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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과 히틀러 그리고 유대인
 
K.T.W.   기사입력  2004/07/26 [19:19]

테러방지법안의 문제는 국가공권력에 자의적인 비상대권을 수여하는데에 있고 따라서 우리는 중국의 민주주의라는 측면에서 중국의 긴급사태법안에 대해 우려감을 가지고 바라보아야 한다는 애깁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요소를 가지고 있는 우리나라의 테러 방지법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말입니다.
민주체제가 유지되고 법치가 유지되는한 권력자의 권력은 항상 견제를 받고 한계를 지니게 마련입니다.
이 과정을 무력화시키는 것은 항상 어떠한 위협 즉 공포와 증오의 지배입니다. 내부적으로나 외부적으로나 말이지요.
히틀러도 처음엔 선거를 통해 의회에 진입했습니다. 그의 인기가 찌를듯했고 군부가 그를 지지했음에도 그의 권력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이를 자국의 의회에 대한 방화사건, 이른바 국회의사당 방화사건을 조작해서 1인 독재체제로 진입한 것입니다. 사실은 자작극인데 자기가 조국의 의회에 불을 질러 놓고는 이를 공산주의자들의 소행으로 몰며 대대적인 탄압을 시작했고 이를 빌미로 각종의 비상권한을 일단 손에 넣죠. 그때도 아마 지금처럼 (공산주의자에 의한) 테러에 대한 대응책이라고 둘러댔지요.
그리고 이를 토대로 정적을 제거하고 이윽고 총통체제로 탈바꿈하여 제3제국을 선포하는 과정을 밟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처음에는 공산주의자들에 대한 탄압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자국의 언론과 보수우익들의 환영을 받게되지요.
방화사건의 동기와 진행과정에 일종의 찜짐함이 남았어도 어쨋든 눈엣가시던 좌익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으로 나타나자 보수들은 환호성을 질렀지요.
그리고 히틀러를 우려섞인 눈으로 바라보면서 견제하던 자유주의자들도 일단 자신들의 정치적 경쟁상대이며 급속도로 세력을 확대해가던 좌익이 벼락(탄압)을 맞자 이기적인 이유로 일단은 관망을 취했던 것입니다.이 나라는 특히 자유주의의 전통이 취약해서 정치적으로 자유주의자들의 영향력이 그다지 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1차 대전후에 연합국측에서 보수를 권좌에서 밀어내고 자유주의자들에게 권력을 맡겼는데 이것이 바로 바이마르체제입니다. 그러나 위에 말한 이유로 자유주의자들은 정국에 대한 주도권을 쥐지 못했고 혼란이 지속됩니다. 이 와중에서 공산주의자들의 세가 급속히 불어나는데에 보수는 물론이고 자유주의자들조차 우려와 질시섞인 눈으로 바라보았고 히틀러가 바로 이점을 노렸던 것입니다.
즉 자유주의자들과 좌익은 1차세계대전전의 비스마르크독재시기에 민주주의에 대한 투쟁에서 강고한 연대의식을 지니고 있었지요. 사실 민주세력간에는 이 둘이 잘 구분되지 조차 않을 정도였지요.
즉 지식인이 좌익성향을 띠면서 민주주의에 대한 투쟁에 나서거나 하는 일도 흔했던 것입니다. 마치 우리나라의 지금 현재와 비슷하지요?
그 이유로 자유주의자들도 침묵했는데 그 결과는 다음 차례로 이들 자유주의자들과 유태인이 희생당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종의 순망치한의 관계였던 것입니다.
사실 이 부분에서 유태인에 대한 많은 오해가 있는데 유태인이 당시에 독일의 경제계와 언론계 그리고 학계의 상당부분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요.
그 이유는 중세이후 프리드리히대제에 이르기까지 독일의 정책은 친유대적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중세때에는 이들 유대인 금융업자들과 상인들이 부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많은 국왕들이 의식적으로 유대인들의 자국으로의 이주를 권장하고 간청했던 것입니다.
