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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꼬 컬쳐, 거르, 아트, 람부로”
[김형효시인의 네팔기행] 10년 후를 생각하는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살아야
 
김형효   기사입력  2004/12/23 [23:58]
 사진 구경이 끝났을 때, 자신의 방에 있던 디네스의 사촌동생인 사펄이 응접실로 나왔다. 나는 숙모의 소개로 인사를 나누고 밀런의 통역을 통해 그와 한참 동안 이야기 나누었다. 나는 그가 컴퓨터를 전공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터넷 강국에서 온 사람의 자부심을 갖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웹디자인을 공부한다고 했다. 나는 한국에 어린 학생들은 보통으로 웹디자인을 하고 초등학교에서도 웹디자인을 가르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놀라움을 표시했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나는 최고에 도전하라고 그리고 그것이 네팔에 좋은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이 네팔에서 해야할 바른 일 중에 하나라고 말했다.

 

▲좌측은 디네스의 사촌 여동생이다. 오른쪽은 네팔여자경찰관 출신의 핸드 크래프트 사업가인 나의 친구 비가 마테마다. 밖에서 들어오던 디네스의 사촌과 즉석에     ©김형효

왜냐하면 최고가 되어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나는 며칠 전부터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반복하고 있는 “네팔꼬 컬쳐, 거르, 아트, 람부로.”라고 말했다. 이 말은 네팔의 문화, 건축, 예술은 좋다.는 뜻이다.


나는 이어서 “네팔은 환경오염이 문제고, 가난이 문제지만, 네팔에 젊은이들이 개척해가고 있는 현재 모습은 네팔에 희망이며 네팔을 발전시키리라 믿는다. 내가 만나고 있는 그리고 만났던 네팔의 친구들과 네팔을 찾아와 본 문화, 내가 네팔에 와서 접한 사람들, 내가 알게,된 현실은 어렵지만 바로 네팔을 발전시키리라는 확신을 준다. 희망의 근거는 네팔의 청소년들이 보여주는 적극성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네팔의 풍부한 문화, 예술이 흔들림 없는 밑바탕을 이루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왕궁박물관이다. 우리의 불교사원 같기도 하지만, 이는 그들이 얼마나 종교와 가까운 일상을 사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김형효

그는 낯선 한국인이 어색한 발음과 어색한 말투로 늘어놓는 생소한 해석에 눈빛을 반짝였다. 그의 호의적인 태도에 나는 컴퓨터를 공부할 때, 기본적으로 컴퓨터 강국의 컴퓨터 역사까지 공부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는 내 나름의 생각까지 전했다.


컴퓨터라는 영역이 학습되고 일반적으로 사용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네팔에 학생으로서 당연히 그렇게 공부해서 네팔 컴퓨터 산업의 주역이 되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특히 그들은 영어가 되니 충분히 다른 나라의 사례들을 읽어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니 내가 전한 이야기가 막연한 이야기는 아니다. 더구나 디네스 동생 집은 부유해서 경제적으로 책을 구입해서 읽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이야기가 한참 이어지고 있는 데 나의 네팔인 동갑내기 친구 비가 마테마(핸드 크래프트 샵 운영, 40세)가 2층으로 올라왔다.

 

▲박물관을 지키고 있는 신! 우리나라의 해태상과 닮았으나, 조금 달라 보였다.     ©김형효

나는 계속해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풍요로운 삶을 사는 그에게 사회적인 관심을 부탁했다. 옳은 지향을 갖고 살아갈 필요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물론 그것은 나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카투만두의 문제는 그들의 문제라는 관점과 모든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그 사회에 종속적 연관성을 갖고 살아가는 개인적 사명이나 의무에 대해 강조하면서 시작된 이야기였다.


우리의 진지한 이야기는 한참 동안 계속되었는데 사실 거의 일방적인 강의나 다름이 없었다. 그들의 경청에 고무된 말꾼의 이야기이기도 했고, 또 컴퓨터 강국인 한국을 인정하고 있는 한국 사람에게서 듣는 새로운 이야기에 대한 경이로움이었다. 또한 외부세계와 원활한 소통이 차단된 그들에 지식욕을 채워주는 계기이기도 했던 듯하다.


아무튼 밀런을 통해 이야기되는 내 이야기는 “10년 후를 생각하는 장기적인 목표를 갖고 살아갈 것을 주문하는 것으로 끝났고, 나도 또한 10년 후를 기약할테니 우리가 10년 후 좋은 곳에서 좋은 기억으로 만나게 되기를 기대하겠다”며 이야기를 마무리 했다.

 

그 10년 후의 목표는 당장 오늘의 목표이고 오늘 할 일이 구체적으로 정해지고 바로 행동 방향이 된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하였다. 나의 고된 강의가 끝나고 자리를 정리했다.  

