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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유시민, '사표' 만들어놓고 또 '사표' 타령하나
[주장] '표심배반' 정치가 '사표발생' 원인, 민노당 지지표는 판갈이용
 
홍기빈   기사입력  2004/04/13 [16:56]

유시민 의원이 “민노당에 던진 표는 사표이니 열린 우리당에 던져라”고 하면서 “인터넷 24시간 안에 평정하겠다”고 했다. “죽은 표”를 막자는 취지에 크게 공감이다.

원래 선거란 평화적인 외양만 띠고 있을 뿐, 그 절체절명의 성격에 있어서는 칼과 창이 섞이고 피가 튀기던 옛날의 권력 투쟁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정치사가들은 현대 민주주의란 “총알(bullet)을 투표(ballot)으로 바꾼 것에 불과하다”고들 하지 않는가. 따라서 몇 년에 한 번 겨우 주어지는 그 아까운 총탄 “불발탄”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무언가 바꿀 수 있는 표가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작년 이래 그 “사표”를 대량 생산해버린 자들은 누구였는가. 두 사람만 예로 든다.

첫째, 노무현 대통령이다. 햇볕 정책의 계승과 자주 평화 외교를 바라는 이들, 좀 더 “개혁적”인 노동 정책과 민생 정책을 기대한 이들, 수구 세력과의 정면 대결과 지역 분열의 극복을 실현해 줄 것으로 믿고 노무현에게 흔쾌히 “쏘았던” 사람들의 그 소중한 한 표는 모조리 “죽은 표”가 되고 말았다.

둘째, 유시민 의원 자신이다. 유의원은 지난 보궐 선거 당시 민주당과 개혁당의 연합 공천을 얻어 의석을 얻은 뒤 그 양당 지지자들이 던진 “총탄”의 집행자가 되기는커녕 아예 그 두 정당을 없애버리고 말았다. 두 사람의 행동 동기는 모두 “자기 세력의 권력 확장”이라는 것으로 동일하였다.

즉, 현재 가장 문제가 되는 “사표”의 유형은 빗나간 겨냥으로 땅에 떨어지는 총알이 아니다. 지키지도 않을 약속을 내걸어 사람들의 마음을 뺏고 그들의 총알에 힘을 얻어 당선된 뒤 자신의 권력 확장에만 골몰하는 “민의 배신”의 정치이다. 이렇게 민의의 “총알”을 주식으로 서식하는 황소 개구리들을 쓸어버리자는 취지에서 “정치 개혁”의 민의가 생겨났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다시 그 “개혁의 민의”를 볼모로 잡는 다른 무늬의 개구리들이 여의도와 청와대를 메우고 말았다. 이러한 “표심 배반”의 한국 정치가 바로 “사표 대량 발생”의 원인이다. 그리고 현재 민주노동당을 향하고 있는 표심은, 바로 그렇게 개구리떼들만 창궐하는 보수 정치판 전체를 갈아버려야만 자신의 “한표”가 땅에 떨어지는 일을 막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사람들의 선택이다.

유의원은 먼저 지금 전국에 출마한 “열린 우리당” 인사들의 면면을 훑어보라. 민중 운동에 몸담다가 느닷없이 “온건 보수”로 변신한 유의원을 필두로 하여, 그 다수는 지나간 경력을 보아도 현재의 행태를 보아도 도대체 무슨 정책을 어떻게 실현하겠다는 것인지 종잡을 수 없고 그저 “탄핵 폭거를 심판하자” 한 마디로 노무현의 휘광을 업어 권력을 잡아보겠다는 것이 이들이 내건 “개혁”의 내용 전부이다. 자신의 한 표가 수구 세력에 맞서는 튼튼한 전선의 형성에 기여하는 “총알”이 되기를 원하는 이들이라면, 이들에게 표를 던지지 마라. 곧바로 “사표”가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지만, 유의원의 “사표 방지” 논리에 적극 공감이다. 그 논리적 귀결은 이렇다. 자신의 지역구에 민주 노동당 출마자가 나오지 않은 민주 노동당 지지자들은 열린 우리당에 무조건 표를 던지는 선택을 재고해야 한다.

현대 정치학계 일부에서는 “기권”이나 “능동적 무효표”(투표 불참이 아닌 투표소에 들어가서 무효표를 만드는 행동)도 유효한 정치적 의사 표시로 간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그 열린 우리당의 “개혁” 인사라고 나온 인사가 자신의 정치적 민의를 제대로 대변할 것 같지 않아보인다면, 그에게 던지는 표는 “사표”가 된다. 바로 그런 식의 “잘못된 사표 심리”가 지금까지 황소 개구리들이 창궐하게 된 서식처의 역할을 해왔다.

차라리 기권을 하든가 주저없이 “능동적 무효표”를 만드는 쪽이 “사표”를 만드는 것보다 옳다는 데에는 유의원도 수긍하실 줄 믿는다.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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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04/04/13 [16:56]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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