아메리카를 발견하고 제국을 이루었던 스폐인 왕국이 원래 전통적인 유대인의 거주지중 하나였는데 이곳에 사는 유대인은 세파르딤이라고 불렸던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중심지는 동유럽이었답니다. 스페인은 그 발전초기에 이들의 활약으로부터 많은 도움을 얻었습니다. 한예로 콜롬부스도 우리는 이탈리아의 제노아인으로 알고 있지만 실은 유대인이고 개종한 기독교도(마라노)였답니다. 콜롬부스가 제노바에서 이주하여 스폐인의 페르난도와 이사벨라 로부터 인허장을 받고 세비야에서 출항하여 결국 아메리키를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까지 변방의 국가였던 스페인이 발전하여 카톨릭기독교의 중심국으로서 발전하자 이들은 매우 경직된 종교정책으로 전환했지요. 그때까지는 유대인을 포함하여 이슬람의 치하였던 스페인에 거주하던 아랍인과 무어인들 그리고 각양각색의 문화권의 인구가 거주하던 다양한 사회였고 이것이 스페인의 발전의 참된 힘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지요.
그 결과는 유대인을 비롯한 이슬람과 이교도에 대한 탄압,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개신교에 대한 탄압으로 점철되고 이는 이후에 네덜란드와 영국을 위시한 북유럽의 신교도국가들에 대한 전쟁으로 이어지지요. 무적함대와 크롬웰이 바로 이시기의 일입니다.
이들에 대한 종교재판과 개종강요는 유대인들의 이주를 불러왔는데 이들이 많이 이주한 곳중 하나가 바로 영국이지요. 영국은 중세이래로 변방의 가난한 국가였는데 이때부터 영국은 적극적으로 유대인상인들을 자국에 유치하려하지요...
그러나 후에 영국이 세계의 부국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 국내의 상인들과 산업이 발전하자 이들의 필요성이 적어졌고 따라서 이들에 대한 우대는 더 이상 없어졌지요. 그러나 영국은 이 과정을 매우 온건허게 실시하였는데 이는 이 나라가 의회민주주의가 뿌리깊은 민주국가였고 따라서 비록 유대인이라하더라도 함부로 죽이고 재산을 몰수하기가 힘들었기 때문이지요.
결국 자국의 체제가 외국인에 대한 태도를 결정하는 시금석입니다. 자국민에게 아무렇게나 대하는 국가는 외국인에 대해서는 더더욱 그러하고 반대로 자국민에 대해서 존중하는 국가는 체질적으로 이러한 무도한 탄압과 이를 위한 권력의 창설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즉 이들에 대한 태도는 한 국가의 단순한 대외국인 정책이 아니라 일종의 가늠자이지요. 마치 탄광에 광부들이 카나리아를 들고 가는데 그 이유는 이 새가 일산화탄소와 유독가스에 민감하여 조금만 이상해도 죽거나 탈진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해서 광부들은 자신들은 느끼지 못하는 위험을 미리 알수 있는 것입니다.
각설하고 독일은 비교적 후반기에 비로서 근대적인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려 노력했는데 이들도 예외없이 유대인의 이주를 장려하지요. 동시기에 러시아의 표트르 대제가 문호를 개방하면서 또한 서방출신의 기술자와 직업인을 초빙하며 외국인 이주에 열을 냈는데 이들중 상당수가 유대인입니다. 러시아는 그 이후로도 상당기간 동안 유대인들에게 신경을 써서 심지어 유대인지구라는 명목으로 폴란드와의 접경에 유대인지구를 설치해서 이들의 이주를 장려하지요. 이들 역시 강국이 되자 이들의 이주를 꺼려했지만 말입니다.