 

디네스의 가족과 인사를 마치고 아래층에 있는 비가의 가게에서 한국 친구와 가족들에게 전할 선물을 구입하기로 했다. 핸드 크래프트로 만들어진 상품들은 대개 네츄럴해서 나의 취향에 맞는 것들이었다.

 

▲왕궁박물관이다. 우리의 불교사원 같기도 하지만, 이는 그들이 얼마나 종교와 가까운 일상을 사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김형효

나는 버섯모양과 옴마니밤매홈이란 문양이 그려져 있는 지갑을 골랐다. 멜 가방 하나와 지갑은 전체 1,200루피 정도 지급하였다. 사실 제 가격을 주고 사면 2,000루피 정도는 지불해야하는 것인데 나의 샤티(샤티는 친구를 뜻하는 네팔어)인 비가가 특별 할인을 해준 셈이다. 거기다가 핸드 크래프트로 만든 모자까지 선물로 받았다. 지나칠 정도로 환영을 받았다.


나는 다른 제품들에 대해서 내 아이디와 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환영에 대한 답을 하려고 애썼다. 우리의 이야기는 서로 협력할 것들에 대한 것이었고 www.nepalkorea.com 오픈을 기념해서 티셔츠를 만들기로 했다. 그 외에도 서로 구상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진지한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네팔 코리아 샵과 그 운영 방향 그리고 구체적인 상품들에 대한 정보도 공유했다. 여러 가지로 유익한 정보를 공유했고 상호 협력할 수 있는 방안들도 모색되었으며 다시 만나 대화의 시간을 갖기로 하고 헤어졌다.


늦은 시간이었다. 걸음을 재촉했다. 야채 떨거리를 파는 마을 어귀를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필요한 최소한의 선물을 준비한 것이다. 그러나, 부족하다 못해 빚지며 하는 여행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

 

집에 돌아와 오늘 구입한 선물들을 어머니와 여동생 럭스미 그리고 라즈 크마러가 함께 구경한다. 곧 저녁을 먹고 가족들과 텔레비전을 시청한다. 여동생 럭스미와 어머니는 드라마에 열중이다.  러브스토리에 몰입하는 것은 어디가나 같은 모습인 것 같다.

 

나는 아마(어머니) 채널이라 말하고 31번 채널에 고정하고 내가 묵는 방으로 돌아왔다. 피곤한 일상에 지친 몸을 부리고 잠들었다. 추적추적 밤새 비가 내린다. 

 

6월 25일(금요일) 오전 헤므라저 집에서 그의 아들인 무케쓰와 딸인 설바나 등 가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점심 시간이 되어 점심을 먹은 후 헤므라저의 오토바이를 타고 스웸부와 불교박물관 그리고 걸바나 집을 방문하였다.

 

▲어떻게든 하루는 함께 여행을 하자던 헤므라저, 그의 불룩한 배를 붙들고 오토바이 뒤에 탄 나는 꼭 공을 붙들고 공이 떨어져 나갈까 안절부절 하듯 걱정스럽게 그의 배를 붙들었다. 여행이 끝나고 그 이갸기를 가족들에게 전하자 모두가 파안대소다.     © 김형효

나는 오토바이에 오르기 전 손수건을 이용해서 입과 코를 틀어막고 머리 뒤에 묶었다. 공기가 너무 좋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그런 모습을 보면 오토바이를 탄 괴한으로 보일 법한 차림이다.


헤므라저는 오토바이를 스웸부로 향했다. 스웸부는 대형사찰인데 카투만두에서도 유명한 곳이었다. 스웸부에서 잠깐 내려 사진을 몇 장 찍고 불교박물관을 향했다. 거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박물관에 도착하자 안내원들이 오토바이에서 내려달라고 했다.


오토바이를 바깥에 주차시키고 입장하라는 이야기다. 안내를 받고 박물관에 들어가기 전 입장료를 지불한다. 툴루다이 헤므라저는 얼마인지 모르는 입장료를 지불하고 나를 안내한다. 입장료는 박물관 밖에서 계산하고 바로 박물관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가방을 맡기라는 박물관 관리의 안내를 받았다. 나는 카메라만 집어 들고 박물관으로 진입했다. 겉보기에도 훌륭한 조형이라 생각되는 박물관이었다.


박물관 내부에 들어서면서 조금은 실망스러운 느낌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타멜에 왕실박물관에서 가졌던 첫 느낌 같은 것이었다. 네팔을 통일한 현재의 왕가, 바로 초대 왕부터 현재의 왕이 사용했다는 투박한 총과 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왕의 권한이 막강한 나라에 박물관을 통과하는 통과의례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런 공간을 지나면서 그동안 네팔이란 나라가 있기까지 역사적 과정들이 한눈에 펼쳐지고 있는 박물관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고대의 거대한 코끼리 상아와 대형 버팔로의 뼈들도 전시되어 있었다. 주변국들의 화폐도 전시되어 있었지만 대부분은 종교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종교를 통해 인식할 수 있는 네팔의 역사박물관이었다.

