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메일로 보내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임흥재의 세상게시판] 이문열을 다시 읽다
오도된 역사인식이 만든 불행한 자화상(自畵像)
 
임흥재   기사입력  2002/05/13 [15:18]
아들의 수술과 친구 부친의 소천(召天)으로 주말을 뜻하지 않게 음주와 도박?(장례식장의 풍경을 상상해 보시라)으로 탕진하고 돌아온 나는 생리적 필요에도 불구하고 잠자지 못한다. 아침 일찍 있을 출상행렬(出喪行列)에 따라 가야한다는 그 관례적(慣例的) 의무감을 떨치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글을 쓰기 시작한 후로 새삼 느끼는 나 자신의 부족한 공부에 대한 회의(懷疑)에서다. 학문이나 작서(作書)를 업으로 삼아 살아오지 않은 나의 삶을 핑계로 대자니 이는 더 부끄러운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래저래 번잡한 생각들에서 비켜날 요량으로 서가의 책들을 뒤적이다 한참 지난 메모지 몇 장을 발견했다. 아마도 일년 전쯤에 쓰여진 것으로 보이는 그 메모는 최인호의 ‘상도(商道)’와 이문열의 ‘변경(邊境)’에 관한 짤막한 촌평과 함께 이문열의 작품에 관한 내 생각들을 적고 있다. ‘상도’ 5권을 사면서 ‘변경’1부 3권을 읽은 지 족히 십여 년이 지나서, 2,3부 8권(책의 포맷이 변해  3부 12권으로 개작되어 있었다)을 살까 말까? 망설이던 기억이 새롭다. 8권의 책값도 무시할 수 없는 터에 십여년 전과는 판이하게 변한 이문열에 대한 나의 애증 탓이었다.

1부 3권을 읽으며 2부의 출간을 기다리던 당시의 기억을 떠올리며 끝내 사고 말았던 것이 아마 작년 이 맘 때쯤이었을 것이다. 이전까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임상옥에 대한 탐구(원작과는 거리가 먼 각색의 드라마였지만 mbc의 ‘상도’는 임상옥이란 이름을 대중에게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로 날밤을 새던 내가 '철이네의 역사'(변경)를 들여다보는 데는 무척 게을렀던 것 같다. 대학 새내기 때 ‘젊은 날의 초상’으로 인연을 맺어 이문열이 ‘변경에서 이주하여’ 정신의 황폐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까지 그래도 그는 나의 문학적 탐구의 대상이었다. 세상살이에 분주하여 그에 대한 진지한 관심을 대학졸업 후로는 가질 수 없었지만 그는 여전히 이 나라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임에는 분명했고 그의 왜곡된 역사인식은 늘 세인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논쟁의 한복판에 있었으므로, 힘들게 치른 ‘변경’의 완독(完讀)의식으로서 몇 자 적었던 메모였다.  

{IMAGE2_LEFT}작가의 정신적 분신인 작품이 독자들로부터 반납되고 작품의 장례의식이 거행되는, 독자(혹은 비판자)와 작가가 법정에서 만나야 하는 이 괴상한? 희극(戱劇)의 현장에서, 그 희극의 연출자인 이문열과 그 무대인 이 땅의 정치 사회적 현실이 나는 우선 안타깝고 이 불행한 충돌이 지금 불고 있는 ‘변화의 기류’에 휩쓸려 날아갔음 하는 염원 간절하다. 이문열식 과거지향의 역사인식이 수구 기득권 세력의 방패 이데올로기로 기능하는 낡은 세상을 벗어나 미래와 전망이 가득 숨쉬는 새 세상에서 매일 눈뜨고 싶다는 말이다.  
지난해 11월 3일 이천 부악문원 앞에서 벌어진 책 반환식(대자보 자료사진)
[관련기사]
여인철, 안티조선이 친북세력이라 말한 적 없다? 대자보 82호
불화와 선동만 담긴 '술단지와 잔'을 치우며, 대자보 71호  
이문열돕기운동-'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바로잡아주기, 대자보 67호  

이 글이 이문열의 문학적 성과들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글이 되지 않기를 바라며, 이문열에 관한 메모를 옮기는 것으로 글을 시작한다.