독일 역시 이러한 과정을 거쳐 근대의 강국으로 발돋움하는데 그때가지 후진국이었던 독일이 급속도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들 발전한 국가들의 자금과 기술 그리고 학문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는데 이는 외국으로부터의 전문가들의 이주를 통해서만 가능했던 것이지요. 만약 이를 자체적으로 하려했다면 훨신 더 긴기간이 걸렸을 것이고 이는 다른나라들의 발전추세를 감안하면 독일이 계속 후진국으로 남는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답니다.
지금은 금융망이 발전하여 단지 돈(외채)을 국제시장에서 빌리면 되지만 그때까지는 외자를 유입시키려면 인구의 이주를 허용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아무튼 그 결과 이 나라는 히틀러집권 당시에 최대의 유대인 거주국가가 되어있었습니다. 미국과 쌍벽을 이루는 국가였고 유대인들의 세력은 미국보다 오히려 독일에서 강성했지요. 즉 유대인들의 중심은 독일에 있었던 것입니다. 역사상 뛰어난 유대인들이 주로 독일권에서 나타나지요. 영국은 이미 유대인들의 이주를 장려하는 것을 그만두었기 때문에 인구로나 실력으로나 독일이 유대인들의 중심지였다는 말입니다.
심지어 유대인들의 우열도 미국계통의 유대인들보다 독일계통의 유대인들이 우세했습니다. 인구나 자금력이나 인재의 면에서도요. 이들은 독일의 발전에 매진했고 독일이 동유럽의 최강국으로 발돋움하는데에 큰 도움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히틀러 집권 당시에 독일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더 이상 유대인들이 필요없게 된 것이고 발전한 독일의 산업계나 금융계는 유대인을 눈엣가시로 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당시의 독일 보수우익의 범주와 겹치지요. 이들은 무엇보다도 공산주의를 증오했고 유대인을 질시했으며 자유주의를 경멸했지요. 이것이 이들의 성향과 정치적 동기의 거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히틀러가 이 점을 이용한 것입니다.
먼저 가난한 공산주의자들을 치고 다음에 자유주의자들을 제압하고 나서 순서상으로 마지막으로 부유하고 언론을 장악했던 유대인들에 대한 본격적인 손보기와 탄압에 나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된 것은 또한 어느 정도 이유가 있기도 한데 이들 역시 위에서 말한 이유로 유대인의 상당수가 독일의 부유층과 상류층에 편입되었기 때문이지요.
사실 유대인이 돈많은 민족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역사상 항상 사회의 최하층에서 살아왔고 빈민과 천민으로서 대접받았답니다. 비록 그 교육열과 상재로 인해 일부가 부유하기는 했지만 대다수의 유대인은 사회의 최하층에서 천대받으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그것은 독일에서도 그랬고 지금의 미국에서도 어느정도는 그렇습니다. 뉴욕의 할렘은 원래 유대인의 거리였고 지금은 흑인이 그곳에 거주하지요...
하지만 아직도 뉴욕의 뒷골목에는 유대인의 빈민들이 모여서 자신들만의 종교적 공동체를 유지하며 사회의 최하층에서 살고 있지요. 이들은 중세시기 내내 버젓한 직업이 금지되었는데 허용되는 것은 주로 천하다고 여겨지던 기술, 즉 고리대금업과 상업,구두수선,빵굽는 사람, 토기장이, 그리고 옷장수등등이었지요.
우리나라의 조선시대의 중인과 서민의 범주와 일치한다고 보면 됩니다. 이중에 오직 하나 즉 고리대금업이 유럽의 상업이 발전하자 금융업으로 발전하여 이들의 부의 토대가 되지요. 역사상 그리 이른 시기의 일은 아닙니다.
중세때에도 일부의 고리대금업자가 권세를 떨쳤으나 이는 말그대로 그들 중의 극히 일부지요. 이들이 가진 기술과 재능이 전면적으로 빛을 보게되는 것은 근대에 들어와서 토지보다는 상업과 공업이 그리고 학문등의 머리로 하는 직업이 빛을 보게 되면서입니다.
