰자이자 세기그룹의 성장을 이끌어온 훌륭한 경영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일부 네티즌들은 ‘그는 마치 현대와 한국의 미래를 모두 예견했던 인물로 나오고 있다’며 비판성 글을 올렸다. 또 극중에서 박대철이 전기고문 때문에 실신하는 장면이 나오는 등 민주화 투사의 이미지를 ‘주입’하려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박대철의 입사 문제를 두고도 박정희 전 대통령과 이후락 공보실장, 그리고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모두 도와준 것으로 묘사되나, 이는 이명박의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 등장하지 않는 내용이며, 특히 김형욱과 박대철이 입사 조건을 위해 담판을 벌인 건 사실이 아니다.
아울러 굴착 작업에 애로를 겪는 경부고속도로 당제터널 공사에서 박대철이 ‘조강시멘트’를 써야 한다고 제안하며 해결사로 등장하는데,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 『이땅에 태어나서』를 보면 공사 난관 극복의 결정적 아이디어는 (이명박 시장이 아닌) 당시 현장소장이었던 양봉웅 씨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며, 이명박의 자서전 어디에도 그가 ‘해결사’로 긴급 투입돼 조강시멘트를 쓰자고 주장했던 이야기는 없다.”
이와 같은 일련의 비판에 대해 이환경 작가가 반박하는 주요 논거 중 하나가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역사 교과서가 아니다”이다. 아마 이 말에 일정 부분 동의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역사 드라마의 윤리와 근간을 위협하는 매우 위험한 논리이다. 이에 대해선 조금 뒤 본격적인 비판을 가하겠다.
다시 이환경 작가를 기용한 MBC의 실책에 대해 거론하면, MBC는 작가의 흥행성에만 치중을 했지 그 동안의 작품을 통해 보여준 이환경의 ‘역사관’과 ‘작품 스타일’에 대해선 검증을 소홀히 했거나 또는 문제점을 알면서도 그 심각성을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은 오류를 범했다.
‘영웅 중심 세계관’
이환경 작품의 주요 특성으로 빼놓을 수 없는 게 영웅 중심의 세계관이다. 그의 작품에 ‘영웅’이 빠진 드라마는 거의 없다. 태종 이방원 등의 영웅을 그린 『용의 눈물』『태조 왕건』『제국의 아침』, 김두한을 영웅화한 『야인시대』, 아예 제목부터 『영웅시대』라 이름한 『영웅시대』 모두 영웅 일대기이다. 여기서 흥미있는 대목 하나를 전한다.
고려시대 광종의 역사를 다룬 『제국의 아침』과 관련해 이환경은 “광종에 대해 집중적으로 연구했는데, 광종과 관련한 논문과 책은 아무리 뒤져도 왕건의 10분의 1밖에 안 돼서 어렵”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조선일보』2002년 3월 4일자 인터뷰) 그러면서도 탤런트 김상중(광종역)을 통해 카리스마 넘치는 왕으로 묘사하려는 과욕을 부렸다. 왕규에 대해선 “‘왕규의 난’ 때문에 부정적으로 알려진 왕규를 새로운 인물로 발굴하겠다”고 했으며 실제로 왕규를 새로운 영웅으로 ‘발굴’했다.
흥미롭게도 그는 2002년 3월 3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사극 작가로서의 보람을 이런 데서 느껴요. 역사 속에 묻혀있던 인물(정도전, 궁예, 왕규)에게 새로운 목소리를 부여한다는 점이 저로서는 기쁩니다”라고 말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런 게 바로 이환경의 작품 스타일, 곧 영웅 만들기의 쾌감이라는 것이다.
‘성공 신화 작가관’과 ‘보수 지배계급 역사관’
이번엔 ‘성공 신화 작가관’이다. 이걸 가장 해독(解讀)하기 좋은 기사가 『헤럴드경제』 2004년 9월 8일자 인터뷰이다. 아래는 재벌 미화를 우려하는 질문에 대한 이환경의 답변이다.