이문열에 관한 메모

이 글이 깊이 있는 문학적 탐구나 치열한 문제적 성찰의 결과로 쓰여진 글이 아님을 먼저 고백한다. 또한 나의 시선이 이문열 소설로 향한 다른 독자들의 그것과 일치하거나 비슷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글은, 소설은 작가의 것이기도 하지만, 탈고되어 세상에 나온 순간부터 읽는 독자들의 것이기도 하다는 믿음을 나는 가지고 있다. 때문에 나의 시선을 애써 지적하는 수고는 사양하고 싶다.

이문열의 소설은 많은 평자들에 의하여, 또한 독자들에 의하여 평가되고 가치의 정립이 나름대로 되어 있다. 여러 평자들의 표현을 빌어 말하면 '능란한 이야기꾼의 솜씨'일 수도 있겠고, '낭만적 상상력의 세계인식' 혹은 '개인과 자유를 향한 열망'의 표현일 수도 있을 것이며, '관념의 문학'적 형태이며 '부조리한 세계와 소설의 주인공'의 등장일 수도 있을 것이다. -위 비평의 타이틀은 내 기억에 의존한 것이므로 평자들의 이름을 일일이 부기하지 못함을 양해하여 주시라.

이처럼 그의 소설에 대한 다양한 해석은 그의 소설이 갖는 소재의 다양성에 기인한다 할 수 있다. 현대와 고전을 넘나들며 만들어 내는 그의 소설적 공간은, 순수한 공간적 의미로만 파악할 때 그 폭이 넓으며 다양성의 실험처럼도 보인다.

{IMAGE1_RIGHT}[황제를 위하여]에서 보이는 의고전체의 화려함과 주인공의 돈키호테적 환상은 그의 탁월한 창작적 재능(이야기꾼의 솜씨)이 없으면 직조할 수 없는 결과물이며 자신의 불우한 유년시절과 그로 인한 궁핍과 방황의 제공자였던 아버지와 맞부딪치는 [영웅시대], 시대의 정신을 치열한 작가적 성찰로 담아내지 못한다는 평단의 질책에 마지못해 내놓은 듯한 [구로아리랑] 계열의 작품, 원죄처럼 안고 사는 고향에 대한 향수와 부끄러움을 동시에 담고 있는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황량한 역에서] 등의 소설들, 존재의 문제를 탐구한 듯이 보이는 [사람의 아들], 대중소설의 수위를 높이기도 한 [레테의 연가]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 이데올로기 혹은 지배와 피지배라는 권력의 탄생과 그 문제를 경계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칼레파타칼라] 등 이루 헤아릴 수도 없는 소재를 가지고 작품을 직조해 내는 그의 소재의 다양성이야말로 그의 소설이 주는 매력일 것이다.
사진출처 : 대한매일신보

이런 소재의 다양성과 더불어 그의 소설이 갖는 형식의 다양성 또한 중요한 그의 소설의 특징인 바, 그는 소재와 만들어내려는 이야기에 걸맞는 형식을 사용함으로써 그의 재능이 무엇보다 형식의 축조에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장편과 중편, 단편 그리고 중편연작을 통한 장편의 구성 등 형식의 다양화는 그가 가진 탁월한 재능임을 부인 할 수 없다.