어쨌든 그 이유로 유대인의 상층부는 자신들이 독일의 상류층이며 독일인이라고 생각했고 따라서 위에서 말한 독일의 전통적인 보수층에게 더욱 유대감을 느꼈던 것입니다. 즉 이들도 공산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에게 소원하였지요....또 상당수는 독일의 황제체제에 열광했을 것입니다. 독일외에 해외에 이주한 유대인들의 입버릇이, 우리나라에서는 , 하는 말머리일 정도 였으니까요. 이 때에 우리나라는 독일입니다. 즉 독일에서는 이런데 이곳은 못하다..정도의 의미입니다.
이 상황에서 그들은 히틀러에게 유화적이거나 애매한 입장을 취하지요. 어쨌든 히틀러가 공산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을 탄압하는 것은 이들의 이해에도 부합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극소수의 유대인들만이 히틀러의 정치수법과 위험성을 눈채채고 모든 것을 버리고 해외로 도피하지요. 히틀러의 수법은 우리나라의 속담인 '떡하나 주면 안잡아먹지'정도지요.
그리고 남아있는 유대인들은 잘 알려진 대로의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유대인들을 논할 때에 한가지 범할수 있는 오류는 그들의 명성과 힘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알수 있는 것은 어느 사회나 유대인들에 대한 악평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것에서 알수 있습니다. 이는 권력의 관점에서는 이상한 일인데 어떤 사회나 일종의 불문률 즉 그 사회의 진짜 진짜 힘있는 사람들에 대한 추문은 불문률로 금지되어 있는 것입니다.
마치 왕실의 문란한 사생활이 대외적으로는 철저히 감추어지고 그 사회의 엘리트들의 부정은 쉽게 알려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지요. 우리나라에서도 그동안 지난시기의 여러 일들은 쉽게 알려지지 않았고 단지 그 이후에 세상이 바뀌어 민주세력이 집권한 후에나 '이제는 말한다'라는 식으로만 드러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것은 어느 시기 어느 사회에서나 불문률입니다.
이들은 그러한 불문률의 보호를 받지 못하다는 사실로부터 이들의 실제 권력의 크기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반유대적인 발언이 그나마 제제를 받는 곳은 미국사회정도인데 이로서 미국의 유대인이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아는 방식인 것입니다.
마치 정말로 돈이 많은 최정점의 부유층은 단순히 돈이 많은 것이 아니라 돈으로부터 해방된 사람이며 사회의 진짜 주류는 주류의 의식과 이념에서 자유로운 사람인 것처럼 말입니다. 이들은 각각 확립된 위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외부의 시선을 의식할 필요가 없지요. 진정한 주류는 자기가 말한 그것이 곧 정설이 되고 주류의 입장이 되기 때문에 지금 현재의 주류적이 것이 무엇인지에 신경쓸 필요가 없이 자유롭게 자신의 이해에 맞추어 발언하면 되는 것입니다.
과거의 조선일보가 그러했지요.
이들은 자신의 주장의 일관성이나 이념적인 면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들의 입장을 자의적으로 정했는데 그러나 이들의 입장이 곧 주류적인 견해가 되기 때문에 그러한 점으로부터 '자유로왔던' 것입니다. 주류로부터 자유로운 것 그것이 진정한 이너그룹과 주류의 표지입니다.
어쨌든 당시의 독일의 유대인이 이러한 선까지 자신들의 지위를 확립하지 못했던 것은 일단 인구가 적고 따라서 자신들이 직접 정치권에진입하여 정치인을 배출할수 없었고 단지 유력정치인들과의 교제와 편의제공으로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는 간접적인 방식이었다는 점, 그리고 군부와 경찰등에서 같은 이유로 직접적인 장악이 어려웠다는 점에 있지요.
일단 이 둘은 비정상적인 테러조작(자작극)을 통해서 집권한 히틀러 앞에서는 이들의 돈이나 언론등의 영향력이 아무것도 아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유대인을 몰아낸 히틀러는 이윽고 외국에 대해 전쟁을 시도하는데 이는 자신의 정치적 이해와도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었습니다.