 

▲스웸부는 산 하나가 사원을 이루고 있다. 정상을 중심으로 사원을 형성하고 있는데 입구부터 각종 조형물과 오래된 석상들이 있다. 군데군데 누군가가 빼어간 석상대가 보는 사람을 안타깝게 했다. 사진은 담벽에 새겨진 각종 기원문! 기호와 그림 같다.     © 김형효

불교의 다양한 석상과 조형 그리고 그림들은 불교의 역사적 과정을 인식시키는데 모자람이 없는 듯했다. 그것을 문자로 읽어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이 있었지만 오랜 역사를 가진 종교에 대한 신비감을 읽어내는 데는 그림과 조형, 석상들이 제 격인 듯하다.

 

찬찬한 걸음으로 우리는 사진촬영을 곁들이며 살펴보았다. 그러나 상쾌할 정도로 몸 상태를 회복하지 못한 나는, 짧은 여행을 원했다. 그리고 사색할 시간을 갖고 싶어졌다. 오늘은 설바나 집에 가기로 되어있다.


잠시 후 헤므라저는 오토바이로 스웸부를 돌아 몰아가더니 외곽도로에 접어들었다. 10여분을 지나 산을 향하고 있는 주변에 벼를 심고 있는 들판을 지났다. 농가 주택 사이로 비좁은 길을 재촉했다. 멀리 아담하고 윤기 나는 집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비행기에서 보았던 퇴적물로 엉켜있는 듯하던 고대 네팔을 볼 수 있었다.


계단 형 산에 지붕은 열려있으나 사람들이 살고 있는 폐허의 동산 같은 그런 곳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그들에게 소중한 보금자리였고 폭격을 맞은 듯하지만 지극히 평화로운 공간이었다. 설바나와 그의 시어머니 그리고 남편 등과 담소를 나누고 차를 마신 후 30여분 만에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법 부유한 집안임을 실감할 수 있는 설바나(헤므라저의 큰딸)의 집이었다. 


 

▲설바나의 딸이자, 헤므라저의 손녀인 슈르띠다. 전형적인 한국인상이다.     ©김형효

 

집으로 돌아와 무료한 느낌이 들었고 밀런은 밖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 현지 한국인을 통해 새로운 정보를 얻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일면식이 있는 한네 상점 이상옥 사장을 찾아가 만났다. 그리고 심하게 앓았던 이야기를 전했다. 이상옥 사장은 왜 좀 더 빨리 알리지 않았냐고 안 그래도 미역국, 된장국이라도 끓여서 식사나 한번 하자고 하려했다며 아쉬워했다.


이상옥 사장은 한국 음식점을 찾아 가자며 길을 재촉했다. 네팔에 와서 처음으로 찾아가는 한국음식점이다. 가고픈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네팔에서의 한국음식은 너무 비싸다. 이상옥 사장은 타멜의 경복궁을 향해 들어갔다. 반가운 한국인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낮에 길거리에서 마주쳤던 비구승을 그곳에서 만났다. 그때는 한국인인지 알지 못했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나눈다. 우리는 경복궁 2층에서 가벼운 맥주 한잔을 곁들여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삼겹살과 고추장, 상추 오이소박이 등등을 먹으며 고국을 실감했다. 비로소 나의 국적을 회복한 듯했다. 한 잔 술에도 얼굴이 불콰해지는 나는 곧 취기가 돌며 얼굴이 빨개졌다.


노래방이 생각났다. 술은 많이 마시지 못하지만 술 한 잔에도 흥을 감당하기 힘들다. 어쩌면 우리 한국인들은 노래방을 가야 하는 유전자를 타고 난 것인가 보다. 비원으로 이동해서 맥주 한잔 더 하고 그곳 사장님과 함께 인사도 나누자며 이상옥 사장은 비원을 소개했고 잠시 후 비원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맥주 한잔 더 하고 추가로 맛있는 안주를 시킨 성의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마실 수 있는 여력이 없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비원 사장님을 기다리는 순간 정전이 되었다. 난감한 시간, 그렇게 발길을 돌리며 일상의 고독에서 낯익은 한국인 이상옥 사장과의 즐거운 만찬의 시간을 접어야 했다. (계속 이어집니다)

편집위원,시인,www.sisarang.com,www.nepal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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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12/23 [23:58]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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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영춘 2005/04/06 [16:22] 수정 | 삭제
  • 김형효 시인님이 지난해에 쓴 글을 오늘에야 다 읽었습니다.
    참 재미있고 새롭게 알게 된것이 많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