다음으로 그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소설적 특징은 ‘재미의 추구’, 즉 대중성의 획득에 있다. 그의 소설이 많은 평자들의 가혹한? 질타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여전히 잘 팔리는 이유는 재미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대중성의 획득은 그가 가진 창작적 재능, 앞서 표현한 바로 ‘능란한 이야기꾼의 솜씨’ (유종호 : 능란한 이야기 솜씨와 관념적 경향)에 기인하는 것으로 이는 단순히 소설적 사건과 인물에 어울리는 '형식의 축조'만으로 가능한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 소설적 공간에 잘 어울리는 양식화된 언어의 선택, 문체의 유려함, 나름대로 재미있고 설득력 있는 삽화의 선택, 의도적인 동시에 인상적인 장면의 삽입, 치밀한 구조적 전개 등이 그의 소설을 재미있게 만드는 구동력으로 작용한다. [금시조] [황제를 위하여] 등이 그의 이야기꾼의 솜씨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소설일 것이다.  

또 하나 그의 소설이 재미있는 이유는 바로 동시대를 살았던, 살고 있는 우리가 함께 겪었음직한 경험의 산물이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여기에서의 경험은 직접체험과 방대한 양의 책읽기에서 체득한 듯이 보이는 간접경험까지를 말한다.  

편의상 귀향소설 혹은 향수소설로 불릴 만한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 등의 소설이나 [영웅시대] 등에서 나타나는 그 공간에서의 역사는 그대로 우리 근현대사의 질곡의 역사다. ‘역사란 과거의 현재적 모습’이라는 명제에 수긍하기로 하면 우리는 아무도 그 역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때문에 우리는 할 수 없이 ‘부조리한 세계’에 살면서 끊임없이 실존을 위협받고 고뇌하는지도 모른다.  

내가 사는 공간과는 먼 듯 보이면서도 현실의 내가 있는 듯한 소설적 공간을 발견할 때, 우리는 드디어 '문제적 ‘나’'가 되고 내 개인의 역사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요즘 드라마에서 앞 다투어 내보내고 있는 이름깨나 있는 인물들이 살던(메모 당시의 드라마를 말하는 것 같으나 구체적인 것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역사적 공간이 아니라 오로지 ‘평범한 나’가 사는 역사 말이다.

--<< 중   략 >>--
더 많은 출중함에도 불구하고 이문열의 소설이 긍정적이기 보다 부정적 평가를 받는 것은, 그렇다면 무슨 까닭일까? 그것은 그의 작품에서 드러나는 폐쇄된 통로에서의 길찾기 같은 것이 될 것이다.


그의 작품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함축된 표현은 '닫혀있다', '전망의 결여', '보수적 회색분자' 등으로 요약된다. 그것은 그의 작품들이 갖는 한계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하면 그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세계관이 닫혀있음으로 해서, 즉 미래에 대한 열린 구조가 아니라 현재에 머물거나 과거로의 경사로 이어져 그는 우리에게 '전망'을 보여주지 못하고 자족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말이다.  

앞서 언급한 소설들이 빼어난 직조형식과 이야기꾼의 스토리 전개로 말미암아 소설적 재미와 가능성을 획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부정적 평가를 면치 못하는 것은 그의 작품들이 빠져 있는 바로 이런 자족적인 세계관의 결과이다. 그의 소설들은 언제나 ‘불확실한 희망’에 대한 의심과 ‘더 나빠질 세기말적 인식’이 그 기저를 이루고 있음으로 인해 자연히 과거로의 회귀밖에 택할 길이 없다.

