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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의 삶, 우리 안의 괴물에 대하여
[류상태의 주일편지] ‘내 모습 이대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가야
 
류상태   기사입력  2013/10/19 [07:29]
그동안 한국 교회 개혁이라는 무거운 주제로 교우님들께 부담을 드렸으니 오늘은 좀 가벼운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1. 두 얼굴의 사나이

프로야구 SK 와이번스의 이만수 감독 별명이 ‘헐크’라는 건 야구를 좋아하는 중년의 팬들은 거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가 젊은 시절 포수 겸 4번 타자로 홈런을 펑펑 쏘아 올릴 때 <두 얼굴의 사나이>라는 제목의 TV 드라마가 상영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수입된 이 드라마는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기에, 연세가 지긋하신 교우님들은 거의 기억하실 것 같습니다.

드라마의 주인공 데이비드 배너 박사는 어떤 실험을 하다 사고를 당해 감마선에 오염됩니다. 구사일생으로 목숨은 건졌으나 그 때부터 신체에 이상한 변화가 생겼습니다. 급격히 흥분하면 본래의 자기와는 전혀 다른 초인적인 거인 헐크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는 그 괴물을 몰아내기 위해 애쓰지만 번번이 실패하고 맙니다.

데이비드 배너는 현명한 과학자이며 건실하고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얼굴에 작은 키, 연약한 육체를 가진, 한 마디로 현대인의 욕구를 채워주기에는 조금 부족한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배너의 몸 안에 도사리고 있다가 위험한 일이 닥칠 때마다 뛰쳐나와 그를 보호해주는 헐크는 배너의 연약한 부분을 완벽하게 채워주는 매력적인 캐릭터로 등장합니다.

드라마의 인기에 편승했는지 몇 해 전 <헐크>라는 제목으로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흥행에 성공하지는 못한 것 같습니다. 탱크를 집어던지는 영화 속 괴물보다는 상대적으로 좀 더 인간적인 TV 드라마의 거인에 사람들이 더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었을까요? 실제로 드라마에서 헐크 역을 맡은 배우는 미스터 유니버스 대회 무제한급에서 우승한 경력의 보디빌더로, 2미터 정도의 키에 우람한 근육을 가진 거인이었습니다.

어쨌든 두 얼굴의 사나이는 평범한 키와 용모를 가진 보통 사람으로 살아가다 어떤 곤경에 빠져 흥분 상태에 이르면 눈의 동공이 풀리고 서서히 근육이 불거지면서 헐크로 변합니다. 이윽고 자신을 곤궁에 빠뜨린 사람이나 물건을 닥치는 대로 집어던지고 걷어차면서 사태를 깨끗이 제압합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허탈감에 빠지며 서서히 본래의 데이비드 배너로 돌아옵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관객은 곧잘 주인공의 삶에 자신을 투영시키기도 하고 자신이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기도 합니다. 이 드라마를 보는 사람들도 현실세계에서는 데이비드 배너처럼 평범한 보통 사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골치 아프고 힘든 상황에 늘 시달리면서도 그 힘겹고 고된 삶을 겨우겨우 견뎌내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드라마를 보는 동안에는 헐크라는 캐릭터에 심정적 일체감을 느꼈을 것입니다.

일상에서는 상사의 눈치를 보며 ‘가정의 행복을 위하여’ 고개를 숙이며 살아야했던 그 시대의 평범한 샐러리맨들은, 이 드라마를 보는 동안만큼은 자신도 드라마 속의 헐크가 되어 골치 아픈 문제들을 모조리 때려 부수고 집어던지며 마음껏 스트레스를 풀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드라마가 끝나면, (데이비드 배너로 돌아온 헐크가 그러했듯이) 곧 현실세계로 돌아와 다시 일상의 허탈감에 빠져야 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요소들이 이 드라마가 당시 시청자들에게 공감을 자아내고 큰 인기를 누린 이유가 아니었을까요?

2. 우리 안에 숨어있는 헐크

드라마의 주인공 데이비드 배너 박사는 본래의 자기 모습을 더 사랑했습니다. 비록 초인간이라 하더라도 자기의 노력과 수고의 결과가 아니라 사고로 발생된 헐크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과학자가 되고 박사가 된, 그리고 인생을 건실하게 살아온, 연약하지만 진실된 자기의 본래 모습인 데이비드 배너로 언제까지나 남아 있기를 원했습니다.