내부적인 비상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 외부적인 전쟁을 통해서 국내를 장악하는 것은 흔히 있는 독재자의 수법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외부의 적을 상정해서 내부를 단숙하는 것이 간접적인 방식일때에는 이를 '유사파시즘'이라고 하는 것인데 그 이유는 이러한 외국에 대해서 한 국가와 사회는 당연히 하나의 통일체로서 인식되기 때문이지요.
예를들면 우리나라의 사회는 내부적으로 많은 범주로 분열되어 있지요. 부유층과 빈곤층, 보수와 진보, 영남과 호남, 남성과 여성, 등등의 많은 범주와 이해로 갈려서 서로 대립하고 협력하는 복잡한사회입니다.
하지만 이것이 중국과 일본에 대한 한국이라는 문제에 가서는 우리는 하나 즉 한국인일뿐이지요. 만약 이것이 군사적인 물리적인 위협으로까지 승화되면 이러한 성격은 극적으로 강화되는 것이지요. 즉 우리는 오직 한국인으로서의 단일한 정체성이 강조되는 전체주의적인 논리가 실제로 완성되는 것입니다.
과거 북한에 대해서 역시 이러한 점이 어느정도 엿보인다면 이를 유사파시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인데 이러한 면을 더나서 '북한의 공산주의에 대해' 자유민주주의를 강조하면 이는 단순히 자유민주주의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원래의 속성인 자유로움과 다양성이 아니라 단일한 정체성의 귀속으로서의 전체주의적인 방식으로 활용된다는 의미입니다.
결론적으로 지금의 테러방지법은 그때를 연상시키는 면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의 우리나라의 정치상황도 그때의 독일과 극히 유사합니다.
자유주의적인 정부여당이 맥을 못추고 대신 민노당등의 좌파가 부상하는 가운데 보수층의 불만이 고조되지요.
단지 다른 점은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우리손으로 쟁취한 살아있는 민주주의라는 점 그리고 우리는 비교적 단일한 국가로서 이러한 인종의식이 극히 희박하다는 점입니다. 이는 장점이자 단점인데 이는 자칫하면 외국에 대한 증오로 이어져 비정상적인 열광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외국들은 세계강국들이지요. 일본과 러시아 그리고 중국.
독일의 히틀러조차도 국내와는 달리 자신과 대등한 힘을 가진 외국과의 전쟁에서는 고배를 마셔야 했지요. 우리나라국민들이 이점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다음으로 우려되는 점은 미국의 유대인들인데 이들은 과거 독일에 비해서는 훨씬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전체 2-5% 남짓한 인구로서 그러한 권력을 누린다는 것은 결국 이들의 권력이 사상누각일수도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결국 이들이 미국에서 안전하게 살려면 미국의 자유민주주의는 필수적인 것입니다.
이점에서 그들은 과거 독일의 유대인들과 동일한 오류를 범하고 있는데 독일의 유대인들이 보수적인 풍조에 대한 친밀감으로 독일의 민주체제의 방치를 방관했듯이 이들은 지금 현재 테러와의 전쟁 즉 이슬람과 중동에 대한 이해관계 때문에 부시를 방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즉 이번에는 이스라엘문제지요. 이 때문에 국내적으로 매우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침묵하거나 이 풍조에 동조하지요.
그리고 그것은 만약 미국의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훼손된다면 그 다음 차례는 이들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나는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만약에 말이지요. 9.11 테러가 미국의 정보기관에 의해 특정한 목적을 위해서 방조된 것이라면 말입니다. 이것은 무서운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월드트레이드 센터는 유대인들의 집합소였지요. 다음으로 최근의 오렌지색 포로학대와 이어지고 있는 오렌지색 참수테러는 말입니다.얼핏보면 우리는 노란색을 유대의 상징으로 생각하지요. 중세이래의 노란식 모자와 별로 인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오렌지색은 사실 중동인들의 문화에서는 아무관계가 없지요. 아무런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아요. 보통의 중동인이 오렌지색을 보아도 이는 그냥 보통색의 한 가지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는 서구에 특히 미국에 의미심장한 의미를가지지요. 주홍색이란 음란함을 상징하는 코드를 서구에서는 가지고 있습니다. 주홍글씨라는 소설의 배경이 바로 그것이지요. 이는 서구의 홍등가가 주홍색(호박빛)등을 내걸고 있는데서 비롯되지요.
