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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민주당, '막가자는 거지요' 전면전
盧 '한-민 철벽공조' 지적, 민주당 '막가자는 것이냐' 반발
한나라당 "대통령이기를 포기', 우리당 '당연한 발언' 긍정적
 
취재부   기사입력  2003/12/24 [18:43]

노무현 대통령은 24일 박범계 전법무비서관 등 내년 총선 출마를 위해 사표를 제출한 전 청와대 비서관 및 행정관들과 오찬을 함께한 자리에서 "민주당을 찍으면 한나라당을 돕는 꼴"이라는 발언을 해 파문을 일으켰다.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홈페이지
노무현 대통령은 이날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을 찍는 것은 한나라당을 도와주는 것으로 인식될 것"이라며 "한나라당을 하나의 세력으로 하고,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을 축으로 하는 구도로 가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 대통령은 또 "지금 한나라당은 집중적으로 대통령을 깎아 내리고 식물인간 상태로 만들어 제대로 국정수행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아울러 "선거는 구도도 중요하고 바람도 중요하지만 열심히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열린우리당은 기존 정치권과의 차별성에 있어 우월적 입장에 있는 만큼 열심히 하면 좋은 성과가 있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또 "이 흐름을 잘 지켜나가면 여러분에게 좋은 결과가 올 것"이라며 "내가 꿋꿋이 지키고 국정운영을 잘해 여러분에게 불이익이 안 가고 선거구도가 잘 짜여지도록 노력하겠다"고 언급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영남지역 출마자에게 "최근 김혁규 경남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했는데 지역 민심은 어떠냐"고 묻는 등 각 출마자에게 지역구 사정과 민심을 물어보며 걱정을 아끼지 않았다. 이에 참석자들은 "경제가 안 좋기 때문에 대통령이 민심 현장을 자주 다녀주시는 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청와대 386그룹으로 분류되는 박범계 전 법무비서관은 "어느 순간부터 '386'이라는 단어가 미숙함과 치기어림의 상징이 됐는데 전혀 동의할 수 없다"며 "'386'은 사회 곳곳에서 중견의 역할을 하고 있고, 의회 리더십도 '386'으로 표상되는 젊은 세력으로 새롭게 교체되어야 한다"고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이들은 조만간 열린우리당으로 입당하겠다고 밝혔다.

▲2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에서 차기 총선에 출마할 청와대 비서관들이 합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청와대

민주당, "막가자는 것이죠" 분위기 격앙돼

민주당 관계자들은 노 대통령 발언 소식을 전해 듣고 "정말 그런 말을 했느냐"며 경악했다. 특히 김영환 대변인은 "청와대가 총선 선거대책본부고, 대통령은 선대 본부장이냐"며 "대통령의 의무와 책임을 망각한 발언"이라고 했다.

또 유종필 대변인은 "대통령께 '이쯤되면 막가자는 거죠'라고 되묻고 싶다"고 언급했고, 유용태 원내대표는 "대통령이 민심 돌아가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며 "이미 총선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양대 구도로 가고 있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열린우리당 찍으면 한나라당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고 언급했다.

아울러 김경재 의원은 본지와의 전화 통화에서 "자가당착이라는 말을 하기 이전에 명색이 변호사로 활동한 사람으로서 이같은 발언이 선거법에 위반된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묻고 싶다"며 "한 국가의 원수가 이런식으로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는가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고 비토했다. 또한 김 의원은 "그렇다면 열린우리당을 지지하는 것은 김정일한테 유리하다고 말할 수 도 있지 않나"라며 "정말 깝깝하다"고 한숨을 내뿜었다.

한나라당 "국민의 대통령이 되기를 포기한 작태"

한나라당은 이날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대통령이 도저히 용납 못할 노골적인 불법사전사건운동을 또 다시 자행했다"며 이는 "총선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슨 술수와 책략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또 다른 폭탄선언"이라고 비판했다

이날 박진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재신임'이니 '1/10 정계은퇴'이니 별별 정치도박을 감행한 근본적인 이유도 비리책임의 모면을 넘어 '한나라당 대 대통령, 열린우리당'의 대립구도를 만들려는 음모의 일환이라는 사실이 판명된 것"이라며 "인위적 구도를 만들어 국민에게 강요하는 것은 국가와 국민의 대표인 대통령이기를 스스로 포기하는 작태"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한나라당을 꺾기 위해서 어떻게든 민주당을 고사시키겠다는 무서운 저의도 번뜩인다"며 노 대통령의 의중을 어느 정도 감지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확인하고 보니 새삼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노무현 대통령이 이날 '민주당 죽이기'에 나선 것에 대해 야권은 비난을 무릅쓴 전략적 발언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이같은 발언을 한 것은 향후 열린우리당에게 힘을 실어주면서 표면적으로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구도로 만들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노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최근 열린우리당의 지지도가 급강하고 있는 시점에서 '민주당 죽이기'를 언급한 것을 감안하면, 이날 발언은 극도의 위기감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또 일각에서는 지난 199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이인제 찍으면 김대중이 된다"는 발언과 유사한 것으로 보고, '열린우리당'을 살리기 위해 본격적으로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이날 열린우리당 김성호 의원은 "뭐라고 말하기 참 어렵지만 우리당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는 것을 그렇게 표현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한다"고 언급했다. 더불어 "민주당을 비판했다기 보다는 한나라당 문제점을 강조한게 아닌가 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선거법 개정 협상에서 소수여당의 한계를 절감하고 있는 열린우리당에게 노대통령의 발언은 평지풍파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익명을 요구한 열린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못해먹겠다'에서 최근의 '1/10' 발언까지 노대통령이 발언할 때 마다 정국이 요동쳤으며 대화와 타협보다는 벼랑끝 대치로 이어졌음을 상기"시키면서, 현재 국면에서 "열린우리당이 대립각, 특히 민주당에게 칼날을 향하는 것은 야3당공조를 불러 부메랑효과로 되돌아 올 위험성"을 강조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최근들어 한나라당에 맞서 통합론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으나, 이날 노대통령의 발언으로 인해 '통합론'은 루비콘 강을 건넌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날 노대통령의 발언은 아무래도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우울한 크리스마스' 선물로 인식될 것 같다. / 취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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