[황제를 위하여] 등과 대부분의 귀향소설, 그리고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칼레파타칼라' 등의 소설에서 보이는 그의 전망에 대한 의심은 언제나 그 스스로의 표현을 빌리면 '비극적 소모'(tragic waste)>에 대한 경계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희구나 열망의 추구가 오히려 더 나쁜 결과, 예를 들면 [칼레파타칼라]에서 보여지는  정권의 교체는 ‘단순한 집권자의 교체’일 뿐 오히려 도시의 붕괴를 가져오고 만다는 그의 극심한 전망과 미래에 대한 의심은 그를 늘 보수우익의 자리에 서있게 하거나 그 시대의 아픔과 모순을 깨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막중한 지식인의 책무를 회피하는 회색분자로 자리매김 한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는 바로 이런 그의 경계가 현실로 들어난 인물이다. 그의 ‘비극적 소모’, 즉 더 나은 세상에 대한 담보없이 행해지는 역사적 혹은 시대적 행위들이 그저 하나의 소모(消耗)이거나 낭비에 불과하다는 그의 극단적인 현실인식은 선뜻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현실인식은 아마도 그의 성장과정으로부터 비롯된 것 같다. [영웅시대]에서 보여 지듯이 월북한 아버지를 원죄처럼 가슴에 품고 살아야 했던 그의 인생역정이 새로운 세상을 추구하는 이데올로기로부터 그를 부자유스럽게 하였고, 그러면서도 가슴속에 세상에 대한 오기처럼 품고 살았을 재령 이씨-스스로 밝힌 바, 퇴계 이황의 대제자들을 많이 배출한- 명문의 종가집 출신으로서의 강한 집착이 그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때문에 그의 역사인식은 늘 언제나 그리운 옛 영화(榮華)에 대한 향수요, 그의 고향에 대한 본능적 회귀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가 드러내는 역사는 철저히 개인적인 것이며 전부는 아니더라도 대부분의 작품들에서 묻어나는 그의 역사성은 사회적인 모순과 그 시대를 규정하고 혹은 억압하고 있는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지배권력에 대항하여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 그는 수구적 지식인의 선두에 있고 낡은 보수의 처마 밑에서 떠날 수 없는 것이다.

자전적 에세이와 귀향소설류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고향 종가의 고대광실이 곧 이문열의 정신세계인 동시에 그 낡고 퇴락한 기와집을 숙명처럼 떠받치고 살아야 마음이 편한 것이 이문열이다.  

사회적 모순에 대한 치열한 탐구나 변혁에의 열망보다는 그가 택한 길은 오히려 그것들로부터 끊임없이 도피해야 하는 길이었고, 철저히 외면하는 길이다. 우리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사회적 모순과 편견이 올바른 가치의 정립을 억누를 때 애써 무관심한 곳으로 우리가 눈을 돌리듯 그의 시선은 지나간 시간의 그림자로 눈을 돌리게 되고, 그 어두운 구석에 눌러 앉아 누리는 자족의 세계에 안주하는 것이다.  

때문에 그의 소설들은 자족적인, 닫힌 구조 안에서만 움직일 뿐, 세계를 향한 힘찬 전망의 날개를 펴지 못한다. ‘받은 잔은 마땅히 참고 비워야 한다’는 현실 순응의 외침이 그의 작품을 관류하고, 그 정점에는 폐쇄된 통로의 극복보다는 돌아서 바라본 세상에서 찿은 변명과 합리화의 논리가 있게 되는 것이다.

불행한 자화상의 또 다른 얼굴   

이상이 우연히 발견한 이문열에 관한 메모다. 그 말미에는 다시 읽은 ‘변경’에 대한 단상이 적혀있다. 그는 자신을, 자신의 역사를 세상이라는 곳의 중심에 세우지 못하고 변경의 한 곳을 택하여 세우고 있다면, 굳이 그는 왜 자신이 산문집의 제목으로 택했던 ‘시대와의 불화’를 세상에 드러내고 포악을 숨기지 않는 것일까?