동양에서는 이것이 붉은 등이지만 서구는 노랑과 붉은 색의 중간이랍니다. 외국의 홍등가 사진을 보세요.(물론 나는 외국에 나가본 일이 없어서 책으로만 알지요.) 붉은 색이 아니라 호박빛 혹은 주홍입니다.
즉 서구에서는 주홍의 의미가 확연한 의미를 갖지요.
왜 이런말을 하냐면 9.11. 당시에 파키스탄이 알고 있었다는 보도는 1999년도에 쿠데타로 집권한 친미 무샤리프의 정보기관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러시아의 정보기관과 독일의 정보기관도 9.11을 사전에 감지하고 미국에 정보를 이관했다는 사실 역시 이미 드러난 사실입니다.
또한 미국 내에서도 지난 1993년부터 납치 항공기를 이용한 테러 공격에 관한 연구가 있었으며 1994년에는 3차례나 이같은 항공기 자살 테러 시도가 있었다. 나아가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2000년의 시드니 올림픽 등에서도 항공기 자살테러에 대한 대비책을 실제로 가동한 전례가 있다는 공식적인 활동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무엇보다 오사마 빈 라덴이 파키스탄에서 투석치료를 공공연히 받았다는 사실과 투석치료를 요하는 환자는 장기간의 야외활동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9.11 테러보고서 중)즉 투석을 정기적으로 받을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미국은 여태껏 오사마를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미국의 지원으로 집권한 파키스탄이 이 사실을 모를 리 없고 다음으로 미국도 모를리 가 없지요. 무엇보다도 파키스탄이 오사마가 자국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게 내버려둘리가 없지요.
즉 이 모든 사실은 미국이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고 오사마를 잡을수 있는데도 방치하고 있다는 말이지요.
이는 9.11 보고서에도 일부 드러나지요. 내가 보기에 미국관리들이 상상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9.11 위원들이 상상력이 너무 풍부한 것입니다. 도저히 믿을수 없는 일을 두고 일종의 퇴행을 보인 것이자 소설을 쓴 것입니다. 10여 차례나 보고되고 인지되고 더 나아가 우방인 독일과 러시아의 정보기관들이 확인(알려)해주고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중동국가 파키스탄이 다시 인지한 사실에 더하여 자국의 테러담당보좌관(클라크)가 바로 직전에 절박한 단어를 써서 대통령에게 보고를 하려했고 거기에는 분명히 대규모적인 테러의 위험이 경고되어있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말입니다.
거기에다 사우디의 왕족들이 9.11 직후에 아무런 제제를 받지 않고서 빠져나갔다는 것은 내 생각에는 사우디가 관여했다면 미국에 체류할리가 없을 것이고 따라서 사우디에 대해 의혹을 돌리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쨋든 공작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즉 이번 사건은 과거의 푸에르블리코 사건이나 통킹만 사건처럼 미국이 전쟁을 하고 싶어 만들어낸 자작극이라는 점 하나,
다음으로 의미심장한 것은 이들의 목표물이 쌍둥이 빌딩에서 보듯이 유대인 밀집지역을 노렸다는 점인데 이것이 중동의 유대인에 대한 미움이라고 지금은 해석되고 있고 좀 이상한 점이 보입니다.
