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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 8유로의 청소부의 삶, ‘두 세계 사이에서’
[임순혜의 영화나들이] 하층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무관심에 대한 고발
 
임순혜   기사입력  2024/01/28 [22:09]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는 베스트셀러 소설 ‘위스트르앙 부두’를 원작으로 한 영화로, 한 유명 작가(줄리엣 비노쉬)가 최하위 노동 취약계층의 현실을 파악하기 위해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 함께 생활하면서 담아낸 르포르타주 드라마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인 엠마뉘엘 카레르(Emmanuel Carrere)가 연출했다.

 

제74회 칸 영화제 감독주간 개막작으로 선정되었고, 제48회 세자르 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노미네이트, 제69회 산세바스티안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수상해 작품성과 대중성을 모두 입증한 영화다.

 

▲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의 한 장면  © (주)디오시네마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의 원작인 ‘위스트르앙 부두’(Le Quai de Ouistreham, The Night Cleaner)는 분쟁지역 취재를 도맡았던 국제 문제 전문 기자 플로랑스 오브나(Florence Aubenas)가 실제로 직접 프랑스 노동 취약계층 속으로 들어가서 노동자들의 삶과 애환을 직접 보고 경험하며 담아낸 소설이다.

 

플로랑스 오브나는 1986년 ‘리베라시옹(Liberation)’에 입사한 이래로, 이라크 · 르완다 · 코소보 · 알제리 · 아프가니스탄 등 분쟁 지역 취재를 도맡았던 기자로, 2005년 1월 이라크 저항단체에 억류되어, 157일만에 비공식적으로 1000만 달러의 몸값을 지불하고 석방되었던 적이 있는 기자다.

 

▲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의 한 장면  © (주)디오시네마


‘위스트르앙 부두’는 플로랑스 오브나 기자가 2009년 2월부터 7월까지, 실업자에서 시급 8유로의 청소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종군일기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청소하는 노동자들을 투명인간으로 표현하며, 저임금과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와 청소부 외에는 다른 미래를 꿈꾸지 못하는 20대, 언제 자기 차례가 될지 모르는 일상화된 해고 속에서 숨죽이는 노동자들의 삶을 가감 없이 담은 소설이다.

 

▲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의 한 장면  © (주)디오시네마


‘두 세계 사이에서’는 저명한 작가 마리안(줄리엣 비노쉬)이 고용 불안을 주제로 한 신작 집필을 위해 프랑스 남부의 연고 없는 항구 도시 캉으로 이주해 신분을 숨긴 채 청소부로 일하면서 노동자들과 교류하는 가운데 그들의 현실을 직접 보게 되고 점차 우정을 쌓아가나, 결국 그녀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고, 마리안은 그녀와 함께 지냈던 청소노동자들의 삶을 소설로 출간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담았다.

 

‘두 세계 사이에서’는 마리안과 청소노동자들의 실제 삶을 그대로 담아 시급 8유로의 청소부의 삶을 가감 없이 담아 놀라움과 함께 감동을 준다.

 

▲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의 한 장면  © (주)디오시네마


밑바닥 청소부 인생이지만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는 삶이 있고, 어려운 환경 가운데서도 끈끈하게 이어져가는 우정으로 삶을 지탱하고 있는 모습을 담아 관객으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영화다.  

 

그러나 ‘두 세계 사이에서’는 하층 청소노동자의 삶을 가감 없이 보여주며 그들의 삶과 우정에 감동하게만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녀들이 하는 일에 비해 터무니없는 임금과 그녀들에게 가해지는 부조리, 사회적 무관심과 대우 등을 고발한다.

 

▲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의 한 장면  © (주)디오시네마


주인공 마리안 역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배우 줄리엣 비노쉬가 맡아, 작가인 신분을 숨기고 23년간 경력이 단절되었다가 직업 전선에 돌아온 전직 가정주부로 신분을 위장하여 노동 현장에 침투하여, 현장의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호흡하는 모습을 연기한다.

 

줄리엣 비노쉬는 주인공으로서의 존재감을 잃지 않으면서도 영화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해치지 않도록 섬세하고 절제된 연기를 선보인다.