“나는 노동자 출신이다. 애써 그들을 미화할 이유가 전혀 없다. 내가 그리고 싶은 것은 그야말로 황무지에서 신화를 만들어 낸 인간중심주의에 관한 이야기다. 재벌 미화 운운하는 사람들은 패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이다. 재벌도 인간이다. 그리고 늘 잘살고 성공한 사람은 이 시대에서 손가락질을 받고 뭇매를 맞는 법이다. 그것은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 더 많기 때문이다. 나는 소신대로 쓸 것이다.”
이환경은 지금 잘살고 성공한 사람들에 대한 일반의 손가락질을 ‘질시’ 정도로 폄하하고 있다. 그 자신 노동자 출신이자 초등학교 최종 학력이라는 가슴 아픈 환경을 극복하고 대작가로 성공했기 때문에 저와 같은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본인 역시 가난의 아픔이 무엇인가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라면, 열심히 살아도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의 가슴을 향해 대못을 박는 발언은 삼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역사가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을 극소수로 제한시켰고, 그 관문 역시 지극히 제약해왔기 때문이다.
위의 발언이 시사하듯이 이환경은 성공 신화의 작가관과 인생관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여기에 영웅 중심의 세계관도 있으니 박정희, 정주영, 이명박이 긍정적으로 묘사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결과이리라.
이 외에도 이환경에게는 ‘보수 지배계급 역사관’까지 공존해 있다. 지난 고려사 이전부터 조선사를 거쳐 근현대사를 다루기까지 그가 집필한 주요 드라마에는 이름없는 민초들의 삶과 애환이 주연으로 부각된 적이 없다. 왕실과 재벌, 개발독재의 지배계급이 현란한 영웅담을 전할 뿐이다. 유일한 재야파(?)가 있다면 그건 『야인시대』의 김두한이며, 유일하게 민중을 주인공으로 그린 작품이 있다면 『전설의 고향』뿐이다. 이와 같은 특징은 ‘친일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야인시대』 친일 역사 왜곡 논란
우선 김대홍 기자가 『오마이뉴스』 2002년 8월 24일자에 기고한 <SBS 드라마 『야인시대』 친일 논란> 일부를 인용해보자.
“SBS 드라마 『야인시대』가 ‘친일’ 드라마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동아일보』 창시자인 김성수가 극중에서 민족지도자로 묘사된 것에 대한 반발 때문이다. 이러한 반발이 강하게 드러난 것은 지난 8월 19일 방영된 7회분에서다. 이 날 극중 나레이터의 음성으로 소개된 김성수는 ‘민족의 계몽운동을 위해 평생을 살아온 사람, …… 민족자본가로서 그 시대 지성의 대표적 인물의 한 사람, …… 동아일보사를 창립하였으며, 중앙학원과 지금의 고려대학 전신인 보성전문학교를 세웠고 경성방직과 호남에서의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민족의 의지를 일깨우는 데 헌신해 온 선각자’라고 묘사돼 있다.
이와 함께 『시대일보』 기자인 최동열에게 ‘우리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그리고 자네의 신문사는 비록 경쟁하는 처지지만 민족의 일에 한해서는 늘 뜻을 함께 해왔어’라고 말하는 대목과, …… ‘벽초 홍명희 선생이나 인촌 김성수 같은 분들의 투철한 민족의식이 살아있는 한 이 나라는 분명 희망이 있는 나라가 아니겠습니까’라고 말하는 대목도 비판을 받는 부분이다.”
이 기사 중 세심하게 검토해봐야 할 대목이 있다. 인촌 김성수와 동아ㆍ조선에 대해 위와 같이 소개한 『야인시대』 7회분의 시대 즉 연대이다. 흔히들 이 점을 간과하고 연대와는 상관없이 김성수와 조선ㆍ동아의 친일 행적을 거론하며 이환경을 비판하는데, 여기엔 나름의 함정이 있다.