위글에 전제한 최근의 보도는 두번째 항공기가 쌍둥이 빌딩에 부딫친 것이 종래에 알려진대로 워싱턴으로 향하려디 승객들의 저항 때문에 두번째 빌딩으로 목적을 변경해 부딫친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쌍둥이 빌딩의 나머지 하나를 목표로 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합리적인 행동은 아니지요. 빌딩 자체에 부딫친다는 것이 매우 난이도가 있는 것인데 이 때문에 의혹이 광범위하게 퍼졌었지요. 경비행기 조종만을 배운 테러범들이 과연 그럴 능력이 있었는가에 대한 의문말입니다.
또 다른 많은 용이한 목표물들이 있는데도 쌍둥이 빌딩에 그처럼 집착할 만힌 이유가 있는가하는 이유말입니다. 단지 경제에 타격을 주기 위해서는 증권거래소나 다른 많은 더 나은 건물들이 있었답니다. 쌍둥이 빌딩은 그 의미가 크지만 단지 비지니스빌딩이었고 핵심건물은 아니었지요. 유대인이 밀집한 상업건물말입니다. 금융시스템에 관련한 건물은 아니었지요...
즉 매우 명백한 반유대적 집착을 가진 행동이라는 점입니다.
다음으로 만약에 지금의 일들이 공작이라면 일련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즉 관타나모나 아부 그라이브 그리고 오렌지참수는 말이지요.
만약 범죄심리전문가가 이 사건들을 사전지식없이 나열하고 이 사건들에서 범죄자의 심리상태를 추론하라면 이러한 결론이 날 가능성이 많습니다.
즉 이것은 분명한 서구적인 문화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는 집단이 오렌지(주홍)라는 문화적인 의미에 집착하고 있다는 점, 또한 이러한 일들의 대상이 특히 미국사회에서 모욕적인 별칭을 가진 소수민족에 대한 범행이라는 점에서 이들은 백인 주류집단에 속한 집단이라는 점, 즉 유대인의 경우에 유대인 창녀를 가리키는 단어는 비속어로서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으며 한국인의 경우에도 YELLOW DOG라는 별명으로 미국의 사창가에 알려져 있지요(필리핀 포함).
즉 일종의 음란한 비속어를 가진 소수민족에 대한 린치라는 점, 그리고 아부 그라이브의 발음이 영어로 '무덤'이라는 의미로도 읽힐수 있으며 이곳에서의 학대는 말그대로 정보수집 목적으로 필요한 범위를 넘어선 광범위한 인간학대일 뿐더러 피라미드모양으로 쌓아둔 인체무더기, 동성애와 **행위의 강요, 짐승에 의한 인간학대, 미성년자 학대,이러한 점에서 아직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아마 수간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고, 무엇보다도 고깔모자를 쓴 채로 전기고문을 받는 행위는 서구사회의 특정국가의 특정지역의 행위라는 점, 즉 미국 남부 텍사스를 중심으로 하는 인종집단인 쿠, 클럭스, 클렌(K.K.K)의 수법과 극히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할 것입니다. 이들은 단지 극단적인 인종차별주의자들 일뿐더러 종종 십자가에 사람(흑인과 소수민족)을 화형시키며 주요한 공격대상중에는 흑인들의 교회가 포함된 사교도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들입니다.흑인들에 대해 종종 이러한 짓을 하곤 하지요.
즉 인종집단적인 성격을 가진 지방의 배경을 가진 백인들이 주도하는 엽기적인 인명살해이자 극히 종교적인 의미에 집착하고 있는 사교도들의 집단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올 것입니다.
부언하자면 아부 그라이브의 행위가 이미 상부에서 내려온 지침에 의한 것이었다는 그라이브 수용소 소장(육군 준장,여성)의 증언은 럼스펠드의 선에서 지시가 내려왔다고 증언하고 있으며, 부시가 이미 몇년전에 포로에 관한 제네바 협약을 회피하기 위해서 법률적인 검토를 유관기관과 검토해서 문서로 근거를 만들었다는 점, 다음으로 그의 해명성명에서 아부그라이브의 발음이 2,3차례 있었는데 그가 이 부분을 예의 유명한 아무렇게나 한 틀린 철자로 읽었다는 점에서 더 나아가 매번 다른 발음을 했다는 점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회피내지는 거부반응에 해당한다는 점을 지적해야 할 것입니다.