 

▲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의 한 장면  © (주)디오시네마


줄리엣 비노쉬는 1983년 장 뤽 고다르 감독의 ‘마리아에게 경배를’로 데뷔한 이후, 누벨 이마주의 대표주자 레오 까락스 감독의 ‘퐁네프의 연인들’(1992)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1994년에는 폴란드의 거장 크쥐시토프 키에슬로프스키 감독의 ‘세 가지 색 : 블루’에서 유럽을 대표하는 작곡가의 미망인이자 여성 작곡가로 열연해 영화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을 뿐 아니라, 그해 세자르 영화제와 베니스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의 한 장면  © (주)디오시네마


이후 제69회 아카데미 시상식 9개 부문 수상에 빛나는 명작 ‘잉글리쉬 페이션트’(1997)로 베를린 영화제 여우주연상과 아카데미 영화제 여우조연상을 수상했고, 2010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사랑을 카피하다’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세계 3대 영화제(칸-베를린-베니스)를 모두 수상한 최초의 수상한 배우다. 

 

줄리엣 비노쉬는 최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2019)에서 전설적인 여배우(까뜨린느 드뇌브)의 회고록이 거짓으로 가득 찼음을 지적하는 딸 뤼미르 역으로 스크린을 통해 국내 관객들을 만났다.

 

▲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의 한 장면  © (주)디오시네마


‘두 세계 사이에서’를 연출한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시나리오 작가 겸 영화감독인 엠마뉘엘 카레르는 1986년 발표한 데뷔작 ‘콧수염’으로 “문학의 천재”(르 몽드)라는 찬사를 받으며 화려하게 등단했다.

 

엠마뉘엘 카레르는 1995년 ‘겨울 아이’로 프랑스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페미나 상을 받으면서 전 세계 독자들에게 그 이름을 알렸다. 데뷔작인 ‘콧수염’(2001년 출간)부터 ‘러시아 소설’(2017년 출간), ‘왕국’(2018 년 출간), 2023년 10월 발간된 최신작 ‘요가’에 이르기까지 그의 저서는 국내에도 9편이 정식 출간되었다.

 

그녀는 TV 시리즈와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로도 왕성하게 활동해 왔으며, 다큐멘터리 영화 ‘코텔니치로 돌아가기’(2003), 본인의 소설 데뷔작을 직접 각본/연출한 ‘콧수염’(2005)이 있으며, ‘두 세계 사이에서’는 그가 16년 만에 각본가이자 감독으로 돌아온 작품이다.

 

▲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의 한 장면  © (주)디오시네마


엠마뉘엘 카레르는 ‘두 세계 사이에서’에 대해 “내가 연출한 두 작품, 다큐멘터리 ‘코텔니치로 돌아오기’와 픽션 영화 ‘콧수염’을 좋아하는데, ‘두 세계 사이에서’는 기묘하게 그 둘이 섞여 있다. 처음에는 다큐멘터리적 소재에서 시작했지만, 원작으로부터 거리감을 두고 픽션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래서 영화에는 원작에 존재하지 않는 픽션적인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밝혔다.

 

원작에는 없는 부분에 대해서 엠마뉘엘 카레르는 “많은 시행착오 끝에 원작에 가까운 각색에서 벗어나 좀 더 드라마틱하게 방향을 잡았다. 즉, 원작에는 강한 동료애는 있지만 개인적인 유대감은 없는 반면, 각색된 대본에는 다른 동료들보다 더 가깝고 친밀한 방식으로 형성된 우정을 추가했다. 이 우정과 유대감을 발전시키기로 한 결과, 주인공이 자신의 정체를 밝혔을 때 배신감이 더 커졌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 영화 ‘두 세계 사이에서’ 포스터  © (주)디오시네마


줄리엣 비노쉬는 “내가 연기한 마리안이라는 캐릭터는 빈곤을 체험하면서 그들과 함께 하지만, 한편으로는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들의 모습을 메모했다가 밤에 노트북으로 옮기는 작업을 한다. 진실과 거짓 사이의 경계는 어디에 있을까? 진실을 포착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거짓이 용납될 것인가? 크리스텔이 마리안의 정체를 밝히는 장면에서, 이러한 망연자실함과 실망감의 혼재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며 ‘두 세계 사이에서’는 “배신과 거짓말을 근간으로 하는 영화”라고 덧붙였다.

 

유명 여류작가가 노동 현장에 침투하여, 현장의 노동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호흡하는 모습을 담은 영화 ‘두세계 사이에서’는 1월31일(수) 개봉이다.

 

글쓴이는 '미디어운동가'로 현재 미디어기독연대 대표, 언론개혁시민연대 감사,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동대책위원회공동대표/ 운영위원장, '5.18 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특별위원,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 심의위원을 지냈으며, 영화와 미디어 평론을 전문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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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4/01/28 [22:09]   ⓒ 대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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