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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가 '빈민'을 논할 자격이라도 있나?
조세포탈 일삼으면서 '빈민' 다뤄, 원인과 대책 호도 빈축사
 
김동민   기사입력  2004/01/02 [17:58]

조선일보가 2004년 벽두를 여는 신년호 특별기획으로 파격적인 주제를 다뤘다. ‘우리 이웃’이라는 다감한 키워드로 ‘도시빈민’ 문제를 다룬 것이다. 그것도 1면을 가득 채우고도 모자라 4, 5 ,6면을 통째로 할애했다. 가히 파격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대상은 다음과 같은 계층이다.

▲조선일보 1일자 신문 1면     ©조선일보
“정부로부터 최저생계비를 받는 기초생활수급자 142만 명을 비롯해 소년소녀 가장과 점심 굶는 어린이, 사실상 실업상태에서 하루 하루 인력시장에서 생계를 잇는 청/장년층(약 200만 명), 비닐하우스나 임대 아파트에서 혼자 사는 노인들(약 64만 명), 부모 없이 할아버지 할머니와 손자 손녀가 사는 조손 가정, 여성 가장들... 조금만 주의를 기울여보면, 도움을 원하는 이웃들을 주위에서 발견할 수 있다.”

조선일보가 주의를 기울여 도움을 원하는 이웃을 발견하여 대대적으로 다룬 것은 기특한 일이다. 그 노력 자체는 높이 평가한다. 기사는 감동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제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 정확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느냐 하는 데 있다. 근본적인 치유책을 제시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이번 특집은 ‘낙제’다. 뿐만 아니라 현실을 호도하고 있다. 원인과 대책을 엉뚱한 데서 찾고 있는 것이다.

우선 이 특집에서는 원인 진단이 없다. 기껏해야 KDI(한국개발연구원) 보고서에서 내린 “한국의 절대빈곤율은... IMF 외환위기를 겪으며 급속히 증가했으며, 그 주된 원인은 실업률 증가”라는 진단과 더불어 일자리 창출은커녕 외국기업들조차 “일선 행정기관의 과도한 규제, 차별대우에 시달려 ‘탈(脫)한국’을 꿈꾸고 있다”는 비뚤어진 인식뿐이다.

진단이 엉터리인데 처방이 올바로 나올 리 없다. 조선이 제시한 해결책이란 게 기부와 자원봉사, 일자리 창출이 전부다. 미국에서는 가정이 기부에 앞장서 전체의 89%가 연 1600 달러를 기부하고, 성인의 44%가 주 평균 3.6시간을 자원봉사에 할애한다는 사례도 소개해 놓았다.

기부와 자원봉사가 빈민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까? 결단코 아니다. ‘아름다운 재단’ 100개가 생겨도 해결되지 않는다. 새발의 피일 뿐이다. 오히려 구조적인 문제를 은폐하는 메카니즘으로 작동할 것이다. 기부와 자원봉사가 넘치는 미국에서도 도시빈민과 노숙자가 넘쳐난다.

KDI 유경준 연구위원의 대책을 소개해 놓았다. “빈곤을 극복하려면 새로운 일자리를 계속 만들어 분배할 수 있는 ‘파이’를 키우는 게 급선무”라는 얘기다. 이 정도 대책은 서울역 노숙자 아무나 붙잡고 물어보아도 나올 수 있는 대답이다. 이건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다. 당장의 실업대책은 될 수 있겠지만, 이들을 가난과 빈곤, 그리고 그 대물림의 악순환에서 해방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근본적인 대책은 무엇인가? 탈세와 조세포탈 등 부정부패의 추방과 세제개혁, 그리고 교육제도의 개혁이다. 스스로 탈세와 조세포탈을 자행하고 재벌 위주의 정책을 강요하는 조선일보가 도시빈민을 ‘이웃’으로 받아들이면서 가난에서 벗어나게 해줄 마음이 있을까? 평준화 해체와 엘리트교육을 지향하는 조선일보가 가난의 대물림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을까? 그런 게 있다면 이번 특별기획에서 당연히 반영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위선적으로 보이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진정으로 도시빈민을 이웃으로 받아들이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를 지향한다면 재벌위주에서 중소기업 위주로, 엘리트교육에서 평준화교육으로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이제는 가난한 가정에서 일류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부잣집 아이들이 일류대학에 진학하고, 그들이 또한 대학을 나와 대기업 직장을 독차지하는 반면에 가난한 집안의 아이들은 제대로 배우지 못해 도시빈민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구조가 이미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 상태에서 기부와 자원봉사란 아편일 뿐이다.

조선일보가 그리는 세상은 빈민에게는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조건을 대증적 요법으로 해결하면서 기득권구조를 온존시키는 것이다.

조선일보가 망해야 나라가 바로 선다. /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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