하지만 현대인들 중에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보통 사람 데이비드 배너보다는 초인적인 헐크의 이미지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참모습은 감추고 헐크의 겉모습을 추구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위선의 탈을 쓰게 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사는 현실세계에서 ‘두 얼굴의 사나이’들을 만나기는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두 얼굴의 정치인, 두 얼굴의 경제인, 뿐만 아니라 두 얼굴의 시민들, 두 얼굴의 청소년들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얼굴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알아야 할 사실은, 두 얼굴은 우리에게 진정한 행복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사회까지 불행에 빠뜨릴 수 있다는 점입니다.

교우님은 어떠신지요? 혹 사고라도 좋으니 초인적인 힘을 갖게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보신 적은 없으신지요? 정당하게 땀 흘려 돈을 벌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어서 그런지, 로또에 거액 당첨되어 인생역전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교통사고를 당해 운명을 달리할 가능성보다도 적습니다.

남들 사는 만큼, 또는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고 싶다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자기 안의 괴물을 몰아내고 본래 모습을 찾기 위해 애쓰는 데이비드 배너는, 아니 그를 만들어낸 드라마 작가는, 참다운 행복은 남들 위에 올라선 소수의 승리자에게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내 모습 이대로’ 만족하고 자기 안에 있는 가능성을 꽃피우는 데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시청자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3. 사도 바울의 두 얼굴

성서 속의 사도 바울도 두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는 대단히 교만하고 남을 비판하기 좋아하는 사람이었지요. 그러면서도 그 스스로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착하고 하나님 앞에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 눈이 멀게 되었습니다. 금식하며 기도하던 바울은 비로소 육체의 눈으로는 볼 수 없었던, 자신의 깊숙한 내면에 응어리져 감추어져 있던 흉측한 자아의 위선적인 모습을 영안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사흘 만에 다시 눈을 뜬 바울은 자기 안에 도사리고 있는 그 괴물을 몰아내기 위해 끊임없이 영적인 싸움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 바울은 두 얼굴을 가진 자신의 이중성을 이렇게 탄식하며 고백했습니다.

“내 속에 곧 내 육체 속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들어있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선을 행하려고 하면서도 나에게는 그것을 실천할 힘이 없습니다. 나는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18,19. 공동번역).

본문의 바울은, 자신의 ‘마음’은 선을 추구하지만 ‘육체’에 선한 것이 들어있지 않기에 선을 행할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교리를 통해 본문을 읽는 사람들은 바울이 말하는 ‘육체’를 ‘원죄에 사로잡힌 옛 사람’으로 보려하지만, 교리의 전제를 내려놓고 본문을 대하면 자연스럽게 ‘육체적인 욕구’와 ‘하늘의 뜻을 따르려는 마음’의 갈등으로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두 얼굴을 갖고 살던 시절, 즉 바울이 본능적 욕구에 따라 살면서도 하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처럼 위선의 탈을 썼을 때는 아무 갈등 없이 살 수 있었는데, 예수님을 만나 삶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고 나니 그것은 자신을 파멸로 몰아가고, 하나님의 영광을 훼방하며, 이웃을 가슴 아프게 만드는 죽음의 길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을 수 있는 헐크, 이제는 내보내는 게 어떨까요? 드라마 속의 데이비드 배너가 헐크를 내보내고 진정한 자기, 연약하고 평범한 자아를 찾기 위해 몸부림쳤듯이, 우리도 화려한 허상을 좇는 ‘내 안의 괴물’을 내보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해 주셨듯이, ‘내 모습 이대로’ 만족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면 어떨까요?

류상태 선생은 장로회신학대학원 졸업이후 20여 년을 목회자, 종교교사로 사역했지만, 2004년 ‘대광고 강의석군 사건’ 이후 교단에 목사직을 반납하였고, 현재는 종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독교의식개혁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지은 책으로는 [교양으로 읽는 세계종교] [소설 콘스탄티누스] [신의 눈물] [한국교회는 예수를 배반했다] [당신들의 예수] 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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