민족의 분단과 이념의 대립으로 갈라선 불행한 역사의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자신의 불행한 신세 탓으로 그는 늘 변방의 일원이었다. 그 오랑캐?의 영원한 꿈은 중원(역사의 중심)의 수복이다. 즉 그는 이제 변방의 우두머리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역사의 주인공이 되고 싶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은 단 두 가지다. 자신이 그 중심과 화해하여 편입하여 들어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중심을 완전히 깨부수고 새로운 중심을 건설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비밀을 알고 있듯이, 이문열의 선택은 자명하다. 미래가 의심스럽고 불안하기만 한 그는 변방의 옷을 벗고 지긋지긋한 그 곳의 습속을 버리며 중심(수구 기득권 세력)에 편입되는 길을 선택한다. 그 중심의 세계가 옳고 아름다운 세계인가? 하는 것은 이문열에게는 중요하지 않다. 변방의 무리에 만족할 수 없는 그는 자신을 옭아매었던 그 역사의 굴레를 스스로 짊어짐으로서 온전한 주체가 되었다고 착각한다. 진골일수 없는 출신성분으로 그는 수구세력의 앞잡이가 될 수밖에 없다. 언제고 닥칠 진골들의 따돌림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그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다시 변방으로 쫓겨나 불우한 시절의 한을 노래하기에는 그동안 누려온 물질적 정신적 풍요가 너무 깊게 배어버린  것이다.  

변방의 목소리라고 어찌 불길하기만 할까? 변방의 북소리에 놀라기는 수구의 진골들도 마찬가지다. 이문열이 그토록 벗어나고 싶은 변방은 사실 우리 민초들의 터전이다. 우리 역사의 중심에서 오로지 자신들의 권력욕과 지배의 영구화를 꾀한 수구진골들에게 밀려나 서럽게 살아가고 있는 민중의 터전이라는 의미에서 그렇다. 그 변방에 언제부터인가 변화와 개혁의 바람이 불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우리가 중원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야 한다는 당연한 외침들이 터져 나온다. 쟁기 들고 망치 들고 그물을 거두며 삼삼오오 무리가 지어지고 이제는 제법 그 소리 우렁차다.

‘다시는 속지 않으리’(삼김을 포함한 모든 기만적 정치세력으로부터) 다짐하는 그들의 결의에 놀란 거짓된 중심의 수구진골들은 막강한 전력에도 불구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홍위병으로 선전하고 사이비에 친북세력 운운해서라도 역사의 진전을 가로 막아야 한다. 새로운 세계의 중심은 곧 자신들이 껍데기로 전락해야 하는 비운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수구언론의 선무공작으로 의심을 부추기고 지역을 볼모삼아 최후의 항전을 준비하여야 한다. 공들여 포섭한 반역사적 지식인들의 입과 손을 빌어 변방(민중세력)의 예봉을 꺾어 놓아야 한다.  

주객이 전도되고 중원(수구기득권세력)과 변방(민주개혁세력)이 터전을 바꾸는 그 끔찍한 결과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문열과 같은 반동적 지식인들의 얼굴이 불행한 자화상으로 그려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 여기에서 연유한다. 자신들의 우월을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도 얼굴을 찡그릴 수밖에 없는 이 불안을 그들은 떨쳐버릴 수가 없다. 변방의 진군을 알리는 말발굽 소리는 시시각각 가까이 들리고 그 힘찬 진동에 땅이 패인다. 중원사수를 위한 강력한 방어막이었던 주사(主思)의 이념도 더 이상 그들을 지켜줄 수 있는 것이 못된다.  

이 불행한 현실의 악몽에 가위 눌리는 많은 얼굴들을 보라. 조중동은 창백하고 이회창은 주름이 깊다. 박원홍 이문열과 같은 아류(亞流)들은 동맥경화다. 피가 돌지 않은 그들의 정신에서 나오는 말과 글은 이미 죽어있다. 그들의 자화상은 그래서 슬퍼 보인다. 초점 없는 눈빛이 안쓰럽고 일그러진 표정이 불쌍하기까지 하다.

세상의 벽면에 걸린 이 불행한 자화상이 하나 둘 내려지는 날, 역사는 진정한 색깔과 선과 면으로 다시 그려질 것이고, 또한 그들 역시 스스로를 강박하고 있는 가짜 가치의 사슬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유인으로 역사를 다시 볼 수 있으리라.  / 논설위원
트위터 트위터 페이스북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톡
기사입력: 2002/05/13 [15:18]   ⓒ 대자보
 
  • 도배방지 이미지