즉 백악관은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며 의도적으로 몇년전부터 법적 문제에 대한 회피방안을 강구한 끝에 나온 사건이라는 점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사실 모두에 대해 공개적으로 고백하며 더 많은 사진이 있다고 말하고 또 테러집단을 빙자해서 동일한 오렌지 참수를 벌이고 있다면 범죄자는 점점 대담하져서 일종의 노출심리에 들어갔다는 말이지요.
가끔씩 엽기적인 범죄자가 범행현장에 단서를 일부러 남기거나 범행사건을 공개적인 장소에 유기하지요? 그 말입니다.
내가 생각하기에 확실한 결론은 9.11 테러는 미국과 관련된 사람들에 의한 자작극이라는 점, 다음으로 이것은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재편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고도로 인종주의적이고 종교적인 성격을 띈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궁금한 것은 부시가 거듭난 기독교인이라고 하는데 그는 또한 젋은 시절을 극히 방탕하게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그의 젊은 시절의 배경인 텍사스에서의 행적이 과연 어떤 것이었는지, 혹시 이러한 집단과 관계를 맺은 일은 없는지, 또 거듭난 뒤에는 이들과 관계를 완전히 끊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임기의 1/4을 텍사스에 위치한 자신의 목장에서 휴가를 보내는데 도대체 그는 누구와 만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가 예일대의 학창시절에 SKULL AND BONES 라는 비밀집단에 가입한 것은 잘알려진 사실입니다. 민주당의 대선주자인 하워드 딘 역시 이 멤버였고 이는 공개적으로 보도되었습니다. 아마 이 집단은 그 비공개성과는 별도로 별다른 문제는 없는 일종의 친목 내지는 인맥집단이었던 모양입니다.이 역시 공개언론에 보도되었고 기사를 검색해보면 알수 있지요. 우리나라의 주요일간지(중앙)에도 보도되었으니까요.
나는 이 점이 궁금합니다. 그러한 비밀집단의 배경을 가진 사람이 남부 텍사스로 내려가서 방탕하게 젊은 시절을 보내면서 도대체 무엇을 배웠고 어던 일을 하였는지에 대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 모든 의혹이 사실이라면 이는 또한 유대인들의 아부 그라이브에 대한 침묵은 유대인들의 무덤(그레이브)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마몬이 아니라 여호와를 섬기고 있기를 나는 비는 것입니다.
결론
도대체 미국에게 정보를 제공한 나라가 몇개인가요?
러시아, 독일, 프랑스 요르단 ,이집트, 파키스탄, 사우디 등등 이고 미국 자신도 오사마를 추적해서 살해할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고, 이런 종류의 테러는 자신의 CIA와 끄나불 조직(오사마)간에 빈번한 일이었고 무엇보다 문제는 설령 비행기를 이용한 테러가 상상을 뒤어 넘는다 할지라도 테러자체에 대한 경계가 없었다는 점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그점도 명백한 오류입니다.
미국 내에서도 지난 1993년부터 납치 항공기를 이용한 테러 공격에 관한 연구가 있었으며 1994년에는 3차례나 이같은 항공기 자살 테러 시도가 있었다. 나아가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2000년의 시드니 올림픽 등에서도 항공기 자살테러에 대한 대비책을 실제로 가동한 전례가 있다. 즉 비행기야 설마 하고 넘어가더라도 테러범들 자체가 테러를 저지를수 있다는 경구는 이미 수없이 전해졌고 따라서 테러범들에 대한 경고나 검거는 있었어야 합니다.
그런데 미국의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은 테러범들을 놔주고 , 도피시키고 , 돌아다니게 놔주었다는 평범한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9.11 보고서가 놓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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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7/26 [19:1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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