김두한이 1918년생이고, 『야인시대』 8회분부터 청년기로 훌쩍 뛰어넘으니 7회분 때는 소년기로서 중일전쟁이 발발한 1937년 이전이다. 작가 이환경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 학자들과 시민단체 측에서 김성수와 방응모,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본격적으로’ 친일 행적을 일삼은 시기를 중일전쟁 이후로 초점을 맞추는데, 혹시 이 점을 노려 김두한의 소년기 시절, 즉 중일전쟁 이전에 저와 같은 나레이션을 내보낸 것 아닌가?
아니어도 상관은 없다. 중요한 건, 조선과 동아 그리고 김성수와 방응모의 일제 행적 전반이 관통된 세월 앞에서 친일에 대한 언급은 일언반구도 없이 유독 저와 같은 나레이션을 내보낸 작품 구성과 기획 의도이다. 여기까지 설명했으니 그림은 독자들이 그리시길 바란다.
‘『영웅시대』 친일미화’
이번엔 『영웅시대』에 드러난 ‘친일 논란’이다. 다음은 『헤럴드경제』 2004년 9월 25일자에 실린 기사 <『영웅시대』 친일미화 홍역>이다.
“MBC 월화드라마 『영웅시대』(극본 이환경, 연출 소원영)가 일방적 재벌 미화에 이어 친일 기업인 미화라는 비난에 몸살을 앓고 있다. 현재 24회까지 방영된 『영웅시대』는 23회 방영분에서 반민특위에 제소된 친일 기업인 박흥식을 철학과 양식이 있는 기업인으로 묘사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일제 당시 화신백화점의 사장이었던 박흥식은 대표적인 친일 기업인. 1934년 화신연쇄점을 연 박흥식은 총독부와 결탁, 당시 일본의 자본과 조직이 주류를 이루던 상업판에 조선인으로서 활약했다. 38년엔 총독부의 지시로 조선비행기주식회사를 설립하기도 했으며, 42년엔 일왕 히로히토에게 ‘대동아전쟁 완수에 전력을 바칠 것’을 맹세하기도 했다.
이런 전력으로 해방 후 그는 반민특위에 제소돼 군수공장을 경영한 죄목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런 내용들이 23회 방영분에서 반민특위 조사관의 대사에 조목조목 포함돼 있다. 하지만 문제가 된 것은 이 장면에서 반민특위에 제소된 박흥식의 친일을 기업인으로서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묘사했다는 것. 극중 박흥식은 죄과를 묻는 취조관에게 자신의 친일행위 일체를 긍정하며 모든 것을 달관한 듯이 순순히 형을 받아들인다. 이에 국대호가 자신의 아들에게 박흥식을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철학 있는 기업인’이라고 가르친다.”
위의 기사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박흥식을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철학 있는 기업인’이라고 가르친다”는 내용이다. 박흥식이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건 사실로 전해지고 있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 중에는 창씨개명 여부를 친일 여부와 직결시키는 정서가 일정 부분 존재한다. 이환경 작가가 무슨 의도로 위와 같이 말했는지 뉘앙스만 짙게 풍길 뿐, 정확한 의도는 알 길이 없으나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대목이 있다. 아래 방학진 민족문제연구소 사무국장의 말을 들어보길 바란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친일파가 아니’라는 주장은 역사를 모르는 대단히 무지한 주장이다. 창씨개명을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극악한 친일행위를 한 경우도 많거니와 창씨개명 여부는 친일을 따지는 절대적인 자료가 아니다. 화신백화점 사장으로 반민특위 체포 1호인 박흥식도 일본군 하사관 출신으로 김구 암살 배후로 알려진 김창룡도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경우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친일파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드라마의 외투’를 두르고 시청자들을 우롱하는 기만 내지 사기
친일 논란에 대해 이환경은 “역사 왜곡이 아니다. 나는 박흥식과 개인적인 관계도 없고 편들 이유가 없다. 단지 기업 드라마를 쓰는 사람으로서, 기업을 하는 선두 주자들은 언제나 권력에 의해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고 말했다.
이환경은 주로 이런 식이다. 친일 미화를 비판하면 그 사람과 개인적인 관계도 없고 편들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재벌 미화를 비판하면 노동자 출신으로서 재벌을 미화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도 할 건 다한다. 아울러 단골 메뉴처럼 아래와 같은 말도 잘한다.
“사극은 역사 교과서도 아니고 완전한 허구도 아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유의할 게 있다. 역사 교과서가 아니라고 해서 함부로 허구를 오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교과서는 아니지만 사극은 엄연히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다. 그렇다면 역사적 사실과 드라마적 허구를 적재적소에 구사하는 실력과 양심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실존의 인물들을 상당부분 사실적으로 그리는 과정에서 다소 미화시키는 부분에 대해 드라마적 성격으로 빠져나가려 드는 건, ‘드라마의 외투’를 두르고 시청자들을 우롱하는 기만 내지 사기에 가깝다. 『한겨레』 2003년 4월 19일자에 실린 한 프로듀서의 다음과 같은 말도 귀담을 필요가 있겠다.
“정치물에서 정치적 상상력이 동원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당시 역사적 환경과 배경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그럴 수 있다’는 합리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결여되면 공상이고 역사 왜곡으로 이어질 수 있다.”
지당하신 지적이다. 『야인시대』의 경우만 하더라도 그렇다. 구마적과의 결투에서 쓰러진 김두한이 김좌진 장군을 떠올리고(항일운동을 연상시킴), ‘구역 싸움’의 성격이 짙은 일본인들과의 패싸움을 마치 독립운동이라도 하는 양 그리는 건 역사적 사실 자체를 틀어버린 왜곡이지, 드라마적 허구로 용인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이환경은 현대 사극(史劇)판의 이문열인가?
드라마 작가 이환경을 보면 간혹 문학계의 이문열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곤 한다. 둘의 특성이 매우 흡사하기 때문이다. 우선 이들은 각 분야의 인기 작가로서, 폭넓은 대중성을 가지고 있다. 또한 작품에 대한 대중 흡입력도 강할 뿐더러, 작가로서의 능력도 인정받고 있다.
세계관과 역사관도 비슷하다. 위에 이환경의 친일 미화 부분을 거론했는데, 이문열 역시 친일에 대해 상당히 너그러우며 때론 망언도 일삼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문화일보』 2004년 8월 20일자에 실린 한일합방 관련 발언이다. 그는 “우리는 36년간 국제법상 합법적으로 합방됐다”고 말해 언론과 네티즌들에게 강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그의 ‘한일합방 합법’ 발언은 일본 정부의 공식입장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조중동과 가깝게 지낸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아직까지 이 두 작가가 조중동과 대립각을 세운 적은 거의 전무하다시피하다. 아울러 보수 지배계급의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흡사하다. 이문열의 경우엔 이환경보다 더욱 농도가 짙은 수구적 행태를 보여온 인물로 친일 청산 등의 과거사 문제, 언론개혁 및 언론사 세무조사, 역대 정권을 바라보는 시각 등에 있어 자타가 공인하는 수구세력의 대변자로 맹활약을 해왔다.
남성 중심의 글을 즐겨 쓴다는 점도 닮은꼴이다. 이환경은 주로 ‘선 굵다는’ 남성 드라마를 써왔고, 이문열은 소설 『선택』등에서 적나라하게 보여지듯이 가부장적 권위주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이환경론을 쓰는 와중에 이문열을 개입시켜본 건, 이 둘 사이에 유사점이 많아 이환경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을 드리기 위해서이다. 이상으로 이환경론을 마치며, 장문의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린다. * 본문은 웹진 인물과 사상(http://inmul.co.kr)에서 제공했습니다. * 필자 이태준은 문화, 정치,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으며, 앞으로 이 분야에 해당되는 인물들을 꾸준히 다룰 예정이다. 한때 온라인상에서 '절망의 강'이라는 필명을 쓴 바 있으며, 저서로는 '이회창 대통령은 없다'(월간말. 2001)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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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5/03/15 [13:37] ⓒ 대자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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